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 (2)
김챔프
"..."
녀석은 말이 없었다. 그저 거친 숨을 내쉬며 떨리는 동공으로 둘을 노려볼 뿐이었다.
"아... 혹시 말하기 싫은 거라면 안 해도 돼! 여기도 내가 멋대로 데려온 거고... 해해."
녀석의 시선이 페어리 드래곤을 향해 고정되었다. 거친 숨이 조금 가라앉더니 뾰족하고 붉은 기가 도는(아마 피의 흔적일 것이다) 이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이곳과는 다르다."
"마... 말했다!"
페어리 드래곤은 녀석이 말을 하자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스마트 드래곤은 그를 향해 소란피우지 말라며 잔소리를 했다. 물론 스마트 드래곤 또한 놀란 건 마찬가지지만. 스마트 드래곤은 녀석과 페어리 드래곤을 번갈아보더니 녀석에게 질문을 했다.
"그래, 다른 곳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 말해줄 수 있느냐?"
녀석은 망설이는 듯 싶더니 그 질문에 답을 했다.
"어렵군. 그저 피가 튀는 세계일 뿐이다. 죽이고 죽일 뿐. 드래곤들은 오직 죽이고 살아남기 위해 살고 있다."
"...그래, 어쨌든 이곳과는 다르구나."
페어리 드래곤은 그 말을 무섭게 받아들였는지 표정이 어두워자고 시선을 책장으로 옮겼다. 그러나 곧 무언가를 알아챘는지 녀석에게 다가갔다.
"나 그런 세계는 잘 모르겠지만... 여긴 싸움같은 건 없으니까 안심해도 좋아. 많이 아파보이는데 나으려면 여기 있어야 할 테고. 그런데 계속 너라고 부르면 불편하잖아? 난 페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이름같은 건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계에서 이름을 붙이는 건 무의미하지."
"뭐? 이름은 존재를 알리는 가장 중요한 거야. 꼭 있어야 하는 거라고. 으음... 내가 지어줘도 괜찮을까? 캐롤라인은 어때?"
"어떻게 불리든 상관없다. 나는 존재를 알릴 필요가 없으니까."
"좋아, 그럼 캐롤라인으로 결정이야!"
다시 보니 캐롤라인은 정말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근육질의 몸으로도 충분히 무섭게 느껴지지만 크고작은 흉터들과 정체모를 목걸이, 갈색의 몸에 군데군데 있는 불그스름한 무늬는 마치 튀긴 피가 묻은 것 같았다. 게다가 꼬리 끝의 칼은 하나의 큰 이와 같아서 언제든지 자신을 죽이는 게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진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고, 처음에 자신을 덮치려 한 것도 새로운 세계에 혼란스러워 한 행동이었을 것이라 페이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캐롤라인은 그런 무서운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보고 킁킁대거나 경계하며 폴짝폴짝 뛰는 모습은 살짝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캐롤라인이 이 세계의 드래곤이었다면 좋을 텐데.
"캐롤라인, 그냥 먹어도 돼."
"... 하지만 독이나 폭탄이 심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음식에 그런 걸 넣느냐."
스마트 드래곤이 음식을 한 입 먹었다. 캐롤라인은 그의 행동에 놀란 것 같았다. 캐롤라인의 세계에선 그런 행동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으리라. 캐롤라인은 스마트 드래곤이 먹어도 아무 이상 없다는 걸 확인하자, 조심스럽게 음식을 핥았다. 곧 그것이 맛있다는 것과 자신이 상당히 굶주려 있었다는 것을 깨닫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스마트 드래곤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접시까지 먹을 기세냐며 음식을 더 해야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캐롤라인은 접시를 다섯 번 비우고 나서야 배가 찼다.
"캐롤라인!"
캐롤라인은 페이의 큰 소리에 깜짝 놀라 꼬리의 칼을 세우고 위협 자세를 취했으나, 페이임을 알자 힘을 뺐다.
"밥도 먹었으니까 놀러가... 악!"
스마트 드래곤이 페이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아직 혼란스러울 때다. 겨우 네 소리에 놀라 칼을 들었는데 밖에 나가면 어떻겠냐."
"그치만..."
"당분간은 안 돼. 걘 이 세계에 대해 미리 공부할 필요가 있어."
순간 페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제가 가르쳐도 돼요? 아주머니는 요즘 새로운 연구 때문에 바쁘잖아요!"
"뭐, 네가...? 하지만... 하아, 그래 알았다. 그렇게 하렴."
"정말이죠? 야호!"
지금 당장 시작하자! 페이는 책장에서 책을 몇 권 꺼낸 뒤 다시 한 번 캐롤라인을 불렀다. 이번엔 놀라지 않게 비교적 작은 소리로.
"자, 이게 유타칸 지도야. 네가 쓰려졌던 곳은 여기, 희망의 숲이고!"
캐롤라인은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의 눈을 한 채로 꾸르륵대며 지도를 보았다. 캐롤라인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의 앞발을 몇 번이나 물려 했으나 그러려고 할 때마다 그의 앞발이 멈춰 캐롤라인의 입질 또한 멈추게 하였다.
"그거 알아? 아주 예전엔 인간들도 살았다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그의 수업이 길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