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 27대 태왕 영류태왕 이름은 고건무이며 연개소문에게 시해당한 왕이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그저 그런 왕으로 착각한다.그러나 태왕 고건무는 그저 그런 왕이 아니며 감히 영웅이라 칭해도 될 만한 실력자이다. 그중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수와 전쟁에서 큰 승리를 쟁취한 군주이자 한 나라의 군주(君主)였다.
수서에 보면
요동의 역(고수전쟁)에서 (내)호아는 누선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패수에 들어와 평양성 60리 밖에 이르렀고, 고려의 재상과 마주쳤다. (이에) 진격해 쳐서 크케 깨뜨리고, 계속해서 이겨 성 아래에 이르렀고, 그 성곽을 깨트렸다. 이 때 군이 크게 약탈을 벌었는데, 점점 그 대오가 흐트러졌고 고원(영양태왕)의 동생 건무가 결사대 500인을 모아 그를 요격했다. (내)호아는 이로 인해 퇴각하니 포구에 진을 치고 기회를 기다렸다. (그러나) 후에 우문술 등이 패배하였다는 것을 듣고 마침내 돌아갔다.
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내호아가 이끈 군사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이는 우리 삼국사기 권20 고구려본기, 제 8, 영양왕에서 나오길 수만의 병사라 나옵니다.
즉 훗날 27대 태왕으로 즉위한 영류태왕은 군사 500으로 수만에 해당하는 수나라의 군사를 격파 시킴므로 내호아군을 상실케합니다. 이는 삼국사기를 빌렸어 말씀드리면 " 내호아가 병력을 돌아가 바닷가 포구에 주둔하였으나 감히 다시는 머무르면서 여러 군대를 맞아 싸우지 못하였다. " 합니다. 즉 수만이 고작 500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지요.
이 전투의 이름은 패강전투라하며 27대 영류태왕 고건무가 무능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왕들은 28명의 즉위하였으며 그중 반 이상이 다 전쟁의 경험이 있을정도로 고구려 왕은 전쟁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