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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검은 혁명 - 2. The Stolen Bod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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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225
  • 작성일2016.09.08
메르헨의 하루 일과는 꽤나 단순했다. 일어나서, 식사등을 마친 뒤에 레넬의 도움 아래 검술을 수련하고, 부모님과 대화하는 간단한 수준의 일과가 그에게는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전부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집이 불타고 있었다면 누구나 믿을 수 없겠지만, 지금 메르헨에게는 그것이 뜨거운 열기로 피부에 와닿고 있었다.

"엄마! 아빠! 유모!"

아무리 외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자기 방 문을 열었다. 화마는 집안을 집어삼키며 타올랐고 그 불이 그에게 원초적인 공포감을 주었다. 그 어떤 곳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불이 집어삼키다 만 집의 잔해가 천장에서부터 그에게로 떨어져 내렸고 그것을 다급하게 피한 그가 그제야 지금 자기 눈 앞에 있는 이 지옥도가 꿈이 아님을 직시했다. 멀찍이서 레넬이 뒷문을 부수고 그에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레넬!"

불을 헤치고 자신에게 달려와준 레넬의 모습에 정신을 차린 그가 아직 문고리가 뜨겁지 않은 정문을 열었고, 불타고 있는 저택을 벗어나 시가지로 나왔다. 그의 주변을 불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잠시 뒤 사람 몇이 군중 사이를 지나와서 마법을 이용해 집의 불을 끄기 시작했고 붉은 화마에 휩싸였던 집은 형태만 남은 새까만 숯덩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불이 모두 진화되고 나자 그는 과거 집이었던 곳을 향해 달려갔다. 혹시나 부모님 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을까 해서였다. 하다못해 유모라도. 하지만 그의 기대를 실컷 비웃기라도 하듯,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 '생명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남아있질 않아...뼈조차도..."

뼈조차도 남지 않고 타버린 듯 잿더미뿐인 그 곳에서 그를 반기는 건 전부 검은 재들 뿐이었다. 척 봐도 힘들게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와 방금 찢어진 마음을 후벼파 괴롭게 만든다.

"저런...가엾기도 하지...쯔쯔..."
"척 보니까 돈 꽤나 많으셨던 집안인 것 같은데, 돈만 박박 긁어모으다가 그 돈때문에 벌받은 걸껴. 동정할 필요 없네, 이 양반아!"
"하기사, 지기들이 우리한테 해준게 뭐 있다고. 가세, 가. 불구경 한번 고소하게 잘 했다고 치지 뭐."
"돈만 악착같이 모으다간 저렇게 벌받는거야, 알리시아. 알겠지? 자기들이 우리한테 베풀기를 했어?"
"아니지! 아니야! 저 집에 사는 어른들은 분명 거짓말쟁이였을꺼야. 그치, 마리아 언니, 카밀레, 리카르도?"

그 가운데에 어린 아이도 포함되어 있다는게 그에겐 더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레넬이 그르릉거리며 그가 듣지 못할거라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날카로운 말들을 뱉어내는 빈민들에게 그따위 소리 집어치우라는 듯 위협을 가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시 수군거리며 썰물때 바닷물이 빠지듯 빠져나간다.

"에라, 저 도마뱀때문에 여기 있지도 못하겠네. 씨X. 그래, 더러워서 간다, 이 도마뱀 새끼야! 퉷. 이거나 처먹어라. 니X럴. X같은 도마뱀새끼 주제에 지 주인 지킨다고 주둥이나 나불대기는."
"말을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그만 해, 이 양반아. 가서 술이나 처먹구, 쟤네 애미애비랑 비슷한 년놈들이나 털어먹으러 가세."
"흥! 알리시아, 가자!"
"마리아 언니! 같이 가!"

그 인파가 전부 빠지고 난 그 자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말라 비틀어진 모습이 척 봐도 그 사람들과 같은 계층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드로 얼굴을 가려 눈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어 그에게 말을 건다. 레넬은 그에게 아직 그르릉거리고 있다.

"기분이 어때?"

그가 한 첫 말은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않는다는 듯 한 모습이었다.

"어떻냐니. 그걸 물어볼 소리라고 해?"
"......"

그는 말이 없었다. 그 질문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겠다는 듯. 그러다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부모님은 찾았어?"
"아니..."
"하다못해 하인 하나도?"
"못 찾았어. 못 찾았다고!"
"화 낸다고 해결될 게 아니잖아."

그는 지금 자기 앞에 있는 피해자의 감정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듯 지나치게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희망을 가져보라고. 혹시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거 아니겠어?"

그의 웃음이 비웃음을 띄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은 아마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잠깐 신전에서 살게될 애새끼...아니, 아모르의 어린 양이 하나 있다구요?"
"그래. 니가 돌봐줘야 된다, 클라이드."
"왜 하필 저에요? 놀고 먹는 사제...아, 다 행방불명이나 사망이지. 그럼 형이 좀 하면 안되겠어요?"
"난 신전 보수 관리 감독하느라 바쁘고, 게일은 계속 찾아오는 손님 맞이하고, 니가 제일 시간이 널널하단 말이야."
"예예...알겠다구요."
"근데, 아까 뭐라고 했지? 애새..."
"헛소리에요."

그가 대화를 급하게 마무리짓고 그 어린 양이라고 하는 '애새끼'를 찾아 신전 입구쪽으로 향했다. 어제 일도 그렇고 해서 감독하는 사제들도 없겠다, 늦게까지 꿀잠 자고 있는데 깨워서는 한다는 소리가 '여기 더부살이 하나 추가요'라니. 그 더부살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는 듯 보이는, 대충 짐작해봐야 그의 또래정도 되는 남자. 그가 '헤메이는 어린 양'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야. 이 헤메이는 어린놈의 양새끼야."
"....예?"
"너 말이야. 너. 띨띨해가지고는 하는 짓거리 하곤..."
"아...부르셨어요?"
"그래. 난 클라이드. 널 돌봐주실 사제다. 이름부터 대."
"메르헨 가스타...에요."
"그래. 메르헨 가스....뭐?"
"메르헨 가스타요."
"그래. 일단 들어와. 니가 지낼 방부터 가르쳐주마. 영광으로 알아."

클라이드가 그의 손을 붙잡고 자기 방 옆의, 주인이 죽어서 빈 방이 된 방으로 그를 데려다 놓는다. '이 방이 네가 살 방이다'라고만 대충 가르쳐주고는, 안에서 잘 살으라며 문을 닫으려 하자 그가 공포감에 휩싸인 듯 문을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문...문 닫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릴께요! 사제님!"
"시끄러워! 알았으니까."

그가 문을 열어둔 채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자기 책상에 앉은 그가 자신이 어제 겪었던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유리아는 사라졌고, 용은 이상한 검은 물을 흩뿌린 채 죽었다. 그 망할 것은 손에 구멍을 뚫어놨고...차차 생각하다가 그는 그제야 유리아의 천막 뒤쪽으로 통하던 발자국을 떠올렸다. 그는 유리아의 천막을 다시 뒤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혹시 모를 경우를 생각해 자신의 메이스를 챙겨들었다.


유리아의 천막은 여전히 조용했다. 아무도 드나든 흔적이 없는 것 같았지만 뒤로 통하는 곳에 발자국이 몇개 더 생겨나 있었다. 그가 뒤쪽으로 나갔지만 그 뒤로는 이상하리만치 아무 흔적도 남겨져있지 않았다. 허탕이라고 생각하며 지하실로 내려갔다. 고양이는 저번의 그 기억때문인지 그를 보자마자 슬금슬금 꽁무늬를 뺐다. 지하실 책상에 놓여있던 예언서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안을 둘러보던 그가 유리아가 말해주었던, 알려지지 않은 예ㅇ에 대해 간신히 떠올려냈다.

'가스타의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아모르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아모르를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는 영이 내린다.'

성이 어디서 들어본 단어라고 생각했던 그는 그제서야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예언에 나와있는 아모르의 영을 받은 자가 나올 그루터기.

"이야. 찾을 필요도 없이 저 혼자서 굴러들어왔네. 근데 일이 너무 수월하게 풀리는데. 뭔가 이상해..."

의문점은 이내 곧 사그라들었다. 그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는 듯 한 그의 일관된 태도는 수상한 기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메르헨의 집이 불타고, 가족들은 죽어 그가 신전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배너티 공작은 곧 그와의 연을 끊어버렸다. 답신도 보내지 않은 채 처박힌, 그 소식이 날아든 이후 메르헨이 그에게 보낸 편지 하나가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 즉시 행동으로 옮긴 셀린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녀는 지금, 아주 예전에 사교파티에서 입었던 붉은 드레스를 꺼내 챙겨입고는 메이드들의 도움 아래 담을 넘고 있었다.

"으아...라엘, 제대로 밀어줘. 넘어간다!"
"알겠어요, 아가씨. 끙-자!"
"우왓!"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담 너머로 떨어졌다. 정문이 있는 방향을 피해 슬금슬금 시가지를 빠져나간 그녀가 지금 메르헨이 묵고 있다는 신전의 방으로 향했다. 여린 소녀를 노린 포악한 인간들을 마주치기 전까지 그녀는 그저 집안을 탈출한 부잣집의 말괄량이 아가씨일 뿐이었다.

"빨간 드레스 입으신 아가씨, 어딜 가시나? 그렇게 곱게 차려입으시고."
"...비켜요."
"에헤이. 그러지 말고, 우리랑 좀 놀다 갈까? 예쁜 아가씨."
"비키라구요. 난 바빠요..."
"이쪽으로 왓!"

척 봐도 난봉꾼 내지는 양아치밖에 안되는 두 남자를 보고 그녀가 대화로 해결하려 했지만 그들은 영 들어먹지를 않았다. 그들 중 하나가 망을 보는 동안 다른 한 명이 그녀의 손을 잡고 격하게 끌자, 그녀도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듯 행동에 나섰다. 끌려가는 듯 하다가 그 남자의 품에 빠르게 파고들어 갈비뼈 바로 아래쪽에 강하게 주먹을 날리고는 그가 고통에 몸을 구부리자 헛숨을 들이키는 틈을 노려 그 작은 손으로 얼굴을 붙들고 내림과 동시에 무릎을 빠르게 들어올려 인중이 있을 자리에 그대로 꽂아버린다. 급소를 강하게 맞아 기절한 그 자를 버려둔 그녀가, 분명 시끄러워야 할 터인데 지나치게 조용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해 고개를 돌린 그 양아치가 놀란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주먹을 가볍게 털고는 집안에서 보인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야기한다.

"후, 오랜만에 하니까 익숙하질 못하네. 한판 더 할까?"
"......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비켜. 난 바쁘다구. 참 나...별꼴이야."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 남자를 향해 비웃음을 픽 날려준 그녀가 신전 방향으로 향했다. 유타칸 반도의 밤하늘은 드레스 무릎 부분에 양아치 중 한 녀석의 피가 묻은 그녀에게도 위기를 모면한 양아치에게도 공평한 별빛을 뿌려주고 있었다.


메르헨이 있을 신전에 들어서자, 사제 하나가 그녀를 맞이했다. 인자한 미소를 띈 것이 여느 사제와 다르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자매님. 전 게일이라고 합니다. 신전 내부는 보수중이라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만, 사제와의 개인적 면담이나 번제만은 허락하고 있습니다. 누굴 만나러 오셨는지요?"
"사제는 아니고...메르헨이라고..."
"아, 알겠습니다. 당사자에게 의사를 묻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제가 잠시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동안, 셀린은 아마 지금 쯤 아버지는 창고 안 금쪼가리들을 정산하는 데에 바쁠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는 곧 머릿속에서 치워버린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이상, 그는 아마 그녀의 방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하루종일 방에만 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특별한 일정이 없던 날,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방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셀린은 떠올렸다. 사제가 돌아오며 그 생각은 잠시 중단되었다.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 쪽으로 오십시오."

메르헨이 있는 방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래서 더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그 옆에서 그를 돌보고 있는 것 같은 사제 하나가 그녀를 보고 고개만 끄덕거려 인사를 건넨다.

"아, 셀린! 와줬구나. 그런데, 너희 아버지는?"
"...일이 바빠서요."
"그랬구나.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 안해도 돼."
"다행이네요. 괜찮다니 기뻐요."
"...아주 핑크빛이 넘쳐 흐르시는구만! 아, 아모르시여. 이 외롭디 외로운 17년차 모태솔로, 클라이드를 구원하소서. 아-멘, 아-메엔-"

중간에 자기 이름을 클라이드라고 밝힌 사제가 아주 좋던 분위기를 와장창 깨버리면서 둘의 대화는 잠깐 중단되었었다. 그러다가 그 사제가 다시 입을 열며 대화가 재개되었다.

"아, 그건 그렇고, 너희들 나 좀 도와줄래?"
"예? 제가 할 수 있다면 도울께요."
"유리아 알아?"
"알아요. 20년 전에, 유타칸을 구했다던...그 사람이 왜요...?"

그가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을 꺼냈다.

"없어졌어."
"네?"
"실종됐다고, 이 띨띨아."
"...메르헨 오빠 보고 띨띨이라고 하지 마세요."
"아이고, 핑크빛 나는 두분 건드린 내가 잘못이지...아무튼 간에, 찾는거 좀 도와달라고. 내가 그 사람이랑 찾던게 좀 있었는데..."

그가 있을지도 모르는 이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메르헨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셀린은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본다고 말했다. 둘의 대답을 들은 클라이드가 다음 날을 위해 휴식을 취하자고 하며 셀린을 보낸 뒤, 메르헨과 단 둘이 남자 그의 손을 진지하게 붙잡고 대화를 시도했다. 그 태도가 사뭇 진지했다.

"메르헨."
"네."
"너 저 애랑 어떻게 알고 지내는 사이냐?"
"예? 어어...그냥저냥이요."
"그냥저냥이 어딨어 이 띨띨아! 아무튼! 같은 남자로써 충고하는데, 너 쟤 꼭 잡아라, 두번 잡아라! 저런 예쁜 여자애 그렇게 흔한거 아니다. 그리고 니 얼굴에 저런 여자애는 진짜 축복이야, 축복!"
"제...제 얼굴이 어디가 어때서요!"
"평범하잖아. 얼굴에 쓰여 있네. 나 평범함! 이라고. 솔직히 니가 좀 귀여운 상일 뿐이지 어디 잘생기길 했냐?"
"...반박 못하겠네요. 그러는 클라이드씨는 얼굴이 어떤데요."
"나? 자알~ 생겼지 뭐. 이만한 얼굴이 어디 흔하냐? 훗."

메르헨의 얼굴에 순식간에 '한심하다'라는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그런 그를 향해 클라이드가 공연히 머리를 쥐어박는다.

"아야, 왜 그래요!"
"너 방금 나 한심하다고 생각했지?"
"아니요."
"거짓말 하면 크리마용이 선물 안준다."
"아니라니까요!"
"거짓말인거 다 알아. 표정에 딱 쓰여 있었어!"
"치. 이럴 때 눈치는 빠르셔서...아까는 둘이 조용히 얘기하는데 핑크빛에 모태솔로가 어쩌구저쩌구..."

클라이드가 찔렸는지 메르헨의 머리를 다시 쥐어박는다. 

"아얏! 방금 그거, 찔려서 그런 거죠!"
"아니야, 임마."
"나보고 아침엔 헤메이는 어린놈의 양새끼라고 하고..."
"남자라는 놈이 쪼잔하게 그걸 다 기억하고 있냐?"
"쪼잔한게 아니라 사실이잖아요!"
"그만하자. 착한 어린이는 잘 시간이야-"
"어린이 아니에요!"
"네에~ 네에~ 알겠습니다아~"

클라이드가 메르헨의 방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사제 둘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야, 게일. 누가 더 어린애같냐?"
"음..."
"난 클라이드에 한표."
"나도. 거의 만장일치로 클라이드가 어린애네."
"클라이드 빼고, 신전 전체에 남은 사제 3명 중 2명이 클라이드에 투표했으니 말 다했네 뭐."


셀린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일단 담은 도로 넘어왔지만, 왜인지 주변에 경비가 싹 깔려있었다. 분명히 정산이 뭔가 엇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녀가 사람이 없을 때를 노려 살금살금 풀숲 속으로 향한다. 드레스 자락을 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꼼지락 꼼지락 기어서 일단 입구 근처까지 도착은 했지만, 옷이 문제였다. 풀잎에 흙에 여러가지 묻어버렸으니. 그녀는 손에 끼운 반지를 빼서 손에 꼭 쥔 채 연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드레스가 더러운 것을 본 경비들이 추궁을 시작했다. 

"아가씨, 어딜 나갔다가 오시는 길입니까?"
"...밖에 안 나갔어요. 반지를 잃어버려서 찾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에요."
"어디서 찾으셨길래 옷이 이리 더럽습니까?"
"화단 안에서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반지가 화단 안에 떨어집니까?"

계속되는 추궁에 그녀가 짜증이 난 듯 인상을 찌푸리며, 전에 잡아둔 그 경비의 약점을 머릿속에서 찾아내 그걸 빌미로 그를 위협했다.

"알 거 없어. 그리고 너 계속 캐물을래? 아빠한테 니가 저번에 근무중에 술 진탕 먹고 땡땡이 친 거 이른다?"
"......"

순간적으로 그 일대의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흘렀다.

"들어가십시오, 아가씨. 옷 잘 털으시구요. 그리고 그건 비밀입니다. 예?"
"그래요."

집안에 수월하게 들어온 그녀가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텅 빈 홀과, 아버지의, 굳어있지 않은 표정이었다.

"셀린. 아빠 좀 도와다오."
"...왜요?"
"뭘 잃어버렸단다. 도와주겠니?"
"...어떤거요?"
"목걸이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보이질 않는구나. 좀 찾아다오."
"...그럼, 앞으로 제가 외박을 하든, 밤에 외출을 하든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셀린이 목걸이를 찾아주는 조건 하에 협상을 시도했다. 그 조건을 아버지는 일단 거절했다. 이제 14살 밖에 안된 어린 딸이 외박이라니!

"안된다. 대신..."
"...그럼 나 안찾을거에요."
"아...알았다. 허락하마. 그럼..."
"...잠깐만요. 그 전에, 아빠가 가르쳐 주셨죠? 거래를 할 때는 계약서를 꼭 챙겨야 한다고. 어서 쓰자구요."

의외로 똑 부러진 셀린의 모습에 배너티 공작이 심히 당황했다. 하지만 일단 목걸이를 찾아야 하니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원본과 사본을 만들어, 원본은 인장을 찍어 봉인해 두고 상자에 넣고 사본은 각자 챙기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이 계약서의 내용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문구와 함께 직인을 찍었다.

"자...이제 됐지? 어서 목걸이를 찾아다오. 중요한 물건이란 말이다. 값으로도, 역사적인 자료로도. 부탁한다."
"네...기다려 주세요. 금방 찾아드릴께요."

셀린은 곧 목걸이를 찾기 시작했다...아니 사실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 목걸이는 사실 '술 많이 먹지 말 것, 술먹고 엄마랑 싸우지 말 것, 양파 남겨도 화내지 말 것.' 이라는 조건을 제시할 때의 협상카드로 쓰기 위해 그녀가 3일 전에 감춰둔 것이었으니까. 영악한 그녀가 목걸이를 들고 아버지에게 향하자, 아버지는 기뻐하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우리 딸. 자 이제 계약서는..."
"없던 내용으로 하자는 소리 꿈에도 하지 마세요. 계약 파기의 조건은 계약서에 썼듯이 제가 목걸이를 못찾았을 경우 하나 뿐이에요. 그런데 지금 목걸이를 찾아냈고, 그러므로 이 계약은 취소할 수 없어요. 불공정 계약도 아니지요. 그 목걸이 가치는 제가 외박하고 외출하는 거 허락하는 조건에 비하면 훨씬 높으니까 제가 손해보는 장사네요. 이 참에 '양파 남겨도 화내지 말 것', '술 많이 먹지 말 것' 이라는 조건도 추가할까요?"
"아..,아니다. 됐다. 크흠, 흠."

아버지는 자기 딸이 이렇게나 철저하고 지능적인 사람인지 오늘 처음 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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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우리만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발전한 과학기술 앞에 모두가 무릎꿇게 되리라.
이 자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개조인간들이
해방을 위한 최전선의 기사들이자 우리의 상징이 될거다.

그런데 늙으신 분들은 뭐? 윗세계 사람의 인권?
아모르를 믿는 것들 따위한테 인권은 무슨.
지금은 늙으신 분들이 권력을 다수 잡고 있어서 이렇지,
나중에 두고보자.
일단 지금은 이정도로 참아준다만,
내가 권력을 잡으면 싹 다 밀어버리고 말꺼야.

현실에 안주한 살찐 돼지같은 자식들.


너는 지금, 나의 사도라고 하는 것들에게 이렇게 전해라.
그들은 안일하고 태평하여 도무지 행동할 줄을 모른다.
그러니 네가 말해라. 혹 들을지 누가 아느냐?
내가 네 입에 나의 말을 담아준다. 이는 불같은 말이다.

지하에서 영겁의 세월을 살고 싶으면 미적거려도 좋다.
10년이다. 그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10년이 지나면 아모르의 개가 세상을 지배한다.
그러니 어서 행동하여라, 어서 움직여라.
이를 어기면 벌을 면치 못하리라.


그래, 말을 듣지 않더냐?
내가 뽑은 사도이지만 이렇게 썩어있을 줄이야.
공연히 뽑았구나. 아...슬프구나. 내가 왜 저들을 뽑았던가.

그래, 너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너는 그 자들의 위선을 보았을 것이다.
그 놈의 속에 도사린 열린 무덤을 보았을 것이다.
뭐든 꿀꺽꿀꺽 삼켜버리는 그 독사를 보지 않았느냐.
우민이 된 그자들이 네 참된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그래서 나에게로 온 것 아니냐. 내가 네 상처를 감싸주마.

그러니 내 말대로 하여라.
카스를 지배하는 저것은 현실에 안주해버린 것 같구나.
그러니 그를 무시해라. 나머지 사도들만이 내 진정한 사도다.
너는 그들만을 보호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카데스가 너의 입을 빌어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다. 어김이 없으리라.

나 카데스가 말한다.


파르신이 말했다구요. 10년. 그 안에 안끝내면 우리는 이 지하에 처박혀서 아주 오래 살아야 된다고! 나도 죽을 때 까지! 그런데 왜 안된다는 겁니까? 바깥 사람들 인권이 뭐 어쩌고 어째요? 어차피 우리랑은 다른 신을 믿는 것들이야. 왜 그렇게 소심해 빠졌어요? 왜 책상 앞에서만 띵까띵까 하면서 탁상공론만 펴고 있냐구요!

저들도 우리가 품어야 할...

집어 치워요, 살바도르 할아버지! 뭐? 우리가 품어? 아모르도 품겠다 하시겠네!

칼라이아, 더 이상 소란떨면 내쫓겠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하무트 님. 예언자가 말했잖아요. 10년이라고! 10년이 긴 시간같죠? 정말 짧아요. 순식간에 홱 지나가는게 시간이라니까요? 지금 만드는 프로토타입으론 위쪽 애들은 택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백마법이나 신성마법 내성이 전혀 안 깔려있기 때문에 나가서 애들 맞이하는 순간 녹아내린다구요. 거긴 보편화된 게 백마법이에요. 애들도 장난치고 논다구요.

칼라이아 말이 맞아. 거기다가 쟤네는 널린게 성기사야. 될거라고 생각해? 보내봤자 자살행위가 될 뿐이야. 자살. 스스로 죽는 거. 모르는 건 아니지?

무의미한 살육은 안된단다, 칼라이아. 그렇게 해서는 평화를 오래 유지할 수 없어. 그러나, 칼라이아 말 처럼 이러고 있는다고 사태가 해결되지는 않을 터. 예언자 역시 일리있는 말을 하고 있지. 10년이면, 그들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병력을 준비할지도 모른다. 허나 잘못된 말일수도 있다. 그 자의 근본은 본디...

살바도르 할아버지, 예언자잖아요, 거기다 배신까지 당했고! 그런데 근본이 무슨 소용이에요? 네?

그만! 그만! 회의를 종료하겠다. 칼라이아는 근신하도록 하라! 카스는 오늘 해산한다!

하무트! 자벨! 너희가 그러고도 카데스님의 사도냐! 예언자의 말은 공기취급하는 너희들이! 한번 보자, 누구 말이 맞나! 누가 진짜 사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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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며,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 신약성걍 마태오 서 12장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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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빌 실험실에 설정이 등록되어있는걸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거기다가 골드부터가 부자들 전용 화폐라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고요. 그럼 다이아는 대체(...)

그나저나, 드디어 디콘과 검은 로브에 대한게 다 정립이 되어있더군요. 야 기쁘다 만만세 헤일 투 더 시디스 아 아니 카데스!
(사실 검은 깃털에 대한 걸 읽으면서 스K이림 다크 브라더후드의 리스너가 생각이 많이 나긴 했습니다...Hail to the Sithis...)

근데 솔직히 빛의 사제단을 보고, 제가 뒤틀어놓은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내심 놀랐습니다. 물론 제가 정도가 더 심하긴 하지요. 세상에 어느 대사제가 부를 그렇게 무식하게 축적하고 용이라는 용은 혼자 다 길러 처먹습니까. 마이아나 디온인가 그 마이아 바로 아래 직분도 아니고 대사제가요. 물론 마이아 레벨이 그러면 더 현시창 + 노 드림 노 호프 이긴 한ㄷ 잠깐 이거 좋은데?(대체?)

거기다가 검은로브가 영원한 낙원을 바란다는 것도 나름 그럴듯 하더군요. 요 귀여운(대체?) 이상주의자들 정말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타락시키기 딱 좋아요. 이 세상의 모든 블자 시나리오 담당들아 나에게 힘을 줘!

그리고 절대 즐감후 추댓 얘기 안하는 이유가, 제가 잘 썼으면 분명 알아보는 분들이 계실거고 저는 그분들 댓글 정도만 먹고 살수 있는 종자이기 때문입니다. 절대 제가 그럴 여력이 없어서 안하는 게 아닙니다. 절대. 애초에 이 소설은 다른 것과는 노리는 타겟 연령층이 다릅니다.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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