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The Stolen Body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사실 그녀가 있었는지는
20년 전부터 모두의 관심 밖이었다.
◇
전달 사항이 있어 유리아를 찾아간 배달부는 '다음에 다시 와주세요'라고 적힌 종이, 그리고 그 종이를 붙이고 있는 천막만을 마주하고 돌아왔다. 터덜터덜 걷는 걸음 속에 담긴 의미를 그 천막의 주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천막은 그저 굳게 닫혀있을 뿐이었다.
"에라이...도대체 언제까지 문을 닫을 셈이지. 저 점쟁이년. 예전에 유타칸을 구하는 데에 협조했다고는 해도...이런식으로 나오면 좀 곤란한데. 아니, 많이 곤란하지. 신성한 신성왕국에 점쟁이라니, 재수없어. 퉷."
배달부의 불평불만이 그림자와 함께 길게 늘어져 골목 구석으로 향한다.
클라이드도 마찬가지로, 그녀를 찾아왔다가 다음에 다시 와달라는 메세지가 적힌 천막만을 마주한 채 되돌아왔다. 자기가 찾기 귀찮아서 찾지 않고 있는 그 '가스타'인지 뭔지 하는 성인지 이름인지를 가진 사람을 찾겠다고 난리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몇일이나 지났다고 아예 증발해 버렸으니. 그로써는 정신이 나갈 노릇이었다. 그가 한 발길질에 돌이 천막 입구쪽으로 굴러갔고 천막 입구를 막는 천에 부딫힌 돌이 데굴데굴 굴러 그의 발 근처에 떨어졌다. 그 쪽을 가만히 보던 클라이드는 그 이상징후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그쪽을 향했고 천막 입구를 툭 쳐보았다.
똑.
무언가가 덧대어져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유리아! 유리아! 입구에 뭐 대놓고 뭔 삽질을 하는 거야? 당장 튀어나와! 빨리! 안나오면 내가 부수고 들어간다?"
천막 입구를 계속 주먹으로 두드리던 그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몸을 부딫혀가며 입구를 뚫어보려 노력했지만 택도 없는 짓이었다. 그는 신전으로 향했고, 자기 방 안에서 사제에게 지급된 메이스를 찾아내 손에 들고 다시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은 아까와 똑같은 상태였다. 그가 메이스를 휘둘러 천막 입구에 대어져 있을 무언가를 강하게 쳤다. 쾅쾅거리는 소리에 모두가 그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마침내 뒤에 덧대져 있던 나무판이 부숴지고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그제서야 자각했는지 주변의 사람들을 슬쩍 보기만 하고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유리아! 어디로 사라진거야? 유리아아아!!!"
그가 소리치는 소리에 놀란 고양이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자기 발 근처까지 와서 그를 위협하고, 심지어 할퀴려 하는 그 고양이를 클라이드는 짜증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걷어찼다. 맞은 것이 아픈지 고양이는 구석으로 가버렸고 그는 고양이를 무시한 채 지하실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지하실에도 유리아는 없었다.
"하, 미치겠네. 어디로 증발한거야! 짜증나게시리...유리아! 당장 튀어나와!"
신경질을 내던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안은, 자신이 찾아갔었던 그 때와 정말 똑같은 모습이었다. 바람에 날려 페이지가 바뀌었는지 그녀가 읽었는지 모를 예언서의 페이지만 빼고. 다시 그가 신경질을 내며 책장들을 전부 엎었다.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행동은 그곳을 더 어지르는 데에 일조했을 뿐 비밀통로라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었다. 화가 난 그가 책상을 강하게 쳤다.
"아아! 짜증나! 어디로 간거야 대체! 하늘로 솟았어, 아님 땅으로 꺼졌어? 가스타인지 뭔지를 찾아준다고 할 땐 언제고...!"
그러던 그가 공연히 카펫의 살짝 들려 올라온 부분을 발로 밀었다. 그 아래에서, 그는 낮선 발자국을 몇개 발견했다. 그가 바닥을 그제야 제대로 바라보았다. 그가 어지른 흔적 틈틈이 발자국들이 보였다. 흙묻은 발이었던 듯, 나무바닥임에도 발자국이 남겨져있었다. 그가 발자국을 따라갔고 그 발자국이 뒷문으로 향해 있다는것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파이어드래곤 한마리가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었고, 그 용은 그에게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 모습이 그에게 위압감을 전해주었다.
"크르르르....크아아아!!"
"뭐야?! 이런 씨..."
그가 뒷문을 열려고 해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그가 상당히 골치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용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너를 잡아먹어 버리겠다아아아'라고 말하는 듯 보이는 눈을 그는 가만히 응시했다. 용이 먼저 선제공격을 가해왔다. 그가 만만해 보인 모양이었는지, 제 자랑이라는 불조차 뿜지 않고 그를 발톱으로 공격했다. 간신히 피했지만 팔에 살짝 상처를 입은 그가 상처난 곳을 부여잡았다.
"크으...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주는 먹이 받아먹고 자란게...패륜이냐?"
"크오오오!!!"
그 용은 자신이 하는 일이 패륜이건 아니건 거의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오히려 피 냄새를 맡았기 때문인지 흥분한 모습이었다. 클라이드가 흘린 피가 서서히 옷을 물들이고도 모자라 바닥을 더럽히기 시작했다. 피가 떨어지는 팔에 치유마법을 좀 쓰려 하자 용이 신성력의 기척을 눈치챈 듯 그가 있는 방향으로 다시 제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민다. 하지만 이번엔 그도 만만하게 당하지 않았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홀리 쉴드!"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방패가 용의 발톱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용은 제 발톱이 막힐리 없다고 생각했는지 굉장히 당황했고, 이 틈에 그가 메이스에 신성력을 불어넣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강하게 발목을 가격했다. 그러자 신성력이 용에게 흘러들어가며 무언가 반응을 일으켰다.
"그륵...크아아!! 캬아아아!!"
"뭐야? 미쳤나? 왜 저래? 저런거 본 적 없다고!"
"크르륵...크르르..."
그러자 용이 무언가를 뱉어내더니 한줌 재로 변해버렸다. 검은 액체덩어리. 클라이드가 손을 대려 하자 그 액체는 날카로운 모양으로 바뀌어 손바닥을 관통해버리고는 그대로 증발하듯 검은 기체로 바뀐 뒤 사라져버렸다. 그는 손바닥에 생긴 둥근 모양의 구멍이 주는 통증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크게 울부짖었다.
"으아아아! 뭐야!! 그 망할 물으은!!!"
"클라이드 사제님! 괜찮으십니까? 상처가...! 어서 병원으로!"
그가 소리치는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몰려들며 그를 걱정하는 소리에 그가 다시 자애로운 사제의 탈을 썼다. 그는 마치 자신이 괴로운 것을 한껏 참고 있다는 듯 연기하며 주변 사람들이 최대한 걱정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그만큼 타인의 심리를 잘 알고 있기도 했다.
"아...아닙니다. 여러분. 이정도 쯤은...큭...신성마법으로 치유하면 그만입니다. 어서...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사제님! 피가 많이 흐르고 계십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응급처치를 해야 합니다!"
"굳이 그래주신다면...면목 없습니다. 신세를 지게 되었군요. 이 선행은...아모르님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형제님."
그가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소독약이 만들어내는 쓰린 통증에 그가 인상을 찌푸리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소독조치가 끝나자 그가 치유마법을 사용해 상처를 치료해 피를 흐르지 않게 했다. 더 이상의 신성력 소비는 아직 말단인 그에겐 무리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힘이 빠져 걸을 힘조차 없어진 그를 부축해 신전으로 데려갔다. 신전의 자기 방 안 침대에 누운 그가 그대로 잠에 빠져버린다. 오늘 그는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겪었다. 사라진 유리아 문제는 머릿속에서 치워둔 채, 잠시만 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자기합리화와 함께 그는 의식을 꿈의 세계로 보냈다.
◆
엔타르는 여전히 무언가를 계속 쓰고 있었다. 그 옆을 아델레온이 지키고 서있다. 가끔 아버지에게 말도 걸고 하면서. 하지만 모든 대화의 끝은 '아빠 연구해야 되니까, 이제 그만할까?' 하나였다. 그가 아버지를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해준 뒤, 제 방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 오래된 인형이 하나 있다. 이것저것 많은 인형들이 짜깁기된, 오래된 손가락 인형. 그는 그 인형을 손에 끼우고는 홀로 대화하기 시작한다. 처음 나온 목소리는, 괴기스럽긴 하나 어린 소녀의 그것이었다. 왼쪽에 분홍색 토끼 얼굴을, 오른쪽엔 갈색 곰인형의 얼굴을 반반으로 달고선 공주 인형의 것이었을 옷을 입은 손가락 인형이 그의 손 위에 끼워져 있다. 인형은 입을 나불대며, '셀린 나빠', '셀린 미워', '신성왕국은 사기꾼 집단이야' 하는 웃기는 류의 말을 갈라진 듯 울리는 괴기한 목소리로 중얼대고 있었다. 물론, 목소리는 그 인형의 것이 아니라 아델이 복화술로 내는 것일 뿐이었지만.
"내는 목소리가 좀 더 나으면, 광대가 되어서 셀린이 사는 곳에 들어갈 수 있을텐데. 복화술사로 말이야. 엄마도 보고싶어..."
"...아니야. 나한텐 엄마같은 거 없잖아. 내가 무슨 소리를 한거지? 그냥 셀린을 낳고 가난을 못견디고선 도망간 년일 뿐이잖아."
"...그래도 보고싶어....."
아델이 인형을 끼우지 않은 손으로, 자기 옷 안주머니에 있는 사진 한장을 꺼내들었다. 아버지를 닮은 팔자눈썹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상을 자아냈지만 그 어린 아이의 눈과 입은 웃고 있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라는 듯이. 그가 동생이 남기고 간 자신의 유일한 흔적들의 집합체인, 복화술 인형 엘란시카를 손에서 빼낸 뒤 인형의 엉성한 실밥 사이로 솜이 비집고 나오지 않을 만큼만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이그나이트가 보더니 가만히 창문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었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이그나이트가 소리를 내지 전까지는.
"그릉..."
"아, 이그나이트. 왜?"
이그나이트와 조곤조곤 대화하고, 인형을 바라보고, 사진에 시선을 돌리고. 그러고 있었던지 얼마나 지났을까. 검은 로브에서 지급해준 통신기에서 라세다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이 좀 봐줘야 할 게 있어요. 어서 낙원으로 돌아와요. 텔레포트가 가능한 장치를 달그림자에 설치해 뒀으니, 최대한 빨리 오세요."
"알았어."
그가 아버지에게 이제 가봐야 한다고 작별인사를 한 뒤, 루나 팩토리로 향했다, 달그림자로 그를 들여보내는 일은 항상 케인의 몫이었다. 그가 장치를 작동시키자, 다시 벽이 열렸고 그 안의 바닥에 전송장치가 얌전히 모셔져 있었다. 그가 위에 올라서자, 케인이 장치를 작동시켰고 아델이 눈을 감았다가 뜨자 어느 새 라세다르가 자신을 기다리는 낙원 안에 도착해 있었다. 라세다르가 그의 손을 이끌고 벽면과 맞닿아있는 한 우중충한 건물에 들어선다. 그 안에서 그는 큰 실험실을 맞이했다. 그녀가 이게 다가 아니라며 그를 데리고 승강기로 향한다. 가장 깊은 지하층에서 그는 카스에서 봤던 사람 중 한명을 볼 수 있었다. 거기 있었던 유일한 여자 정도로 기억되던 사람이었다. 연구복 차림의 그녀가 그를 보고 인사를 건넨다.
"여어. 왔나. 선지자."
"당신은 그 때 카스에서 봤던..."
"칼라이아라고 하지. 반갑다. 이 연구동의 최고 관리자이자 카스의 일원이지. 뭐...나는 그 안에 있는 늙으신 분들과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있긴 하다만."
칼라이아의 한쪽 손은 기계로 대체되어 있었다. 그 손을 가만히 보던 그의 시선을 눈치챈 그녀가 자기 손을 팔에서 떼어내며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 약간을 흘려주었다.
"아, 넌 이거 처음보지? 대혼란 때, 지금은 어찌 됐는지 모를 캉칼로한테 손을 잡혀 끌려가게 생겨서, 내 손으로 잘라버렸어. 지금은 이 손 달고 멀쩡히 살아있다만..."
"대혼란?"
"아아, 넌 잘 모르겠구나. 3넌 전, 우리가 도적의 이글루에 본거지를 둘 때, 갑자기 캉칼로를 선봉으로 하는 이상한 것들이 그 본거지를 다 밀어버린 사건이야. 그 때 난 스물 한살이었고. 그 때 이후, 우리는 지하에 본거지를 두고 있어. 그 본거지는 당연히 폭파시켜버렸지. 안에서 뭘 가져가려고 하길래 내가 손 버리고 나오면서 폭파시켰어."
"흐음...그런데, 날 갑자기 부른 이유가 뭐야?"
칼라이아가 라세다르, 아델레온을 데리고 그들을 "재료 보관소"라고 쓰인 곳으로 끌고간다. 아직은 동물이나 식물 뿐인 그 공간에 사람 둘이 묶인 채 꿇어앉아있었다.
"아직까지 인간 실험재료는 이 두 명하고, 쟁여둔 두명 해서 네명 뿐이야. 난 더 하고싶은데 말이야. 쳇. 개조인간이랑 기계들로 위에 있는 애들 싹 밀어버리면 어디 덧나?"
"이걸 어디에 쓸꺼냐, 이거지?."
"그것도 있긴 하다만...문서 좀 찾아달라고. 내가 영 여러가지 깜빡하는게 많아서 말이야. 내가 세워둔 계획이 있는데, 도저히 못찾겠어. 부탁 좀 하자. 응?"
"고작 그게 이유야...?"
"고작 그거라니! 이건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라구! 부탁좀 할께. 응?"
그가 한숨을 푹 내쉬며 그녀의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진 끝에, 그가 수상하게 생긴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긴 막대모양의 물건. 그 위에 붙은 이름표의 글자를 그가 눈으로 천천히 따라갔다.
'Project : Angel Of Khades'
"혹시 이게 그거야?"
"엉? 내가 찾는 그건 파일이 아니라 문서인데. 뭘 찾은거야?"
"프로젝트 : 카데스의 천사...라는데."
그녀가 그 물건을 뺏어가듯 그의 손에서 받아가 거대한 기계장치 안에 꽂은 뒤, 출력되는 화면을 빠르게 읽어나갔다. 그러자 그녀가 결정되었다며, 그들에게 프린터에서 갓 나온 종이 하나를 뽑아다 보여주었다.
"이거 어때? 이거? 마력도 충분하니까 괜찮겠지? 마력이야 모자라면 강제로 주입하면 되고. 이걸로 할까? 응?"
"괜찮겠네. 그런데, 기계를 이식받고 나면 우리한테 적대감정을 품고 그대로 저쪽에 가버릴 수도 있잖아. 그 문제는 어쩌려고?"
"맞아요. 그 사람 지금, 이 곳을 탈출하겠다는 일념만 가지고 있어요. 제 눈에 보일 정도로 강한 생각이에요."
"응? 너 앞이 안보이지 않아?"
"라세다르는 앞을 못보는 대신에, 사람이랑 용들의 감정이나 강한 생각을 볼 수 있어. 이 애만의 특징적인 능력이지."
"아하...그런데, 그 생각을 어떻게 없앨껀데?"
"방법이 다 있어. 걱정 마셔."
"그럼 이게 가장 낫겠네.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기종이기도 하고. 이걸로 가자."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문서에 무어라고 쓰여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
"셀린. 이리 나오렴. 엄마하고 오늘 나가서 옷 고르자고 했잖니?"
"...네."
셀린이 옷을 입고는 밖으로 나선다. 상류층의 거리가 그녀를 집어삼키는 괴물인 마냥 그녀는 잔뜩 움츠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 모습의 그녀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여러 사람들이 그녀의 돈을 반긴다.
"어머나- 셀린 아가씨, 어서 오세요!"
그들이 수많은 옷을 보여줬지만 그녀는 마음에 드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점점 더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화려한 옷만을 가져왔고, 그녀의 의사표현만 더 확실해지도록 만들었다.
"이건 어떠세요, 아가씨?"
"...싫어요."
결국 그 둘은 가게를 나왔고 다른 가게에서 옷을 고르려 했지만 그녀의 반응은 똑같았다. 그러던 그녀가 한 가게 앞에서 멈춰섰다. 그녀의 어머니는 쇼윈도에 전시된 평범하디 평범한 그 옷을 보고는, 으레 그렇듯 그런 옷을 사갔다간 아빠한테 혼이 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무 옷도 사지 못한 채 들어온 그들을 반기는 것은 평소보다 몇배는 딱딱하게 굳은 배너티 공작의 표정이었다.
"왜 아무 옷도 사오지 않은거니, 셀린?"
"...죄송해요."
"왜 아무 옷도 사오지 않았냐고 묻고 있잖니. 말해봐라."
"...죄송해요."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싶은 게 아니라, 이유를 듣고싶은 거다."
"...죄송해요.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어요."
셀린이 그 말을 꺼내자,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그따위 변명은 듣고싶지 않다는 듯이.
"그럼 아무거나, 가장 비싸보이는 걸로 골라 왔어야지. 바로 내일이 사교 파티인거 잊은거니? 또 같은 드레스를 입고 갈꺼니?"
"...죄송해요."
"다시 가자꾸나. 나랑 말이다. 당신은 집을 보도록 해."
셀린은 여전히 위축된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장신구같다고 생각한다. 그의 손에 이끌려,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호화로운 드레스를 억지로 고른 그녀가 그 드레스로 갈아입고 나오자, 주위에서 찬사가 쏟아진다. 그녀의 아버지가 가진 돈에 대한 찬사가.
"어머, 너무 아름다우세요-"
"역시 셀린 아가씨는 이런 여리여리한, 소녀같은 느낌이 잘 어울린다니까요?"
"샐린 아가씨는 정말 축복받으신 분일지도 몰라요- 이렇게 안목 좋고, 이런 고운 옷 선뜻 사주실 아버지도 있어서."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 그 옷을 메이드에게 맡기고,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녀가 장애물에 막혀 이쪽 저쪽으로 오고갈 뿐인 기차 장난감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멍청한 것들. 웃기지 말라고 해. 축복이 아니라 저주겠지. 별꼴이야. 돈이 좋다고 아부나 떨고 있고. 꼴도 보기 싫어. 재수없단 말이야."
그녀의 손이 다트로 향했다. 형형색색의 아트패널에는 다트들이 꽂혀있다. 그녀가 다트를 집어 아트패널에 정확히 꽂았다. 그녀 방의 장난감들은 대부분 제 자리를 잊은 듯 보였다. 예전 방 주인의 것이었던 것 같은 농구 골대에는 인공적인 소재로 만들어진, 우월한 몸매를 가진 사람 모양 인형이 걸려 있다. 그렇게 해 놓고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메이드들이 내려놓아도 청소할 때가 되면 항상 농구골대에 그 인형이 온갖 기묘한 자세로 걸려있어 이제는 아무도 손대지 않는 그 인형에 셀린이 오랜만에 눈길을 준다. 그러고는 그 위에 또 다른, 인공적인 소재로 만들어진 인형을 기묘한 자세로 만들어 놓고는 농구골대를 향해 던진다. 어쩌면 그녀는 그런 것을 가지고 노는 법을 몰랐는지도 모른다. 방에 창문은 없었다. 그런 그녀는 방에 창문 그림을 그려놓고 온갖 상상을 했다.
예를 들면 창 너머의 자신이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는 등의, 그런 헛되고 공허한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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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 문서 접속
PROJECT : ANGEL OF KHADES'
'접속 시도'
...
'반갑습니다. 접속코드를 입력해 주십시오.'
entarotasadar_hardiumrassgal
'허가받지 않은 접속코드 입니다. 다시 입력해 주십시오.'
'이 접속코드는 '카스의 검' 전용 접속코드와 유사합니다.
10초 안에 올바르게 입력하지 못할 경우,
추적대가 출동할 것입니다.
만약 코드 도용의 경우, 즉시 자수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중징계 수준에서 멈출 것이나,
그렇지 않을 경우, 최소 사형의 형벌이 내려질 것입니다.'
entarotassadar_hardiumrassagal
'환영합니다. 카스의 검, 칼라이아님. 직속 AI, 헤일로가 인사드립니다.
어떤 작업을 수행하시겠습니까?'
'데이터 열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어떤 데이터를 열람...'
'Stalker의 데이터를 선택하셨습니다.'
'문서 작성자 : 칼라이아
개체명 : Stalker(추적자)
개체 특성 : 4족보행의, 추적에 능하도록 설계된 개체. 다리는 거미의 그것과 유사한 형태로 설계하였으며, 백마법에 면역을 부여하는 마법석을 장착, 외부세계의 기술에 대항하게 만든다. 정령마법 대응책은 개체의 마력으로 커버한다.
현재 개체 수 : 0
주석 : 망할 늙으신 분들 때문에, 인간에 대한 기계 이식이 금지되며 프로젝트 전체가 폐기 직전이다. 외부에서 잡아들이면 될 것을, 나대면 들킨다나 뭐라나. 내가 언젠가 그 놈의 온건파 정책이 전부 헛소리임을 증명하고 말 것이다. 카데스님도 우리가 이따위 지하에 처박혀서 꽁냥거리는 것을 원치 않으실 텐데.'
"...내가, 옛날에 이런 참신한 생각도 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이 문서의 작성일자는 카데스력 13년으로...'
"아, 안 물어봤거든? 일단 이 문서, 암호화시켜. 내 직속 권한으로."
'해제 코드는...'
"하락 켄 바이아쉬."
'하락 켄 바이아쉬. 알겠습니다. 또한, 칼라이아 님께서는 조금 더 천천히...'
"아 글쎄, 그런 거 필요없다니까! 이게 내 방식이야. 알았어? 참나. AI라고 만들어놨더니 나불거리기만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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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ery,
Babylon The Great,
The Mother Of Harlots
And The Abomination
Of The Earth
- 영문판 요한 묵시록 17장 5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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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서 안 읽으시는건지 아니면 제가 1년 잠수타다 와서 인지도가 떨어져서 안 읽으시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저는 제 소설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흐릅니다. 너무 길면 말씀을 해주세요 저도 분량 조절 불능 증후군 좀 고쳐보고 싶습니다...
세계관은 http://www.dragonvillage.net/talent/board/novel/?mode=read&b_no=13764& <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참고로 컴퓨터 기준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소설을 모바일로 올립니다. 모바일로 보시는게 '그나마'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