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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용이라고도 불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신성한 존재가 자신의 푸른 날개를 뽐내며 창공을 휘젓고 있었다. 드래곤의 몸집이 큰 것에 반해 날아가는 속도는 엄청났다.
\"실피드, 나 좀 도와줄래?\"
그 이유에는 단순히 그 푸른 드래곤의 날개가 커다랗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름아닌 바람의 정령왕인, 실피드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 디아른, 그 아이는 뭐야? 어머, 귀여운거 봐...
나름 정령왕이라 다른 곳에서는 위엄을 갖추지만,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푸른 드래곤, 아니 디아른 앞에서는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인간이 버린 아기인데, 불쌍해서 내 레어로 데려가려고. 일단 살려놓았긴 했는데, 늦어버리면 다시 죽을지도 모르잖아?\"
디아른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말이 가진 중압감은 엄청났다. 인간의 아이에게 용족의 마법을, 그것도 허가도 없이 사용하다니? 물론 그녀가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권능의 소유자들이 인간에게 그토록 호의적이지는 않을터였다. 한마디로 \'무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실피드는 디아른에게 속사포로 잔소리를 내뱉었다.
- 야, 너 정신이 어떻게 되기라도 했니? 허가도 안 받았을건데, \'생명의 부름\'을 사용해? 그것도 인간에게?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디아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우선 기껏 살려놓았으니까, 최대한 빨리 부탁해.\"
실피드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디아른은 무시했다. 곧이어 실피드의 정령술이 시작되었다. 그냥 하늘을 날아다닐때는 바람의 거센 저항이 항상 거슬렸지만, 실피드와 함께라면 바람의 저항 자체가 사라졌다. 디아른 주변을 일시적으로 진공상태로 만들어놓는 정령술이기에.
실피드의 정령술 덕분에, 디아른은 예상보다 일찍 레어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 실피드.\"
- 아냐. 심심했는데, 아기도 보고 잘 됐지 뭐. 나중에 아기가 크면 다시 불러줘!
실피드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점점 옅어져갔다. 디아른은 레어로 들어가기 전, 자신의 커다란 등에 올려놓은 아기를 발톱으로 살짝 당겨서 땅에 안전히 착지시켰다. 그러고 난 후에, 디아른은 그 거대한 눈을 지긋이 감더니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몇초쯤 뒤, 디아른의 웅장한 몸체가 완전한 하얀색이 되더니, 점점 인간의 형태로 축소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얀색이 걷히고 매력적인 노란색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폴리모프 상태가 아기에게도 편하겠지.\"
디아른은 아기를 들썩 들어앉더니, 그녀의 거대한 레어로 들어갔다. 명색이 드래곤이지만, 그녀에게는 레어를 지킬 용아병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자연사했을때, 자연스레 그들은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도 슬슬 용아병을 만들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보니 어느새 \'용아병 없는 드래곤\'으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거대한 그녀의 레어는 매우 허전해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겠지.\"
디아른이 말했다.
\"이 아기와 함께라면.\"
\"흐음... 우선 데리고 왔다만.\"
그녀가 푸른색의 윤기 넘치는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면서 말했다.
\"대체 이 녀석은 뭘까?\"
날아오는 도중에도, 그리고 심지어는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들었던 의문점이다. 도대체 이 아이의 부모가 누구이길래 용족의 마법이 통했던걸까? 폴리모프 상태는 아닌걸로 보아, 순수한 인간의 피가 흐르는 평범한 아이인데 대체 왜 용족의 마법이 통했던걸까? 왜?
\"...흐음.\"
그녀는 노란색 눈을 번뜩이며 아기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공교롭게도, 그 아기의 눈 색깔도 노란색이었다.
\"이건, 우연이라해야하나.\"
그리고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흐름이 미약하지만 드래곤의 기운을 띄고 있었다. 그것도 블루 드래곤의 기운을.
\"...아니면, 필연이라 해야하나.\"
그녀는 배배 꼬았던 머리카락을 풀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는 듯이, 별처럼 빛나는 그 노란색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기묘한 아이야. 내가 너의 어머니가 되어주마. 그리고 너의 이름은...\"
보통 드래곤들의 이름은 네글자 내지 다섯글자였다. 드래곤계의 깡패라고 불리는 아우솔레토마저 다섯글자이니, 할 말은 다한 셈이다. 하지만 디아른의 경우에는 보다시피 세글자이다. 그녀의 아버지인 네피레스 대부터, 아니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부터 대대손손 물려받는 \'짧은 이름\'의 피해자라고나 할까. 언제나 세글자에서 네글자를 유지하는, 이제는 정겹기까지한 \'짧은 이름\'의 관습.
물론 디아른은 이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고, \'짧은 이름\'의 관습을 따라서 작명을 할 생각도 다분했다. 거대한 레어를 빙글빙글 돌면서 곰곰히 생각하던 디아른은, 돌연 멈춰서더니 크게 외쳤다.
\"싸르카! 싸르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디아른은 곧장 그녀의 친구들 중 하나를 불렀다. 블루 드래곤답게, 그녀는 물의 정령왕인 엘라임을 친구로 삼고 있었다. 엘라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도와주고 보는 타입이라서 그에게 물어보는 것도 있었다.
\"엘라임, 드래곤 이름으로 \'싸르카\' 어때?\"
- 웬 드래곤 이름? 뭐, 짧지만 너네 가문의 관습 때문이라면 괜찮은데?
엘라임은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해\'라고 말하는 듯한 디아른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자, 좀 더 상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 흠, 어둠을 가르는 빛이라. 만약 블루 드래곤이라면 별로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엘라임이 뜸을 들였다.
- 싸르카, 어둠을 가르는 빛... 고대에나 쓰이던 단어라 익숙하지가 않지만, 이름으로 사용하면 깊은 뜻을 부여할 수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아.
\"맞지? 그렇지? 역시 내 작명 실력이란...\"
디아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엘라임이 말했다.
-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설명하기 귀찮아서, 아기는 엘라임을 부르기 전에 안 보이는 곳으로 잠시 밀어두었다.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들어서 당분간은 울거나 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 디아른은 엘라임에게 마음을 놓고 말했다.
\"아아, 다음번에 말할게. 조만간에 부를게, 안녕!\"
- 칫, 꼭 자기 할말만 한다니깐.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엘라임이 돌아섰다. 그리고 점점 흐릿해져가는 순간, 레어에 어떤 소리가 울려퍼졌다.
\"으우우...\"
엘라임이 다시 선명해지더니, 뒤를 홱하고 돌아보았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디아른을 쳐다보았다.
\"왜, 왜 그래? 아무것도 없는걸?\"
아기를 길러본 적이 없는 디아른은, 아기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해봤자 조금 있으면 울어버린다는 점을 모르고 있었다. 당황한 눈으로 시선을 피하던 디아른은, 엘라임에게 급히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니깐, 빨리 가...\"
하지만 그녀의 말은 우렁찬 울음소리에 의해 가로막혀버리고 말았다.
\"응애애애애-!!\"
엘라임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상황 파악이 된 엘라임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는 디아른에게 말했다.
- 디아른, 너 설마...
실피드보다 수십배는 잔소리가 지독한 엘라임이었다. 디아른은 마치 큰 죄라도 지은 양, 풀죽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인간을 데려오기라도 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