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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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악! 저리 가,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쾅 하고 나오는 충격파에 성기사단이 나가 떨어지고 날아가고 하는 등 온갖 대 난리가 일어난 한 가운데를 지나, 더 폴른이 빈민가의 안으로 들어선다. 물갈퀴 귀 여인에게 손을 한번 들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그가 살금살금 마을 중앙부로 향한다.
"그런데, 저 사람은 왜 마을에 들어가는 거에요? 낙원 사람이잖아요."
"저 사람은 투사야. 그것도 가장 적극적이고 용맹한. 비록 칼을 쓰지는 않지만 그는 충분한 혼란을 만들어서 낙원에 시선이 가지 않게 만들지."
"그렇구나...멋져요. 저도 언젠간 투사가 될 수 있을까요?"
자신보다 키가 한 뼘은 작은 로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알타이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네 능력을 잘 갈고 닦는다면 말이야. 맞아. 사람들이 네 존재를 잊게 해야겠지."
그가 이단적이라고들 하는, 하지만 사실 흑마법을 배척하는 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그것일 뿐인 수인을 조용히 맺어 마법을 사용한다. 으레 그렇듯 주문도 빼놓지 않는다.
"데크라스, 노마르, 샤우그너."
검은 빛이 사람들의 몸 속으로 흡수되자 그들이 즉시 기절한다. 그것을 본 로디아가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띄우고 그에게 질문 공세를 시작한다. 로디아는 그가 복장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착하고 친절한 사람임을 깨달은 후부터 그에게서 잘 떨어지려 들지 않았고 그에게는 활발하고 열려있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게 무슨 주문이에요?"
"순서대로 기절, 기억 소각, 그리고 거짓의 고리."
"거짓의 고리는 처음 들어요. 어떤 주문인가요?"
"이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 말한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될꺼야. 그 사제 하나와...보고로 들은 광신도가 타겟이지."
"광신도는 누구에요?"
"...이 일에 대한 나머지는 집에 가서 듣자."
둘의 걸음이 사박사박, 숲 안쪽으로 이어진다. 로디아의 질문도 쭉 이어진다. 이게 뭐에요, 저게 뭐에요 하는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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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터지는 여러 물건들과 사람들에 놀란 사람들은,
한 길로 들어왔다가는 일곱 길로 뿔뿔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일하게 온전한 고대신룡 석상 위에서 깔깔거리며 웃는 더 폴른. 그리고 여지없이 나타나는 메르헨의 일행. 그가 메르헨을 보고 반갑다고 인사를 건넨다.
"앗. 귀여운 애다! 안녕?"
"나한테 말 붙일 생각도 하지 마, 더러운 이단자!"
"더...더러운 이단자...?"
충격을 심하게 받은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더 폴른과, 여전히 굳어버린 표정인 메르헨이 대조적이다.
"이....이젠 너까지도 날...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너마저도? 아...아아...그런 거구나. 메르헨. 너까지도. 너마저도. 너도..."
모든 것을 잃고, 곧 무너져버릴 듯 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더 폴른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이내 곧 정신나간 웃음으로 광기를 지어냈다.
"아...아하...아하하...하...아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실망이야, 메르헨 가스타. 자기는 부모를 태워먹은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입을 나불대지? 이해를 못하겠군 그래! 하하하하하하!!"
"너희들의 더러운 간교인건 다 알고 있으니까 입 닥쳐!"
"더러운 간교라고? 나를 더럽다고 여기고 있었구나. 그렇구나...그렇다면 말이야. 어떻게 하면 정결해질 수 있는지...알...긴 뭘 알아! 선민 의식°에 젖어있는 너 따위 광신도가!"
(°선민 의식 : 자신들이 유일신에게 선택받았다고 믿는 의식. 여기서 의식은 신에게 바치는 제사 같은게 아니고 무엇을 의식하다 할때 그 의식.)
그러던 더 폴른이 주변을 살펴보더니 누군가 하나가 빠져 있음을 알아챈다.
"총알 막던 잘 생긴 파란 머리는 어디 갔어? 나갔어? 광신도가 싫다고 했나보다. 맞지? 그 사람은 최소한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여서 마음에 들었는데. 아- 아쉽다. 하지만 인연이 있을꺼야-"
"별 미X놈 다 보겠네."
"흐응...너무 그러지 말아달라고. 사랑하는 사제씨."
교태라도 부리는 듯 한 모습을 보이던 더 폴른이 갑작스레 총을 발사했다. 총알은 클라이드의 발 바로 앞에 떨어져 그를 놀라게 했다. 그 틈새를 노리고 쏜 두번째 총알은, 메르헨이 검을 들어 막아냈다.
"괜찮으세요?"
"그...그래. 띨띨아."
"아아- 메르헨 너무해! 바보야! 사랑의 총알을 쐈는데 왜 못 받게 하는거야-!"
어린 아이의 투정마냥 말하면서도 다시 총알을 연이어 발사하는 그 모습에서는 순수한 광기 그 이상도 이하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랑하니까 죽이는 거 뿐이야! 방해하지 말란 말이야!"
"난 너 싫거든? 꺼져 좀!"
"그러지 말아줘- 앗, 맞다. 넌 꺼져! 난 정신이 멀쩡해서 광신도랑은 안놀아~"
메르헨을 보고 손사래를 치던 그가 갑자기 셀린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그녀를 홱 나꿔챈다. 그러고는 한다는 소리가-
"아델이랑 안놀고 여기서 뭐 해? 영웅놀이? 여기서 광신도랑 놀지 말구 나랑 낙원 가서 더 재밌게 놀자. 응? 아델이랑, 용도 널 기다리고 있어. 이름이...이그나이트라고 했던가...?"
이그나이트. 아마 그 레드 와이번일 것이다.
"나는...그 사람 몰라요..."
"거어짓말- 니가 그 여동생이잖아! 네가 그렇게 예쁘다고 얼마나 자랑질을 해대...악!"
말을 하다 말고 소리를 지른 그의 팔에는, 신성력의 창이 꽂혀 있다. 그가 뽑아낼 틈도 없이 흩어진 창은 그에게 클라이드의 예상보다는 좀 얕은 상처를 만들어냈고, 연이어 그에게 쏜 화살이 얼굴을 스치며 상처들을 만들어냈다. 기묘하게도, 낙인 자리는 전부 피한 채.
"너...!"
그러자 이어지는 총알 세례. 매섭게 작열하는 공격에 드문드문 폭탄 같은 것 까지 마구 섞여 들어오니 정신이 사라질 지경이었던 그가 마지막 술수를 생각해 냈고, 메르헨에게 뭐라고 속삭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디론가 빠르게 뛰어가버렸다. 그러자 고개를 갸웃하는 더 폴른.
"쟤 왜 가?"
"알 바...없어!"
타락자에게 응징의 창이 날아들었다.
◆
난파선 근처에 자리잡은 낡은 오두막...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미안한 판잣집이 한 채,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나무 하나. 그림 속의 풍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곳은 엄연히 테오도르가 몸을 숨기고 있는 장소이다. 메르헨이 광신도가 되어버린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적인 생각이 뇌리를 파고들어서는 입 밖으로까지 튀어나와 그에게 각인을 남긴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라는 절망적인 말은 차마 내뱉고 싶지 않았는지 그가 꾸욱 눌러 담듯 입을 다문다. 그 적막을 꿰뚫고 들어오는, 쾅 하고 문 열리는 소리, 그리고 문이 바닥과 입을 격렬하게 맞추는 소리.
"에헴! 대륙 최고위 클래스의 용병, 테마리 드 아렌디엘님이 결투를 신청하러...! 아, 맞다. 팔 하나 날아갔지. 페널티 배틀이라도 해야 하나...?"
"테마리, 몇번을 말하지만 우린 회유하러 온 거지, 싸우러 온 게 아니다."
"못 끝낸 건 끝장을 봐야 되겠거든-!"
그가 둘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 테마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로 친히 행차한 건 다름이 아니고..."
에헴 하는 헛기침 소리를 낸 그녀가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그를 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내 동료가 돼라!"
"뭐?"
"...테마리. 어제 교양서적을 읽고 잔다더니, 뭘 읽은 거냐."
"해적이 되고싶은 소년의 파란만장한 모험 이야기!"
"분명 만화책이고, 그림하고 아는 단어만 봤겠지?"
그녀가 시선을 회피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를 질타하는 그.
"제발 살바도르한테 가서 글 좀 배우라고 말하지 않았나. 언제까지 제 동생이 보내는 편지 하나를 못 읽어서 나한테 부탁하는거냐. 그리고..."
"아...아무튼 간에! 너, 우리랑 함께할 생각 없냐?"
"없어."
"팔! 그 팔 공짜로 해줄테니까!"
"싫다. 적과 손잡을 생각 없어."
"그럼 뭐, 돈이라도 원해? 아님 명예? 권력? 자유?"
"아니. 분명히 싫다고 말했을텐데."
"으아아-! 넌 대체 원하는게 뭐야!"
"네가 이 자리에서 사라지는 거지. 뭐겠어? 내 팔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인 주제에!"
"아이, 그건, 저...몰라! 난 말주변은 없고 주먹주변만 있으니까, 파르신 니가 알아서 해!"
한숨을 푹 내쉰 그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드러난 부분인 오른쪽 눈에서는 그녀를 향한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나타났다. 그러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연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우리가 너와 함께 하고자 하는 일은 단지, 광신도가 된 그를 막는 일 뿐이야. 그 일이 끝나면, 널 보내줄 생각이다만. 저 녀석이 말하려던 것도 그거야. 용병 생활의 폐해로, 말주변이라는게 사라져 버렸거든."
"야! 누가 나 까라고 너랑 쟤랑 대화시킨줄 알아?!"
옆에서 테마리가 소리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소리를 배경음악 취급하며 이야기를 계속하는 그. 자신이 대하고 있는 사내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린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
응징의 창을 정통으로 맞은 타락자가 어두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품에서 꺼낸 장치를 보자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 경계태세를 취한다. 그가 셀린을 다시 낚아채자 사람들은 더더욱 경계했고, 그가 장치에 겁먹은 사람들에게서 서서히 물러선다.
"맥박 폭탄이야. 그 녀석이 하나 보여준 바로는, 위력이 굉장하더라고? 내가 죽으면, 이 신성해빠진 왕국 하나 날려버리는 건 일도 아니지! 지도를 다시 그려야 될 수도 있겠네. 한번 죽여보든지. 응? 떼어내도 같은 효과니까 그럴 생각 꿈에도 하지 말고!"
무시무시한 위협에 다들 움찔거리던 찰나, 메르헨이 빠르게 나섰다. 그 행동을 일으킨 동기는 아마 이단을 향한 뿌리깊은 증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였다. 맥박 폭탄이라고 주장한 물건을 빠르게 품 안에 넣은 그가 총을 쏘려 했지만 검날은 그보다 조금 더 빨랐다. 다리에 부상을 입히는 데에 성공한 뒤 그를 없애려는 찰나, 클라이드가 뛰어와서는 그를 붙들어 제지했다.
"띨띨아, 너네 집터까지 다 날려먹고 싶냐?"
"상관 없다구요. 저 녀석을 없애기 전까진!"
"셀린도 같이 살덩어리가 될텐데?"
"이거 놔요!"
그를 뿌리치고 달려간 그가, 셀린을 붙들고 있던 그의 오른팔을 노리고 검을 들었다. 오른쪽, 어깨와 팔이 서로 만나는 지점을 빠르게 노리고 들어온 검은, 그의 오른팔을 그에게서 완전히 분리시켜 버렸다. 당황한 그는,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
"크아아아악! 광신도 자식이!"
남은 왼팔에 붙은 손으로, 총을 들고 있던 그가 그것을 다시 발사한다. 레넬이 다시 나서서 총알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이번에야말로 그는 완전히 죽을지도 몰랐었다.
"고마워, 레넬!"
"크릉."
팔을 잃은 그가 불리하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뛰어 도망친다. 총과 팔을 회수할 생각조차 못한채. 피가 흘러 길을 만들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추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엘피스를 통째로 날려버릴 무시무시한 맥박 폭탄을 장착한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그의 말이 전적으로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
"셀린, 좀 괜찮냐?"
"...네."
"근데 크노첸은?"
"열심히 훈련중이에요. 잠깐 맡겨뒀거든요."
"그렇구나. 잘 해봐. 그건 그렇고 저 총은 어쩐대냐. 피하고, 팔도 그렇고."
"이단이 가지고 있던 총이니까, 기증하는게 어때요? 저건 승리의 증거품이 될거에요."
"체. 니 멋대로 해라."
그가 총을 휙 던져서 넘겨준다. 총을 받아든 메르헨이 그것을 쥐고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데르사 박물관.
유타칸 최대의 박물관이다. 사실 유일한 박물관이긴 하지만, 들어와 보면 최대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게 될테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 곳에 전시된 물건으로 말하자면, 20년 전에 존재했던 전설의 테이머가 남긴 기록들. 그가 유리아와 함께 해독했다는 석판, 그 테이머의 모습, 그의 영광스러운 행적, 그리고 그를 도왔던 엘리시움과 메탈타워의 영웅들, 그리고 감히 그와 아모르께 대적했던 검은 로브가 사용했던 기계들, 검은 로브가 아모르를 반하고 쌓았던 악덕, 그리고 결정적인 한 가지-
악마.
물론 진짜 악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생히 살아있었다. 신성한 장막이라고 주장되는, 단순한 마력 철창 안에서. 그의 눈 밑에는 금속으로 된, 귀와 목 뒤까지 가려버리는 가면이 씌여 있었고, 그 가면은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목에 남겨진 것은 H자의 낙인, 붕대를 감은 것 처럼 보이는 상의는 사실 지퍼로 여닫는 구조였다. 가슴 아래만은 맨살이었고, 거기에 연결된 짐승의 다리를 닮은 하반신 또한 그저 옷에 불과했다. 악마의 날개로 보이는 팔 또한 옷에 불과했다. 간혹 무어라 웅얼거리는 것으로 들리는 소리는, 사실 울부짖음이었다. 소리를 줄이고, 불명확하게 울리는 소리로 들리도록 설계된 가면이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이마에서부터 돋아난 붉은 뿔은, 마치 억지로 박은 듯 가까이에서 보면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눈에 띄었다. 그의 눈은 분노라기보단 자포자기, 절망으로 차 있었고, 늘 무어라 웅얼거렸지만 가면은 그 소리를 집어삼켜버렸다.
그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비전마법 연구자로써 추앙받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이 곳에 들어온 건, 그저 비전마법이 흑마법이라는 터무니없는, 대사제의 주장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를 추앙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돌아섰고 그는 순식간에 흑마법사가 되었다. 비전 마법이란 본디, 순수한 마력 그 자체를 쓰는 마법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같은 감방을 쓰던, 그간의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나와 같은 동네에서 함께 지내던 전 검은 로브의 일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잘 맞는 말인지 그가 되새겨본다. 카데스를 순수한 악이라고 생각하던 시선도 바뀌게 한 말이었다. 이미 죽어버린 눈빛이었지만 그 안에는 깊은 고뇌가 담겨 있었다.
"25년 전, 아니, 30년 전 과거에, 그들이 우리를 그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융화될 수 있는, 그래서 서로 지식을 나누고, 돕고, 함께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도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거야. 그들의 마을에, 그들의 축제에, 그들의 신전에 우리와 우리의 신도 함께였더라면...다들 거부했던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끝없는 삶의 고리를 이어가고, 끝없이 박해받고 끝없이 죽임당하고 끝없이 악마가 되고 끝없이 증오받고 끝없이 사냥당하고 끝없이 평화를 위해 제단에 올려지고.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우로보로스의 악몽에서 우리는 끝없이. 끝없이 희생당했어. 이건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질 거고 이건 그들이 우리가 다루는 힘이라고 말하는 끝없는 악몽이 되어서 그들을 덮칠거야. 그렇게 계속 끝없는 악몽이. 끝없는, 끝없는, 끝없는..."
끝없는 악몽. 그것이 맞는지도 몰랐다. 이 사회는 끝없는 악몽이었고 끝없이 제물을 요구하는 탐욕스러운 괴물이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는 그들은,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탐사하던 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이것저것 발견하게 되었는데, 수상한 자들은 무조건 배척하는 그들에 의해 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몸 안에 흐르는 비전 마력은 멀쩡했지만 이 마력 장벽을 뚫고 나올 정도는 못 되었다. 이 장벽은, 그를 가두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장벽이라고 들었던 것도 같다.
"나가고, 나가고 싶어..."
웅얼대는 소리가 가면 속에서만 맴돌며 박물관의 적막함을 황폐함으로 바꿔가는 동안, 밖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그 소리에 반응한 그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한 금발의 소년, 이상하게 생긴 총을 들고 오는 모습이 훨씬 전에 있던 큰 소란과 연관이 있으리라고 생각될 뿐이다. 그래봤자 내가 나갈 수 없는, 악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저 악마는 왜 계속 여기 보관중인 거에요? 추하고 기분나쁜데."
악마. 언제나와 같은 수식어에 고개를 떨궜다. 이 곳의 주민들은 모두 썩었다. 썩어 문드러져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였다. 차라리 인간 흉내를 내는 다른 무언가라고 하고만 싶었다. 그 인파가 모두 빠져나가고 남은 곳에서, 또 다른 한 소년이 장벽 근처로 다가오고는 꿇어앉아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말라비틀어진 몸 위에 훨씬 큰 후드를 걸친, 갈색 머리의 소년.
"나가고 싶어?"
그 말에 남은 기운을 모두 쥐어짜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소년이 조용히 뭐라 속삭이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장벽 안에 공간의 통로 같은 것이 생겨났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고개만 갸웃거리자 그 소년이 나직이 속삭이며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띄워냈다.
"빨리 안 가면 통로 닫힌다?"
기다시피 해서 통로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어딘가에 낙인을 받은, 다정함이 남아있는 사람들. 그들이 나를 부축해서 데려간 곳은 뭔가가 잔뜩 있는 방이었다. 허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판단해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악마가 사라졌다.
그 말 하나가 이토록 거대한 공포를 불렀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박물관은 설명에 급급하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그들'의 짓이 되었다.
메르헨에 의해서였다.
자신이 정의인 줄 알고 있는 동심에 의해서였다.
꿈같은 환상에 사로잡힌 소년에 의해서였다.
"하. 재밌네."
자기 부모의 원수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가
군중 틈에 멀쩡히 서 있는 것도 모르고 계속 연설을 해댔다.
"이렇게 나쁜 놈이 되어가는 건가."
그가 바닥에 꽤 크게 뭐라고 적어두고는 사라진다.
그가 있었던 자리엔, 지금은 단지
'위선자들' 이라고 쓰여 있다.
◇
"요놈 봐라. 거 용감한 놈이네."
클라이드가 페인트로 쓰여진 '위선자들'이라는 글씨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보고를 하러 다급히 달려온 성기사들에 의해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간다.
"저...그 놈이 침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은 했는데...그게 정문입니다. 정문."
"뭔 미...크흠, 흠. 그게 무슨 소리야?"
"지키던 사람들도 막 쓰러져 있고...얘기를 좀 들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따라 향한 장소는 꽤나 처참했다. 벽에 가있는 금은 분명히 그 곳에 꽤 큰 충격이 가해졌음을 암시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뱉은 말은 더 큰 충격을 전했다.
"가...갑자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충격파가 크게 나가더라구요. 그래서..."
"고대신룡이 디콘 손잡고 검은로브 경전 외우면서 라테아 가는 소리하고 있네."
"아니...전 사실일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뭐?"
메르헨이 내어놓은 의외인 답변에 클라이드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들의 기술력을 봤잖아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선량한 사람의 정신과 육체마저 개조해버리는 그들이라면...!"
"..."
클라이드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셀린이 옆에서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고 있다. 그러다가는 바닥에 남은 발자국을 가리킨다. 이게 뭐냐고 물으며. 작은 맨발바닥 자국과 그것보단 조금 큰, 개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평발을 갖다가 찍어놓은 듯 보이는 자국이 희망의 숲 방향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죽 따라간 발자국은 이리저리,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6갈래길이라도 만난 듯이. 그마저도 중간에 끊기거나 사라진 모습이어서 그들의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놨지만, 결국 그들은 그 흔적이 순백의 마을로 향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흔적을 남긴, 검은 로브 복장의 사내도.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나병환자와 장애인들이 둘러쳐진 듯 서있었다.
"사제 나부랭이가 왜 여기까지 들어와! 꺼져!"
"왜, 또 몰살하려고 왔나봐?"
"우리를 그렇게 죽이고 싶으면, 차라리 단체로 사형을 시키라고! 이딴 절벽 마을에서 떨어져 죽게 만들지 말고!"
"저, 저 검은 로브 입은 분은 모, 못 넘겨주니까. 그,그리 알고 꺼,꺼져! 저,저 분이 아니었으면 우, 우린 지, 진작에 죽었을 거야. 저 저분이, 만들어 준 울타리 아니었으면, 여기 주민은, 지, 지금의 반의 반이었을 거야."
"맞아. 검은 로브 착해. 검은 로브 아저씨, 우리들 친구야."
"검은 로브가 우리 부모님이랑 사제들보다 훨씬 조아! 너희 사제들 친구지! 저리 가! 저리 가!"
클라이드가 설명을 위해 입을 한 반 쯤 여는 순간, 그의 얼굴로 우악스러운 주먹이 날아들었다. 아니, 주먹이 아니고 팔꿈치 아래가 사라진 사내의 팔꿈치 즈음 되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네 꿀 바른 혓바닥에 낚일 줄 알았냐, 이 찌꺼기 새끼야! 주둥이 나불대지 말고 꺼져. 마지막 경고다!"
아주 예전에 그들이 보낸 경멸과 혐오가, 증오로 변해 돌아와 그들의 사도를 찌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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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르는 잘 하고 있대?"
"예. 얼마 전, 잠깐의 실전 투입도 해 봤다고 합니다. 더 폴른의 지원 삼아서 말이죠. 결과는 대 성공이라고 하더군요."
"나이스 샷!"
그녀는 원래 자신의 프로젝트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지만, 이번 것만은 성공에 굉장히 기뻐했다. 불확실성이 너무나 큰 프로젝트였기에. 그녀의 옆에는 또 다른 용인이 서 있다. 금속으로 된 날개를 가진, 신비로운 느낌의 소녀.
"용인의 창조자이자 저의 주인이시여. 지나친 기쁨은 몸을 상하게 할 수 있음을 알아두십시오. 카데스님께서도 당신의 충성스러운 사도이신 주인님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메탈윙즈."
"그러고 보니, 로디아에게서 새로운 소식이 왔습니다. 카데스께 적대하는 인간 무리가 보호자의 은신처를 알게 된 모양입니다. 그의 임기응변을 믿어도 될까요?"
"그럼 있지, 아예 그 안에 파괴자를 들이밀어버릴까? 좋은 생각 아냐?"
그러자 메탈윙즈라고 불린 용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확실한 부정이었다.
"오라클의 말에 의하면, 구슬이 저 중 하나가 심판자라고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예언자의 종이 될 존재라고도 하고요. 그것은 아니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마을 안에 있는 자들은 후일 낙원의 주민이 될 것이니 더욱 조심하셔야 합니다."
"오케이. 그럼 그 놈 임기응변에 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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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로브의 지하도시 이름인 '낙원(Paradice)'은 원래 '이상향(■■■■■■)'이라는 이름이 될 예정이었으나 이러면 뭔가 (데이터 말소)일듯 하여 바꾼 것이다.
- 작가 카타스트로프의 설정 노트에서 간신히 발췌.
==========
엘피스는 고대신룡을 숭배하는, 돈 있고 사지 멀쩡함 사람들의 유토피아죠.
그리고 '유토피아(Utopia)'를 의미대로 직역하는 식으로 해석하면 '없는 장소' 가 됩니다. Utos + Topus 해서 그렇다던가 뭐라던가.-
(ㄱ그리고 연휴에도 못 쉬는 직장맨은 웁니다. 따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