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게시판

목록
엑스트라
2020-10-15 00:37:38


드디어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검은 문, 그 앞에 펼쳐진 건 진홍색의 레드 카펫과 문 좌우에 배치된 훼손된 돌 석상. 이상하게 민트향이 은은히 스며들어 있는 이 복도를 밟는 것도 오랜만이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에는 타락한 기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

타락한 기사의 지하 성채. 왕국을 배신하고 마왕군으로 들어간 마왕군 간부급 기사가 개조한 공간으로, 우리는 그를 토벌하기 위해 이 성채에 쳐들어왔다.

용사와 대마법사의 힘으로 모든 성채의 병사들을 토벌한 후, 우리는 각자 나뉘어 타락한 기사가 있는 방을 찾기로 했고 나는 우리 파티에서 제일 먼저 그가 머무는 방을 찾았다.

이제 남은 건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가 타락한 기사를 토벌하는 것뿐.

단언컨대 난 저 기사보다 약하지 않다.

스텟을 전부 행운과 힘에 몰아넣었기에 아마 내가 우리 파티에서 용사 다음으로 강할 거다. 그래서 나는 어지간한 마왕군 간부급보다 강하며,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이런 피날레를 장식하는 걸 꺼려 한다.

딱히 보스몹을 잡고 싶지도 않고, 잡더라고 한들 막타를 쳐서 모든 걸 내 공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어차피 나는 그저 용사 파티의 일원일 뿐이고, 같은 파티에서도 대마법사와 엘 여신의 성녀, 그리고 대귀족의 성기사보다 약하며 그들처럼 대단하지도 않은 흔한 레인저다.

검술을 좀 잘 할 뿐이고, 활을 잘 다룰 뿐일 레인저다. 솔직하게 이곳까지 도달한 것도 전부 파티 덕에 올 수 있었는데, 여기서 나 혼자 타락한 기사를 토벌하고 공적을 모두 가로채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굳이 챙겨 봤자 길드에서 축하받는 것 이외에 더하겠는가?

용사나 다른 파티원들이 토벌하게 된다면, 왕에게 포상을 수여받을 테니 그러는 편이 내게 더 이득일 거다.

나는 눈에 띄고 싶지 않고, 띌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흔한 고렙의 레인저일 뿐이니까."

복도 저편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리자, 나는 천천히 문에서 떨어졌다.

굳이 여기에 서서 먼저 발견했다는 식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무엇보다 귀찮고.

"『은신』"

나는 조용히 은신을 쓰고 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들이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사와 다른 일행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문 앞으로 달려왔다.

"후, 드디어 마지막이야."

금발의 금안을 가진 용사가 말했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편히 쉬자구"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마법사가 기지개를 켰다.

왕국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귀족의 장녀인 적발의 성기사와 은발의 성녀는 둘이서 끝나고 유명한 찻집에 가자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의 뒤로 걸어가 은신을 풀었고, 자연스럽게 파티에 합류했다.

"슬슬 다 모인 거 같으니 들어가도록 하지."

적발의 성기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그의 대검으로 앞에 보이는 문을 부쉈다.

홀로 달려가는 성기사의 뒤로 용사와 대마법사가 따라붙었고, 성녀도 그 둘을 놓치지 않고 쫓아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홀로 문 곁에 서서 활을 꺼내들었다.

이게 원래 내 위치다.

뒤에서 그들을 보좌하는 것, 이보다 더도 덜도 아니다.

내가 나설 위치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주연도 조연도 아닌 어정쩡한 엑스트라. 하지만 난 주연도 싫고 조연도 싫다.

나는 그저 엑스트라로 만족한다.





https://open.kakao.com/o/gZglPrBc


톡방 오실분 구함


댓글[2]

등록하기

사진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