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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시스:히엠스 - 로우벤 마을 (1)
2013-11-24 20:43:09
  • 조회수 295
  • 추천1


※ 양이 꽤 많습니다 읽는데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내용이 전개되며 암울하거나 잔인 혹은 잔혹한 묘사가 나올수도 있습니다







옛날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이 세상에는 신이 살았었습니다.


신은 자신이 다스리게 된 사람들을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신은 친절했고 착했고 사람들은 그런 신을 좋아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이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자신의 정원이 엉망이 되고 말았어요.


정원이 엉망이 되자 신은 슬픔에 빠졌어요.


그 뒤로 사람들은 서로를 시기하고 분노하게 되었답니다.


이야기 끝─.


- 어느 한 폐가의 동화책



[APOCALYPSIS:HIEMS]


1. regale regens

 1) 로우벤 마을


(1)





─삼국령 1500년 1월 5일

   로우벤 마을


이번 년도따라 추웠던 날씨는 다시 솟기 시작하는 열기에 느릿하게 물러나기 시작함으로서 지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추위가 사그라들기 시작하자 몸을 조금씩 싸매며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겨울내에 쌓인 눈을 치우고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사람들은 아침에 하늘에 퍼지는 붉은 하늘을 만끽하는 여유를 부릴수도 있었다. 항시 전쟁중인 세 왕국 중 아탄왕국의 로우벤 마을에서는 이렇게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삼국령 1500년 1월 5일

   아스란 마을


365일 더운 날씨를 유지하는 에손대륙의 로운 왕국의 아스란 마을에서 정체 불명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을 정도였다. 에손대륙에 살고 있는 이종족의 행동이라고 판단내린 로운 왕국은 대대적으로 군인들을 아스란 마을에 파견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하여 겁을 먹을 수 밖에 없었고,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럼에도 밝아오는 아침에 사람들은 또 다시 벌어질 살인에 몸을 움츠렸다.



─삼국령 1500년 1월 10일

   로우벤 마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고위 관직에 앉은 군인을 노리고 무차별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였다. 아탄 왕국은 자신들의 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도움을 청했다가 스파이가 들어오기라도 한 다면 나라는 괴멸상태에 빠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들은 내부로 곪아들어가고 있었다.


그것과 무관하게도 로우벤 마을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다. 그들이 있는 곳에 새로운 고위관직의 군인이 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곳에 상주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꽤나 흥미로운 주제였고, 주민들은 새로 파견오는 군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그 성정은 어떤지 또한 자신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해 매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 편, 처소Cave는 수도에서 파견 나올 군인을 맞이할 준비로 인해 매우 바쁜 상태였다. 자신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입단속을 하기 시작했으며 자신들이 관리하는 무기를 점검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오오오──옥


거대한 고동나팔을 불어 그들을 불러들였다. 밖에서 돌아다니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들은 고동소리를 들으면 바로 처소로 집합하게 되어 있었다. 고동 소리가 마을을 넘어 주변 숲과 산까지 울려퍼지고 그 소리로 인해 사방에서 거대한 생명체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강철같은 비늘과, 기다란 뿔, 악마와도 같은 박쥐 날개와 질기고 강한 피막을 지닌 지상 최고의 생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생명체. 드래곤들이 처소로 모이기 시작했다.


[처소Cave]라는 곳은 전쟁에 사용하는 군마 대신에 사용하는 드래곤들을 돌보고 관리하며, 그 드래곤들을 훈련시키고 키울 군인들을 양성하는 장소였다. 드래곤이라는 것은 모든 대륙, 모든 지역에 서식하고 있으며 덕분에 세 왕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두가지 분류로 나뉘었다. 드래곤을 이용하는 공중전이냐 아니면 드래곤을 이용하지 않는 지상전이냐의 두가지 분류였다.


드래곤들이 처소로 몰려들고 항시대기 상태로 놓이게 되었다. 드래곤들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 채 가만히 한 곳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에 불만을 가질수도 있었지만, 상관의 명령이라는 것은 절대적이라고 훈련받았기 때문인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상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삼국령 1500년 1월 11일


 사락


가벼운 종이를 넘기며 한 남자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래쪽으로부터 올라온 보고와 왕국 수뇌부들에게서부터 내려온 임무목록들, 그리고 피해상황을 정리해 놓은 문서들 등. 수십가지의 문서들이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푸른 머리를 곱게 내린 동그란 안경을 쓴 미남자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 놓았다.


처소에서 가장 높은 곳이자 가장 넓은 곳인 집무실에서 아침을 맞이한 이 남자는, 다론지방 로우벤마을에 있는 처소의 있는 모든 루스(:드래곤 라이더, 공군 병사)들의 상관인 카스탄-에뮬이라고 불리우는 남자였다. 공군의 최고 직위인 비오렌티아로서 존재하는 카스탄은 처소의 거의 모든 사무적 업무를 혼자서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몇 몇 병사들도 서류업무를 하기는 하지만, 그가 현재 하고 있는 정도만큼은 하지는 않았다.


카스탄-에뮬은 이번에 내려온 임무들의 목록을 훑어내리다 말고 내려놓았다. 자신의 뒷편으로 방금 막 기지개를 핀 햇살이 커텐 사이로 스며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 것인지, 카스탄-에뮬은 자신의 황안을 반 쯤 접으며 안경을 내려놓았다.


 탁


안경을 내려놓는 그 소리를 눈을 반 쯤 뜬 채 듣던 카스탄-에뮬은 이내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곳에 어느새 의자를 가지고 와 기척도, 소리도 없이 앉아있는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시간을 역행한다는 것은 무슨 기분입니까?"


카스탄-에뮬은 그 뒤에 계속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였으나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에 의하여 저지당하였다. 손을 드는 그 행동 하나로 카스탄-에뮬의 입을 막은 남자는 조용히 그 방의 정적을 감상하였다. 가득한 전쟁과 드래곤 관련 전문 서적들 밖에 없는 지극히 사무적인 방이다, 라는 결론을 내린 남자는 입을 열었다.


"자네를 그 자리에 세운 것은 이때까지 한 결정중에서, 가장 현명했었던 것 같군."

"…잭-카르시타님."


잭-카르시타라고 불린 남자는 은은하게 웃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탁한 보라빛과 푸른빛의 중간 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여자와 같이 긴 머리카락에 카스탄-에뮬과 같은 제복을 입고 있는 잭-카르시타는 카스탄-에뮬과는 다르게 고귀한 귀공자의 모습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카스탄-에뮬이 학자에 가까운 타입이라면, 잭-카르시타는 미공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대화는 생각외로 무서운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잭-카르시타는 카스탄-에뮬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카스탄-에뮬은 그에게 자신이 들고 있었던 임무 목록 서류를 넘겨주었다. 잭-카르시타가 이번에 들어온 임무들을 훑어보는 동안 카스탄-에뮬은 그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저번과 이번은 무엇이 다릅니까?"

"타이오나-레오의 여동생 생존, 리보니 사망, 다크폰가문 존재무─ 마지막으로 시텐은 다른대륙인 모양이다."


마치 관심 없는 나라의 얘기를 하고 있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그리 내뱉는 잭-카르시타의 말에 카스탄-에뮬은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모든 임무 목록을 다 살펴본 잭-카르시타는 그 서류를 책상 위로 자연스럽게 다시 올려놓았다. 그 행동에는 단 하나의 소리도 없어서 어떻게 보면 소름이 끼칠수도 있는 광경이었다. 카스탄-에뮬은 일련의 그 행동을 지켜보고는 그 뒤에 나올 잭-카르시타의 말을 기다렸다. 잭-카르시타는 그가 자신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다리를 꼬고 턱을 괴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참으로 딱한 일이지. 안그런가?"

"그렇군요. 그 일들은 이제 과거다, 이것입니까?"


카스탄-에뮬의 말에 잭-카르시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카스탄-에뮬은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는 듯한 잭-카르시타의 시선에 고요한 시선으로 답해 줄 뿐이었다.


"너는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잃어봤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카스탄-에뮬은 그리 말하는 잭-카르시타의 말에 그저 다시 안경을 집어 들 뿐이었다. 안경을 바르게 고쳐 쓰는 그 모습을 보며 잭-카르시타는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애잔하면서도 무엇인가 슬퍼보였다.


"너, 시력이 안 좋아진 모양이로군."

"덕분에, 입니다."


속으로 눌러담듯이 답하는 그 말에 잭-카르시타는 아무런 답변도 해주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이 밉느냐고 물었다. 카스탄-에뮬은 그 질문에 밉다고, 당신을 증오하고 싶고 저주하고 싶다고 답하고 싶었다. 허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어떤 것 처럼 보이십니까?"


도리어 물어오는 그 질문에 잭-카르시타는 눈을 살포시 접으며 웃었다. 아니, 웃은 것 처럼 보이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다.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에 방 안의 공기는 온화하기에 짝이없으나 카스탄-에뮬의 얼굴에는 북해의 차가운 서리가 서려있을 뿐이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지도 몰랐다. 카스탄-에뮬의 표정을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쳐다보던 잭-카르시타는 픽 웃더니 입을 열었다.


"글쎄, 자네는 나를 꽤나 싫어하는 것 같군. 나를 미워하고 있나?"

"당연합니다."


바로 나오는 그 답변에 잭-카르시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되었다고 답하는 것이다. 카스탄-에뮬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저 남자는 그리 말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면전에 대고 미워하고 있다고, 싫어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잭-카르시타는 그것을 무덤덤하게 순응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카스탄-에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얼빠진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포근한 분위기에 늘어지는 듯한 종이의 내음. 카스탄-에뮬은 마치 이 상황이 모노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평화롭고, 한가롭기에 짝이 없는 그런 모노 드라마 말이다. 허나 바깥에서는 지금까지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고 지금 이 곳에 있는 자신과 잭-카르시타의 존재 자체도 평화로울 수 없는 원인들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고 있는 카스탄-에뮬을 쳐다보며 그는 입을 열었다.


"나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 뜬금스럽다못해 당황스럽기에 짝이 없는 말에 카스탄-에뮬은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격동하는 화산과도 같았으며 의자에 깊게 눌러앉으려던 그를 벌떡 일어서게 만든 말이었다. 잭-카르시타는 따스한 햇살을 등지고 서 있는, 저 분노에 찬 남자의 모습에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그것을 감내하며 계속 말해야 한다는 것은 그에게 꽤나 고역인 일이었다.


"당신은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겁니까?!"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전쟁이 끝났지. 종식시키는 것은, 어차피 무리였으니까."


진실을 말하는 그 입에 카스탄-에뮬은 따박따박 쏘아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사라져 버리게 만든것은 힘든것이 역력해보이는 표정과, 자신의 손을 계속해서 매만지며 얌전히 있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카스탄-에뮬이 아는 잭-카르시타라는 남자는 절대로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다른이들 앞에서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남들을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하고, 제멋대로굴기를 좋아하며 철저히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감내할 줄 아는, 그런 사내라고 카스탄-에뮬은 알고 있었다.


허나 잭-카르시타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손을 매만지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카스탄-에뮬은 유난히도 작아보이는 그의 모습에 화를 내려던 것을 멈추었다. 의자에 다시 깊게 앉아 조용히 쳐다보는 것이다.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카스탄-에뮬은 아무말 없이 자신의 손을 매만지며 바닥만 보고 있는 잭-카르시타의 모습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카스탄-에뮬이 꺼낸 말에 잭-카르시타는 손을 매만지며 바닥을 내려다보는 행동을 그만 두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카스탄-에뮬과 눈을 마주친 잭-카르시타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아아, 그다지. 조금 지쳤을 뿐이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말이지."


피곤할뿐이라고 답하는 그 모습에 카스탄-에뮬은 입을 다물었다. 이래서 내일 루스들의 앞에, 처소에서 당신을 기다리며 눈을 빛낼 군인들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겠냐고 따지고 싶었다. 허나 따지기에는 그 남자는 진심으로 지쳤다는 듯이 온 몸에 힘이 없어 보였고 곧 죽을 사람처럼 모든 것을 놓아버린 모습이었다.


"...지쳤다고 하셨습니까? 어디 아프신 것 아닙니까..?"

"아프다, 음. 그래. 이건 아픈거다."


그리 대답하는 잭-카르시타의 모습에 카스탄-에뮬은 업무를 볼 생각을 던져버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카스탄-에뮬은 그를 노려보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그 시선에 잭-카르시타는 고개를 살짝 들어 흘낏 그를 쳐다보았다. 카스탄-에뮬은 짜증이 가득 서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살테니까 술이나 먹읍시다."


반론은 듣지 않겠습니다,라는 그 말을 들으며 잭-카르시타는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뇌물이라도 먹이는 것이냐고 농담을 날린 잭-카르시타는 방금 전 보다는 훨씬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삼국령 1500년 1월 12일


로우벤 마을에 새로운 비오렌티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탄 왕국의 최강의 드래곤 기사단으로 알려져 있는 알론지 기사단의 멤버라고 소개한 카스탄-에뮬의 말에 모든 루스들은 환호했다. 모든 루스들에게 알론지 기사단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성역과도 같은 곳이며, 그 곳의 멤버라는 것은 실력을 왕국에 인정받고 왕이 신뢰하는 인물이라는 뜻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잭-카르시타이며 아탄왕국의 변두리나 다름없는 로우벤마을까지 오게 된 이유는 잠깐 동안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카스탄-에뮬은 설명했다. 잭-카르시타의 휴가를 방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인 카스탄-에뮬은 드래곤과 루스들을 해산시켰다. 루스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맡게 된 임무를 수행하러 떠나거나 처소에서 대기하거나, 개인적인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카스탄-에뮬은 잭-카르시타 주변으로 오려는 일반 병사들과 루스들을 전부 눈빛 하나로 내쫓아 버린 뒤에야 입을 열었다.


"뭐 하실 겁니까?"

"딱히 정한 건 없군. 어제는 술을 마셨으니, 이제는 먹을 차례인가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베크라는 사람의 가게가 가장 맛있다고 말한 카스탄-에뮬은 잭-카르시타에게 빈 방 아무곳에서 가서 자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꽤나 성의 없는 설명이었지만, 잭-카르시타는 그 말 만으로도 충분했었던 듯 했다. 발걸음을 느릿하게 옮기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카스탄-에뮬은 자신의 모자를 바르게 다시 고쳐썼다. 불안한 발걸음에 눈이 떼어지지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눈을 돌려야하는 때였다.



─  ?년 ?월 ?일

   ???


 달칵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아니, 이미 시간은 흘러갔다. 지나간 시간이 다시 한 번 흘러가고 있다.


 달칵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에 억지로 몸을 움직인다. 무의미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객체는 움직이고 있다.


 달칵


나는 지금 시간이라 불리우는 커다란 흐름의 위에 떠 있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니 보이는 것은 주황빛 하늘이 보라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사방에 가득한 은빛 시계들. 그리고 금색 초침들. 비취빛 물결에 모든것이 잠겨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다.


 달칵


일정하게 울리는 초침소리에 억지로 무거운 몸을 움직인다. 느리게, 느리게. 소리에 더욱 다가갈 수 있도록.


 탁


초침이 멈추었다. 그것은 내가 잡았기에 멈춘 것이 아니었다. 흔들리던 잔물결들의 파문이 사라졌다. 소리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숨을 죽이며 멈추었다. 은빛 시계들이 빛을 잃고 금빛 초침들이 삐걱거리며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가장 화려한 금빛 초침의 앞에 나는 서있다.


그 곳에 더 이상 소리는 없었다. 무의미해져 버린 움직임을 멈추고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도 바스라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시간이 사라져 존재 할 수 없게 된 모든 것들이 녹슬어 사라지고 물처럼 흐물흐물 녹아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무척이나 황홀하고, 아름다우며, 너무나도 애잔한 것인지라 나는 결국에는 그 초침에 손을 대고 만다.


 ..달칵


커다란 초침이 다시 움직인다. 파문이 되돌아오고 금빛 초침들이 재건되며 어두워지던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은빛 시계들은 다시 반짝임을 되찾았고 일정한 시계 초침 소리가 이 곳에 울려퍼지게 되었다.


 달칵


-이 곳에 또 온 건가? 자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존재하는 것은 거대한 드래곤이다. 요즘들어 이 곳에 자주 출입하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흑백 모노톤 같은 우울한 분위기에 목과 가슴에서는 끊임없이 푸른 화염이 이글거려고 날개에서는검은 모래가 흩날렸다. 두개의 꼬인 뿔과, 이마에 있는 하나의 곡선을 그리는 뿔. 동물의 뿔로 추정되는 것이 얼굴이며, 꼬리는 고래와 같으며 뒷발은 맹수와도 같다. 그리고 앞발은 인간의 손을 닮아있다. 머리의 뿔에서 시작된 뻣뻣하지만 유연하게 움직이는 머리카락으로 보이는 털도 있다. 몸에 난 것은 물고의 비늘도, 용의 비늘도 아닌 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몸과 얼굴에는 독특한 특유의 무늬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달칵


-거 참 곤란한 존재구만 그래, 껄껄! 무슨 미련이 남아서 이 곳에 있는건가, 응? 나에게 말 해줄수 없는 내용인가?-


 달칵


한 번의 초침에 한 번의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 드래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달칵


"너의 여신이 말했었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달칵


그 말에 드래곤은 웃었다. 너무나도 유쾌하다는 듯이 크게 웃는 것이다. 드래곤의 웃음소리에 비취빛 물결이 크게 출렁였다.


 달칵


-그대는 자격이 있다네, 우리를 책망하지 말게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에 우리가 그 선택을 한거네! 자네가 해 온 것들을 믿게나, 친구.-


드래곤은 그리 말하며 응시하였다. 그것이 무슨 생김새를 띄고 있던, 그것이 인간이 아니던 별 상관 없다는 모습이었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 말에 안도하고, 안심하여 울어버렸던 것 같다. 하늘에서, 청명한 빗줄기가 쏟아져내렸다.



─ 삼국령 1500년 1월 14일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잭-카르시타는 문쪽으로 눈길만을 돌렸다. 아무런 장식도, 물품도 없는 공간에 침대와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방. 문을 열고 들어온 카스탄-에뮬은 그 삭막하기에 그지 없는 공간에 순간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그것은 무척이나 괴이하기에 짝이 없는 풍경인지라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잭-카르시타. 부탁 할 일이 있다."


결국 들어가기를 포기한 듯이 자신을 부르는 그 말에 잭-카르시타는 그저 지긋이 응시 할 뿐이었다. 무슨 부탁인지는 모르겠지만 침대에 누워서 일어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 모습을 알기나 하는 것인지, 카스탄-에뮬은 손짓으로 누군가를 부르는 행동을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잭-카르시타의 시야에 들어왔을 때 잭-카르시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밝은 갈색이 도는 짧은 곱슬머리, 하늘색의 순해보이는 눈에 뺨에 난 주근깨. 처음 보자마자 밝다는 인상을 주는 소년의 키는 카스탄-에뮬과 비교했을때 한 170cm쯤 되어 보였다. 그 소년은 문 안의 환경이 괴이하기에 짝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듯 문 안으로 성큼 발걸음을 옮기며 경례를 치켜세워 올렸다.


"티어젠, 이라고 합니다. 잭-카르시타 비오렌티아님!"


그리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잭-카르시타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 상황에 인사를 올린 티어젠 이라는 소년이 움찔거리며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한 게 있나 싶어서 불안해했다. 카스탄-에뮬은 얼어붙어버린 티어젠의 경례를 내려주며 입을 열었다.


"자네를 도와줄 일반병이라네."

"나를, 도와줄? 지금 제정신 인 건가?!"


화가 났다는 듯이 쏘아붙이는 그 말에 티어젠이 카스탄-에뮬을 작게 불렀다. 불안과 걱정,그리고 공포로 점칠된 시선과 분노로 점칠된 시선이 동시에 자신을 향하자 카스탄-에뮬은 죽을 맛이었다. 그는 작게 한 번 한숨을 내뱉었다. 반발이 있을 줄은 알았으나 이렇게 심할줄은 몰랐다는 듯한 카스탄-에뮬의 반응에 잭-카르시타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네녀석은 나에 관해, 알고서도 이런 짓을 자초한다는 거냐? 나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고 했을텐데! 전쟁에 관해서,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던것은─"


카스탄-에뮬의 앞에 서서 그를 성난 눈으로 내려다 보는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흑표범이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노려보는 것 같아 보였다. 카스탄-에뮬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칠 수 없었다.


"네 녀석 이었을터다, 카스탄-에뮬 비오렌티아."

"─그저 시체처럼 다니는 모습이 보기 싫었을 뿐입니다."


그 눈을 마주보기를 포기한 채 카스탄-에뮬은 자신의 할 말만 하고 티어젠을 놔두고 나가 버렸다. 결국 잭-카르시타와 티어젠 만이 방에 남게 되었다. 잭-카르시타는 카스탄-에뮬이 나가버리자 몸을 홱 돌려 의자가 있는 곳으로 가더니 의자에 털썩 앉았다. 티어젠은 이 상황에 자신은 무슨 행동을 해야하나에 대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카스탄-에뮬에게서 잭-카르시타 곁에서 여러가지 도움을 주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잭-카르시타는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방을 둘러본 티어젠은 방이 무척이나 삭막하다는 것을 알았다. 침대와 의자 한 개 밖에 없는 방 풍경에 티어젠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잭-카르시타 비오렌티아님...?"


그는 말이 없었다. 잭-카르시타는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서부터 머리를 뒤로 넘길 뿐이었다. 티어젠은 잭-카르시타의 말을 기다렸다. 잭-카르시타는 티어젠이 아직도 나가지 않은 채,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음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 그것은 책임감과 미안함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슬픔이었다. 얼굴을 쓸어올리는 그를 보며 티어젠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천상 군인이구만. 그렇지 않나?"

"예? 아, 예. 그런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그게 유일한 자신의 자랑이라고 말하며 쑥스럽다는 듯이 자신의 뒷목을 긁적이는 티어젠의 모습을 보며 잭-카르시타는 어째서인지 웃을 수 없었다. 정적이 흘렀다. 그 고요에 티어젠은 머쓱한 듯이 손을 내렸고, 잭-카르시타는 멍하니 창문을 쳐다 볼 뿐이었다. 창 밖으로 구름이 흘러지나가고 처소에서 떠오르는 드래곤들의 모습이 보인다. 티어젠은 약간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상관...없으시겠죠?"


잭-카르시타는 티어젠이 그 말을 하고 나갈 때 까지 단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티어젠이 나가고 나서야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아무도 없는 방의 서늘함을 느끼는 것이다. 적막하기에 그지 없는 풍경인데도 불구하고 잭-카르시타는 그 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느껴지는 공허함에 잭-카르시타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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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ㅇㅅㅇ... 시간나면 올리겠습니다

수행평가 기간이라서요 ㅎㅎ...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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