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 불의 산 외전 (1)
“너 미쳤어?!”
충격적인 발언에 나는 하늘이 떠나가듯 목청 크게 소리쳤고. 번개고룡은 얼굴을 찌푸리며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아주 잠깐만 확인하는 거야. 뭔 일 생기겠어?”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했었다. 새로이 생긴 던전이 궁금하다고 말하는 번개고룡은 말릴 수가 없었다.
“아주 잠깐…. 맞지? 헬이 분명 화낼 거야.”
“추방당하면 되지.”
“....”
아주 잠깐. 나는 그 아주 잠깐을 믿었다. 분명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난 그 날의 선택을 평생토록 후회하고 있다.
번개고룡은 그곳에 봉인된 다크닉스를 발견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 것은 아니고 봉인된 장소로 추정된 곳을 보았다. 하지만 근처에만 가도 알 수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끔찍한 기운은 눈에 보일 정도로 뚜렷했으니까.
“....내가 막아야 해. 스승님의 희생을….”
그 이후로 번개고룡은 이상해졌다. 계속해서 그때 본 기운을 떠올리며 강박에 걸린 듯한 증세를 보였다.
“번개고룡…. 이틀째 너 안 나가고 있어.”
“안돼…. 이렇게 늦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번개고룡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녀는 자기의 보금자리에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쓰고 실험하는 것을 반복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에는 어느 글귀를 덮은 낙서들이 휘갈겨져 있었다.
“정신 차려! 너 지금 이상하다고! ”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쓰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소리쳤다. 이틀 만에 본 그녀의 얼굴은….
“....나는 또 쓸모가 없는 거야?”
반쯤 풀린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 괜찮아?”
“모르겠어! 피닉스.”
그녀는 손에 쥐던 펜을 떨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피닉스 그건 막을 수 없어…. 나는 어떡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또 쓸모가 없어?”
“야.! 정신 차리라고! 너 왜 그러는데?”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도대체 그 끔찍한 기운이 그녀에게 무슨 영향을 끼쳤길래 그렇게 밝고 탐구심 넘치던 그녀가 이렇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말해 줘. 피닉스, 난 여전히 쓸모가 없는 거야?”
“....이래서 내가 가지 말라고 했던 건데.”
갑자기 나타난 헬은 번개고룡을 두들겨 패서 기절시켰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내가 아니었으면 미쳐버렸을걸? 감사 인사는 됐어.”
그 이후에 번개고룡은 감옥에 가두어졌다. 헬의 말로는 당장 멀쩡한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들었다.
일이 발생한 건 언제였을까. 그때 난 널 그냥 보내주었다.
“날 보내줘. 피닉스.”
온몸에 번개를 두른 번개고룡이 감옥을 터트리며 불의 산에서 소동을 일으켰다. 내가 갔을 땐 많은 경찰들이 다쳤었다. 너는 그들이 예전에 동료였든 친구였든 가리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헬의 몸에도 스파크가 튄 채로 쓰러져 있었다.
“어차피 내가 가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비켜!”
번개고룡의 공격은 나에게 전혀 닿지 않았다. 분노의 휩싸인 그 공격은 정말 못 봐줄 정도로 형편없는 공격이었으니까.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뒤로 꺾어버렸다.
“.....!”
번개고룡이 소리를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지금 당장 이 녀석을 불태워 버릴 수 있었다. 동료를 해치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일까. 하지만 난 번개고룡과의 추억에 그럴 수 없었고 그저 이곳을 영원히 못 도망가게끔 이대로 다리를 불구로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번개고룡…. 정말로 가야겠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온갖 힘을 주며 빠져나오려 했다. 억지로 빠져나가려는 바람에 그녀의 팔은 잘못하면 뽑힐 것만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번개고룡을 죽음 가까이 몰아넣더라도 그녀는 목적을 위해 그 어떤 것이든 할 것이다.
“도대체 그 목적이 뭐길래. 널 이렇게 만든 거야?”
또 번개고룡은 답하지 않았다. 알아도 쓸모가 없다는 뜻이었을까. 넌 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보내주었다. 아직 더 질문이 남았지만 넌 알려주지 않았을 거고. 적어도 보내준다면 내가 널 다치게 하진 않겠지….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더 고통받진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넌 그 이후로 공식적으로 추방된 걸로 결정이 났다. 헬이 아주 화난 것 같았지만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어 보였길래 금방 그들은 너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금오 경감한테 들은 네 얘기도 재미가 있었다.
무슨 재료를 모은다든지, 새로운 드래곤들을 자유롭게 만난다든지 빙하고룡인지 뭔가 하는 놈한테 푹 빠져서 뭔 짓을 다 한다는 것도 들었다.
다시 만났을 땐 그저 기뻤다.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추억과 함께 널 빗대어 보았지만, 그때의 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네가 괜찮아 보이니 나도 괜찮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너를 존중했다.
“.....끝났습니까?”
생각에 빠진 피닉스를 향해 금오가 뒤늦게 구덩이에서 올라오면서 말했다.
“늦었네? 이제 일어난 거야? 애들은 이미 다 갔는데.”
떨떠름한 금오를 향해 피닉스가 반갑게 인사했다.
“질문입니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되묻지 말라는 것이었을까. 그 질문에 약간은 기분이 상한 피닉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약간 고민하더니
“아냐, 됐어, 상황은 끝났으니까.”
표정을 풀고서는 몸에서 타오르는 불을 잠재운다.
“청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음…. 아마 저기?”
피닉스는 본인이 날려 보낸 방향을 가리켰다. 금오 경감은 한숨을 쉬며 옷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가려고 할 때.
“근데 말이야, 고대신룡에게 그 길을 알려준 것부터 이상했는데. 넌 왜 가만히 있었던 거야? 헬을 그렇게 따르는 녀석이.”
피닉스가 한 가지 궁금증을 내밀었다.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뭐야”
금오의 이마에 숨겨져 있던 세 번째 눈이 붉은빛을 내 뿜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두 번째 고대신룡이 개화한 순간부터 길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만일 제가 있었더라도 똑같은 상황이었겠죠. 청장님이 그렇게 되신 건 그 흐름을 막으려는 반작용입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었더라도 청장님은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실 수 없었습니다. 청장님의 목표는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으니까요.”
갑작스레 다른 드래곤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에 피닉스는 긴장하고 경계했다.
“전에 내게 번개고룡의 소식을 전해준 것도 그렇고, 너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아니면 분노였을까. 그녀는 주먹에 힘을 주며 잘못하면 금방 폭발하며 그를 제압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 또한 잘못된 질문입니다. 제 눈은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더라도 말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 말을 하고서는 금오의 세 번째 눈은 다시 감겼다.
“....그때의 일을 후회하시는 거라면 이미 말씀드렸지만.”
“알았어. 빨리 사라져. 짜증이 나려 하니까.”
금오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숙였고 아까 피닉스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날아갔다.
“씁쓸하네. 나만 따돌리는 것 같단 말이지….”
피닉스도 그 말을 하고선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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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