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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의 은둔 생활] EP1. 약자에겐 약자만의 방법이 있다(1)
2019-11-08 23:52:35
익숙한 환상이다.

-필멸자여! 지금 그대가 행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하는 것인가!

고지식하기만 한 도마뱀들이 꽥꽥 거린다. 그 앞엔 내가 오만한 모습으로 서 있다.
손만 흔들어도 흩어질 잔상이었지만 천천히 감상했다.
이럴 때마다, 지금 하는 생활이 옳은 지 옳지 않은지 고민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과거의 내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 가족을 죽인 것이냐!!!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는 도마뱀들에게 먼저 마법을 날린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하려 하는데.

“오빠! 오빠, 일어나!”

환상 속에 섞인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환상을 흩트렸다.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니까.
천천히 눈을 뜨자 교복을 입고 허겁지겁 움직이는 동생의 모습이 보인다.

“또 소파에서 잤지! 감기 걸리니까 그러지 말라 했잖아.”

속사포 같은 랩이 들려온다.
시계를 보자 아침 8시 40분이되기 직전이었다. 학교에 늦을 것 같은 시간인데도 된장찌개에 계란프라이까지. 정성을 들여 차려진 밥상이 보였다.

‘그래.’

지금의 선택은 틀린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한다 해도 이렇게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가족이라니.

“밥까지 차려 놓은 거야?”

고마움에 동생에게 미소 지었다. 왜인지 미소를 보고선 고개를 팩 돌린 도은지는 가방을 붙잡고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침밥은 꼭 챙겨 먹으라고!”

집 문이 닫히는 와중에도 동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학교, 잘 다녀와!”

쾅! 문이 닫히고 나서야 소파에서 일어났다. 
식탁에 앉아 리모컨으로 티비를 틀었다. 꽤 오래된 12인치짜리 티비였지만 방송을 보는 데에는 문제없었다.

-자기야....그런 게 아니고.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고!
짝--!!

때마침, 요즘 아침에 흥한다는 막장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볼 것도 없는 터라 이걸 틀어놓고 밥 먹기로 결정했다. 연인들끼리의 싸움에 바람핀 남자의 새 여자가 나오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된장찌개를 떠먹었다.

‘너무 짜.’

너무나도 강렬한 맛에 밥을 세 숟가락이나 퍼 먹어야 했다. 그제야 제대로 보니 계란프라이는 밑면이 전부 타 있었고, 된장찌개엔 된장을 얼마나 풀었는지 청국장 같은 비주얼이었다. 그래도 꿋꿋이 밥을 이어 먹었다.
하나로는 부족할까봐 두 개나 해놓은 계란을 남길 순 없으니까.

밥을 다 먹었을 때에는 드라마도 끝나있었다. 계란프라이는 다 먹었고, 된장찌개는 냄비채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절대 못 먹을 음식이어서 그런 건 아니다. 혹시나 동생이 집에 와서 밥을 먹을까봐서,이다. 오래 놔둔 음식을 잘못 먹으면 탈이 날 수 있으니까. 그래. 그렇다면 그런 거다.

‘저녁밥은 내가 해야겠네.’

굳게 다짐하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오는 채널이 뉴스였는지, 기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오전 8시, 국내에서 최초로 A급 게이트의 토벌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S급 헌터인 강찬서 헌터도 공략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새까맣게 탄 냄비 밑바닥을 벗겨내며 생각했다.

‘오늘 저녁에는 삼겹살을 구울까?’

동생에게 된장찌개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아직 요리는 이르다는 현실을 알려줘야 할 테니까. 뼈아프지만 말해 줘야 할 건 제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 내일 학교도 쉰다고 하니, 같이 된장찌개와 어울리는 삼겹살을 구우면 될 듯싶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댔다. 뉴스에선 헌터 장비에서 생긴 결함에 대해 방송하고 있었다.

‘온통 헌터에 관한 것뿐이네.’

새삼스럽지만 게이트가 발발하고 각성자가 생긴 지금. 전 세계의 관심사는 온통 헌터뿐이었다.
게이트 내의 마석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채택되면서, 세계 경제도 전부 헌터와 게이트에 좌지우지 된다. 강한 헌터를 보유할수록 강한 국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헌터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대한민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직업 1순위다. 선택받은 자라는 각성자가 돼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지만 나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지금으로서도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 A급 던전이라는 곳도 쉽게 공략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지.’

그러나 곧 포기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돈이 다 떨어진 것도 아니고, 이렇게 작은 빌라에서 동생과 오순도순 지내는 생활이 더욱 마음에 든다. 더욱이 헌터는 연예인과 같은 인기를 몰고 있어 귀찮아지기만 한다. 

‘기억을 더 빨리 되찾았으면....’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아쉬운 점이 있다. 내가 절대자로서의 기억을 되찾은 건 중3때. 왕따와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으로 인해 기억을 되찾았었다.
적어도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직전인 14살 때, 기억을 되찾기만 했어도. 
우리는 온전한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위이잉- 위이잉-
때마침,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낡은 폴더폰. 헌터 관리 본부에서 지원해주는 호출기다.
화면에 떠 있는 문구는 하나였다.

[강남역 7번 출구, C급 던전 공략 완료되었습니다. 캐리어들은 호출에 응해 주시길 바랍니다.]

헌터들의 세상으로 바뀐 지금.
새로운 게이트 관련 직종들이 많이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캐리어.
좋게 말하면 부산물 처리 직종이고, 나쁘게 말하면 헌터들의 따까리다.
공략이 끝난 게이트에 가서 게이트가 완전히 닫히기 전에 안에 있는 광물을 캐는 것.
하는 짓이 광부나 다름없었지만 수입은 확실하니 이 또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직업이다. 

“그럼, 가볼까.”

옷을 챙겨 입었다.
오전의 여유로운 휴식시간은 끝났다. 동생이 해준 사랑스러운 쓰ㄹㅔ... 아니 아침식사를 소화시킬 시간이니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


‘휴, 위험했다.’

겨우 막 출발하려는 지하철을 탔다. 
다음 지하철이 도착하기 위한 시간은 5분. 그 시간이면 먼저 도착한 캐리어들이 수 만원을 더 벌 수 있는 시간이다. 안타깝지만 게이트 내의 마석의 수량은 제한되어 있고, 이 때문에 작업량에 따라 수당이 바뀌는 캐리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오늘도 사람이 많네.’

진짜 확 뛰어가 버릴 수도 없고.
마음먹고 뛰어가면 5분도 안 걸릴 거리긴 하다. 지붕을 밟고 뛰어가면 금방이니까.

그러나 예전의 교훈 때문에 그러는 건 그만뒀다. 내가 일하러 가는 모습을 우연히 본 길드의 스카우터가 끈덕지게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 인비서블(Invisible) 마법까지 썼지만 마력 감지 능력이 있는지 그 모습을 발견했다. 
투명화 능력에 상당한 신체능력.
덕분에 한동안 모든 길드의 스카우터들이 먹잇감을 노리듯 돌아다닌 적도 있다. 그리고 난 그날 이후로 절대 평상시엔 경공이나 마법을 쓰지 않는다.

‘이것도 소소한 재미지.’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바라본다. 지금 시간의 2호선은 가히 지옥이라고 불릴 정도의 빽빽함을 자랑했지만 나에겐 오히려 이게 사람 사는 모습 같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톡톡 건들었다.

“저기......”

무심코 옆을 바라보니 여고생들이다.

“꺅! 섹시해!.”
“완전 내 스타일!”

옆의 친구들이 오두방정을 떨었지만 가뿐히 무시했다. 애초에 지금 시간이 몇 신데 학교에 안가고 이러고 있는 걸까.

“...혹시 헌터세요?”
“아닙니다.”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여고생들의 목적지를 알 것 같다. 
연예인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사생팬이 있듯, 헌터들도 팬덤 문화가 존재했다.
분명 이 여고생들이 우상시하는 헌터가 막 공략을 마치고 팬서비스를 해주고 있을 거다. 마치 공략이 끝난 게이트 앞을 자신의 팬사인회처럼 사용한다.
캐리어로서 말하자면 정말 꼴불견이다.

“......분명 헌터 같은데.”

말을 건 여고생은 아직 포기 못했는지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혹시 각성하셔서 헌터가 되시면, 저희가 꼭 제일 먼저 팬 해드릴게요.”
“아, 예....감사합니다.”

이럴 때마다 너무 당황스럽다. 왜 갑자기 나서서 팬이 되려고 하는지.
이래서 헌터가 되지 않으려는 것도 있다. 

-지금 역은 교대. 교대 역입니다.

마침, 강남역 바로 직전인 교대역에 도착했다. 여고생들은 목적지에 가려면 지금 내려야 하는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빨리 좀 가라.’

최대한 웃으며 손짓을 해 보내주었다. 닫히는 문 사이로 끝까지 손을 흔드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 누가 보면 아주 각별한 사이인줄 알 것이다.

‘힘드네.’

이럴 때마다 피곤하다. 항상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곤히 잠드는 이유도 정신적인 피로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는 멀쩡한데도 말이다.

-문이 열립니다.

강남역에 도착했다.
게이트가 열린 7번 출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곳을 찾아가면 되니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호출 받고 왔는데요.”

사무적인 딱딱한 말투를 쓰는 경비원에게 헌터폰을 보여주었다. 진짜임을 알자 아! 하며 길을 비켜주었다.

“확인 되었습니다. 게이트는 저쪽에 열렸으니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예, 수고하세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경례했다. 만약 헌터가 팬서비스를 한다고 나선다 치면 고생하는 것은 저런 헌터 관리부 소속인 경비원 쪽이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게이트 앞에는 장비 대여를 해주는 여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캐리어이신 도한을 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장비 대여료는 수입의 10프로이시고요. 사이즈는.....”

잠시 헌터 박스를 뒤적이던 직원은 한 쫄쫄이 티를 꺼냈다. 보기엔 좀 그렇지만 혹시 모를 위험 때문에 비각성자들은 꼭 입어야 하는 중요한 옷이다.

“저기서 갈아입으시고, 나가실 때 반납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살짝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얼굴을 안 마주치시는데, 어디 아프신가?
영문을 모르겠지만 옷을 받아들었다. 
간의 탈의실에서 재빨리 갈아입고 나오는데,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이거 혹시......
다시 여직원에게로 가서 물었다.

“이거 공략 완료 된 거 맞죠?”
“아....네! 정확히 20분전에 사신길드의 B급 레이드팀이 완료하고 가셨어요.”

그렇단 말이지.
이상함을 느낀 것은 다름이 아니다. 게이트에는 일명 ‘숨겨진 방’이 있다. 벽속에 숨어있는 방으로 괴물들이 아직 남아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 방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은 헌터들의 의무이다. 
이는 헌터나 캐리어가 되기 전에 배워야 하는 게이트관리 책자에 명시되어 있다.

‘정리를 제대로 안 해놨군.’

게이트 안에는 여러 기척이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 여섯, 그리고 괴물 열 마리. 이 사실을 저 직원에게 말한다고 해도 믿지 않거나, 스스로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꼴이다.

다행히도, 책자에는 이런 위급 상황 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행동강령이 적혀 있다. 실행하기엔 거의 불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운이 좋으면’ 모두 가능한 일이니까.
거기에 이 재난 상황에서 살아남는 캐리어들에겐 보상금이 주어진다.

‘좋아.’

약자에겐 약자만의 방법이 있다.
나는 지금부터 약자만의 방법을 날조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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