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의 딸아이가 영주의 마차에 '사고로' 죽은 지도 1주일이 넘어가는 시점이다.
남자는 집에 틀어박혀 영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듯 보인다. 그의 집에 들어가는 마을 사람들은 주로 위로의 의미를 담아 음식을 가져다 주는 늙은이들뿐이였다.
늙은이들의 말로는, 남자는 들어갈 때마다 운 흔적도 없고 울고 있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하기야, 이 마을이 어떤 곳인가..."
나그네가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풍요로운 마을에서 쫓겨나 황폐해진 이 땅에 자리를 잡고 거칠게 살아온 이들인데, 누가 울거나 분노하겠나?"
마을의 사람들은 묵묵히 말을 들었다.
본인들이었다. 넘어지고, 깨어지고, 닳을 대로 닳아서 더이상 울지 못하는 이들...
거친 어른들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촉촉한 마음을 잃어버렸고 이미 성숙해져 버렸다. 유일하게 밝은 모습을 띄던 아이는 그 남자의 딸이던 네케였다.
며칠 전에는 이 마을 주변에서 버려진 핑크빛 알을 들고 기뻐하며 이곳저곳 자랑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이제는 사라졌다. 더 이상 없다.
모여 앉은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깨닫고 있었다.
마을이 돌아가도록 해주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나마 살아갈 용기와 생기를 주던 그 아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이 마을에 생명을 불어넣기로 다짐하고 있었다.
한편, 남자는 마을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나가지 않고 제 집에서 딸아이가 두고 떠난 알을 매만지고 있었다.
약간 깨어졌지만 그래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알이다.
꼭 네케의 머리색을 닮아 아름다웠다.
"응?"
알이 약간 부동한 듯하다.
다음 순간 남자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그 분홍색 알이,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안에서 약간의 칭얼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금은 점점 커져 가고, 남자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금 사이로 아기의 커다란 눈이 보였다.
이윽고 아기의 몸뚱아리가 모두 보이게 되었다.
핑크빛 몸통, 꼬리, 그리고 날개...
도마뱀을 닮았지만 아닌 것.
드래곤이었다. 아기 드래곤. 사막 한가운데에서 아름다운 생명이 태어났다.
아기 드래곤은 커다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그새 잠이 들었다.
남자는 그저 안고만 있었다.
마을에 밤이 어두워 오고 촌장의 집만 빛이 어른거리고 있다.
남자와 촌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드래곤이라는 생명체일세."
촌장은 먼 마을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엘피스라는 이름의 마을, 그리고 그곳에는 이런 드래곤이 아주 많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이 드래곤의 이름은 '레이디 드래곤'이라는 설명까지 해주었다.
남자는 벙한 채로 이야기를 들었다.
밤이 지나가고 그 고동 속에 늙은 어른과, 중년과, 아기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그렇게 빛이 찾아오고 동이 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