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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15:06:07

고구려 영토 운영방식

교과서에 흔히 말하길 고구려는 지형이 안좋아 초기에 약탈로 나라를 발전 시켰다. 라고만 한다. 그 이후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게 우리 역사 교육의 한계점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구려 영토의 크키를 알면 왜 소국이 제국이라 할까? 흔히 국뽕으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고구려는 땅은 일반 왕국의 수준이지만 운영 방식과 시스템은 제국과도 흡사하였으며 언제든지 고구려는 주변국 문화를 잘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던 제국이라 칭해도 될 만큼 대단한 나라였다. 이는 훗날 수, 당 황실에서 고구려 무용과 음악을 무척 좋아했을정도며 고구려 멸망후 당나라에서는 고구려의 문화를 대부분 흡수하여 자신의 것과 융합 시키는등 고구려 문화력이 중원과 꿇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구려는 옛날부터 주변국을 차례대로 멸망 시키나 그 땅을 원래 왕에게 다스릴 수 있도록 하여 자치주로 봉한다. 그리고 문화적으로 자츰 흡수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는 고구려가 그 주변국을 컨트롤이 가능해야 통했던 운영방식이었다. 단점은 바로 고구려의 힘이 약해져 이탈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예로 들자면 고구려 장수왕시절 신라가 주둔하고 있던 고구려 군사를 죽여 백제와 연합을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중국사서 삼국사기만 봐도 이를 주장할수 있는 여러 기록들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건 고당 마지막 전쟁때 " 부여왕이 투항하였다 " 였다. 허나 이때는 668년 부여가 멸망하고도 수백년이 지난 이때 부여라는 곳은 이미 고구려 땅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부여왕은 바로 문자명왕때 고구려에게 망명 해 제후로 봉해져 자치구 처럼 다스렸다..

 

한마디로 번왕(봉건시대)을 두어 다스렸다고 볼 수 있다.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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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삭

    2017-04-26 20:54:11

  • ㄴ고구려에 대해서 많이아시네여.. 발해도 써주시면 추천갑니다

    2017-02-16 15:27:12

  • 그때 오죽하였으면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게 사절단을 보내 고구려가 혼란에 빠진 이때 협공하자고 제의 했을정도로 였죠 그러나 북위는 이 사실을 고구려에게 알리고 백제의 협공을 거부함으로 훗날 장수왕이 위례성을 공격할수 있는 최고의 명분을 얻어냈습니다.

    2017-02-16 15:22:40

  • 광개토태왕 - 장수왕 - 문자명왕시절 전성기가 맞았으나 실제로 장수태왕 시절 큰 내분이 일어난적이 있었어요.. 그때 장수왕이 수만에 해당하는 고위 귀족과 황족들을 무참히 죽이는 사건이 발생해서 주변국으로 도망을 많이 갔던 시절 역사계에서는 장수왕 말부터 고구려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는 훗날 문자명왕이 죽고 안장왕 - 안원왕 시해사건이 터진 이유라 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걸 바로 잡기 시작하건 고구려 평원왕때 부터고요

    2017-02-16 15:21:20

  • 장수왕이 전성기인데 무슨 힘이약해져서 이탈한다는거지?

    2017-02-16 15:17:53

  • 아 닉값하시넹 ㅋㅋ

    2017-02-16 15:17:14

  • 아...광개토대왕

    2017-02-16 15:15:04

  • 모지?

    2017-02-16 15: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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