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
꿈속에서 난 허공을 걷고 있었다. 주변은 밝았으며 마치 어둠이라곤 한 점도 없는 듯했다. 오로지 검은 내 몸에서만 어두운 기운이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 난…… 이곳에 속하지 않는구나. “ 조용히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절망? 아쉬움? 슬픔?
“ 그렇지 않아. “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나를 바라보며 서 있는 아오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나와는 달리 밝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너무나도 밝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난 어쩌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이 빛나는 사람이 나로 인해서 그 빛을 잃는 것은 아닐지.
“ 어째서? “
“ 조금만 노력한다면 바뀔 수 있어.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그런걸? “
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 틀렸어.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아. 너도, 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
그러자 아오라는 내게 한 걸음 다가가오며 말했다.
“ 그러면 내가 도와줄게. “
또 한걸음.
“ 거대한 격변의 파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
또 한걸음.
“ 작은 변화의 파동이니까. “
그리고 또 한걸음.
“ 그러니 나와 함께 가자. “
내 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의 손이 내게 닿자 내 몸의 검은 기운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 내가 너를 저 밝은 빛으로 인도할게. “
내 손을 잡아끄는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그녀의 빛은 계속 밝아졌다.
“ 자, 어서. “
아오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눈을 뜰 수조차 없을 만큼 밝아지자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나를 내려다보는 아오라의 얼굴?
“ 일어났어? “ 그녀가 미소지으며 묻는다.
“ 우와아악! “ 난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내가…… 아오라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던 건가?
“ 너, 그…… 어, 그러니까…… “
아오라는 놀람과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는 나 대신 미소를 지으며 말해줬다.
“ 곤히 자더라. 엔젤이 고신이는 잠버릇이 나쁘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
……젠장. 확인 사살이다. 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섰다.
그때 잠들기 전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젠자앙!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 눈물까지 보이다니. 맘같아선 기억을 지우고 싶지만……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쯧.
그런데 설마 그 꿈, 현실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의미심장한 꿈이었어. 저 밝은 빛이라…….
기시감을 느낀 난 고개를 돌려 아오라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마찬가지로 일어서며 말했다.
“ 그럼 갈까? “
“ 뭐? 어, 어디를? “
말문이 막힌 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드림 컨트롤? 진짜로? 이제는 내 레어 뿐만이 아니라 꿈까지 침범하는 건가. 내가 그녀를 계속 멍하니 바라보자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 산책. 아니면 다른 거 하고 싶으신…… 아니, 아니지. 자꾸 헷갈리네……. “
“ ……그래. 가자, 산책. “
다행이다. 난 안심하며 밖으로 나섰다. 시린 겨울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나뭇잎은 이미 다 떨어져 버렸고 온도는 가을의 끝과 겨울의 시작에 걸쳐있었다. 추워지려나……. 눈이 내리면 골치 아플 텐데.
아오라는 내 옆에서 걸으며 물었다.
“ 그런데 무슨 꿈 꿨어? “
“ 어? 아무 꿈도…… 안 꿨는데? “
비밀을 들킨 것처럼 뜨끔한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아오라는 의아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 이상하다. 분명 내 꿈 꿨을 텐데……. “
어이가 없어진 내가 아오라를 바라보자 그녀는 장난스레 웃었다. 네 꿈을 꾸긴 꿨다만……. 이 여자가!
“ 아, 아니거든! 후우…… 됐다. “
“ 으응? 뭐가 됐어? “
“ 아무것도 아니야. “
“ 뭐가 아무것도 아닌데? “
귀찮군……. 차라리 말을 놓지 말을 걸 그랬나. 존칭을 쓸 때는 어린아이처럼 굴지는 않았는데. 아니, 이게 원래 성격인 건가?
아오라가 나온 꿈은 여전히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고 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휘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이 인간이 그걸 알 리가…….
“ 어어? 고개는 왜 휘젓는데에! 말 좀 해봐아! “
나는 끝까지 귀찮게 구는 아오라를 피해 몇걸음 앞서 걸었고 그녀는 그런 내 뒤를 총총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