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게시판

목록
[절대자의 은둔 생활] EP1. 약자에겐 약자만의 방법이 있다(2)
2019-11-09 19:44:04
“자 일단은 여기 채굴 장비를 받으시고요. 운반용 수레하고....또 아! 헤드랜턴도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여직원으로부터 장비를 받았다.

“한을씨는 처음이 아니시니까, 다른 주의사항은 필요 없으실 테고....”

왜 호칭이 ‘한을씨’까지로 올라간 거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또”

여직원이 뭔가 말해줄게 남았는지 우물쭈물 시간을 끈다. 
이렇게 기다리다가 일에 늦을까봐 대신 말해줬다. 다시 말하다시피 캐리어는 시간 싸움이니까.

“말하실 건 전부 하셨는데, 이제 들어가 봐도 될까요?”
“아! 네! 그러셔야죠.”

이래봬도 10서클에 이르렀던 대마도사다. 아직은 그 힘을 전부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메모라이즈(Memorize)마법을 체내에 새겨뒀기에 기억하고 싶은 건 전부 ‘저장’할 수 있었다.

‘아는 것이 힘’인 세계기에 학교 성적을 개차반으로 받은 나지만, 아마 제대로 시험을 치면 나보다 점수가 잘 나오는 사람은 없을 거다. 덕분에 ‘게이트 입장 시 주의사항’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라고 자신한다.

“저기...”

게이트에 진입하려는데 뒤에서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이름은 이지영이에요!”

왜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를 말하는 껄까. 이유를 모르겠지만 대놓고 무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상체만을 돌려 살짝 인사했다. 

“도한을입니다.”

이제 됐겠지.
빨개진 여직원의 얼굴을 뒤로 한 채.
우우웅-
게이트에 발을 디뎠다.

ㅡㅡㅡㅡㅡㅡㅡ

“엿 같아.”

발이 땅에 닿자마자 저절로 튀어나온 말이다. 텔레포트도 그렇고 이 게이트고 그렇고.
공간 이동류는 왜 항상 이런지 모르겠다. 울렁방지 마법을 걸어도 소용이 없으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니 눅눅함과 끈적함이 느껴진다. 
아마 원래 이런 동굴 같은 지형이었지만 괴물들의 피가 흐르면서 습도나 온도 같은게 변하게 된 타입일 것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게이트를 연구하고 헌터들을 동경한다.
게이트 하나만 통과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니까.
그렇지만 나의 본분은 그것이 아니다.

“다 해 처먹었네.”

앞 쪽은 마석 하나 없이 깔끔했다.
본래 마석은 군데군데 벽에 박혀있다. B급 이상의 게이트에선 몬스터의 사체에 박혀있다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군데군데 벽에 박혀 이 인위적인 던전을 유지할 뿐이다. 그리고 이미 앞쪽은 아까 확인한 6명의 캐리어들이 다 털어먹었다.

“아깝긴 해도, 지금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지금 목적은 남아있는 괴물들에 의한 피해 방지. 거기에 소소한 이득까지 얻기 위함이다.
그러려면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숨겨진 방은 일정 이상의 충격을 가하면 저절로 열리게 되어 있다.
충분히 평균 성인남성 기준으로 몇 대만 두드리면 열릴 정도.
곡괭이질을 하면 당연히 입구가 나오게 될 확률은 높았다.

‘그럼 꼬리를 내밀어 주실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위치파악.
현재 나있는 갈림길은 두 군데다.
6서클 마법인 디텍트룸(Detect Room)을 쓰면 막혀있는 벽도 뚫려있는 것처럼 훤히 꿰뚫어볼 수 있지만, 아직은 5서클이라 불가능한 방법이다.
대신 쓸 수 있는 것은 기감의 확장.
눈을 감고 약간의 집중을 하자 점차 감각의 범위가 늘어난다.
곡괭이질 소리,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이윽고 한 가지 소리에 도달했다.

키르륵- 키륵-

‘찾았다.’

눈을 떴다.
오른쪽 길이든 왼쪽 길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 사이에 있는 벽에 비어있는 공간이 있으니까.

굳이 가야 하는 길을 고른다 싶으면, 오른쪽 길이다. 캐리어들의 숫자가 더 많았을 뿐더러, 그 위치가 괴물들이 있는 곳과 가까웠다. 

드르륵.
지체할 필요는 없다. 비어있는 수레를 이끌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은 시간은 10분 정도인가.’

캐리어들의 작업 속도와 위치를 고려했을 때 나온 결과. 느긋하게 걸어도 제때에 맞출 수 있을 시간이다.
오히려, 뛰어가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면 더 이상해 보이니 잘 된 일이다.

걸어가면서 군데군데 마석들이 보였다. ‘뒤에 올 캐리어들을 위해 양심껏 캔다.’ 라고 암묵적으로 내려오는 룰을 지키다니. 한 두 개라곤 하지만, 4명이 들어간 것 치고는 엄청 양심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구해줄 보람은 있는 사람들이다.
손으로 마석을 뚝 떼어내, 수레에 휙 던졌다. 보상금과 수입은 따로이니 챙겨두는 게 좋다. 
앞으로 들어올 사람은 생각 안하냐고?
그 난리가 펼쳐질 건데 다 챙겨가도 되는 것 아닌가.

‘좋아.’

이제 좀만 더 들어가면 사람들이 보이는 가시거리다. 지금부터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완벽한 약자의 방법.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봐도 문제 하나 없는 ‘우연’과 ‘행운’을 날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한 가지 책자를 참고해야 했다.

『게이트 입장 시 주의사항』

여기엔 비각성자 캐리어들을 위해, 불의의 사고에 대비한 방법이 적혀있다. 거기서 명시한 세 가지의 대응책.

그 첫 번째.
[마석을 이용한 대 괴수용 총을 써라.]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대 괴수용 총은 하나에 싯가 1억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거기에 한발 쏘는데 필요한 마석은 하나.
20만원의 돈이 그냥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런 돈이 있으면 캐리어를 왜 하고 있을까. 편히 집에서 아이스크림이나 퍼 먹고 있겠지.
이 조항은 그저 돈 많은 사람들이 여흥을 위해 나왔을 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그 두 번째.
[괴수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에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숨어있어라.]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동굴도 그렇고, 게이트 내의 지형은 ‘랜덤’이다. 평평한 초원이 펼쳐진 게이트도 들어간 본적이 있다.
그런데서, 몸이 들어가면서 괴수가 들어가지 못할 ‘완벽한’ 공간을 찾으라고? 만약 인간보다 작은 괴수면 어떡하라는 걸까. 결국 이것도 속 편한 소리다.

마지막, 세 번째.
[헌터폰에 내장된 구조 신호를 보내라.]
이번 건 두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두 번째까지 가지 않는 것이 태반이니, 별 소용없는 조항이기도 하다. 게다가 구조할 헌터가 올 때까지 버티고 있어야 한다.

말했다시피, ‘불가능’은 아니다.
다행히도 이곳의 괴수는 ‘랩터’류.
인간과 비슷한 크기이지는 하지만, 엎드려 이동할 수 없다.
 
“자 그럼....”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하나다.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
위기 상황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내는 것이 진정한 약자의 방식이 아닐까.

지금 이용할 마법은 세 가지다.
바로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와 
아파트(Apart).
그리고 캐모플러지(Camouflage).

우섯 메타모포시스로 던전 벽의 요소를 바꾼다. 정확히 사람이 엎드리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
공기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성분 자체를 바꾸는 것은 8서클 이상이다. 대신 강도를 낮추고, 점성 특징을 추가한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분리 마법, 아파트로 정확히 그 부분을 조심히 떼어낸다.
떼어낸 쪽은 점성을 이용해, 원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옆쪽의 벽에 붙인다. 그리고 다시 본래의 형질로 변환시킨다. 이제 옆의 벽은 그저 살짝 튀어나온 천연 동굴의 모습이다.
그렇게 땅을 파내자 반대쪽 갈림길까지 이어졌다.

“아휴, 요즘 자식들 학원비 부치기도 힘들다니까.”
“그러게 말이야. 돈이란 돈은 헌터 놈들이 다 휩쓸고 있으니.”

뚫린 벽 근처에서 캐리어들의 푸념소리가 들린다. 재빠르게 캐모플러지 마법으로 구멍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비록 2서클에 불과하면서도, 사람을 속이기에는 좋은 마법이다.

‘다 됐다.’

똑같이 이쪽의 구멍도 메웠다. 오랜만의 과격한 운동에 땀이 나긴 했지만, 깔끔하게 쿨링 마법으로 날려버린다.
기적은 준비 됐다.
이제 약자의 생존 본능을 이끌어낼 때.

자, 쇼 타임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빌어먹을.’

항상 이게 불만이다. 내 나이 52세. 과거엔 이름 좀 날렸다곤 하지만 다 옛말이다. 신체 능력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니까.

‘집 앞에서 게이트가 열렸기에 좋아했었는데.’

우연히 집 바로 앞에서, 게이트가 열렸다. 주변 사람들은 땅 값이 떨어진다고 투정을 부리고 있지만, 다 복에 겨운 말이다. 날이 갈수록 오르는 물가에, 전세가. 아내의 소비욕을 감당하려면 몸이 두 개여도 부족했다.
마치 하늘이 준 기회.
나는 허겁지겁 헌터폰을 챙겨들고 다시 나왔다. 항상 후발주자로서 적은 양 밖에 작업을 할 수 없던 나다. 이번엔 남들보다 더 빨리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래도 강남역이라 그런가.
사람들 모이는 속도가 다른 곳의 두 배는 빠른 것 같았다. 일 하고 있는 도중에 들어온 저 청년은 음악을 흥얼거리면서 하는 데도 벌써 나를 추월했다.
제길. 젊으면 단가. 입구 쪽에서 먹고 떨어지라고 조금씩 남겨놨는데 전부 무시하고 바로 올 줄이야. 
그로부터 잠시 뒤, 두 명의 사람이 더 왔다. 한 명은 얼굴을 자주 맞대던 황씨였지만 반갑게 인사할 시간이 없었다. 내 일하기도 바쁘니까. 

‘제길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 것 같은데. 이 정도로는 양에도 안차고.’

캉-!
그렇게 다른 하나의 마석을 위해 곡괭이를 내려칠 때였다.
투두둑. 갑자기 돌벽이 흙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마, 마석을 거의 다 캐내어 던전의 내구도가 약해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석을 뽑아내는 순간.

“으아아아악!”

재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왜 그래 성씨.”

황씨가 황급히 다가왔다. 다른 놈들은 그저 뭔가 싶어 기웃거리기만 했다.

“저, 저기....눈알이.”
“눈알? 그 무슨 소리르...에구머니나!”

뒤룩뒤록-
날카로운 눈동자. 거대한 눈알이 데구르르 구르며 캐리어들을 살핀다. 사태를 파악한 다른 사람들도 곡괭이를 하나 둘씩 떨어트리며 패닉에 이른다.

“도, 도망쳐!!”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더욱 더 절망적인 소식이 이들을 반긴다.

-키륵?
-키르륵.

한 마리가 아니다. 하나 둘 셋, 넷.
제길, 이런 걸 셀 시간이 어디 있다고. 마리수는 상관없다. 벽 한쪽을 가득 채우는 부피.
도망쳐야 한다. 이 생각이 온 몸을 지배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이 괴수들을 마주하는 순간 오금이 저려 몸이 굳어버렸다. 이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꼼짝없이 죽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괴물들의 눈동자가 한쪽으로 휙 쏠렸다.

왜 그러는 거지?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이 상황에 들어오다니! 꼼짝없이 죽는다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잘생긴 청년이었다. 마치, 최고의 헌터들에게서 볼 법한 몸매, 연예인 뺨치는 얼굴.
신은 불공평하다고 진심으로 실감한 것이 아마 지금일 것이다.
그래, 이런 청년이라면 죽는게 세상에 이로울 수도....
그렇게 생각할 때, 질투의 대상인 그가 입을 열었다.

“꺄.악! 괴.물.이.다. 도.망.쳐!”

뭐지? 이 국어책을 읽는 듯한 딱딱함은.
그 순간, 숨이 탁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댓글[2]

등록하기

사진 등록하기

  • 필력이 상당하십니다. 아직 작품을 다 보진 않았지만, 타 사이트에서 자유연재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응원합니다.

    2019-11-18 01:40:11

  • 헉....큼...감사합니당. 이미 컨택 받은 상태여서요. 입시만 끝나면 연재 시작할 생각입니다 ㅎㅎ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11-18 14:4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