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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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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단풍잎으로 뒤덮인 숲을 걸었다. 가을의 숲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딱히 놀랍거나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수천 년 동안 봐왔던 모습이었으니.
“ 어이, 인간. “
“ 인간이 아니라 마이아 아오라. 아오라라는 이름이 있답니다? “
귀찮게 구는군. 지금이라도 그냥 다시 돌아가 버릴까. 난 속으로 조금 투덜댄 후 대답했다.
“ 그래, 아. 오. 라. “
“ 어? 지금 뒤끝 있게 제 이름 일부러 또박또박 발음하신 거예요? “
“ ……아닌데? 전혀 아닌데? “
“ 어어? 맞는 것 같은데? 전혀 아닌 것 같지 않은데? “
한마디도 안 지네. 버릇없는 인간. 원래 하려던 말을 다시 떠올리곤 다시 말을 꺼낸다.
“ 아아, 됐고. 사실대로 말해라. 도대체 왜 온 거지. 전할 말이 있는 거냐? “
“ 아닌데요? “
“ 아니면 내 동생이 시켰나? 나 좀 데리고 오라고? “
“ 그것도 아닌데요? “
계속 나를 신경 쓰이게 하던 질문. 왜 이 인간이 그 먼 길을 걸어서 나를 찾아온 거지? 분명 원하는 게 있을 터인데……. 힘, 권력 그리고 재물, 셋 중 무엇을 원하든 셋 중 하나를 요구하면 난 그녀를 죽일 생각이었다.
“ 원하는 것이 뭐지. “
“ 고신이 형은 어떤 용인지 궁금해서요! 고신이가 형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
혼란스러웠다. 인간이 여길 오려면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최소 한 시간은 걸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라면…
“ 거짓을 고하지 말라 하였다. “
난 살기를 내뿜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바닥에 깔린 낙엽이 진동하며 공중으로 떠오르고 높게 자란 나무들은 몸을 떨었다.
“ 거짓말 아닌데……. 바보. “
입을 삐죽 내민 그녀는 발돋움을 하고 내 이마를 콩 때렸다. 동시에 내가 내뿜던 살기도 끊겼다. 낙엽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무는 떨림을 멈췄다. 내 이마를 쳤어? 나, 이 어둠의 수호자 다크닉스를?
“ 너, 너…… 감히……! “
“ 궁금해서 왔다구요. 어떤 용인지. “
또다. 또 저 얼굴, 저 입술, 저 미소. 내가 이 인간이 평범하지가 않다는 걸 느끼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상한 인간이 마이아 아오라의 첫인상이었다.
“ 궁금하다? 단순 호기심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받아들이기 어렵군. “
“ 고신이가 자기 형 진짜 잘생겼대요! “
다음에 만나면 각오해라, 고대신룡. 어이가 없어진 난 아예 대화를 포기했다.
“ 근데 실제로 보니까 고신이가 말한 거 하고는 다르게……. “
“ 말한 거 하고는 뭐가, 왜, 많이 달라? “
이상하게 조금 조급해진 난 서둘러 물었다.
“ 아뇨, 더 잘생겼어요. 헤헤……. “
또다시 이상하게 만족한 난 헤헤 웃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
“ 예쁘다. 너도. “
떨어지는 단풍 하나를 손으로 붙잡은 난 그 붉은 단풍잎을 아오라의 금빛 머리에 꽂아주었다. 바보같이 계속 웃기는. 이렇게 당황한 얼굴도 나쁘지 않네. 난 그녀의 붉어진 볼이 붉게 물든 단풍잎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앞서 걸어갔다.
“ 다크닉스 님! “
“ ……왜. “
잠시 옛날 생각이 나버렸네. 뒤에서 날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 모든 걸 등진 나. 난 과거를 떠올려버려 조금 대답을 늦게 했다.
“ 내일도 와도…… 괜찮죠? “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괜찮다는 대답을 바란다는 것이 들린다. 당연히 괜찮…… 잠시만. 왜 인간과의 만남을 허락하고 있는 거지? 어차피 저 아이도 나를 떠나갈 텐데? 어차피 내게 등을 돌릴 텐데?
난 그저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갈 뿐이었다.
“ ……내일이 마지막이다. 그다음부터는 찾아오지 마. “
그래도 희망을 걸어보고 싶었던 걸까. 이미 깨질 대로 깨져버린 마음에 남은 마지막 희망을.
“ 네! 이 단풍잎, 잘 간직할게요! “
고작 단풍 하난데 뭘 간직한다는 건지.
하루는 이틀이 되고, 이틀은 사흘이 되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