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그리고 나랑 실피드 이모랑 엘라임 삼촌이랑 셋이서 그 검은 용 혼내줄테니까 걱정 마.\"
끝끝내 이 아이는 디아른의 눈물을 고이게 만들었다. 디아른은 살며시 눈을 감더니, 싸르카에게 대답했다. 그녀의 눈에서 (조금은 커다란)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마워... 고마워, 르카야.\"
싸르카는 자신의 어미에게서 흐르는 눈물을 보더니, 깜짝 놀라서 말했다.
\"많이 아파? 울만큼 아파?\"
싸르카의 놀란 눈망울을 보자니 애써서 눌렀던 애틋한 감정이 다시 솟아났지만, 디아른은 눈물을 감추고는 말했다.
\"아냐. 엄마 하품했어, 하품.\"
\"아, 그렇구나.\"
디아른은 이번에는 속아넘어가준 싸르카에게 새삼 고맙다고 느꼈다. 그렇게 상처 입은 블루 드래곤과, 정령왕들과, 한 소년의 하루가 저 멀리 일렁이는 붉은 노을에 흠뻑 젖어들었다.
* * * * * *
옛날 옛날에, 한 용이 살고 있었어요.
푸른색 가죽을 가지고 있던 그 자비로운 용은, 어느 날 죽어가는 한 아기를 발견해요.
그녀는 어쩌지, 어쩌지 고민하다 결국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치료해주었어요.
다른 용들은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아이는 7년 후에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었지요.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어요.
어느 덧 푸른 용과 아이가 작별해야할 시간이 찾아온 거에요.
++
블랙 드래곤 에파티우스가 드래곤계에서 퇴출 당하고, 블루 드래곤 디아른이 그를 제지하려다 상처를 입었던 사건이 있고 난지 어느덧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내일은 디아른이 데리고 있는 꼬마 인간 \'싸르카\'를 인간 세계로 다시 돌려보내는 날이다. 1년전의 상처는 치유되었지만 그 흉터는 아직 남아있는 자비로운 블루 드래곤은 오늘따라 마음이 심란하다. 이제 싸르카에게 진실을 말해줄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 말해줘야할까…\'
단호하게 \"넌 내일이 되면 여기를 떠나거라.\"라고 말해야하나, 아니면 \"저기 르카야, 네가 알아야 할 중대한 소식이 있단다.\"라고 말해야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던 디아른은 결국 엘라임과 실피드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1년 전의 사고 이후로 싸르카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말수가 줄어들었다. 매일마다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싸르카는 디아른에게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엘라임, 실피드? 내일 있잖아…\"
- 내일 르카 보내야하는거?
눈치가 빠른 엘라임이 디아른의 말을 가로채고 말했다. 디아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하지만 실피드의 대답은 조금, 아니 많이 충격적이었다.
- 뭘 말해? 이미 알고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이미 알고 있다니!\"
엘라임이 디아른의 흥분을 진정시키고는 대답해주었다.
- 1년전에, 네가 사고를 당했을때 말이야…
『싸르카가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물어왔었지.
\"저기, 엘라임 삼촌.\"
- 어, 왜.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아요.\"
- 뭐가?
\"우리 엄마는 나처럼 인간으로 있는 것보다 용으로 있는 시간이 더 많잖아요.\"
- 어... 뭐 그렇지.
\"그런데 저는 왜 용으로 변신을 못해요?\"
- …그건 말이다. 후우.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으렴.』
-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거야. 나도 원래 안 말해주려했는데 안 말해주자니 좀 양심에 찔리기도 해서…
디아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껏 싸르카가 곰곰히 고민해오던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단 말인가? 디아른은 엘라임에게 화를 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지만, 실피드가 선수를 쳤다.
- 그래도 네 생각처럼 즉흥적으로 르카한테 말해주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낫잖아?
디아른은 조금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디아른은 곧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러면 오늘 다시 말해줘야겠지?\"
\"그럴 필요 없어, 엄마.\"
갑자기 들려온 싸르카의 목소리에 디아른은 당황했다. 하지만 곧 침착을 되찾은 디아른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금 덥수룩한 흑발에다가 푸른색의 신비로운 눈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아이에게 대답했다.
\"준비는… 된거니?\"
\"간단하게 헬리움 다섯 덩이만 주면 준비는 다 될 것 같은데 말이야.\"
디아른과 싸르카 사이에 잠시동안 잔잔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동시에 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의 농담에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나아진 듯 했다. 그때, 디아른의 레어로 드래곤들이 날아왔다. 그들은 그녀의 레어에 도착하자마자 인간으로 폴리모프 한 후, 디아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리바이어던이 말했다.
\"준비는 되었나?\"
싸르카가 대답했다.
\"되었습니다.\"
리바이어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오늘 밤에, 달이 가장 높이 뜰 때에 떠나면 된다. 네가 딱 그즈음에 이 레어로 온걸로 안다.\"
\"네, 알겠습니다.\"
리바이어던은 싸르카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면서 말했다.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디아른, 그대도 알고 있겠지요? 7년 전에 약속했던 것을 어기지 마시오.\"
디아른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내일 아침에 와서 확인하겠소. 그대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해두어야할 문제니 말이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드래곤들은 떠나갔다. 디아른과 싸르카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작별하기 전의 추억 회상이랄까. 그렇게 그들은 한 발자국씩 성장하고 있었다.
어느새 밤이 깊었다. 이제 그들은 작별해야만 한다. 디아른은 그와 헤어지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하지만 헤어진다고 해서 영원토록 헤어지는 것은 아니다. 몇년 간격을 두고 그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정도는 허락해주리라. 그래도 디아른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싸르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년 동안 출생의 비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진실을 말해주지 않은 디아른을 미워하기도 했지만 막상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니 그의 눈이 습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아직은 이별을 겪기에는 어린 나이이다. 게다가 혼자서 인간 세계에 발을 들이기에도 어린 나이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싸르카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별하지 않으면, 자신의 어미가 곤경에 처할 것을.
싸르카는 마지막으로 디아른과 꼭 안았다. 실피드와 엘라임도 다가와 그들을 살포시 안아주었다. 달빛이 그들을 은은하게, 그리고 슬프게 비춰주었다. 싸르카가 말했다.
\"엄마. 사랑해요.\"
이내 감정이 북받친 디아른이 울음을 터뜨리며 싸르카를 더욱 더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나도 사랑한다, 아들아. 하지만 내가 너를 가끔씩 볼 수 있을테니, 그리 걱정은 하지 말거라.\"
이윽고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들은 이제 이별을 해야만했다. 엘라임과 실피드가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
- 7년 동안 정말 재밌었는데… 이렇게 가야한다니….
- 만약 인간 세계에서 누가 못살게 굴면 그 성질머리로 혼쭐을 내주라고.
싸르카는 눈물 맺힌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요. 헤헤….\"
마지막으로 싸르카는 디아른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디아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가야만한다. 싸르카는 \'\'이것이 영원한 이별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라며 의지를 굳혔다. 이제는 순전히 그의 힘으로 살아가야한다. 싸르카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뒤를 돌아보았다. 엘라임과 실피드는 그에게 텔레포트의 주문을 외웠다. 이제 그는 인근의 인간들이 사는 마을로 이동될 것이다. 싸르카는 마지막으로 말을 남겼다.
\"나중에 봐요. 꼭.\"
하지만, 그것이 영원한 이별일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갑자기 텔레포트가 취소되더니,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달빛을 가렸다. 그리고 어두운 밤하늘에 붉게 빛나는 두 개의 섬뜩한 눈동자.
\"갚아주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