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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2화
2020-09-15 23:17:32
악역(2.5)

혹여 과거에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품에 안았다면 쉬이 선택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떠오른 의문에 유건의 입가에 조소가 비췄다.

그럴 리가 있나.

진실로 그럴 리가 있겠는가. 혹자에게 사지를 찢어 그중 하나만을 택할 수 있겠나 묻는다면 그 어떤 이가 모두를 잘라내고서 하나만을 손에 쥐는 선택을 할 수 있겠나. 혹여 하나를 골라낸다 하여도, 과거와 같은 삶을 영위하는 것은 어불성설한 일이다.

다만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 가진 모든 것이 한 줌의 잿더미로써 흩어지거나. 바스러지는 인연을 외면하고 소중한 하나만을 손에 움켜쥐거나.

그럼 후자를 택했을 때 남은 것은 어찌 되는지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스러진다. 그리고 흩날린다. 다시는 찾을 수 없도록.

물론 그것은 그들의 의지가 아니다. 선택자의 의지에 휘둘려 버려진 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그저 마지막 하나로 남기기에는 그 가치가 부족하였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잘못일지도.

어둠에 잠긴 눈이 반개했다. 문득 시야에 비춘 불투명한 촛농이 반절 이상이 녹아버린 대를 타고 흘러내린다. 처음과 변하지 않은 것이라고는 불꽃뿐이다. 위태로이 일렁이는 잔불이 그의 눈가에 스며들었다.


유건은 몸을 지탱하던 의자에서 벗어나 방의 반절을 차지하는 낡은 벽장의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삐꺽 대는 불쾌한 고음과, 내려앉은 먼지가 일렁인다.

비루한 외관의 모습과 다르게도 벽장의 내부는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니 정갈하다는 말보다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표연히 더욱 어울릴지도 모른다. 오직 한편에 걸려있는 흑색 코트와 군데군데 찢어진 양복 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찾아볼 수 없으니.


유건은 걸이에 걸려 축 늘어진 코트를 몸에 둘렀다. 문득 코트의 손목 언저리에 새겨진 검붉은 얼룩에 시선이 닫았다. 이런 색을 자아내는 것은 적어도 그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는 단 하나로 측정할 수 있었다. 피다. 그것도 동물의 것이 아닌 사람의 것. 그것을 깨닫는 순간 분명 사그라진 지 오래일 비릿한 혈향이 다시금 피어올라 코를 간질인다.

누구의 것이었던가.

분명 그가 처음 끊어낸 생명의 주인. 그의 것이다. 갈라진 피부에서 솟아오르는 그 미지근한 혈액의 온도가 다시금 손가에서 피어올랐다. 두근거리며 심장이 박동한다. 흐릿하게 잔상을 그리던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던가. 마음속에 품었던 위기심이란 이름의 안전장치마저 더는 그에게 크게 와 닫지 못하니. 분명 어딘가 비틀린 것이리라.

혹여 자신이 지금 스승에게로 향하지 않는다면, 스승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그도 언젠가는 잊힐 것인가?

그래. 분명 잊혀질 것이다. 인간의 기역력과 감정은 무한하지 않음에 어떠한 자극이라도 끝내 잊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어느새 잊어버렸다는 그런 희미한 감각마저 잊혀져 가겠지. 그렇다면 그 지독한 망각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무것도. 모든 것을 쏟아내고서 남는 것은 그저 아득한 공허뿐이다. 잊혀지고, 그 기묘한 공백마저 잊혀진 기역을 헤집는다고 한들 바스라진 기역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지독한 공허와 공백에 빠져들겠지.

문득 시선이 향한 곳은 창가였다. 온갖 오물로 뒤덮인 빈민가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곳. 유건은 어둠이 좀먹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장막에 새겨진 작은 점들이 깜빡대며 점멸한다.

"좋은 밤이네."

흐릿하게 가려진 달이 땅거미를 걷어낸다. 낮게 깔린 서둠이 흩어지듯 물러난다. 장례식을 치르기에는 정말 빌어먹도록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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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쟁입니다. 유건 이놈은 작가의 필력 부족으로 인하여 왜 화가 지날 수록 인격이 바꿔가네요... 불쌍한 친구..

그건 그렇고 다음주 월요일부터는 시험, 시험, 중간고사라니 뭐 이런 삼연병이...

흠흠.. 혹시 글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댓글로 말씀해 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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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격이 바뀐다고 걱정마세요.인간은 자기보다 못한 것을 보고 안심한다고 하죠.
    떡밥은 다 회수하지만 등장인물 성격을 정하지 않아서 애들 성격이 자주 달라지는 드래곤 중학교를 보시고 안심하세요.

    2020-09-20 01:32:42

  • 10화도 못넘긴 저에게 몇십화나 되는 드중 1기, 2기를 쓰시고 완결까지 내신 청백흑상아리님은 그저 빛입니다. 믿습니다 선생님!

    2020-09-21 21:39:47

  • 옛날에 자신의 작품을 쉽게 버리지 말라는 분의 글을 마음에 품고 연재했는데 어쩌다 보니 완결..

    2020-09-21 22:03:02

  • 역쉬 필력은 글쟁이님!

    2020-09-17 14:06:55

  • 별 볼일 없는 글이지만 언제나 감사합니다 :)

    2020-09-17 20:37:24

  • 서술해주시는 문체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잘 읽고 갑니다~~^^♡♡!!

    2020-09-16 08:01:49

  • 감사합니다^^

    2020-09-16 21:2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