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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백호(鞍山百戶) 정송(鄭松)이, ‘요동총병관(遼東摠兵官)이 명나라 황제에게, 달달(韃韃)이 문카라부카[文哈刺不花]를 고려에 파견해 요동을 협격하려고 획책하니 구원병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황제가 손도독(孫都督) 등을 시켜 전함 8,900척을 지휘해 고려를 정벌하게 했습니다. 손도독이 요동(遼東)에 도착해 요동의 군사를 세 개의 부대로 편성해 고려를 향해 함선을 출발시켰습니다. 그때 달달이 혼하구자(渾河口子)를 공격해 명나라 군사를 몰살시키고 혼하(渾河)에 진을 쳤는데 손도독의 부대가 전투를 벌였으나 결국 패배하고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왕 9년(1383) 계해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8.30, 경인문화사)
이 당시 요동총병관은 그저 달달 문카라부카가 고려에 들어간 사실로 고려가 문카라부카랑 연합을 하여 요동을 칠 것이라 생각하고 주원장에게 알렸으나 이와 다르게 고려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주원장은 요동 총병관 말을 듣고 즉시 수군을 출정 시키니 전함 8.900척을 요동에 보내었다. 요동에 도착한 후에 명나라 군사는 집결 후 고려로 진군하려고 하자 그 틈에 빈성을 달달이 공격하여 성을 점령하자 고려군에 진군하고자 했던 군사를 돌려 달달을 공격하였으나 대패하고 만다..
만약에 북원세력이 명나라군을 저기에서 잡아먹지 않았으면 고려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거다. 그 이유는 저 전투가 끝난 후에 고려가 알았기 때문이고 알게 된 이후는 고려도 무리수를 두면서 군사 증가 및 요동정벌론이 여기부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