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신은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다. 그런데 오토바이는 너무 무겁고 운전도 못하고 무엇보다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가진 데빌을 만났다. 사귀는 건 아닌데 데빌은 고신이 좋다고 했다. 담배를 나눠 피고 술을 나눠 마시고 오토바이도 같이 타는데 정작 사귀지는 않는 이상한 사이였다. 이상하다는 표현이 고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은 아니고 주로 같이 있던 무리들이 하던 표현인데 아직도 고신은 데빌과 사귀지 않는 자신과 데빌을 두고 이상한 사이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고신은 데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예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면 불법으로 개조된 데빌의 오토바이가 좋아서 데빌에게 다가간 게 사실인디까. 그래서 데빌의 무리와 섞여 다 같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셔도 들 뜬 기분에 연인들이나 할 법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데빌은 1년 전에 다니던 공고를 때려치웠다. 패싸움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적잖게 훈계를 당하던 모양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데빌은 종종 교복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았다. 왜 그러냐고 묻지는 않았지만 고신은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제재 할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 그런 학생을 둔 학교의 무능함을 내 보이기 위함일 수도 있다. 일종의 반항심 때문에 그렇겠지 생각했다. 꼴통 학교 주제에 드럽게 잡아, 데빌이 자주 했던 말이다.
고신은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의 학교를 떠올렸다. 무관심과 무시로 일관하는 학교, 고신을 자극하면 더 사고를 칠까 자신의 이름에 오점을 남길까 전전긍긍하는 학교 말이다.
지긋지긋하다. 고신은 데빌의 오토바이에 매달리면 그 속도에 그것들을 흘려보내곤 한다. 그래서 데빌을 택한 것은 잘 한 일이라 생각했다. 고신은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 때 타지 않았으면 다른 오토바이에 탔을 지도 모르고. 또 혹시 모르지 , 연인 관계가 되었을 지도. 하지만 데빌은 아니다.
조금 늦은 시간 고신이 구겨진 교복 셔츠를 팽팽하게 당기며 입었다. 깃이 눌려서 잘 펴지지 않아 짜증이 난 상태였다. 가지 말까, 하고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가도 그 주술 같은 약속에 이끌리듯 넥타이를 조였다. 마침내 조끼까지 입고 나서 고신은 엔젤이 두고 간 교과설르 어찌 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골목 끝으로 빵빵하는 익숙한 경적이 들려온다. 데빌이다. 쾅쾅, 시끄럽고 요란한 공사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먼지도 풀풀 날렸다. 고신이 이맛살을 구기며 나타나자 멀찍이 오토바이를 세운 데빌이 담배를 물고 손을 흔들었다.
데빌 : "근데 갑자기 뭔 학교야."
고신 : "내일까지 안 가면 나 짤려."
데빌 : "짤리면 왜,"
고신 : "난 너처럼 먹여 살려 줄 부모 없잖아. 졸업은 해야 취업이라도 한대."
그 순간 그 말을 하던 엔젤이 생각났다. 데빌이 시동을 걸며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고신이 쇼바 위로 올라가 앉았다. 오토바이가 출발하니 고신은 입가가 간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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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한창인 교실은 뜬금없는 시간에 등장한 고신의 모습으로 흥이 깨어졌다. 뒷문을 요란하게 열고 들어가자 담당과목 선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신을 바라보고, 그 시선을 따라 일제히 모두의 시선이 고신에게 닿았다. 고신은 그런 시선 따윈 관심도 없다는 듯 가방을 책상 위로 던지고 앉았다. 고신은 자주 그랬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해서 늘 일상인 장면인데 오늘 모두 이토록 놀란 이유는 마지막 남은 가족의 죽음을 치르고 아주 오랜만에 등장한 불행한 용에 대한 일종의 신기함일 것이다. 표현 그대로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원망도 있다.
그렇게 모두가 고신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고신의 옆에 앉은 엔젤만은 다르게 바라본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고신은 무심하게 그 얼굴을 마주하고는 늘 그랬듯이 엎드렸다. 곧 바로 엎드려 잠이 들지 않은 상태인데 옆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실눈을 떠보았다. 미소가 입가에 걸려있었고, 동그란 눈은 노트 위로 분주히 다닌다.
뭘 그렇게 열심히 적을까. 좀 전에 자신을 바라보던 표정이 웃는 것이었을까. 원래 웃는 상이긴 한데 그래도 아깐 분명히 웃었던 것 같은데, 고신이 골똘히 엔젤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 노트와 선생의 얼굴을 번갈아 분주히 바라보던 시선이 천천히 고신에게도 닿았다. 고신은 그 순간 눈을 꽉 감으며 자신도 모르게 숨도 함께 참았다. 그리고 잠시 뒤 눈을 떴을 때 여전히 자신을 향하고 있는 엔젤의 눈길에 그 전보다 더 심장이 요란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게 이상했다.
엔젤 : "일찍 일찍 좀 다니지?"
말은 핀잔인데 얼굴은 웃고 있다. 고신은 입모양으로 작게 뭐? 라고 물었다. 엔젤은 그 말을 하고 나서 다시 저가 하고 있던 필기를 이어 한다. 고신이 되물은 이유는 그 뜻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런 고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엔젤은 말 없이 필기를 하다 가끔 고신을 쳐다보고 웃었다. 고신은 영문을 몰랐다. 왜 엔젤이 웃는지를, 그리고 그 웃음이 왜 싫지 않은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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