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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이야기 (1)
2020-10-19 19:30:53



느닷없이 찾아온 어느 봄 날, 바람을 타고 흘러내리는 벚꽃잎 사이로 보였던 그녀의 모습은 평범한 인간과 달랐다.


햇빛에 비치는 은빛 머릿결에 새하얀 개량 한복.


멀리서 보면 한옥마을을 방문한 관광객처럼 보일테지만, 가까이서 보면 여우의 것으로 보이는 풍성한 꼬리와 귀를 찾아볼 수 있다.


이상하게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던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하자 나는 그대로 여우에 홀렸다.





매일 같이 공부에 치여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


나는 무리에서 뒤떨어진 것도, 무리를 이끄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학생이다.


사정 때문에 한 해를 꿇어 반 친구들과 친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뭔가 살짝 불편한 관계로 반 친구면 몰라도 의미 자체의 친구는 적다.


그래도 아예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공부만 하며 가끔은 쉬고 싶다 불평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래, 솔직하게 일탈을 바란 건 맞다. 그건 인정해.


그런데 일탈이라 해봤자 수업을 짼다던가, 시험 직전에 밤새며 친구들과 놀던가 그런 걸 바랬지.


태초의 힘이 창조했다는 세상에, 영물들과 신수들 그리고 용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인간화를 한 여우가 나를 찾아오길 바라진 않았다.


"그러니까, 네가 날 구해줬다고?"


꼬리를 살랑거리던 여우, 리아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


"...그래서 빠른 속도로 급강하 중이던 나를 낚아챘다?"


"응, 그렇게 빠르진 않던걸?"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확실히 현실성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대화네.


뭐, 일단 내가 처한 상황부터 현실성이 없긴 하다.


휴일을 맞아 가끔은 공부하다가도 쉬어야 된다는 생각에 독서실에서 뛰쳐 나가 근처 산의 트래킹 코스를 따라 걷다가 절벽 근처에서 발을 헛디뎌 그대로 추락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나는 어쩐 일인지 멀쩡한 상태로 동굴에 누워 있었고, 거기서 자기 자신을 자연계의 대신수이자 여우 신수인 리아라고 말하던 여우와 만났다.


대충 리아가 떨어지던 나를 발견해 구해줬고 정신을 잃은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와줬다고 한다.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을 정리해 보니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막장 전개 그 자체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얼마전에 말이 안 되는 얘기만 늘어놓던 어느 책에서 '누구나 살다가 한 번쯤은 이상하고 말이 안 되는 일을 겪는다.' 라는 문장을 읽었었지.


실시간으로 머릿속에서 생활의 지혜를 알려준다던 그 책이 재평가되고 있다.


"혹시 머리가 아파? 다친거야?"


리아가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 그건 아니고. 그냥 생각 정리중이었어."


"다행이다. 나는 또 어디 다친줄 알고."


안심하며 낮게 한숨을 내쉬는 리아.


신수라 그런지 사람에게 호의적인 거 같다.


원래 신수들이 사람들을 보호하거나 그런 영물들이라 그런가?


"그나저나 이제 슬슬 움직여도 괜찮을 거 같아."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


땅으로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냥 추락한 충격만 있었으니 3시간 정도 누워 있으면 충분히 회복 되고도 남았지.


인터넷 게임으로 단련된 내 멘탈은 생각보다 강해서 사실 몇 분만 누워 있어도 됐었을 거다. 


그리고 이제 슬슬 독서실로 돌아가 다시 공부를 해야 된다. 30분 정도 떠돌다 올 생각이었지만, 몇 시간이면 예상외로 시간을 많이 낭비한 셈이다.


"읏차."


나는 그닥 딱딱하지 않은 돌 위에서 일어나 걱정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리아 옆에 섰다.


"그럼 고마웠어."


그래, 어찌보면 제대로 일탈 한 번 한 거 같다.


리아를 만난 것도, 이색적인 동굴에서 정신 잃고 한숨 잔 것도 현실성 떨어지는 허구에 비슷한 일이지.


이 상황 자체가 되게 기묘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이 일로 바뀐다 한들 산 길 조심해서 걷는 거 이외엔 없을 거고. 이 일로 인해서 내게 미치는 영향이라곤 수인이 존재한다고 믿게된 것?


그리고 리아의 말에 따르면 자기 이외에도 용이나 뭐 그런 신수들이 있다던데, 아마 그것들은 다 사실이겠지.


이게 다 세상이 나 한 명을 속이는 트릭쇼가 아닌 이상은 그럴 거다.


아무튼 이제 앞으로는 다시 보기도 힘들거고, 만날 수 있다 한들 내가 이고깽 양판소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니 굳이 만날 거 같진 않고.


그저 이 한 목숨 몇 십년 연장해준 리아에게 감사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말 깔끔한 기승전결.


...어찌보면 기결인가?


나는 조심스레 동굴 입구를 벗어나며 리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다시는 볼 일 없을, 고마운 생명의 은인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내며.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아마 절벽 근처의 동굴일 테니 다시 길까지 올라가는 건 어찌보면 힘들겠는 걸.


정 안되면 소리쳐서 도움이라도 구하지 뭐.


에이, 설마 죽기야 하겠어?


"저, 다시 현계로 가는 길은 아는거야?"


...예?


나는 고개를 돌려 리아를 쳐다봤다.


"그 밖으로 나가면 아마 폭포밖에 안 나올텐데..."


"잠시만, 방금 뭐라했어?"


"응? 폭포밖에 안나온..."


"아니 아니. 그 전에."


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현계로 가는 길은 아는거야...?"


갑자기 어디서 생긴지 모를 불안함이 온 몸을 감쌌다.


아니, 이건 동물적인 감각으로 몸이 느끼는 두려움이다.


"... 현계가 뭔데?"


무슨 상황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망한 거 같은 그런 느낌.


아무튼 앞으로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듯한 느낌 그리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


"너가... 사는 세상?"


...아.


헛웃음이 나온다.


"에이, 아 설마. 아니겠지."


보다 빠른 발걸음으로 동굴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동굴 밖으로 나가 몇시간만에 보는 햇빛과 함께 조우한 것은.


사람의 손길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산길과 우거진 나무들.


내가 알던 그 산이 아닌 거 같다.


낯설은 느낌. 낯선 냄새, 그리고 낯선 바람.


"..."


평범한 고등학교 복학생 백서현, 절벽에서 떨어지니 이세계에서 깨어났습니다.


제가 그 이고깽인 주인공이라는 건가요?


깽판은 못치는데?






기다리는 여우, 드디어 만났습니다.


0. 들어가는 이야기 (1)










대충 2년전부터 기획한 세계관. 가끔 제가 단편 쓴거 배경이 다 이 소설 세계관임.


사실 세계관이 더럽게 크기도 함.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언제까지 올릴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올해안에 1장까진 다 써보겠음.


검토 없이 그냥 쓰고 나중에 리메이크나 그런걸로 다시 손볼수도 있습니다.


맨날 단편만 써서 이제는 연재해야겠다는 생각에 쓴거라.


아무튼 프롤로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부턴 분량이 더 많을 예정.

댓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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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신입입니다 잘 부탁다리겠습니다.* 장대한 세계관 앞으로도 연재 잘 부탁드립니다.

    2020-10-22 22:33:08

  • 감사합니다

    2020-10-23 00:53:14

  • 세계관 참 크지.
    대단합니다.

    2020-10-20 23:17:36

  • 감사합니다

    2020-10-21 17:15:27

  • 주인공 다른 차원으로 떨어진 건가요? ㅋㅋㅋ

    2020-10-19 23:33:28

  • 어찌보면 다른 차원이라고 볼 수도 있죠.

    2020-10-20 00:42:42

  • 분량 ㅎㄷㄷ 존잼일듯...

    2020-10-19 23:18:45

  • 감사합니다

    2020-10-20 00:42:19

  • 오우 야 스토리 급전개 재미있네요. 그럼 이제 세계관이 현실에서 유타칸으로 바뀌어 버린 건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20-10-19 20:39:01

  • 음 담편이 왜 남편으로...? 죄송합니다ㅋㅋㅋㅋㅋㅋㅌ

    2020-10-19 20:39:33

  • ㅋ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10-20 00:42:05

  • [백 지]저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0-10-20 00:4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