ⅩⅥ
“……다크닉스?“
아오라는 조금 졸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응.“
“나 좋아한다는 말, 진짜야?“
“아니라고 생각해?“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크닉스가 보기에 난 그냥 스쳐가는 존재일 뿐이잖아. 예를 들자면…… 어, 음…… 주위를 맴도는 나비 한마리에게 사랑한다고 하는 거랑 다름이 없는 거 아니야?“
“일단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답하기 전에, 난 너한테 사랑한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 아니이! 그래도, 그래도 좋아한다고 했잖아…….“
“인간들에게는 그 두 단어가 같은 뜻으로 쓰이나? 몰랐군.“
“그것도 아니지만! ……그러면 다크닉스는 날 사랑하지 않아?“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 아오라에 물음에 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아오라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정말로…… 사랑하지 않아……?“
“그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냐.“
인간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나 고대신룡 같은 존재들에게는 다른 문제라고. 난 조금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
이런, 삐졌나. 난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내 품에 안겨있는 아오라를 내려다 보았다.
“그래도 소중하다고,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것도 나한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속마음을 모두 말해버린 난 말을 멈췄지만 아오라는 반응하지 않았다. 주제를 돌려야겠군.
“……인간은 모두 스쳐가는 존재지. 내 시선에는 필멸자는 모두 그래. 100년도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다, 죽지. 태어나서 살아가다가, 죽겠지. 언젠가는. 그래도 그런 필멸자라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던 난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갑자기 과거가 떠올라버렸기 때문이다. 내 변화를 눈치챘는지 아오라는 내 가슴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날 올려봤다.
“왜 그래……?“
서운함에 조금 울었는지 아오라의 눈가가 촉촉한 게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다. 내 가슴을 내려다보자 그의 눈물 몇방울이 묻어있다. 너는 내가 널 울려도 내 걱정을 하는구나.
“……미안해.“
“으응……? 왜?“
“너에게 부족한 나라서. 너를 울리는 나라서. 너에게 사랑한다고 할 수 없는 나라서. 나 정말 바보 같네.“
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아오라는 다시 내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잠시 후 천천히 아오라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내게 과분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너라면 날 울려도 좋아. ……나, 나는…… 나는…… 그만큼 너를 사랑하니까.“
아오라가 작게 속삭일 때마다 가슴에 그의 목소리의 진동이 울린다. 머리로 이해가 되는 말이 아닌 가슴에 와닿는 말. 어느새 내 입에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있잖아, 아오라. 내가 이런 건 처음이라서 그러는데…… 내가 준비가 되면 정식으로 고…… 고백할 테니까, 그때까지 ㅅ, 사, 사ㄹ…… 윽, 못하겠다. 그 말은 조금 기다려 줄 수 있어?“
그러자 일정하게 내 가슴을 간지럽히던 아오라의 숨소리가 잠시 멎었다. 그리고 곧이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느껴진다. 으으, 이젠 빼도박도 못하네.
“사랑해.”
아오라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귀여워. 엄청. 나는 아오라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대답했다.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안 설레거든.”
“진짜?”
“……사실 엄청 설렜어.”
“진짜?”
“응.”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 그만…….”
⨝
“……어떻게 할까?”
“내가 처리할게.”
아오라가 온몸이 다크 매직에 꽉 묶인 채로 기절해있는 도둑을 바라보며 심각하게 묻자 난 그 남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처리하려고 했지만 아오라에게 가로막혀버렸다.
“그냥 돈 몇푼 쥐어주고 보내면 안 될까?”
이런 순진하고 바보같으면서 귀여운! 난 한숨을 쉰 후 아오라에게 설명했다.
“이런 놈들은 대부분 너가 선행을 배풀어도 착하게 살지 않아. 그냥 죽이면 깔끔하고 편하잖아.”
내가 죽인다는 말을 했을 때의 아오라의 표정을 본 나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렇다고 꼭 죽일 필요는 없고, 처벌을 하자는 거지. 그런데 돈까지 주고 보낸다는 건…….”
“그래도 어떤 사정이 있을지는 모르는 거잖아. 한번 물어보자.”
그 뒤로 바보 심문관의 질문 같은 심문이 이어졌다. 얘는 왜 저 밤손님이 자기 인생사를 꺼내게 만들고 있어?
“결국 돈 주면서 돌려보냈네…….”
“그래도 속은 착한 사람이었잖아? 뿌듯하네.”
아침이 다 가버리긴 했지만, 네가 뿌듯하다면 그걸로 된 거지. 난 생글생글 웃으며 작아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는 아오라를 바라보았다. 그런 아오라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할 일이 많아서 먼저 나갈게. 이따 저녁에 봐.”
“어, 나도 곧 나가야 하는데. 아, 가기 전에 잠깐만.”
내가 거의 문을 나섰을 때 아오라가 나를 부르자 난 고개를 돌렸다. 쪽! 순간 볼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너, 너, 뭐하는…….”
“잘 다녀오라는 인사. 이따 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아오라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다고 느낀 건 착각일까. 난 아오라가 입맞춘 볼을 멍하니 쓰다듬으며 걸었다.
난 볼을 짝 소리 나게 때려서 정신을 차렸다. 드디어 다시 때가 왔구나. 어둠의 수호자 다크닉스로 돌아갈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