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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검은 혁명 - 6. Memory from Death (2)

0 카타스트로프
  • 조회수293
  • 작성일2017.03.21

(파르신.)


하무트의 기도소리가 조용한 대회랑을 울린다. 읊조리는 내용은 아모르에게 모독이 되기 위해 주기도문을 거꾸로 외는 것이었지만, 실상 그는 전혀 다른 것을 기도하고 있었다. '저를 구원하소서' 따위가 아닌 '저를 벌하소서' 같은.

그는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광기는 자신보다 한참 어리던, 자기 친구의 아들까지 실종되게 만들었다. 차가운 눈밭에서 헤메이다 죽었든, 자신이 창조한 괴물의 손에 죽었든 간에 그는 어쨌든 죽어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기계, 정령, 그리고 용을 섞은 끔찍한 혼종을 만드는 융합 실험에 쓰였던 다크프로스티의 영혼과 함께.

그는 사건이 마무리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년이 다크프로스티에게 주었던 약물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육신과 영혼을 분리시키는 약.

그 아이는 순수했다. 동심을 간직했고 슬픔을 간직했었으며 또한 그의 부모가 그렇게 버리라고 간청했던 동정심과 연민, 그리고 그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여린 마음까지도 간직했던, 검은 로브 내에 있었던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에 반해 그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괴물이 되었다.

무릎을 꿇은 그가 조용히 속삭인다.

"카데스 님이시여. 부디 당신의 손으로 그 아이의 영혼을 당신이 창조한 공간, 라테아로 인도하시어 제가 헛되이 희생한 그 용의 영혼과, 정령과 함께 순수한 마음으로 뛰놀게 해주소서. 그리고 그들을 무의미하게 희생한 제 죄의 응당한 댓가로, 당신이 관장하는 둠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 제 영혼을 떨어뜨리고 자비를 주지 마시옵소서. 이 죄인은, 이 잔학한 괴물이 된 저는 구원하지 마옵소서. 제가 이렇게 비나이다. 카데스 님이시여..."

그의 앞에 놓인 카데스의 석상은 아모르를 섬기는 윗 세계 사람들이 흔히 표현하곤 하는, 온갖 괴물이 섞인 흉측한 모습의, 카시즈와 크로낙을 휘하에 두고 인간들을 짓밟는 잔학한 모습이 아니었다.

몸에 어둠을 휘감고, 별들을 자신의 주위에 두며 왼쪽의 눈으로는 라테아를, 오른쪽의 눈으로는 현계를, 그리고 미간 사이에 있는 세번째 눈으로 인간들의 마음을 주시하며, 천개의 마음을 가지고서 그들을 지켜보고 이해하며 지혜와 지식을 준다는, 2백년은 더 된 구전 전승에 충실한 모습. 낙원은 그것이 카데스의 본모습이라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옆에는 다섯 데르사의 석상이 다섯 디콘의 석상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모두 구전에 충실한 모습이다. 이제는 아모르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처량한 신 데르사들에게도,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신 디콘에게도 그는 기도한다. 자신의 벌을 위해서, 자신에게 벌을 가중시켜 달라는 의미에서. 그들의 석상 역시, 2백년 전의 구전에 충실한 모습이다.

"이해하고 공감하시되 자비없으신, 무참히 파괴하나 갸륵히 여기는, 천개의 마음을 가진, 파괴와 어둠과 지혜와 지식의 신 카데스 님이시여. 제 벌을 몇백 갑절로 하소서. 낙원의 다른 이들이 지은 죄까지 제게 씌우시고 그들은 라테아에서 평안하게 하소서. 제가 이렇게 간구하나이다. 아멘, 아멘."

기도를 끝낸 그가 윗 사람들의 새로운 신화를 생각하며 픽 웃는다. 태초에 물에 잠긴 땅이 있고,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아모르의 기운만이 휘돌고 있었다는 내용.

우주나 라테아, 그리고 카데스님과 다른 신들의 이야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그가 빛이 생기라 외치자 빛이 생기고, 뭍이 드러나라 하니 뭍이 드러나고, 풀이 자라라 하니 풀이 자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카데스 님은, 나머지 신은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저 너머에서 살바도르가 세 명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읽어주는 소리가 들렸다. 하무트가 그쪽 방으로 다가갔다. 이야기는 이제서야 시작된 듯 했다. 그도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서, 오랜만에 그의 이야기나 좀 들어보기로 했다.

"...날, 혼돈이 있었단다. 아무것도 없으되 모든 것이 존재하는 그런 혼돈 말이다."
"으응...어려워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그런 거란다. 이해가 가니?"
"네에! 꼭 마리아 언니 요술주머니 같은 거죠? 맨날 안에서 사탕도 나오구, 과자도 나오구 하는 그거!"
"하하하. 그래. 그거랑 굉장히 비슷하구나. 자, 이야기로 돌아가서... 시간이 지나자, 혼돈에서 알이 하나 생겨났단다. 그리고 알에서 한 존재가 깨어났지. 누구보다도 위에 있고 누구보다도 완전한, 하지만 잠깐동안만 있었던 신 케레드. 그는 자신을 나누는 고통을 감내하고 두 존재를 만들었단다. 그 중 하나가 빛의 신 아모르, 그리고 어둠의 신, 카데스 님. 그렇게 두 신의 육신이 창조되었고, 케레드는 자신의 영마저 둘로 나누어 그들에게 주고, 자아만이 남아 혼돈으로 되돌아가 깊은 잠에 빠졌단다."
"으응...케레드님 바로 다음에 아모르랑 카데스님..."

"둘은 맨 처음, 서로를 보고서 각자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었어. 아모르는 카데스 님께 정의로운 마음을, 카데스 님은 아모르에게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주었지. 그 다음에야 두 신은 각자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었어. 아모르는 지구와 정령, 용,그리고 해를. 그리고 카데스 님은 별과 달, 라테아, 그리고 여러 동물들을 만들었단다."
"헤에...그렇구나..."
"그렇게 모든 걸 만들어낸 다음, 아모르와 카데스 님은 이렇게 말했단다.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짐승들과 조화를 이뤄 살게 하자!' 라고 하시고,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지어 만들기 시작했단다. 아모르는 그들에게 정의를 구분하는 선한 마음을, 카데스님은 지식과 지혜를 선물했지. 그들이 보기에 참 좋았고, 그래서 둘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렸어.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나가라. 우리가 만든 것과 조화를 이루고 평화롭게 살아라!' 라고 말이야. 그러고 난 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을 도와줄, 자신과 대등하면서 다른 존재가 필요했어. 그래서 그들은 케레드가 그랬던 것 처럼, 자신의 몸을 떼어 다른 존재를 창조했지. 카데스님은 디콘을, 아모르는 데르사를 창조했단다."
"아하- 그런데 왜 아모르를 섬기는 윗 사람들은 데르사도 디콘도 없다고 해요?"

손을 반짝 든 리카르도의 머리를 쓰다듬는 주름진 손이 인자하다.

"허허. 좋은 질문이란다, 리카르도. 여기서 그 문제의 해답이 거의 나온단다. 아모르는 그들이 자신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카데스 님은 그들과 자신이 대등하다고 주장했어. 윗 세계 사람들은 그들이 아랫것이라고 생각하다보니, 나중엔 그 존재까지 사라진 거지. 아무튼, 둘은 크게 다퉜단다. 화가 난 아모르는 카데스 님이 만든 동물들에게서 지식과 지혜를 가져가 버렸고, 모습을 마음대로 바꿔버렸어. 카데스 님은 화가 났지. 어째서 그가 자신의 피조물을 마음대로 바꾸는지 알 수가 없었거든."
"멋대로 하는 건 나쁜건데."
"그래, 그렇지? 그래서 그분은 조용히 계획을 진행해 나갔어. 우선 그 분은 인간들이 다른 존재를 잡아먹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만들었지. 그 잡아먹는 것이 풀이든, 나무 열매든, 다른 짐승이든...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어. 그 분은 자신이 가진 천개의 마음 중에서 가장 나쁜 마음 일곱가지, 윗 세계 사람들이 7대 죄악이라 부르는 것들을 샌즈가 사람들을 잠재운 동안 심어놓으신 거야."
"그럼 카데스님께서 인간이 죄를 짓게 만든 거에요?"
"처음엔 그들이 그것에 휘둘리도록 하려고 심으셨지만, 나중에는 그것들로 인간을 시험해서 자신이 만든 라테아로 올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셨단다. 아무리 카데스 님이라도 평생 노하고만 계실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
"아모르가 그 신님들을 자기 아래에 있는 신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거구나!"
"그렇지! 잘 아는구나. 그럼 카데스님이 인간의 마음에 심은, 자기가 가진 7개의 가장 나쁜 마음이 어떤 마음이지?"

아이들의 대답이 꽤 빠르다.

"색욕, 식욕, 탐욕, 분노, 나태, 질투, 오만. 이렇게 7가지!"
"그래. 아모르의 교단은 그것을 뿌리뽑아야 할 못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답은 간단하단다. 그것이 카데스님이 인류에게 내리신 시험임을 알고 조금씩, 조금씩 절제하면 되는 거란다. 우리가 가진 것이 사실 모두, 신께서 이유를 가지고 창조한 것이거든."
"그런데, 카데스 님은 왜 아모르한테 정의로운 마음을 받았나요?"

어린 마음이 한 질문에, 살바도르의 인자한 대답이 들려왔다.

"카데스 님이라고 처음부터 완전하신 건 아니었어. 케레드의 몸과 영혼이 둘로 나뉠 때, 정의로운 마음은 아모르에게만 주어져 있었단다. 그래서 카데스 님은 정의에 대해 어렴풋이밖에 짐작하실 수 없었어. 대신 그분은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단다. 아모르가 그 분에게 말했어. '너는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니?' 라고 말이지. 카데스 님은 잘 모르시기에 고개를 젓기만 하셨어. 그러자 아모르가 그 분께 말했지. '그럼 내가 가진 정의로운 마음을 나눠줄테니, 대신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나눠주겠어? 라고 말이다."
"그렇구나- 처음부터 완벽한 건 케레드님 뿐이었구나."
"그래. 맞단다. 카밀레는 굉장히 똑똑하구나! 알려주지 않은 것을 맞추고 말이다. 자- 오늘 이야기는 이쯤 하고, 나머지는 내일 들을까?"
"네-"

아이들의 목소리가 해맑다. 하무트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본다. 자신도 저렇게 해맑았던 때가 있었던가 라는 의문을 가슴에 품고.


테마리의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받아내는 테오도르의 표정은 아주 진중하다. 소름끼치도록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마치 그 검이 방패와 부딪히며 내는 충격이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듯 그 어떤 굉음이 남에도 그대로였다. 옆에서 날아오는 클라이드의 신성력 화살도 간단하게 튕겨내는 갑주는 여전히 그 금빛 광채를 유지하고 있었다. 살이 노출되어 있는 부분을 노리면 그녀가 막아버리는 진퇴양난의 상황.

그 때, 그의 눈이 삐쩍 마른 사내에게로 향했다. 곁눈질로 그의 위치를 흘긋 본 그가 뒤로 도약하며 그를 향해 신성력의 화살 셋을 빠르게 쏘아낸다. 슈슝 하는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에 놀란 그가 빠르게 옆으로 피했지만 화살들은 그의 팔에 박혔다. 눈을 노렸었는데. 하며 아쉬워하던 클라이드가, 그가 아마 얼마간 검은 마나를 쓰지 못할 것임을 자각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하, 그러게 주변을 똑바로 보고 다니셔야지."

그는 별 말 없이, 신성력의 화살을 뽑아내고는 땅에 툭 떨어뜨렸다. 뭐 저런 이상한 놈이 다 있나 싶었던 그 때, 동굴 저 편에서 레드와이번이 나타나 그를 향해 크게 포효했다. 그가 통구이가 되려던 찰나, 계속 갇혀만 있던 셀린이 처음으로 소리쳤다.

"이그나이트, 안돼!"
"그륵?"

이그나이트가 그 소리에 고개를 돌아본 사이 클라이드가 메이스를 쥔 왼손을 휘둘렀다. 날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팔에 강하게 맞은 메이스는 용의 뼈를 부러뜨리진 못했지만, 최소한 날개 내지는 팔에 문제는 만들 수 있었다. 용의 울부짖음에 맞춰 동굴이 한번 더 흔들렸고, 땅이 흔들리는 바람에 중심이 무너진 테마리를 테오도르가 방패의 가장자리로 강하게 내리쳤다. 아니 내리찍었다는 것이 더 맞아 떨어지는 표현일 것이다.

어깨를 노리고 내리찍은 방패는 일순간 무방비상태였던 테마리에게 강한 충격을 줄 수 있었고, 어깨를 부여잡은 그녀가 잠시 멈춘 동안 방패를 잠시 내려놓은 그가 자기 눈 앞에 있는, 무방비 상태인 전사를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는다.

그녀가 강한 충격에 일어나지 못하고 콜록거릴 동안, 방패를 도로 쥔 테오도르가 일어서려던 그녀를 한번 걷어차서 도로 눕힌 뒤 머리를 방패로 지그시 눌렀다.

"야. 이 X자식아. 이거 안내려놔? 비겁한 새끼! 너 지금 큰 실수하는거 알아, 몰라? 이거 안 치워? 이런 X기미 X발놈의 X새끼 X만도 못한 게! 진짜 이 개X만도 못한 자식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고도의 수작질에 어마어마하게 화가 난 테마리가 욕지기를 내뱉으며, 그를 걷어차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풀 플레이트 갑옷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텅 텅 소리를 내기만 할 뿐인 갑옷과 그 갑옷의 주인은, 떨리는 모습으로 클라이드를 지켜보았다.


신성력의 화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뽑아낸 그가 팔찌에 장착되어 있던 히든블레이드를 작동시킨다. 그것이 꽤나 위험한 물건임을 자각한 라이츠가 날쌔게 달려가 그에게서 그것을 빼내거나 하려고 했지만, 이 놈의 노예팔찌 모양 암살검은 뭐 이렇게 단순하기 짝이 없고 아무 장식도 없는지, 그가 잡고 힘을 줄 공간이 없었다. 전혀.

그리고 그가 잠깐 고민하는 사이에 이 단순한 디자인의 암살검 주인 되시는 분은 라이츠의 뒷목을 잡아다가 갓 만들어져서 그의 심장을 꿰뚫을 준비를 하는 신성력의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에 정확히 갖다놓았고 그 화살을 맞는 것은 당연히 라이츠의 몫이었다. 그가 발버둥을 친 덕분에 급소는 겨우 비켜갔지만,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를 던져서 내려놓은 그 말라비틀어진 사내는 바로 클라이드에게 덤벼들었다.

클라이드도 메이스로 응전하며 접전을 벌이는 사이, 간신히 일어선 라이츠는 비척대며 일어나지 못하는 붉은 용에게 시선을 돌렸다. 용은 손가락에 열쇠꾸러미를 간신히 걸고 있었고, 그가 조용히 용에게 다가가 그 손가락에서 열쇠꾸러미를 살짝 벗겨냈다. 최대한 짤그랑거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그가 자물쇠에 열쇠를 하나하나 꽂고 돌려보기 시작한다. 그러자 셀린이 그 움직임을 알아채고, 그에게 조용히 지시를 내린다.

"그거 말고. 그 옆에. 너무 갔어. 하나 왼쪽. 그래, 그거. 그걸꺼야. 아마도...?"
"우리 할아버지가요, 너희 애X같은 창... 앗차. 아무튼 무슨 구멍이든 간에 쑤셔보면 다 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 라고 하셨어요. 이게 아니면, 다 돌려보면 되죠 뭐."

할아버지가 남긴, 명언이라면 명언인 말을 어떻게든 필터링해서 그가 말해주곤 그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렸지만 열쇠는 맞지 않았다. 모든 열쇠가 맞지 않음을 확인하자, 라이츠가 품에서 고정쇠와 락픽°을 꺼내든다. 자그락자그락 하는 소리가 몇 번 나고 나자 라이츠가 무엇을 느꼈는지 고정쇠를 돌려 끼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락픽이 끝까지 돌아갔다.

(락픽° : 끝이 가느다란, 자물쇠 따는 철 막대기. 고정쇠와 한세트이며, 락픽을 딱 맞게 끼우고 나서 고정쇠로 돌려주면 자물쇠가 풀린다.)

"좋아좋아! 조금만 기다려요, 누나!"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고, 그가 고정쇠를 푼 뒤 락픽을 살짝 왼쪽으로 돌린다. 그 뒤에 끼이익 하는 소리를 따르는 소리는, 찰카닥 하는 경쾌한 해제음이었다. 그녀의 손을 붙들고 일으킨 라이츠가, 그대로 그녀의 손을 잡고 도망쳐버린다. 방 바깥에는 검은 망토들에게 공격받은 메르헨의 부상을 열심히 봉합중인 다비타와, 그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있는 디프라이브가 보였다. 셀린이 소년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너...자물쇠 딸 줄 알아?"
"네! 할아버지한테 배웠어요. 우리 할아버지, 예전부터 알아주는 자물쇠 당번이었고 5년 전 까지만 해도 현역이었대요- 그래서 배너티 공작네도 한번 들어가서 더러운 돈으로 산 보석 몇개 집어왔다고...아차!"

그는 그녀의 풀 네임이 셀린 아멜리아 '배너티'임을 잠시 잊은 모양이었다. 그 말이 방아쇠가 되어 셀린의 머릿속에 기억을 하나 불러 일으켰다. 6년 전, '어떤 간덩이가 배밖으로 나온 자식이 그 귀하고 귀한 보석을 털어갔다' 라며 노발대발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 때, 이중 열쇠로 따지 않으면 안되는 정문은 완전히 닫혀 있었고, 대신 열쇠 하나로 열 수 있는, 따기 꽤 힘들게 만들어진 창문만이 열려 있었다. 그 따기 어렵게 만들어진 창문을 따고 들어와 창문보다 따기 더 힘든 창고 문까지 따고 값나가는 것들만 챙긴 그들의 모습을 어린 셀린은 새삼 궁금해 했던 것 같다. 집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기에 몰래 실실대다 된통 혼난 것도. 그런데 그 간 큰 사람의 손자가 지금 여기에... 그녀의 눈 앞에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알릴 생각은 없었다. 아마 손자를 보다 나은, 이를테면 십자단같은 곳에 보내려고 미리 자금을 모은 것일 테니까. 그녀가 자신이 대화를 건 본래 목적을 말했다.

"욕 해도 괜찮아. 그건 그렇고...작은 상자, 열 수 있니?"
"네! 열쇠 하나로 여는 구조면 다 괜찮아요. 어...할아부지도 못따는 괴악한 구조인 자물쇠만 빼구요."
"그럼 같이 상자 하나만 찾아줘. 장갑이 그 안에 있어."

디프라이브 교수가 바쁘게 어딘가와 떠드는 동안, 그들은 구석구석을 찾아 헤매기 위해 이동했다. 셀린의 장갑을 찾아서.


그가 상자 세 개를 찾아내 그녀의 앞에 들고 왔다. 셀린은 자신은 하나도 못찾았는데. 하며 감탄했고 라이츠는 상자를 내려놓기 무섭게 잘그락거리며 자물쇠를 따기 시작했다. 끼리리릭 딱 하는 소리가 두번 정도 들렸을까. 그간 나온 장갑은 전부 가짜였고, 이 마지막 것이 진짜일 것이라고 셀린은 확신하고 있었다. 다른 상자가 있으면 모를까. 하지만 라이츠는 이게 이 안에 숨은 상자의 전부라고 말했고, 그 말에 기대를 품은 셀린이 그의 작업과정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던 그 때, 락픽이 부드럽게 돌아가다 말고 절반쯤 되는 지점에 멈춰 바르르 떨었다. 그가 락픽을 조금 왼쪽으로 돌리고 다시 해제를 시도하자, 아까보다 조금 더 많이 돌아가는가 싶더니 딱 하고 락픽이 부러져 버렸다. 그가 아까운 듯 한숨을 푹 쉰다.

"에이...돈 꽤나 주고 산건데. 아까워라..."
"돈을 주고 이런걸 사?"
"락픽은 우리 사회에선 꽤나 비싸다구요. 장인들만 만든다고나 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텐 애초에 거의 안파는게 락픽이에요. 저야 할아버지가 자물통 담당...아니 자물쇠따기 장인이셔서 덤으로 몇개 얻어올 수도 있지만, 저도 일단 사긴 사야 하니까요."

빈민가의 사회는 꽤나 질서정연한 모양이었다. 틈만 나면 귀족 자제들의, 사교파티를 가장한 정치적 계책과 음모가 이어지는 무질서한 배덕의 성소였던, 자신이 속한 상류사회는 어찌 보면 이들보다 더 썩어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곧 접어두고 상자와 함께 도망쳐야 했다. 셀린이 사라진 것을 알아챈 아델이 화가 잔뜩 나서는 밖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뒤를 클라이드가 신성력의 활을 든 채 쫒았고, 넷은 한참을 돌아 그들이 있던 곳의 반대편, 막다른 길로 - 하지만 사실 낙원 입구가 있는 그곳으로 - 향했다. 의도한 바는 물론 아니었겠지만. 그곳에서 갇힌 크노첸을 본 셀린이 그 아이가 든 철창을 들려고 애를 쓴다. 그러자 라이츠가 내려놓으라고 어르고 달랜 뒤, 부러진 락픽 조각으로라도 자물쇠를 따려고 무진 애를 썼다.

"열려라, 열려 좀...!"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라이츠가 다급해진 듯 하다가는 이내 자신이 여태 들고 있던 열쇠에 생각이 닿았다. 열쇠 여러개를 끼워보고 돌리고 하다가 락픽이 딱 맞아들어갈 때 처럼 끼리리릭 하고 순조롭게 돌아가서는 찰칵 하고 풀리는 소리가 나자 문을 열어 주인을 애타게 부르짖던 본헤드드래곤을 풀어주었다.

크노첸은 폴짝 달려와 그녀의 다리에 얼굴을, 정확히는 머리 위에 쓴 뼈를 부볐고 그 때에 맞춰서 아델이 들어왔다. 꼴에 용이라고 크노첸이 그르릉거리자, 후드를 쓴 그가 아무런 감정 없이, 허나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용을 내려다본다. 입으로 뭐라 웅얼댄 것도 같았다.

뒤이어 들어오는 클라이드의 뒤로, 이그나이트가 기다시피 해서 따라온다. 그르릉거리는 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하다. 크노첸, 고 조그마한 녀석이 셀린을 그동안 가두고 있던 아델에게 화라도 내듯 불을 뿜어냈고, 옷자락에 불이 붙을 뻔한 것을 간신히 피하는 찰나의 빈틈을 노린 클라이드가 메이스를 들고 맹렬히 돌진한다.

라이츠도 다리 위쪽에 찬 단검집에서 단검을 꺼내들고 그의 등을 노렸고, 둘 모두 성공적으로 그에게 데미지를 주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이그나이트가 사력을 다해 발톱을 휘둘러댄 덕에 급소는 살짝 빗겨갔지만.

"넌 사형각이다. 새끼...어?"

그를 붙잡으려 한 순간, 그와 그의 용이 눈 앞에서 사라져버린 것에 놀란 클라이드가 뒤로 몇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필요하게 된지가 한참은 지난 추적자가 나타났다. 아직 인간의 부분인 손에는 기절한 테오도르가 들려져 있다. 손이 테오도르를 툭 던진다.

"쟤 꽤 무거울텐데...?!"
[타겟 분석. 사제 2개체, 암흑마나 보유자 1개체, 용 1개체 확인. 아군 세력 없음. 모든 생명을 제거합니다. 출력 리미트 해제 요청.]

그와 동시에, 여지까지 평범한 갑옷이었다고 생각한 파츠의 등 부분이 열리며, 청색광으로 빛나는 촉수 4개가 튀어나왔다. 소름끼치는 모습에 그들이 뒤로 조금씩 물러서자, 기계는 다시 제 할 말을 늘어놓는다.

[계산결과와 일치합니다. 모든 생명을 제거합니다.]

다리 4개가 빠르게 움직이며 그들에게서 살짝 멀어졌다. 손이 맺고 있는 것은 파이어 볼 마법의 수인이었다.

---------

한 여인이 칼라이아가 바라보고 있는 유리창 너머에 서 있다. 그녀의 주변을 수많은 죄인 - 낙원에 발을 들이려 했던 유타칸의 더러운 귀족들 - 이 둘러싸고 있다. 그녀의 귀는 마치 물갈퀴와 비슷한 모양이다. 뮤직드래곤의 그것이라고 하면 딱 좋을까? 칼라이아가 그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들이 전기 자극에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바르르 떨던 여인은 귀를 꼭 막고,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녀가 계속 조용히, 칼라이아가 있는 공간으로 소리를 전송하는 스피커에게만 들리게 속삭인다.

"그...그만. 그만해...그만...싫어...싫은 소리가 나...저...저리 가...!"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소리가 이어지자, 그녀가 크게 소리친다. 그 목소리는, 그녀가 느끼는 고통과 절박함이 그대로 배어나는 소리였다. 

"그만! 듣고 싶지 않아!"

그러자 스피커는 삐이이이 하는, 괴로움을 자아내는 소리를 내보내기 시작했고 죄인들도 괴로운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연구원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기 시작하자 칼라이아가 그들을 들여보내고 남은 귀머거리 연구원 하나와 함께 상황을 지켜본다. 귀마개를 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멀쩡했다. 귀머거리인 남자 또한 그랬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는 개체만 영향을 받는 건가..."

그 뒤에 있는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들이 하나하나, 머리가 없는 시체가 되어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유리창은 피와 살로 도배를 한 것 처럼 보였고, 이내 모든 죄인이 사망할 때 까지 삐이이이 하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그 소리가 멈췄을 때, 그녀가 실험이 진행된 장소의 문을 열고 그녀를 불러들인다. 물론 귀마개는 빼고.

"싫은 소리...싫은 소리였어요...왜...?"
"네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었을 뿐이야. 앞으론 이런 일 없을거다. 미안해."
"그래요...?"
"맞다. 이거, 선물이야."

그녀가 내민 것은 작은 브로치였다. 세로로 긴 마름모꼴을 한 보랏빛 보석 3개가 서로 위쪽 끝을 모으고, 단풍잎같은 모양으로 퍼져있는 모양. 그녀가 공손히 그것을 받아들었다.

"예쁘네요...이걸...저한테?"
"그걸로 같은 동족들을 구분할꺼야. 기억해."
"알겠어요. 이제 쉴 수 있나요?"
"어? 가능이야 하지. 근데 왜?"
"그...그저...예쁜 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에요..."
"괜찮아. 가도 돼."
"고...고맙습니...다..."

부리나케 사라진 그녀의 귀는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인간의 그것이 아닌, 물갈퀴 모양이었다. 그녀가 종이를 한 장 꺼내든다. 무언가의 사본으로 보이는 그것을 그녀는 읽고 또 읽었으며, 그 결과가 저 여인이었다. 갈색 머리의 연구자가 미소를 짓는다.

"티에레 하르디움... 그 보물을 왜 이제서야 찾아냈나 몰라. 온갖 좋은 게 다 들어있잖아? 덕분에 플랜 B도 가능하게 됐고. 근데...하무트 그 양반이 듣진 않겠지?"

그녀의 웃음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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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너의 길이다. 네가 올 때는, 너 혼자 이 길을 걸어오게 되겠지.

  - 폴아웃: 뉴 베가스의 DLC 론섬 로드 트레일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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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츠가 들은 자기 할아버지의 신조는 지나치게 섹드립이 심해 라이츠의 뇌내에서 검열되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이겁니다.

'라이츠, 할애비 말 잘 듣거라. 자고로 너희 애X같은 창X 보X구멍이든, 지 배때지에 낀 기름기로 딸X이를 치는 윗동네 돼지새X네 창고 자물쇠의 열쇠 구멍이든 뭐든 뚫린 구멍은 일단 쑤셔보면 답이 나온단다. 알겠느냐?'

순혈 빈민가 출신인데 고운 말이 나올리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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