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0 잊지 않을 추억 (2)
고대신룡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발과 팔을 묶은 족쇄에 의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 깨어났을 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처음부터 자신을 구속하고 있었다. 또한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빛의 능력까지 사용할 수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끔찍하군….”)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 것치고는 점차 그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리며 그가 알던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런 말투는 그만할까. 나랑 어울리지도 않는데. 오랜만이야, 다시 만나니 기분이 어때?”)
고대신룡의 눈이 희미하게 떨렸다. 흐릿한 시선 속에서도 그는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기에 고대신룡은 그를 몰라볼 수 없었고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도 움직일 수 없게 막혀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 왜 지금에서야 나타난 건지, 왜 네가 그런 경험을 해야 했던 건지도 전부…. 묻고 싶겠지. 전부 보고 있었어, 항상 네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았지.”)
고대신룡은 왜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꿈에서만 희미하게 들렸던 목소리도 정말로 그가 맞았는지 묻고 싶은 눈동자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그는 고대신룡의 눈동자를 보고서 피식 웃었다.
(“많이 힘들었나 보네,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궁금한 거에 답을 해주면, 맞아. 전부 나였어. 지금처럼 모습을 드러낼 순 없었지만…. 알다시피 네가 네 눈앞에서 몸 절반이 날아가 버렸으니, 나도 죽었다고 생각했거든.”)
그날 빛의 신전에서 2대 고대신룡이 거대한 빛을 뿜어낸 순간 그 빛은 모든 것을 흡수했다. 부족한 힘을 모으려는 듯한 기세로 힘을 모으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빨아들였다.
(“아마, 너도 모르게 에메랄드 부대와 나를 너의 몸속으로 흡수한 걸지도 몰라. 슬픈 사실이지만 나는 아모르의 힘으로 너의 무의식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지만 에메랄드 부대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어떤 방식으로도 찾을 수 없었거든.”)
고대신룡의 눈이 약간은 침울해진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에메랄드 부대가 그렇게 간단히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너의 무의식에서 살아있다고 느껴진 순간. 나는 최대한 네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 근데 내가 자유로이 네게 생각을 전하게 된 건 불의 산에 있었을 때부터였어. 그전까지는 네 깊은 무의식 속의 기억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
그동안 이상하긴 했다. 고대신룡이 위험할 때마다 큰 힘이 될 수 있었던 기억을 딱 알맞게 보여주었으니까. 그저 단순한 주마등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형님의 간섭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네가 나를 떠올리지 않는 이상 나는 간섭조차 불가능 했다는거지.”)
(“....네가 하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거 나만 얘기하니, 뭔가 민망하고 그렇네,”)
‘그야, 나도 말하고 싶지만….’
답답한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계속 궁금한 건 물어봐야 한다. 고대신룡은 지금까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형님은 정말로 내가 다크닉스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넌 나보다 뛰어나니까. 그리고 네 힘은 이제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잖니. 나와 에메랄드 부대의 힘 그리고 신념까지 네게 전해졌어.”)
그의 이야기가 사실이면 정말로 난 형님보다 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손과 발을 묶은 이 족쇄조차 풀지 못하는 걸 봐서는… 그 말이 사실인지는 믿기 힘들었다.
(“...특이한 족쇄네. 유타칸의 어떤 지역에서도 너의 힘을 억제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연구를 정말 많이 한 것 같네.”)
형님도 내게 채워진 족쇄를 겉으로 본 것만으로도 어떤 것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전부 파악한 듯 말했다.
‘힘을 봉인한다.’ 전에 하늘의 신전 감옥에서 서펜트가 언급한 적이 있었지. 드래곤들은 본래 나고 자란 곳에서 힘을 얻는다고 하지만 나는 빛의 신전이 사라진 이후에도 힘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 힘은 점점 거대해져만 갔다. 혹시 그 이유가 형님과 에메랄드의 부대를 흡수 해서였을까?
(“전에 너희들이 비슷한 얘기를 했었지. 힘은 본래 자고 나란 곳에서 공급된다. 그건 사실이야. 근데 빛의 힘의 달라. 아모르에게서 직접 계승 받은 이 힘의 진짜 이름은 창조의 힘이야.”)
형님이 주먹 쥔 손을 천천히 펼치자 눈 부신 빛이 손바닥 위에서 반짝거렸다. 마치 이 절망 속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되는 듯하게 빛나고 있었다.
(“창조의 힘…. 이 힘은 우리의 몸속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해. 그래서 힘을 잃지 않고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지. 조금 추상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쓸 수 있다고 느끼는 만큼 영향을 받기도 해.”)
‘그 빛으로…. 이 족쇄를 풀 수 있어?’
(“안타깝게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어. 어디까지나 작은 가능성이 있어야 창조의 힘이 적용되거든. 만일 모든 게 가능했다면 내가 진짜 몸을 갖고서 너를 찾아갔겠지, 그러나 이렇게 환영인 모습으로 널 찾아온 건 내가 힘만 남은 사념체에 불과하니까. 어디까지나 가능성이 있는 일이어야 해. 아무리 아모르여도 모든 것을 감당하기엔 부족했나 봐.”)
형님의 손바닥 위에 있던 빛이 꺼졌고 희망스러울 것 같은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애초에 그리 희망찬 상황도 아니었다. G스컬은 나를 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쩌면 이제 다크닉스를 봉인에서 풀어내려는 걸지도….
(“걱정하지 마, 넌 동료가 있었으니까. 분명 구하러 올 거야.”)
‘애들은 하늘의 신전에서….’
(“왜 죽었을 거라 확신해? 내가 말했지, 가능성이 있다면 뭐든 가능하다고. 이미 네 힘이 그들을 살렸을지도 모르지.”)
‘내가 이걸 창조의 힘이라 깨닫는 건 지금인데 이미 늦어버린 건 아닐까.’
(“빛의 힘은 누군가가 깨우쳐주는 게 아니야. 이미 네가 가진 힘 안에서 스스로 깨닫는 것뿐. 만약 네가 조금이라도 그들이 살기를 바랐다면. 넌 무의식적으로 창조의 힘을 사용했을 거야.”)
지하성체가 크게 흔들렸다. 강력한 힘이 부닥치는 소리. 정말로 그들이 온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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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기분 나쁜 곳이로군.”
무사히 지하성체 바로 앞으로 순간이동을 마친 나이트 드래곤이 성체 앞으로 다가갔다.
“...여기도 결계가 있군. 아까보다 더욱 짙은 기운으로 이 성체를 보호하고 있다.”
지하성체의 외부에도 순간이동 법진처럼 결계가 처져 있었다.
“...잠깐 아직 물어볼 게 남았다고.”
번개고룡은 나이트 드래곤의 어깨를 잡으며 검을 휘두르려는 그를 막아섰다.
“나는 전부 말해주었다. 고대신룡과의 관계와 나의 과거 전부를. 그런데 더 물어볼 게 있나.”
법진을 통해 이곳으로 오기 전에 번개고룡은 고대신룡과 무슨 관계인지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이트 드래곤은 모두 설명해 주었다. 자신의 과거와 고대신룡과의 관계마저도
“네가 빛의 힘…. 그러니까 그 창조의 힘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건 다크닉스가 이미 봉인이 된 후였지만 1대 고대신룡이 죽기 전이었잖아. 그러면…. 너도 그 창조의 힘으로 고대신룡이 죽지 않도록 했을 수 있었던 거 아니야?”
“...내 힘의 본질이 그로부터 계승되었기 때문이지. 창조의 힘을 발현한 건 나지만 결국 그의 힘의 일부일 뿐. 그보다 더한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내게 이 힘이 있다고 한들 나는 다크닉스를 막을 수 없다.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걸 누가 정했는데. 아모르?”
“그녀에겐 그런 힘이 없다. 그럴만한 존재도 아니고 고대신룡과 연결이 끊겨서 더 이상 간섭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지.”
“그러면 누구….”
자꾸 대답을 회피하려는 나이트 드래곤이 답답했는지 언성을 높이며 물어보려다 흠칫하며 말을 끊었다.
“설마..”
나이트 드래곤은 대답을 회피하고 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일부로라도 그녀가 알아채길 원한다는 듯이 간접적으로 그의 한계를 언급했다. 이상하리만큼 그의 이야기가 부자연스러웠다. 그가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행동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마치 그래야만 당연하고 자연적인 흐름이라는 듯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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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를 들은 피닉스가 깨달았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서 금오를 바라보았다.
“그럼 네가 말한 정해진 길과 반작용은….”
“1대 고대신룡이 정한 흐름을 강요하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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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이었던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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