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흔히 말하길 고구려는 지형이 안좋아 초기에 약탈로 나라를 발전 시켰다. 라고만 한다. 그 이후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게 우리 역사 교육의 한계점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구려 영토의 크키를 알면 왜 소국이 제국이라 할까? 흔히 국뽕으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고구려는 땅은 일반 왕국의 수준이지만 운영 방식과 시스템은 제국과도 흡사하였으며 언제든지 고구려는 주변국 문화를 잘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던 제국이라 칭해도 될 만큼 대단한 나라였다. 이는 훗날 수, 당 황실에서 고구려 무용과 음악을 무척 좋아했을정도며 고구려 멸망후 당나라에서는 고구려의 문화를 대부분 흡수하여 자신의 것과 융합 시키는등 고구려 문화력이 중원과 꿇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구려는 옛날부터 주변국을 차례대로 멸망 시키나 그 땅을 원래 왕에게 다스릴 수 있도록 하여 자치주로 봉한다. 그리고 문화적으로 자츰 흡수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는 고구려가 그 주변국을 컨트롤이 가능해야 통했던 운영방식이었다. 단점은 바로 고구려의 힘이 약해져 이탈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예로 들자면 고구려 장수왕시절 신라가 주둔하고 있던 고구려 군사를 죽여 백제와 연합을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중국사서 삼국사기만 봐도 이를 주장할수 있는 여러 기록들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건 고당 마지막 전쟁때 " 부여왕이 투항하였다 " 였다. 허나 이때는 668년 부여가 멸망하고도 수백년이 지난 이때 부여라는 곳은 이미 고구려 땅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부여왕은 바로 문자명왕때 고구려에게 망명 해 제후로 봉해져 자치구 처럼 다스렸다..
한마디로 번왕(봉건시대)을 두어 다스렸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