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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O.C
  • 조회수556
  • 작성일2024.01.29






어릴 적 제넷의 꿈은 파워레인저였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본 파워레인저 블루한테 반해서였는데, 그 후 노란색 유치원 원복을 입고 놀이터를 호령할 때의 다섯 살 제넷은 ‘나는 블루!’라는 대사를 밥 먹듯이 외치곤 했었다. 짧은 팔다리로 앞구르기를 하거나 썩은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게 전부였지만 그땐 정말 제가 만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 시절 제넷의 세상은 오로지 파워레인저 뿐이었다.




그렇게 여섯 살이 될 무렵까지 이어지던 제넷의 세상은 한 뼘 작은 꼬맹이가 나타나면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엠버는 제넷의 아랫집으로 이사 온 한 살 어린 동생이었다. 이사 떡을 돌리던 엠버의 엄마가 제넷의 엄마와 인사를 나누고 두 집 딸래미들이 비슷한 또래라는 걸 알게 된 게 모든 이야기의 시초였다. 제넷은 엠버와의 처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되게 어색했고, 불편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껴질 뿐이었다. 여섯 살 제넷이 첫만남에 낯가리느라 엄마 바짓자락을 부여잡고 있었던 반면, 첫 만남부터 제넷을 끌어안고 봤던 다섯 살 엠버는 그와 상극이었다. 엠버 또한 처음의 우리가 어땠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언니가 되게 귀여웠고, 예뻤다는 것만 뚜렷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삐걱거리던 사이는 매일이 눈물 바람이었다. 제넷은 엠버기 저를 쫓아다니며 따라 하는 통에 파워레인저 놀이를 못 한다고 억울해서 울었고, 엠버는 제넷이 저를 떼어놓고 다른 언니들이랑 논다며 서운해서 울었다. 제넷은 엠버가 귀찮아서 싫었고 엠버는 제넷이 제넷이라서 좋았다. 한쪽은 미운 정만 쌓이고 한쪽은 고운 정만 쌓이는 관계가 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물론 제넷은 전자였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 아이에 대한 정까지 떼어내질 못 했나. 




제넷이 알곱 살 반 진학을 코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그새 머리가 자라 제넷의 말에 대꾸할 줄 알게 된 엠버와의 티격태격이 한창일 때이기도 했다. 해마다 가리는 낯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제넷의 예민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엠버는 그날도 제넷에게 매달려 오늘은 왜 파워레인저 안 보냐, 언니들이랑은 안 노냐, 그럼 나랑 놀자, 떼를 썼다. 싫다는 제넷과 놀자는 엠버 사이의 티키타카가 말다툼으로 번지고 답지 않게 큰소리가 나올 정도로 싸움이 발발했다. 내리 쌓인 억울함과 서운함이 폭발하고 아슬한 관계에 금이 갔다. 결국 제넷이 새로운 반에 들어가서 적응할 때까지 아는 채도 안 하다가 엄마들 등쌀에 떠밀려 손잡고 놀이터로 나온 날이었다. 엄마들 눈에서 벗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손을 놨다. 그날따라 유난히 찝찝했음에도 시선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사고는 순식간이라, 그 찰나에 엠버가 다쳤다. 오랜만에 봄 언니 얼굴이 너무 좋은데 미안하다는 말을 아직 못해서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이대로 쭉 언니가 자기랑 놀지 않을까 봐 무서워서, 언니가 좋아하는 젤리를 사다주며 사과하고 싶었다고. 그래서 손을 놓자마자 동네 슈퍼로 달려갔고 돌아오다 차에 치여 팔 하나가 부러졌다. 울며불며 병원까지 따라갔던 그 순간과 잠든 엠버의 옆에서 부모님께 들었던 당부가 어른이 된 저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그땐 감히 예상하지 못한 제넷이었다.




‘’엠버는 제넷이 너무너무 좋대. 제넷도 엠버 좀 챙겨줄래? 다치지 않게, 아프지 않게 꼭 지켜줘. 우리 제넷 파워레인저처럼 멋있는 언니니까 잘 해낼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덟 살 제넷은 죄책감을 배웠다. 전부 나 때문인데도 불구하고 다친 건 엠버라는 게, 마치 제 자신이 히어로가 아니라 못된 악당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잠든 아이의 손을 먼저 잡았고 퇴원할 때까지 놓는 법이 없었다. 왼팔에 파란색 깁스를 한 엠버는 웃었다. 뭣 모르고 자기도 파워레인저 블루처럼 갑옷을 입었다며 좋아하던 걸 기억한다. 등굣길엔 제넷이 엠버를 데려다즈고 하굣길엔 데리러 오고. 아주 지극정성이 따로 없었다. 지켜줘야 돼. 내가 언니니까. 엠버가 나 때문에 다쳤으니까. 어린 히어로의 마음속에서 죄책감을 먹고 책임감이 피었다. 제넷은 그 무렵부터 엠버의 앞에선 절대 울지 않았다. 제넷의 세상을 일그러뜨리던 엠버는 어느덧 제넷의 세상에 가득 차 있었다.




제넷은 이제 엠버의 대신을 자처했다. 엠버가 잘못을 저지르면 자신의 탓이라며 뒤집어썼고, 대신 야단 맞고. 예전 같았으면 꿈도 못 꿀 희생이었다. 짓궂은 장난 때문에 속이 상한 엠버가 울면서 돌아오면 대신 찾아가 혼내줬고, 기어코 같이 놀겠다며 떼를 쓰는 엠버 탓에 친구들이 투덜대면 대신 깍두기 역할을 맡았다. 그때마다 제넷은 입꼬리를 올려 영광의 보조개를 빛냈다. 야단맞고 이불 속에 들어가 울었던 밤, 혼내는 입장임에도 가슴이 쿵쾅거려 무서웠던 날, 제 자리를 꿰차고 노는 엠버를 위해 지루함과 싸웠던 하루는 뒤에서만 일어나고 조용히 묻힌 기억들이었다. 언제나 강했던 만화 속 히어로들처럼 엠버에게 조금 더 멋있는 언니가 돼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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