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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검은 혁명 - 4. Under the Fallen Wing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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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344
  • 작성일2016.11.21
항상 엄마는 나에게 말했어. 너는 감정이 없는 것 같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 흉내를 내줬더니 그건 그거대로 싫대.

저것 좀 치워버리랬어. 혐오스럽댔어. 엄마가, 나한테.

엄마는 내 손길을 항상 쳐냈어. 쳐내진 손이 아파.

나는 누구한테 의지하지? 누가 날 잡아줄까?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내 기분은 지금 어떻지?

...그래. 화가 나고 싫어. 그거였어.

날 쳐내고 싫어하는 저것들이 싫어 미치겠어.

난 이렇게 감정이 있는데, 저 여자는 왜 저러지?


디프라이브 교수가 클라이드가 쉬고 있는 병동을 향했다. 메르헨과 클라이드가 병실에 남아있었다. 셀린은 집에 돌아갔다고 메르헨이 말해주었다. 간호사 하나가 옆에서 그의 상태를 메모하고 있다. 그에게서 날카로운 말을 듣고 뛰쳐나온 그 간호사였다.

"클라이드 군. 상태는 좀 어떤가? 괜찮아졌나?"
"...네."
"레미아. 언제 쯤 클라이드가 조사를 다시 할 수 있겠어?"
"내일부터라도 가능할 거에요. 내일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아직 무리한 행동은 안 돼요."

그의 눈에 희망이 가득한 눈을 한 메르헨이 비쳤다. 그 애의 녹색 눈은 그가 곧 일어설 것이라는 한줄기 빛에 호수처럼 반짝인다. 금발의 부드러운 직모가 병원의 찬 불빛을 받아 따뜻한 느낌으로 빛난다.

"다행이다...이거 덕분인거죠? 디프라이브 교수님이 만드신 거 말이에요."
"아...하하. 과찬인데."

그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메르헨은 그저 자신이 잘못 보았으리라고 치부하고 그가 만든 기계를 바라보았다. 금속성의 차가운 빛이 클라이드에게로 계속 뻗어나오고 있었다. 클라이드의 눈이 그 빛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것이 어떤 영상을 그의 머릿속에 비춰주는 프로젝터라도 되는 듯이.


맑지만 어딘지 소름끼치는 오르골 소리가 넓은 홀을 울렸다. 홀 안에는 셀린 혼자뿐이다. 메이드들도, 집사도 그녀가 무엇을 하던 신경쓰지 않았다. 크노첸이 그녀를 향해 쫄래쫄래 다가왔지만 그녀는 오르골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마치 오르골에 갇힌 듯이. 크노첸이 오르골 뚜껑을 실수로 건드려 오르골이 닫히기 전 까지, 그녀는 계속 그 안에 영혼을 맡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 크노첸. 너였구나?"
"뀨욱! 뀨뀨!"

크노첸이 계속 오르골을 팍팍 치자 셀린이 오르골을 들어올린다. 계속 오르골을 해하려는 모습에 셀린이 의구심이 생겼는지 그녀가 오르골을 들어 구석구석 살펴보지만 바닥의 건전지 투입구처럼 생긴 부분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 하고 있을 때, 집사가 갑자기 오르골을 홱 빼앗아갔다.

"안됩니다, 아가씨."
"뭐가요...?"
"오르골을 분해하려 하신 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냥..."
"이건, 압수하겠습니다."

그녀는 그것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 양 오르골에서 시선을 뗐다. 크노첸은 전생에 오르골과 원수라도 진 듯 계속 오르골을 괴롭히려 들다 집사를 괴롭히기에 이르렀고, 결국 집사가 오르골을 떨어뜨렸고 오르골이 부서지자 용이 한 부품을 잡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집사는 그 부서진 오르골의, 크노첸이 물고 있는 것을 제외한 모든 부품을 모아 그것을 메이드에게 조치하도록 맡겼고, 셀린이 크노첸이 문 부품을 잽싸게 숨겨 눈에 띄지 않도록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집사는 크노첸을 혼내는 데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이놈! 네가 부순 그건 마님이 아끼는 물건이란 말이다! 어찌 할 것이냐!"

크노첸이 반론이라도 하듯 으르렁거리며 소리를 낸다.

"그르르릉...뀨욱! 뀨!"
"뭘 잘했다고 으르렁대는 것이야!"
"캬아아악! 캬아아-!"
"집 안에서 불 뿜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캬악! 캬악! 그르르르...캬아아아!"

계속 아기 용과 말다툼을 하고 있는 집사를 그녀가 말리지 않았으면, 둘은 아마 하루종일 싸웠을 것이다.

"...카웰. 그만해요."
"하지만 아가씨..."
"내 용이에요. 혼은 내가 내요."

그녀가 크노첸을 안고 홱 사라져버렸다. 집 안으로 들어간 그녀가 마을에서 입는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기 전 까지, 카웰은 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크노첸은 아직도 부품을 입에 물고 그것을 최대한 망가뜨리려는 듯 온갖 발악을 하고 있었다. 셀린이 무심결에 크노첸이 물고 ㄴ으려고 노력하는 부품을 바라보았다. 영문모를 두통이 그녀를 엄습했다.

"...윽!"

그녀가 부품을 내팽개치듯 버렸다. 그러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달아나 버렸다. 크노첸이 부품을 보며 으르렁거렸지만 그녀에겐 그런 것이 머릿속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다.

"..."

그녀가 뛰어가버리고 잠시 뒤, 아델레온이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부품을 주워올렸다. 그가 부품을 바라보자 그 부품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그의 머릿속에 우겨넣는 기분이 들어 그가 인상을 찌푸린다. 그 기이한 부품을 주머니에 챙겨넣으며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물론, 입 주변과 턱을 감싼 붕대 때문에 잘 들리진 않았다.

"...많이 컸네, 셀린."


셀린이 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어느 새 자신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오던 방향과는 반대로 달렸다. 마치 그 곳에 괴물이라도 있는 양. 그녀가 자신이 부품을 버렸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부품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가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 없던 그 와중에, 그녀가 턱에 붕대를 감은 아델레온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저...저기요..."
"음...?"
"부품 하나 못 보셨어요?"
"그건 버리는 게 좋아. 셀린 이메레스."
"네?"
"그건 버리라고. 셀린 이메레스."

그가 자신의 이름 - 정확히는 살짝 다른 이름 - 을 말함에 그녀가 놀란 듯 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어떻게 내 이름을 알아요? 좀 다르긴 한데..."
"...날 기억하고 있어?"

그녀는 순간 당황했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그와 닮은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젓자 그가 슬픈 표정이 되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기억 못해...? 정말로...?"
"...미안해요. 전혀 모르겠는걸요..."

그 때, 한 소녀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용과 함께인 소녀의 눈은 가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델이 있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델, 가요. 그녀는 당신을 기억조차 못할 거라고 했잖아요. 보세요. 당황함과 의구심 뿐이에요.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제 여기 있을 이유도 없어요."
"아델...?"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셀린이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지금부터라도 기억해 둘께요. 그러니까..."
"필요 없어."

그의 목소리는 차게 식어버렸다.

"기억하지 못한다면...그걸로 끝이야."
"그...그래도..."
"...난 널 잊은 적이 없는데."
"무...무슨 말씀이세요! 자세하게 말해주세요!"
"나중에 알게 될거야. 모든 진실을. 아마 받아들이기 너무 괴롭겠지. 하지만 명심해. 진실은 항상 고통을 수반한다는 걸. 셀린 이메레스."

그가 빈민가 쪽으로 달려 사라졌다. 그녀가 그를 쫒아 달렸지만 어느 새 그림자 속에 녹아버린 그를 놓치고 말았다. 사람들이 그녀 주변으로 조금씩 모여들자 그녀가 그 자리를 벗어나 고대신룡 동상으로 향했다. 그 조각상을 받드는 기둥에 몸을 기대고 서자 그제야 그녀의 마음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쫒았던 남자, 아델레온이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머릿속에서 그가 말한,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셀린 이메레스...?'

아련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었다.


넓은 병동에 혼자 남은 클라이드가 자기 메이스를 바라보았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메이스를 집은 그가 침대로 돌아와 그것을 빤히 바라본다. 메이스 곳곳에 검은 재가 묻어있다.

"...조만간 닦아야겠네."

간호사가 들어오기 전에 메이스를 원래 있었던 자리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그가 딱 했을 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간호사가 놀라며 그의 손에서 메이스를 가져온다.

"클라이드 씨,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요. 메이스는 왜 가져온 거에요?"
"넌 몰라도 돼. 이해도 못 할 거고."

그의 시선이 냉소적이다.

"아무튼...제 자리에 갖다 놓을께요. 움직이면 안돼요!"
"알았어, 알았다고."

그 뒤를 이어 메르헨이 들어왔다. 메르헨의 초록빛 눈에 기쁨이 비친다.

"아, 사제님!"
"왜, 띨띨아. 내가 그렇게 반갑디?"
"물론이죠. 죽다 살아나셨잖아요! 다행이다. 띨띨이라고 하시는 거 보면 멀쩡하시네요."
"넌 사람이 멀쩡한 걸 꼭 그걸로 봐야겠냐?"

그 때, 다시 폭음이 울렸다. 뛰쳐나가는 메르헨의 발걸음이 바쁘다. 그 또한 메르헨을 따라 움직이려 했으나 간호사가 그를 만류하는 바람에 침대 위에 계속 남아있게 되었다. 그가 성질을 부려도 간호사의 의지는 굳건했다.


이번 폭발은 페인트 폭발이 아닌 화약 폭발이었다. 건물 잔해와 사람 잔해들이 나뒹굴며 이 사건의 끔찍함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검은 머플러를 한 사내, 이단자가 소리치고 있었다.

"너희 신에게 부르짖어 봐라! 내가 구해주나 안구해주나 그것들을 지켜볼테니까! 아모르가 날 보고 있나 안 보고 있나 보라지! 아모르가 날 보고 있으면 내게 벼락과 우박의 벌을 내릴 터!"

그의 언행이 아주 기고만장하다.

"아, 아모르시여. 제가 이다지도 큰 죄를 지었나이다! 어서 저를 벌하소서, 벼락과 우박의 벌을 내리시고 구더기가 내 몸에 들끓게 하소서! 전능하신 카데스의 이름으로, 아멘! 아-하하하하!"

메르헨이 그를 바라보고 있자 그가 그에게 관심이 간다는 듯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는 지붕 위에서 부드럽게 내려와 그에게로 향했다.

"왜, 내가 하는 일이 놀라워? 그럼 카데스를 찬미하라고. 그 신이 내게 이런 힘을 줬으니까. 아모르는 나를 자기 개한테 던져주기나 했지...! 나를 배반한 사제놈도 마찬가지고!"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아모르님께서 당신을 개에게 던지셨다뇨? 아모르님은 자비롭고, 자애로우시고, 모두에게..."
"공평하다?"
"..."
"그래! 여-러모로 공평하지! 너는 모르는 분야에서도 말이야!"

그가 메르헨을 향해, 약간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총구를 겨눴다. 그가 주춤주춤 물러서자, 총에서 폭죽이 팡 하고 터져나왔다. 마치 장난감같은 모습이었다.

"빵! 아하하. 놀랐냐? 맞아, 너 말이지, 낙원으로 올래? 생각도 나하고 다르고, 아모르가 정의라고만 믿는 꼴이 꽤 귀여운게 내 마음에 쏙 드는데 말이지. 나랑 가서 놀자. 응?"
"더 폴른(The Fallen), 쓸데없는 이야기는 집어치워. 저 녀석도 사제랑 한패니까."

어딘가에서 들린 그 말을 들은 사내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 목소리는 메르헨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목소리였지만 그는 그게 누구였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사실이야? 클라이드 놈이랑 한패야?"
"그와 함께, 이단을 몰아내려 하고 있는데요..."

그 순간 더 폴른의 표정이 굳어지며 탄창을 바꿔 끼웠다. 총구에서 불이 뿜어지는 그 순간 레넬이 메르헨을 향해 달려왔고, 발사된 총탄을 기사 모형을 소환해 막아냈다. 총알을 맞은 기사의 모형이 백색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메르헨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파괴를 자행하는 거죠? 아모르님께서 나중에 응당한 벌을 내리실 거라구요!"
"집어치워. 벌은 너희들이나 받아! 난 이미 아모르한테 엿이라는 엿은 잔뜩 먹었거든!"

메르헨을 향해 연사되는 총알들은 대부분 레넬이 능력으로 막아주었으나 한발은 그도 막지 못했고 결국 레넬이 자기 다리에 맞게 해 제 주인을 지켜냈다.

"크아아아!!"
"레넬! 괜찮아?"

레넬이 그를 쓱 돌아보았다. 마치 '나는 괜찮다'라고 말하려는 듯이. 용이 바라보는 강한 눈길에도 더 폴른은 냉소적인 미소만 지어보였다.

"하, 잡아먹기라도 하게? 걱정 마! 곧 편하게 해줄...어라?"

그가 당황한 듯 보이다가는 갑자기 홱 사라져버렸다.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탄창이 모자라서 산 줄 알아!"

멀리서 흰 구름과 대비되는 검은 날개가 보였다. 용의 비명을 들은 사람들이 그가 있던 곳에 몰려들었지만 그는 멀찍이, 엘피스 바깥의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어둑어둑하게 땅거미가 지고 있는 빈민가의 한 판잣집 주점. 홀랑 벗은 여인이 그려져 있던 것 같은 간판이 있긴 있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글을 못 읽을뿐 더러 특징이었던 여자 그림은 비바람이 하도 만져댔는지 죄 지워지고 젖꼭지만 남아있었기에 사람들은 그곳을 '젖꼭지 주점'이라고 불렀다. 아델이 그곳에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환영해주었다. 그가 주변에 인사를 마친 뒤 가장 독한 것을 주문했다. 그러자 카운터의 퇴폐적인 여인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델, 괜찮겠어?"
"...괜찮아. 아나벨라 누나."
"취해서 그대로 쓰러지면, 내가 침대에다 눕혀놓고 마음대로 해도 되는 부분인건가-?"

그가 피식 웃고는 작은 잔을 비워낸다. 알코올의 싸한 느낌이 목을 따라 내려갔다. 그렇게 그의 잔이 계속 비워질 때 마다 그녀의 마음 속에 걱정이 채워진다. 이윽고 그가 그 독한 술 한병을 안주 하나 없이 비웠을 때, 아나벨라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델, 무슨 일 있어?"

그의 푸른 눈에 여러 감정이 섞여 형언할 수 없는 섬짓한 느낌의 푸른 빛으로 바뀌었다.

"날 잊어버렸더라고."
"셀린 말이야?"
"..."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인간이란 건 어쩔 수 없는거야. 한번 부와 쾌락을 맛보고 나면, 그 이전에 자신이 힘들어 했던 건 싹 잊어버리거든. 그 애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던 거지...너도 그 애 잊어버리고..."
"아버지가 셀린을 항상 찾고 있단 말이야!"

그가 책상을 내리쳤다. 가녀려보일 정도로 마른 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나온 힘인지 쾅 하는 소리가 술집 안을 울렸고 시선이 모두 아델에게 집중되었다.

"X발. 아버지가 항상 찾는다고. 셀린 언제 들어오냐면서! 보고 있으면 안쓰러워 죽을 것 같다고. 셀린이라는 년이 내가, 아버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제 엄마라는 년이랑 보석에 화려해빠진 드레스에 둘둘 감고 춤이나 추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돌아오지도 않을 셀린만 찾고 있어! 그러면 내가, 내 아버지가 불쌍해서 견딜수가 없단 말이야. 흐윽...아아아아...!"

그의 술주정은 결국 눈물로 바뀌고 말았다. 울고있는 그의 등을 아나벨라가 토닥였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그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였다.

"많이 힘들었지...?"
"아...아니야. 아니고 말고."

눈물을 쓱 쓸어내고는 짐짓 강한 체 하는 아델이 그녀는 안쓰러워 견딜수가 없다는 듯 그를 향해 연민의 눈길을 보냈다. 잔뜩 취한 그의 마른 얼굴에는 그제야 핏기가 살짝 돌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수많은 감정들을 녹여낸 빛깔을 띄고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언젠가, 그 애한테 찾아갈 날이 있을꺼야. 언젠가."
"걔가 찾아 올 날이 먼저 올지도 모르지. 버림받았거나 해서.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해 줄래?"
"그러면...두 팔 벌려 환영해 줄꺼야. 아버지 시선도 있지만, 스스로 제 자리로 돌아온 거니까. 그 애를 보면 나도 기쁠거고."

그의 얼굴에 메마른 미소가 떠올랐다. 슬픈 눈빛과 그 웃음이 기묘한 대비를 만들어냈다. 그 때, 주점의 문이 열렸고 라세다르와 사일 - 정확히는 사일의 목 - 이 들어와 아델을 찾았다.

"아델? 아델? 어디 있어요? 비슷한 감정이 너무 많아요!"
"여기야, 라세다르."

작은 소녀가 주점에 들어오자 아나벨라가 으레 그렇듯 훈계를 하려 했지만 아델의 저지하는 몸짓에 가만히 카운터의 업무에 집중했다.

"왜? 나 데려갈려고?"
"네. 그런데...취하셨어요?"
"...어. 좀 마셨어."

그녀가 사일의 도움으로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와 달그림자로 향했다. 길을 얼마쯤 걷자 그의 눈 앞에 더 폴른이 자리하고 있었다.

"왔어?"
"네. 그런데...아델씨, 조금 취하셨어요."
"그래보여."

아델이 약간 비틀대는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을 본 폴른이 그를 붙들고는 업었다. 라세다르가 감사인사를 하자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모습이 꽤나 수줍어보인다. 그리고 등 뒤에 업힌 아델의 술주정이 분위기를 깨기 전까지, 둘 사이는 꽤나 화목했다.

"아버지...아빠...흐윽...엄마...보고싶어...흐으...우욱..."
"기, 기다려! 내 머리 위에 토하지 마! 있다가 숙소에서 얘기 실컷 들어줄테니까!"
"아델, 왜 그래요? 슬픔, 절망, 외로움...많은게 한꺼번에 느껴져요. 혼란스러워..."
"힘든 세월을 보내서 그럴거야, 아델 녀석. 아무래도 빈민가 출신이니까."
"...그래, 빈민가 출신인게 떫어? 떫냐고! 그래, 나 마녀랑 도둑 아들내미다. 꼬우면 X지시던지!"
"이게 진짜...!"

아델이 술기운에 화를 내기 시작했고, 그 말에 폴른이 잠시 울컥할 뻔했지만 라세다르가 옆에서 말린 덕분에 아델이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달그림자의 이동장치 근처에서 심호흡을 좀 한 폴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델, 뭐가 미운 건 알겠는데 말이야, 그게 나는 아니잖아? 그렇지?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거야?"
"디프라이브...신성왕국 머저리들...엄마...셀린...다..."
"...하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느끼는 건 복수심이 아니잖아요. 그보다 훨씬...복합적인 무언가잖아요."
"몰라...다 부숴버리고, 없애버릴꺼야. 전부."

낙원으로 도착한 그들이 그를 일단 내려놓았다. 다행히, 폴른이 생각한 가장 끔찍한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아델도 아까와는 달리 속이 편한 듯 구토는 하지 않았다. 아델이 그를 위해 마련된 거처에서 잠을 청했다. 아까부터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알코올의 힘을 빌은 끔찍한 환상이 알코올의 힘을 빌은 잠의 파도에 뒤덮여 사라져버린다.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오르골이 완전히 되돌아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오르골을 열자 맑고 깨끗한, 하지만 어딘지 슬프고 기괴한 음악이 들려왔다. 계속 그 음악을 듣고 있자니 무언가 기억나는 것도 같았다. 그녀가 그 흐릿한 상에 최대한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집사는 그녀가 다시 오르골에 갇힌 줄 알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오빠-'
'어? 셀린! 어디 갔다가 이제 와?'

기억도 나지 않던 어린 시절이 새삼 기억나기 시작한 것은 그 때 즈음 해서였을 것이다. 자신이 오빠라 부르는 인물, 그리고 엄마. 희망의 숲 인근에서 그들 모두는 행복하게 놀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자신에게 오빠가 있었느냐 라고 질문할까 했지만 육감이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기억에 다시 신경을 집중시켰다. 엄마가 오르골을 누군가에게서 받았다. 그걸 준 사람은 - 

"셀린 아가씨!"

생각은 메이드 하나의 부름에 중단되었다. 그녀가 그 방향을 슬쩍 바라보자, 형형색색의 드레스가 대기되어 있었다.

"사교파티, 가셔야죠?"

그 목소리가 셀린에게는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

어린 셀린이 오빠를 찾아 헤맨다. 희망의 숲은 그들의 작은 놀이터였다. 용들의 도움을 받고, 주변 동물들 - 숲고릴라, 핑크 슬라임 등 - 에게 양해를 구하고 만들어낸 몇몇 놀이기구가 전부였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놀이공원의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수단이었다.

"오빠-"
"어, 셀린! 어디 갔다 이제 와?"
"짜잔- 이거 봐라!"

셀린이 내놓은 것은 평범한 돌이었다.

"돌멩이 아냐?"
"오빠 바보.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음..."

그가 가만히 돌을 보다가 뭔가 생각난 듯 박수를 짝 쳤다.

"우리집 이그!"
"딩-동-댕-!"

그녀가 그 돌멩이를 손에 꼭 쥐고 집안으로 달려가 아버지에게 그 돌멩이를 보여주었다.

"아빠 아빠! 이거 봐! 이그 닮은 돌멩이야!"
"어? 하하. 그러게. 이그나이트 닮았네?"
"이거, 아빠 선물!"
"앗, 셀린이 가져도 되는데. 아빠 주는거야?"
"응!"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간다. 어머니를 닮아 아름다운 그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아버지의 마음에 따듯한 한 줄기 빛이 되어 비친다.

"고마워, 셀린!"


엔타르가 잠시 졸다가는 깨어났다. 해가 이미 중천에 떠 있었지만 그의 시선엔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선반 한쪽에 있는 돌을 집어든다. 과거에 셀린이 이그나이트를 닮았다며 준 돌이었다. 그가 돌을 손에 쥐고는 과거의 향수에 젖었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셀린이 이거 줬었지. 그땐 참 귀여웠는데. 그런데, 왜 아직도 안돌아오는 걸까? 연구하느라 바빠서 신경을 전혀 못 써줘서 삐졌나..."

그의 눈동자가 텅 비어있다. 낡은 집의 벽에 생겨난 금이 그의 등 뒤를 지나 선반까지 뻗어있다. 아델이 집안에 들어오며 아버지를 마주했다.

"아, 아들- 왔어? 오는 길에 셀린 못 봤니? 요즘 그 애는 통 바쁜가봐. 아니면 아빠가 신경을 너무 오래 안써줘서 삐졌던가. 조만간 같이 나가서 찾아볼까? 그러는 김에, 대학에도 들러서 친구들도 만나고, 라다크도 만나서 연구과제 이야기도 하고. 재밌을 거 같지 않니? 오랜만에 이그나이트 산책도 좀 하고."
"아니야, 아빠. 내가 산책은 매일 시키고 있어. 그리고 셀린은 올꺼야. 학교 일이 바쁜거겠지. 요즘 여자애들, 비밀이 한둘이 아니라구. 오빠인 나한테도 얘기를 안하는 거 보면 중요한 비밀인가봐."

아델의 눈빛이 슬픔으로 얼룩진다. 아버지의 바짝 말라 뼈밖에 남지 않은 팔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팔과 똑같다.

"그런거야? 그럼 아빠는 열심히 연구하고 있을께! 연구 끝나기 전에 셀린이 돌아오겠지?"
"당연하지, 아빠. 연구 열심히 해!"

아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어느 날이었어. 따뜻한 봄이었고.

엄마가 나를 깜깜한 방 안에 넣었어. 그리고 문을 잠갔어.

나같은 거 꼴도 보기 싫대. 왜?

난 그냥 꽃을 가져왔을 뿐인데. 엄마가 좋아할 거 같아서.

너무너무 슬프고 무서웠어. 바들바들 몸이 떨렸어.

그래서 막 울고 소리쳤어. 깜깜한 방에서.

그게 전부였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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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방어기제 중 '해리'는 기억하기 싫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떼어내서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히는 방어기제이다.

               - 카타의 잡학다식한 지식 중 심리학 지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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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의 짧은 코멘트는 작품의 숨겨진 부분을 관통하거나, 작품의 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잘 생각하고 보시는 것도 재미있으실겁니다.

그리고 모두 외쳐 야근 개ㅅ 읍읍
(검은 혁명의 인지도를 조금이나마 끌어올려보기 위해 삽화를 동원할까 생각중입니다. 많은 의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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