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룡
이상한 꿈을 꾼 지 얼마 안 돼서 난 다시금 낯선 꿈을 꿨다. 그런데 이번엔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떤 꿈이었냐면, 우선 난 울창한 숲 속에 서 있었다. 사방에서 갖가지 생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내 발밑의 땅에선 연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느낌만으로도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난 곳, 바로 오가니아였다. 그 순간, 내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대신룡2@ 이곳을 기억하나?
@백룡2@ 그래. 여긴... 내 고향이지.
@고대신룡2@ 날 보고도 놀라지 않는 것을 보니, 내 정체를 인정했나 보군.
@백룡2@ 어떻게 우주선에서 살아남았지?
@고대신룡2@ 난 우주선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 운 좋게도 내 바로 옆이 탈출 포드 정박장이었지. 우주선이 완전히 산산조각나기 직전, 난 포드를 분리하는 데에 성공했다.
@백룡2@ 그럼 왜 진작 날 찿아오지 못했지?
@고대신룡2@ 우주선에서 아르노 가스를 약간 흡입해서 뇌세포 일부가 증발해 버렸다. 내 이름을 기억해내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렸지.
@백룡2@ 그럼 지금은?
@고대신룡2@ 난 급한 일이 생겼다. 내 기억을 분석한 결과, 나에게는 연인이 있는 걸로 확인되었다.
@백룡2@ 난 아닌 걸로 기억하는데.
@고대신룡2@ 그래.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진실을 확인해야 한다.
@백룡2@ 이름은 뭔데?
@고대신룡2@ ㅇ...
난 갑자기 잠에서 깼다. 자명종 프로그램이 시끄럽게 울어 대고 있었다. 난 자명종을 끄고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10시였다. 무의식 소통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더니 진짜인가. 그래도 저녁 7시에 잤는데. 15시간이나 걸리네.
@이그나2@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28일 13시간 59분 59초입니다.
@백룡2@ 그냥 거의 도착했을 때 알려 주지 그래? 어쨌든, 지금 어디야?
@이그나2@ 에시리아 근처입니다.
@백룡2@ 뭐라고!
@이그나2@ 스텔스 기능을 켰습니다. 몰래 가져오신 투명화 패널도요.
@백룡2@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돼. 점프 준비해. 혹시 모르니까 원격조종 포탑 프로그램도.
창밖으론 표면이 온통 흰색인 행성이 보였다. 겨울인 것 같았다. 어디선가 에시리아는 겨울에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행성 주변엔 위성 두 개가 돌고 있었다. 하나는 형태가 이상한 운석 덩어리였는데, 하나는 완벽한 구체였다. 표면은 은빛 금속이었는데 거대한 우주 전함이 여러 대 도킹되어 있었다. 자세히 뜯어보니 여러 개의 초고층 타워, 피라미드 모양의 공장, 여러 개의 포탑, 미사일 발사기지, 드론 비행포드도 설치되어 있었다. 이건 자연위성이 아니었다. 이건 에시리아 군사위성이었다.
@백룡2@ 그냥 지나쳐라, 그냥 지나쳐라, 그냥 지나쳐라, 그냥 지나쳐라... 아오쒸!
포탑에서 새파란 고에너지 플루오린화 수소 캐논을 쐈다. 캐논은 엔터프라이즈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갔다. 항상 처음엔 빗나가더라.
@이그나2@ 그냥 지나치시는 데엔 실패하였습니다.
@백룡2@ 알아, 안다고! 포탑 강도 최고로 높여!
난 포탑을 겨눴다. 그런데 드론 비행포드가 열리더니 수천 대의 드론이 쏟아져 나왔다. 드론들은 총구를 겨누고 우리에게 캐논을 죽어라 쐈다.
@백룡2@ 워프 충전 어디까지 남았어?
@이그나2@ 예상 소요 시간은 5분입니다.
@백룡2@ 10분은 아닌 게 다행이네. 드론들 내보내.
곧 엔터프라이즈호의 비행포드에서 여러 대의 드론들이 쏟아졌다. 물론 수십 대밖에 안 돼지만.
@이그나2@ 드론들이 전부 출격했습니다.
@백룡2@ 조금만 버텨라, 조금만, 진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