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 준비 됬나?"
만반의 준비를 갖춘 여섯 수호자들이 난파선 앞의 심해지역 입구로 모였다
팔이 잘려 어두운 표정만 보이고 있는 오스카를 제외하고는,다들 상당히 긴장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대들이 선택한 길이니,막지 않겠다
다만 이건 정말로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다
행함에 있어 경솔함을 보이지 말고,최선을 다해 임하도록
모두들 무사하 힘을 얻어 돌아오길 바라지,이상"
나키온의 그 말과 동시에 수호자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종족이 용이어서 그런지,물속에서도 육지와 다름없게 잘도 달려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이어 들어가려던 나키온과 블랙퀸은 뒤를 돌아 그곳에 서있는 에리카를 바라봤다
"저희가 없는동안 유타칸을 부탁드립니다,무사하십시오"
"몸 관리 잘하고있어,금방 돌아올거야"
무표정으로 둘의 인사를 받은 소녀의 눈은 여전히 얼음과 같았다
그래도 걱정이 됬는지라,답으로 한마디를 던진다
"다녀...오세요..."
먼곳에 부모님들을 떠나보내는 아이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비록 눈은 얼음이었지만,그 속엔 걱정과 불안이 가득 녹아있었다
둘이 물 속으로 들어가는것을 보고서도 여전이 근심이 가시지 않았는지
한참을 그 물 앞에 서있더니,손으로 물을 조금 떠내어 마셨다
'..........'
짠 맛을 보려고 마신게 아니다(애초에 유타칸의 바닷물은 짜지 않다)
이것은 예언의 한 가지 방법이었다
조금 첫 맛은 약간 쓴맛이었다.그와 동시에 에리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그 맛이 서서히 원래의 물맛으로 바뀌어 갔다
끝맛은 처음과는 완전 딴판일 정도로 달게 느껴졌다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풀었다
아마 수호자들은 고난을 받긴 할 것이나,무사히 통과하고 돌아올 것이다
이것이 방금 그 예언의 답이었다
발길을 돌려 본진으로 복귀했다
난파선 옆으로 희망의 숲의 풍경이 보였다
귀여운 토끼들과 사슴들이 이리저리 숲속을 활보하고 있는 그 광경은,
곧 다가올 두번째 어둠에 상당히 대비되어 있었다
아마 그때는,저 아이들이 살아있을 수나 있을까...
3천년전 전쟁이 터지기 직전에는 그녀가 동물들과 함께 놀았던 희망의 숲
현재로선 전쟁 전과 같이 평화로운 모습을 뽐내고 있었지만
지금 그곳에는 웃어 줄 수있는 그녀도 없고
또다시 아수라장이 될 운명에 놓여져 있었다
그걸 다 아는 에리카는 안쓰러운 눈으로 그곳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본진으로 돌아간 에리카는 수호자들이 없는 빛진영의 방비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이 없으니,만약 지금 6장군들이 쳐들어 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의 전투력을 생각한다면 제아무리 6장군들이라도 쉽게 어쩔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방비를 철저히 해야하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무엇보다,지금 암흑의 성 방향은 좋지 못한 기운이 가득했다
암흑의 성 복도를 걸어가는 두 남자들의 그림자가 비춰진다
하나는 소리가 안 날 정도로 정적이고 고요햇지만,
다른 하나는 상당히 경박하게 느껴지는 거칠고 날카로운 음성을 내었다
"......네가 끌고간 부하들은 다 어떻게 된거지?"
"칫,바보같이 전부 당해버렸어...그깟 수호자 녀석들도 상대 못하고 뻗어버리다니,쓸모없는 것들이란..."
"네 부하들이 어쨌건 상관할 바 아니지만,병력을 잃은 만큼 책임은 각오해야 할거다"
상대를 피범벅으로 도륙하는 이 사이코가 이런 말을 듣고 좋아할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정작 거대하고 육중한 철문 앞에 서니,이녀석도 많이 긴장하는것 같다
서서히 문을 열자,다른 네명의 6장군들이 둘씩 마주보며 붉은 카펫을 사이에 두고 서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카펫의 끝자락에는 높은 계단위에 올려진 옥좌가 있었고
그 자리엔 모든 어둠의 용들을 총괄하는 가장 강대한 힘을 갖춘 존재,
다크닉스가 얼굴을 찌뿌리며 앉아있었다
문을 연 둘을 빤히 쳐다보던 다크닉스가 입을 열었다
"들어와라"
그에게로 걸어오는 블러드,그에게로 째지는 여자의 목소리가 날아든다
"간이 참 크네 블러드,어떻게 명령을 어기고 깽판을 칠 생각을 하니?
그러다 쳐맞고 질질 짜는거 이젠 아프지도 않나봐?호호호홋~"
마녀의 복장을 한 검회색 머리의 여자였다
역시 마녀 컨셉인지 마법사가 들고다닐 법한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녀에 이어 바통을 넘겨받는 낮은 저음의 목소리
"신경 꺼라 윗치,저놈이 벌이는 짓거리가 어디 한둘이냐"
흰 피부에 검은 뿔과 머리를 가진 남성이었다
특이한건 팔과 다리,그리고 눈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아무래도 눈이 보이지 않는 장님인것 같다
"둘다 입에서 걸레 내뱉으시지,들어주기 역겹구만"
명령을 어기고도 다크닉스 앞에서 둥료들에게 욕설을 가리지 않는 이 사이코 같은 녀석은
과연 어디까지 머리가 비뚤어진걸까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행동을 지켜보는 글래머러스한 푸른 머리의 소녀가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복장과 머리칼의 길이는 남성스러웠지만,정작 옷걸이(...)는 완전한 여성이었다
초승달이 박힌 머리띠와 귀걸이가 빛난다
'저자식 대놓고 호기를 부리네...저 성격이 어디까지 갈까나...?'
속눈썹이 가득해서인지 고혹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소녀에게선 이 섬뜩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신경전이 잠시 끝나고,바로 앞까지 걸어온 블러드가 스스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다
생각없이 행동하는 이녀석도 그의 압도적인 위엄 엎애선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말하라,어째서 명령을 어겼지?"
다크닉스는 분명 6장군 전원에게 자신의 회복이 끝날때까지
절대 움직임을 보이지 말라 엄명을 내린 상태였다
이제 겨우 며칠을 남겨놓고 참지 못한 블러드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나가
빛진영을 습격한 것이 바로 그의 죄명이었다
할말을 찾지 못하는 블러드에게 다시한번 독기가 가득찬 음성이 내리꽂힌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저...절대로...다크닉스 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겨서가 아니라...
그저...그...그러니까..."
"다른 녀석들보다 하루빨리 나서서 공을 세우려 했겠지,내 말이 틀리느냐?"
"....................아닙니다"
".................."
심하게 일그러진 다크닉스의 눈에 실핏줄이 생겼다
그러자,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 사방을 내리눌렀다
"......!!!!!!!!!!!!!!!!!!!!!!!!!!!!!!!!!!!!!!!"
블러드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져 피를 토했다
온몸이 순식간에 찌그러져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영향권 밖에 있는 다른 6장군들조차 비틀거렸다
다크닉스의 스킬 중 하나인 "그래비티 컨트롤(중력 제어)"이었다
블러드가 피를 몇번이나 내뿜고 나서야 힘을 거둬들였다
"공을 세우려 내 말을 어긴것이 내 말을 무시한거라는 것의 증거가 되기에 부족하다 생각하느냐?"
"쿨럭!......쿨럭 쿨럭!!!....크...끄으으...컥!"
"네녀석이 내 말을 하찮게 여기듯이 나 또한 네녀석의 목숨을 하찮게 여긴다
그저 내 명령을 듣고 행동한다면 네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이행될 것이다
하나 또다시 내게 그런 추태를 부린다면 이 암흑의 성을 네놈의 피로 장식할 것이다"
"주...죽을 죄를 졌...습니다..."
"...모두들 잠시 물러가 있도록...윗치,넌 이녀을 회복시켜 놓거라"
"예,다크닉스 님"
만신창이가 된 블러드를 업고 나가자 다른 6장군들도 이 방을 빠져나갔다
가장 뒤에 나온 두명의 용의 눈이 마주쳤다
닌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번 회의에도 빠지더니,다크닉스 님이 직접 나타나시고 나서야 참여했군,흑천"

"흑천"이라 불린 그는 검은 망토에 초록 보석이 박힌 관을 쓴 남성이었다
"남의 사생활 신경쓸 여유 있으면 네 일이나 잘 판단해라"
역시나 만만찮게 쌀쌀한 대답을 던지는 그였다
이에 그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간 닌자가 그를 쏘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네가 어디가서 네 사생활을 즐기건 말건 내 알바 아니지,
그런데 네놈의 그 하찮은 사생활이 다크닉스 님의 원대한 계획에
조금이라도 방해된다면,그땐 서열이고 뭐고 없을줄 알거라"
이 말을 남기고 지나가자,흑천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라기엔 너무 무표정이었지만)이 그려졌다
"하...텃세 한번 죽여주는군,굴러들어온 돌에게 맞고 떨어져 나가니 분한가보지?"
"....그 자리에 언제까지나 박혀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동료라기엔 너무나도 차가운 대화였다
서로를 무섭게 노려보던 둘은 그대로 몸을 돌려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다크닉스는 홀로 옥좌 위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생각게 잠겨 있었다
언제부턴가 악신이 완전히 그를 지배한 터라,전처럼 고통이 차오르는 증상은 없었다
그렇지만 가끔 가다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다크닉스의 본 의식 때문에 이렇게 생각에 잠길 경우가 있었다
그의 머리속에서,그는 한 여인을 두 손으로 싸고 있었다
그런데,정작 그녀의 존재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악신의 영향 탓에 그녀의 존재마저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뇌당한 다크닉스로선 그런 사실조차 알수 없었다
그저 이렇게 생각에 잔기며 그 이미지를 되새겨보려 애쓸 뿐이었다
"따뜻하고...사랑스러워...너무나 귀엽고 부드러워서...조금도 떨어지기 싫었어....
분명 내게 소중한 존재인게 틀림없는데...대체 왜...기억이..."

젠장...아무것도 모르겠어...
그에게서 새어나오는 검은 연기가 넓은 방에 가득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