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제 27회 청문회를 마무리토록 하겠소. 각자 갈 길들 가시오.\"
청문회는 해산되었고, 드래곤들은 무리지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의 레어로 날아갔다. 디아른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녀에게, 엘라임과 실피드가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안아주면서 \"잘 됐네. 참 잘 됐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폴리모프를 풀고, 그녀의 친구들과 싸르카를 데리고 자신의 레어로 돌아가는 디아른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블랙 드래곤 에파티우스는,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나지막히 말했다.
\"...꼭 너의 권능을 흡수하고 말 것이야, 디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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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가 끝난 후에도, 세월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렇게 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원래 평균 수명이 900~1200년 가량되는 드래곤들에게 있어 6년이라는 시간은 눈을 한번 깜박하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200년밖에 살지 못했지만 디아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청문회가 끝난 후로부터의 6년 동안은, 그녀의 그런 생각을 깨버리기 충분했다.
\"엄마! 엄마!\"
베르사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동부의 이름 없는 외딴 섬에 존재하는 디아른의 레어에 태양이 밝아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 아이가 무언가를 외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디아른은 그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서 잠에서 깨버렸다.
\'으윽... 머리 아파.\'
드래곤들은 특별한 저주가 아니고서는 머리가 지끈거리지 않았다. 뛰어난 정신력으로 인해서 두통이 오더라도 느끼지 못하거나, 금방 해결되고는 했다. 하지만 블루 드래곤 디아른에게는, 최근 6년 들어서 두통이 고질병으로 굳어졌다. 짧은 다리를 분주히 움직이면서 디아른에게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달려오는 이 아이 때문이랄까.
\"엄마가 아침에는 소리 지르지 말랬지...\"
디아른이 거대한 팔을 움직여 손을 머리에 갖다대면서 말했다. 싸르카는 디아른의 말을 듣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있잖아, 엄마.\"
마치 소곤대는듯한 그의 귀여운 목소리에, 디아른은 두통이 말끔히 나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디아른은 싸르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니?\"
싸르카는 방금전까지만해도 소곤소곤거리다가, 갑자기 방방 날뛰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있지, 나, 오늘 생일이다!\"
디아른은 살짝 해소되었던 두통이, 다시 재발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말했다.
\"벌써 생일이니? 내가 기억하기로는 정확히 1년 전에 생일이었는데.\"
\"에에- 엄마 바보! 생일은 1년만에 돌아오는거잖아!\"
드래곤들에게는 생일의 개념이 없었다. 1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기념일이 생긴다는 것은, 몇백년 동안 사는 드래곤들에게 있어서 매우매우 귀찮고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명이 길어봤자 100년에 도달하기 어려운 인간들에게는 생일이 매우 뜻깊고 의미 있는, 1년에 한번밖에 없는 소중한 날이다. 더군나나 6살짜리 애한테는.
\"아... 그렇구나. 그래, 생일 선물은 뭘 줄까?\"
디아른이 인자한 목소리로 물었다. 싸르카는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야, 작년에 해준다고 말했었던 거!\"
디아른은 살짝 당황했다.
\'내가 작년에 뭘 해준다고 말했었지...?\'
그러나 싸르카는, 급하게 기억을 더듬어보는 디아른보다 먼저 선수를 쳤다.
\"로자임 왕국 구경 말이야!\"
디아른은,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떠오르는 1년전의 기억들.
『 \"엄마! 엄마! 나 오늘 생일인데...\"
\"오, 그래. 뭐 원하는거라도 있니?\"
\"나, 베르사 대륙 구경시켜줘!\"
\"넌 아직 어려서 안돼.\"
\"에에... 그래도!\"
\"...그러면 내년 생일에는 로자임 왕국 구경을 시켜줄게.\"
\"진짜? 정말이지? 약속한거다!\" 』
\"그래... 그랬었지.\"
디아른은 싸르카의 기대에 찬,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고는 \'더 이상은 돌이킬 수 없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내년 이맘때즈음에는 싸르카를 보내야만 한다. 어쩌면 오늘이 싸르카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생일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 디아른은 마음을 굳게 먹고 말했다.
\"그래, 가자꾸나.\"
신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싸르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디아른은 그녀의 절친한 친구들인 엘라임과 실피드를 불러냈다.
베르사 대륙의 동부에 위치한 로자임 왕국은 위치상으로 중앙 대륙과 멀어 명문 길드들의 입김이 적다. 그래서 그런지, 헤르메스 길드와 같은 길드들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블루 드래곤 디아른의 레어와도 별로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오늘도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그 성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특히나 눈에 띄는 사람 두 명이 있었다. 하나는 키가 조금 큰, 푸른색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는 노란색 눈동자의 여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푸른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방방 뛰어다니는 흑발의 남자아이였다.
\"우와! 여기가 세라보그 성이야?\"
6살이 되기까지, 디아른의 과잉보호로 인해 베르사 대륙으로 한번도 나와보지 못했던 싸르카는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디아른은 \'데려오길 잘했나-\'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생전 처음보는 다양한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싸르카를 자극시켰다. 싸르카는 그 중에서도 디아른에게 복실복실한 토끼 인형을 사달라고 요청했고, 디아른은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딸랑딸랑-
인형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 디아른은 싸르카에게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고르라고 말했다. 싸르카는 자신을 닮은 귀여운 토끼 인형을 집어들었고, 디아른은 가게 주인에게 얼마냐고 물었다.
\"1골드 3실버입니다.\"
골드와 실버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디아른은,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자신의 레어에서 가져온 광물들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싸르카와 놀아주던 실피드와는 달리, 행여나 그녀가 실수할까봐 디아른의 곁에 줄곧 있었던 엘라임은 ㅡ싸르카와 디아른을 제외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ㅡ 디아른을 제지하고는 말했다.
- 야, 인형 값으로 1등급 사파이어를 주게?
\"하긴, 헬리움 정도는 돼야겠지?\"
엘라임은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자신의 친구를 살짝 흘겨보고는, 자신이 들고 왔던 것들을 꺼내더니 디아른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정확히 1골드 3실버니까, 내가 준대로만 내면 돼.
디아른은 듬직한 자신의 친구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한 후, 자신의 옷 주머니에 든 것들을 꺼내어 주인장에게 주었다.
\"저, 그럼 장사 잘하세요!\"
주인장의 손에는 묵직한 금덩이 하나와 은덩이 세 개가 들려있었다. 말문을 잇지 못하는 주인장을 뒤로 한채로, 디아른은 뒤돌아 나가면서 뭔가 어색한 멘트를 날리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싸르카를 데리고 나갔다. 다시 사람이 북적이는 거리로 나온 엘라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그런데, 요즘 인형이 그렇게 비싸던가?
어느덧 세라보그 성의 해가 저물었다. 어둠이 하늘에 옅게 깔리고, 은은한 보름달이 떠올랐다. 싸르카를 위해서 이것저것 알아본 디아른은 마침 오늘 불꽃축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싸르카에게 추억을 남겨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디아른과 싸르카, 실피드 그리고 엘라임은 각자 먹을 것을 사들고는 전망 좋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는, 들떴던 싸르카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파릇파릇한 잔디 위에 털썩 주저앉은 네 명의 인간, 아니 드래곤과 인간과 정령들은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헤벌렸다.
그러던 와중에, 하늘에 분홍색의 물체가 쏘아올려지더니 펑하고 공중에서 터져버렸다. 세라보그 성의 명물인 불꽃축제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싸르카는 난생 처음보는 광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우아한 색들과 강렬한 폭발음이 아름답게 뒤섞여, 불꽃축제를 감상하는 모든 이의 눈을 사로잡았다. 디아른 또한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다 싸르카 쪽으로 살짝 눈을 돌렸는데, 싸르카가 너무도 황홀한 눈빛을 하고 있기에 그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불꽃축제는 싸르카와 디아른의 가장 강렬했던 추억 중 하나로 남으리라.
디아른은 드래곤으로 변신하여, 자신의 레어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비행을 보조해주는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와, 피곤함을 못 이기고 새근새근 잠이 든 싸르카를 안아 들고 있는 물의 대정령 엘라임이 디아른과 같이 레어까지 가주고 있었다. 디아른은 피곤함을 정신력으로 물리치고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생일 선물, 잘 준 것 같지?\"
엘라임이 대답했다.
- 싸르카가 이렇게 재밌어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데리고 가지 그랬어?
디아른은 흐뭇한 미소로 답했다. 어느새 도착한 디아른의 레어는 푸르른 밤으로 온통 물들어있었다. 새하얀 달빛 아래에서, 디아른은 엘라임과 실피드를 배웅했다.
- 오늘 재밌었어!
\"응, 조심히 들어가!\"
싸르카를 키운지 어언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랜만에 하루종일 신나게 놀다 온 디아른은 싸르카를 푹신푹신한 침대에 눕힌 뒤, 하루동안 겪었던 강렬한 기억들을 더듬어 보았다. 침샘을 자극하는 거리의 음식들, 시끄러운 거리의 소음들, 잔잔하게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 그리고 화려했던 불꽃축제.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디아른의 추억 한 귀퉁이에 고스란히 각인되었다. 디아른은 곤히 잠든 싸르카의 검은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었다. 그녀는 그의 이마에 살짝 키스해주면서 말했다.
\"오늘 재밌었어, 싸르카.\"
그리고 그녀도 더 이상의 잠을 뿌리치지 못하고,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온통 시끌벅적했던 싸르카의 6번째 생일은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