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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연못
2019-07-14 19:53:53

곳에서는 항상 바다 내음이 난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온 뒤 맑게 갠 다음 날이면 이 정겨운 짠내는 더욱 짙어진다. 가끔 바다 냄새가 그리워질때는 이 바위에 올라서 이런저런 생각들에 잠긴다.



더 이상 발레를 하지 못하게 된 몸이지만 이 바위에 올라서서는 항상 멋지게 트리플 악셀을 성공하는 상상을 한다. 그것은 아마 이 풍경, 이 바위의 감촉, 이 익숙한 소리와 냄새들이 옛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곳이 그저 연못일 뿐이라고 말한다. 사실 할머니에게까지 그런 소리를 들은 이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거의 포기했지만 말이다.



아, 어른들이 말하는 재미없는 바다의 정의 같은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바다는 그런 것이다. 파도가 넘실거리며 백사장을 덮는 그런 곳. 숨을 들이키면 시원한 바람이 가득 차오르는 곳. 그런 곳이 바다가 아니면 대체 뭐가 바다라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이곳이 바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은 내가 여기서 고래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이곳에서 바다 내음을 맡게된 그때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날은 유달리도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하필 나는 그런 날씨를 너무도 좋아했던지라 목발을 짚으면서도 작은 나룻배를 끌고는 조금 깊은 곳까지 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억만금을 준대도 손사래를 칠 일이지만 그때의 나는 겁도 없었고 미련도 없었다. 다리를 다친 것은 노를 젓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에 그때의 나는 겁도 없이 바다 안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 마냥 순수한 의도로만 나갔다고는 할 수 없다. 열심히 노를 젓던 내 주머니에는 동전 한 개가 들어 있었으니까.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동전을 던져 뒷면이 나온다면 바다의 세상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하려 했나 싶지만 그때의 나는 발레가 인생의 전부였으니까 그러는 것도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건 절반쯤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 날씨에 그 다리를 가지고 꽤나 깊은 곳까지 가는 데에 성공했으니까. 빠지면 꼼짝없이 죽겠구나 하는 깊이였다.



거기까지는 순조로웠다. 죽을 방법도 있었고 의지도 있었다. 배가 흔들리는 바람에 동전이 바닷 속에 빠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퐁당 하는 소리와 함께 깊이 내려가는 동전과 같이 내 의욕도 쭉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실 그건 너무 무섭다는 것을 인정하는 핑계가 생긴 상황이기도 했다. 가면서도 앞면이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쓰러져 자는 상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에게 두 번째의 내기를 걸었다. 앞으로 천을 셀 동안 내 키보다 커다란 물고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뛰어들고 말겠다고.



지금 생각해 봐도 내기의 내용이 왜 그런 것이었는지는 이해되지 않는다. 사춘기의 여자아이란 참 알 수 없는 생물이니까.



그렇게 천부터 숫자를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500까지는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고, 오히려 400 아래로 내려간 후부터는 점점 맘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100을 셀 때쯤, 저 멀리 수면 아래에 무언가 커다랗고 검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게 침몰하는 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길동무를 얻은 것 같아 심정이 굉장히 묘했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그것의 형체를 보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고래였다.



그 고래는 꼬리 쯤에 은빛 초승달 문양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아름답게 변한 상처인지 종족의 특성인지 알수 없었던 그때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그게 고래가 아니라 작은 물고기들이 수없이 모여 뭉친 것이었고, 은빛 초승달은 단지 허리가 굽은 돌연변이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조금 지나서였다.



뭐, 이제는 그게 무엇이던 별로 상관이 없지만 말이다. 그 은빛 초승달은 내가 고래를 지켜보던 꽤나 긴 시간동안 꿈틀대면서도 한번도 꼬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따라잡았겠지, 아마.



고래를 본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할머니를 끌어안고선 한참을 울었다. 대체 어떻게 움직였던 건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기운이 없고 팔이 빠질 듯 아픈데다 몸살까지 걸려 다음날은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했다.



어쨌든 이 연못에는 분명히 고래가 살아간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나한테 그건 분명 생명의 은인인 고래였다.



그래서, 나는 이 연못에서 언제건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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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억떡계 나는 드빌을 떠나지를 못하지 회귀본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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