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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정원사 - 02.평소와 다른
2019-08-18 21: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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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ragonvillage.net/talent/board/novel/?mode=read&b_no=21794&type=writter&keyword=Lefream


티리엘은 그의 새어머니, 트로팔리에게 벌써 한 시간 째 꾸지람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트로팔리가 한마디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그녀의 잿빛 눈썹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다리 근육이 제발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트로팔리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론 피아노 선생님은 아예 퇴짜를 맞히고 수학 시간에까지 지각했으니 혼이 나는 것은 당연했다. 트로팔리는 티리엘을 눈빛으로 쏘아 죽이기라도 할 듯 노려보며 잔소리들을 쏟아냈지만 그는 한 귀로 흘리며 아까의 일에 대해 생각하기 바빴다.



'그 애는 누구였을까?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고. 어디로 찾아가야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깔끔한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단조로운 삶에 이질적인 존재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매우 기뻤지만 이 불편한 호기심은 매우 싫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적어도 일주일간은 숲에 갈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에 트로팔리는 어느 새 인생 설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시작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야기는 한참이나 더 길어질 것이 분명했다. 우선은 집을 빠져나가는 것이 먼저였다.



티리엘은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척을 하며 트로팔리 뒤의 스마트폰을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했다.



"얘, 티리엘! 듣고 있기는 한 거니? 도대체 너란 애는 얼마나 사람을 귀찮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니!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잖니!"



"네, 그럼요. 당연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성의 없이 대답한 티리엘의 시선이 뒤의 스마트폰에 향해 있는 것을 확인한 트로팔리가 스마트폰을 집어 던져 버렸다.



"봐봐 지금도! 어디 어머니가 말씀하시는데 건방지게 한눈이나 팔고 있고!"



평소였다면 덩달아 짜증이 나거나 겁을 먹었을 상황이지만 지금은 다른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중요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잔소리를 들을 수록 수명이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지금 티리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그 숲에 가보는 것이었다.



잔뜩 화를 내던 트로팔리는 한숨을 내쉬고는 티리엘의 눈을 쳐다보았다.

 


"티리엘, 다 널 위한 거다. 지금 고생하면 좋은 직장, 편안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네가 우리의 꿈을 이뤄 줄 수 있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다른 이들의 위에 서야 해"



매일 듣는 이야기. 이젠 지루하다고, 나는 당신의 꿈을 이뤄주고 싶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소심하게 말꼬리를 흐리는 말 뿐이었다. 트로팔리가 저 표정을 지을 때마다 벌레가 되어 신발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책임이 주어진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트로팔리는 고분고분해진 티리엘이 마음에 들었는지 숨을 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가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라도 하며 머리를 식히는 게 좋겠구나. 잠시 후에 불러줄 테니 위층으로 올라가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으렴."



사실 티리엘은 피아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어른들이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티리엘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다. 좋던 싫던 그게 '해야 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티리엘의 어깨에 부담이 지워질수록, 사람들이 티리엘에게 거는 기대가 커질 수록 티리엘에게는 탈출구가 간절해졌다.



티리엘은 피아노 뚜껑도 열지 않고 창문만을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났을까, 그런 티리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눈앞에 툭 떨어졌으니 놀랄 수밖에. 위쪽 창문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브라이언이 활짝 웃었다.



"짜잔, 심심한 범생이에게 브라이언 대령했습니다!"



브라이언을 보자마자 처음 든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이곳은 브라이언이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니었다. 적절하지 못한 때였고, 적절하지 못한 장소였고, 적절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놀랍게도 다음으로 든 감정은 반가움이었다. 얼마나 봤다고 이런 감정이 드는 지는 몰랐지만, 얼굴에 슬금슬금 미소가 떠오르는 이 감정은 분명 반가움이 맞았다.



그리고 가슴 한켠에는 작은 기대가 실려 있었다. 그가 자기를 이곳에서 꺼내 줄 거라는 기대가. 어디에 갇혔는지도, 누가 가뒀는지도 모른 채로 갇혀 살기는 싫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 브라이언은 일상에서 벗어날 유일한 기회였다. 그런 만큼 놓치기 싫었다.



"너...너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나를 데리러 온 거야?"



하지만 브라이언은 이런 마음은 전혀 모르는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니, 아직은. 널 데려가기엔 정보가 부족하거든. 지금은 뭐랄까, 네가 신기해서 찾아왔어. 너 같은 사람은..."



브라이언은 뭐라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박물관의 전시품 같은 느낌이야! 진짜 신기하다고!"



"뭐야 그런 거... 이름도 모르는 상대한테 할 말은 아니라구."



"아아, 맞다! 넌 내 이름을 아는데 난 네 이름을 모르네? 불공평하다고? 네 이름을 알려 줘."



티리엘은 브라이언이 조바심을 내도록 잠시 고민하는 척 하다 입을 열었다.



"티리엘 노바. 이게 내 이름이야."



물론 이름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단지 조금 놀려 먹기 위한 것 뿐이었다. 브라이언에게는 사람이 마음을 열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도 티리엘은 브라이언의 밝은 분위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대이지만 왜인지 대화하고 싶어졌다. 그건 일종의 동경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과는 다르게 스스로를 빛내고 있는 모습에 대한 동경. 하지만 그게 무엇이던 티리엘의 삶에 조금 활기를 불어넣는단 건 분명했다.



그 때, 아랫층에서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쿠, 새어머니가 올라오시나 봐. 이만 피아노에 열중하는 척을 해야겠어."



티리엘이 말을 마치자마자 브라이언은 내려온 것처럼 창문 위로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트로팔리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남의 방에 들어올 때에는 노크를 하는 게 예의라고 배웠는데요."



차마 버릇 없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한 티리엘에게 트로팔리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직 뚜껑도 열지 않았구나. 그렇게 해서 이번 콩쿠르는 어떻게 하려 그려니? 칠 곡은 정해 놓았고?"



역시 걱정은 티리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트로팔리는 티리엘보다는 티리엘이 해야 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



'일단은 네, 음악회 발표 같은거 별로 관심도 없지만요.'



머릿속으로는 반항을 했지만 입으로 나오는 것은 네 라는 짧은 답뿐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항상 그렇게 진행됐다. 어머니는 무언가를 요구하고, 티리엘은 그 요구를 실행한다. 그런 재미없는 방식인 탓에 서로는 대화하는 걸 별로 즐기지 않았다.



트로팔리는 그 대답을 듣고도 아직 만족하지 못한 듯 티리엘을 응시했다.



"정했다는 곡 한 번 쳐 볼 수 있겠니?"



티리엘이 선택한 곡은 알카의 철도였다. 음악적인 영감 같은 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단지 손의 기교를 보여주기 위해 고른 곡이었다. 티리엘의 손이 피아노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흐름은 얼마 못 가 끊기고 말았다. 아직 연습한 지 며칠밖에 안되는 곡인데다 어렵기로 손꼽는 곡들 중에서 고른 거라 완벽하게 연주하기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농떙이 피우지 말고 연습이나 하렴."



트로팔리는 불만족스런 표정으로 티리엘을 잠시 응시하다가 돌아섰다. 답답한 속마음에 탈출구가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창문 위에서 브라이언이 다시 툭 떨어졌다. 놀란 티리엘은 거의 의자가 넘어갈 정도로 허우적댔다.



"아 제발, 심장 떨어지겠어. 예고 좀 하고 등장하라고."



그러자 브라이언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왜? 재밌잖아. 아 참, 너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



그렇게 말하는 브라이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티리엘은 무언가 벗어나야 할 것 같은 좋지 않은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 뭔데...?"



말꼬리를 흐리는 티리엘에게 브라이언이 활짝 미소 지어 보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너, 정원사가 되어볼 생각 없어?"



어딘가 나사빠진 듯한 질문에 조금 멍청하게 반문한다.



"으...응? 정원사라니? 내가 생각하는 그거? 정원에서 꽂꽂이 하고...우왁!"



티리엘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말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 브라이언이 티리엘을 휙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자, 잠깐! 이런 식의 갑작스런 대처는 나에게 전혀 반갑지 않다고?"



"익숙해지게 될거야. 브린드카!"



티리엘의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브라이언의 짧은 외침과 함께 그의 목걸이가 빛을 뿜기 시작했다. 눈을 멀게 할 듯한 밝은 빛 뒤에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적어도 티리엘이 보기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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