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였다.내가 이 산으로 향한 그 날 말이다.이 산에는 예전부터 거물급 용이 살고있다는 말을 듣고서는 이렇게 길을 나선 것이다.내가 살던 마을에서 떠도는 소문이 있기에 여기에 올 수 있었다.나에게 그 이야기를 자세히 말해준 것은 아무래도 나처럼 인간계에 숨어살면서 폴리모프를 하고계시던 스마트 할아버지셨다.
'요즘에 인간들 사이에 요상한 소문이 떠돌더구나.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꼭대기가 눈으로 쌓인 아주 높은 산이 있다.그 꼭대기에는 털로 뒤덮인 아주 강력한 입김을 가진 드래곤이 한마리 살고 있다고 하더구나.드래곤의 존재가 외부로 나가면 안되거늘...그 친구는 어째서 밖에 있는게냐.'
할아버지는 끙끙 거리기만 하고 자신이 직접 나설 생각은 없어보였다.하긴,지식만 있고 체력은 거의 없는 두뇌파라 직접 가기에 무리가 있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이다.그리고 꽤 오래 사셔서 늙으신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그 곳에 가보고싶었다.그런 이유를 내게 물어온다면,뭐 아무래도 같은 드래곤이여서가 아닐까 싶다.나는 인간세계에 살고있는 라이곤.어느 날 인간세계에 버려진 나를 주운것은 스마트 할아버지였다.다른 인간들에게는 딱 봐도 그냥 보통 사자라고 보이기 때문에 크게 다칠 뻔했지만,그는 그들 앞에 용감하게 달려들어 나를 구해줬다.
그는 나를 자식처럼 대해주었고,폴리모프를 하는것도 또래용들에비해 빨리 배울 수 있게되었다.그래서 나는 그런 스마트 할아버지가 무척이나 고맙다.지식은 많은 할아버지라서,나는 그 아래에서 현명한 두뇌를 가진 라이곤이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런 할아버지께 소문의 그 산으로 가고싶다고 말했을 때,할아버지께서는 화를 내며 아직 어린것이 어떻게 그런 험한 곳에 가냐고 말했다.같은 드래곤이니 큰 해를 입지는 않겠지만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간 인간은 아무도 살아돌아오지 못했다면서,너 같은 어린아이가 간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외치며 집밖으로 나가셨다.그 날,할아버지께서는 이틀간 집에 돌아오시지 않으셨다.나는 그걸 보고 정말로 안된다는거구나,라고 생각하고 물러섰다.
그리고 내가 인간의 나이로 성인을 인정받았을 때였다.할아버지께서는 지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아직도,그 산에 가고싶느냐?'
나는 당연히 가고싶다고 말했다.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잠시 미간을 좁히다가 말씀하셨다.
'...가서 짐 싸라.보내주겠다.'
할아버지께서는 날 보내주셨다.솔직히 좀 얼떨떨했다.인간의 나이로는 성인이라고 해도,드래곤의 나이로는 겨우 해치에서 헤츨링으로 완성되는 과정이었을뿐이었다.정작 나가려고 짐을 싸니,조금 무섭기도했다.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손수만든 지도까지 두 손에 쥐어주시고서는 말했다.
'드래곤은 원래 야생에서 살아가야한다.너는 아직 성체가 되지 않았으니 괜찮겠지.이런 인간계에 있으면 너만 나빠진다.나는 이미 인간계에 완전히 적응해버렸고,이곳의 음식,옷,집.그 모든것을 인정해버리는 바람에 약해져버렸다.너는 그러면 안된다.먹을 것 꼭 챙겨먹고,훌륭하게 자라거라.'
그 말을 기억하자니,정말 꼭 나를 떠나보내는 것 같았다.나는 그곳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생각이였으니 그 말이 이해가 안됬다.어쨌든,짐을 들고 이틀도 안 되서 지도의 그 위치에 도달한 건 바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 추운 겨울의 막바지였다.그것이 내가 이 산을 오른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드래곤이 나타난다는 얼음으로 뒤덮인 그 계곡앞에 다다랐다.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기 그지없지만,내 본능의 귀로는 누군가 저 아래의 어딘가에서 눈을 바스락거리며 움직이는 소리도,그 드래곤의 희미하게 남은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아마 주변에 냉기로 가득찬 바람이 계속 불어오고있으니 전신의 감각이 무뎌지는것은 당연한건가 싶다.
이제는 날개도 없이 인간 모습으로 온 내가 폴리모프를 풀고 추위를 이길 수 있는 강인한 털로 뒤덮인 사자의 혼을 가진 드래곤으로 변신하는 것 뿐이다.들고 온 짐들을 옆에 내려놓고 전신을 감싸던 두터운 외투와 옷 모두 벗어서 짐 안에 넣었다.그 순간만큼은 정말 얼어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폴리모프를 푸는 순간 따뜻한 온기가 몸에서 뿜어져나왔고 몸이 조금 굳긴 했지만 그 눈발이 휘날리는 산 위가 그렇게 춥다고 생각하지는 않게되었다.
"크르르르...."
사실 정말 오래간만의 폴리모프 해제였기때문에 야수의 소리만 입안에서 울려퍼졌다.나는 짐만 한번 확인하고서는 서둘러 계곡 아래로 내려갈 길을 살피기 시작했다.얼음으로 뒤덮여있어 내려가기가 어려울듯 하지만 둘러보니 그나마 경사가 덜 진 길이 있어서 그곳으로 내려갔다.계곡 아래에서 움직임을 알아챘는지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렸다.나는 그 소리를 듣고 재빨리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그리고 아래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그 소문 속 드래곤이 나와있었다.처음에는 눈이 휘날려서 잘못 보는 줄 알았다.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드래곤.몸은 눈색이며 목에 둘러져있는 털은 얼음색보다 좀 더 진한 파란색.꽉 다물고 있는 입은 숨결을 아끼는 듯 했다.잠시간의 서로간의 탐색이 있고난 후 먼저 입을 연 것은 그 드래곤이였다.
"뭐냐,꼬맹이."
그의 목소리는 사나운 외모와는 다르게 상당히 느긋하고 걸걸해보였다.아마 나이는 스마트 할아버지 정도로 보이고 몸집은 나의 두세배쯤.
"크르릉....?"
그러나 생각해보니 나는 인간의 언어만 할 줄 알뿐 용의 언어에 대해서는 들을 수는 있지만 할 줄 몰랐다.그래서 나오는 소리는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뿐.그 드래곤은 나를 보고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서는 따라오라는 신호를 했다.나는 그걸 따라서 계곡 안 동굴로 들어갔다.안은 생각외로 따뜻했고 그 구석에는 약초나 식량으로 보이는 야생동물들이 쌓여있었다.중앙에는 털가죽이 뭉쳐져 얼음과는 안 어울리게 폭신해보였다.그 드래곤이 그곳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서,무슨 일이지?여기로 드래곤이 오다니.희귀한 일이군."
"크...크릉...."
"인간의 말로 해도 괜찮다.나도 어느정도는 알아들으니까."
"저...그럼..."
인간의 말로 하기로 마음먹기만 했을 뿐인데 인간의 말이 드래곤의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무슨 일로 이 산간지방까지 온거냐?"
"인간계에서 떠도는 소문을 듣고 여기로 왔습니다.드래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선...이 곳에 온 인간은 아무도 살아돌아오지 못했다면서......"
"그건 사실이야."
"그렇다면 그들이 못 돌아간 것은 역시...?"
"내가 한 짓이 아니다.이 상층은 엄청나게 춥기 때문에 여기로 오다가 죽은 인간들이다.여기는 매일 눈이 오기때문에 인간이 죽어도 그 위에 눈이 쌓이면서 아무것도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지.종종 눈사태가 일어나 시체들이 아래로 밀려가기도 하지만.그래도 용케 계곡까지 온 녀석들은 계곡 아래로 내려오다가 떨어져서 죽거나 하지."
"그럼 여기까지 온 사람은 아무도...?"
"아니,한 명 있었다.그렇지만 그 녀석도 역시 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였지만 살아있었다.그 녀석만큼은 구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구해줬지.여기로 데려와서 약초로 몸을 치료해줬다."
"누구였는데요,그 인간은?"
"사실은...연약해보이는 소녀였다."
"소녀가 여기까지...?!그런 연약한 몸을 이끌고선 이런 강추위를......."
"그러게말이다.그 아이는 잠시 후게 깨어났지.내가 드래곤의 모습으로 있었는데도 그 녀석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더구나."

"그럼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됬나요?"
"글쎄,그 녀석은 내가 드래곤이니까 자신을 죽여줄거라고 생각하고 찾아왔었지.부모님 둘은 불치병으로 거의 돌아가신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자신은 더이상 버티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고 죽어도 명예롭게 드래곤에게 죽겠다...였을까나."
"그 아이는,살아있는건가요?"
"그런거 몰라.내가 치료해주고선 부모님의 병을 치료할만한 약을 주었으니까.돌아가서 뭐 어떻게든 하고있겠지."
그러고서는 짐쪽으로 가서 뒤적거리더니 그 큰 발로 조리된 음식을 꺼내어 건네줬다.
"이걸 먹거라."
"이게...뭔가요...?"
"그건 약초를 섞은 산간음식이다.내가 개발해낸 음식이지.산간지방에서만 유일하게 나는 신비의 풀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약.그 둘을 합치면 꽤 맛있는 음식이 된다."
나는 그 풀때기 음식을 한 입 먹어보았다.그랬더니 뭐랄까,맛도 있고 건강해진 기분이랄까.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지?"
"네?그런 건 아까......."
"아니,내가 원하는 대답은 네가 여기서 뭘 하고싶냐는거다.이 산간지방에 온 이유가 나에게서 뭘 얻기 위해서라든가 그런 거겠지.아무 이유없이 소문을 확인하겠다고 여기로 오는 자가 어디있나."
"...음......."
"정말 그런 마음으로 여길 온건가?"
"지금 결정했습니다.전 야생에서 살고싶어요.스마트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건 아마 제가 야생에서 살며 배우고 다시 드래곤의 세계로 들어가길 바란 것 같아요.전 그대로 할거에요."
"...역시 그런가.그럼 가르쳐주지."
그러면서 다시 짐쪽으로 가서 웬 책을 가지고 왔다.
"이것은 드래곤의 언어로 된 책.이걸 읽어보거라.그리고 드래곤의 언어를 배워라.참,그리고 위에 놔둔 짐도 챙겨와라."
나는 그 말대로 짐을 가져와서 두고 책을 열심히 읽었다.하루,이틀,사흘...
"그래서,이제는 드래곤 언어도 능숙하구나."
"응,빙."
그의 이름은 빙.아니,그건 사실 부르라고 말한 별칭이다.빙은 원래 이름따윈 없으니,그저 툰드라 드래곤일 뿐이니까 이름을 맘대로 부르라고했다.그래서 나는 드래곤 언어로 된 책을 뒤적거리며 그의 이름을 생각해보았다.그러다가 발견한 단어.제대로 읽지는 못했지만 '빙'이라고 써져있는 그 단어가 왜인지 어울려보였기 때문일까.애초부터 그 글자가 빙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지금 보면 그 이름의 뜻은 "방패".
'어쩌면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골라버렸을까.'
하고 몇번이고 중얼거렸다.그렇지만 빙이라는 뜻이 뭔지 알면서도 별말이 없는 걸 보니 어쩌면 마음에 들어하는지도...?어쨌든 한 달도 안되서 드래곤의 언어를 다 깨우치고 그를 따라가서 사냥이나 약초채집을 배웠다.여러가지 지식을 알고나니 조금 더 자란 느낌이다.
•
●
○
어느새에 시간은 많이 지나있었다.나는 이제 날개도 돋아났고 몸집도 커졌다.앞발도 튼튼해지고 추위에 적응하느라 털도 두터워졌다.빙은 나에게 사냥이나 약초수집을 시키며 웬만해서는 동굴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나는 계곡 위에서 인간마을을 보게되었다.마을은 꼭 자그마한 초 위에 촛불이 타오르는것 같았다.그리고 산 위로 누군가가 올라오고있었다.그것도 드래곤의 모습으로.그리고 나는 그게 누구인지를 알고있었다.
"스마트 할아버지...!"
나는 순식간에 그에게 달려가서 부축했다.그래서 동굴로 어찌저찌 데려갔을때 빙은 어느새인가 자리를 뜨고 없었다.나는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안돼,이대로는 할아버지가 죽어버려.할아버지가...날 사랑해주셨던 할아버지가...!'
그래서 있는대로 약초를 빼서 먹일 만한 음식을 만들어 입에 넣어드렸다.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얼마 안 지나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났다.
"...여기는."
"할아버지,오랜만이야.몸은 어때?"
스마트 할아버지의 눈이 풀려있는것을 보고 나는 그가 항상 붙잡고 있던 무언가를 놓아버렸다는것을 깨달았다.
"...너냐,아가."
"네,저에요,할아버지."
"날개도 돋고 흘륭하게 자랐구나."
할아버지께서 희미하게 웃으셨다.
"그 모습을 꼭 마지막으로 보고싶었다."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 밖으로 향하시는것이 아닌가.
"잠...잠시만,할아버지!아직 몸이 약해서 잘 못 돌아다니......."
"작별이다,아들같은 녀석아."
나는 그가 계곡을 떠나는 모습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보았다.꼭 생애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 같아서였을까.할아버지가 나간지 얼마 안되어 빙이 돌아왔다.그의 발톱과 털 구석구석에 피가 묻어있었다.
"빙,웬 피야?"
"아,이거?주변에 먹이가 있길래 좀 사냥할려고 했어.그런데 그렇게 심각한 상처를 입고도 도망가다니.꽤나 큰 놈이었는데."
"...어떤 놈이었는데?"
"커다란 야큐미(저자 : 야큐미는 계곡에서 사는 동물로 털로 뒤덮여있으며 움직임이 둔해 밖에는 잘 나돌아다니지않고 눈 속에서 숨어지내는 산간지방의 곰류.'야큐미'는 드래곤 언어로 "눈덩이"라는 뜻이다.)였어."
"...응.그렇겠지?"
"왜,누가 오거나 왔다가기라도 한거냐?"
"아니,딱히."
그래도 왠지모르게,할아버지가 그렇게 죽어버릴리가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왜 자꾸 빙에게 죽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건지.그 작별인사가 꽤나 인상적이였기에.......
"아,빙.배고프다.그럼 오늘은 아무것도 사냥 못했으니 비축분 먹자."
"그러자꾸나."
"맛있겠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는 이유는 뭘까.
•
●
○
"뭐야?"
"뭐냐?"
"아니,저기 인간계 마을이 폐허가 된 것 같아서."
"그게 걱정인거냐?"
"...응.예전에 저 마을이 불타는 걸 봤거든.무엇보다......"
"무엇보다?"
"...내가 저기서 왔거든."
"그렇냐,꼬맹이."
"자자,빨리 사냥이나 가자고!"
"그러지."
이 날을 그냥 지나치지 말았어야했는데.
•
●
○
"빙!큰일났어!"
"뭐냐?"
"인간들 무리가...!인간들 무리가 올라오고있어!"
"무슨 이유로 인간이."
"어...어떻하지?이 추운 곳을 당당하게 올라오고 심지어 무기까지."
"꼬맹이,뒤로 빠져있어."
빙이 나에게 동굴 안에 있으라고 명령했다.그래서 나는 동굴 안에서 불안에 휩싸여 어슬렁거리고있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그리고 마주한것은 빙이 인간을 죽이는 것.아니,정확히 말하면 숨결을 내뱉는 것이였을까.그렇게 다 얼어버린 그들을 죄다 눕혀서 눈에 묻어버리는것.
처음으로 빙이 무서워졌다.사실 그때 도망갔다고 했던 야큐미도 스마트 할아버지가 맞지 않을까 라고,무심코 생각해버렸다.그렇게 그를 향한 경계는 시작되었다.
--------------
하늬님 뭐 하세요....처음엔 한 화로 끝낼려했는데 어느새에 그게 늘고 늘어서 그냥 분량을 두 개로 쪼개기로했습니다.
그래서 하늬님 변종네시는요 어이 어이 주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