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인은 없다.
Delusion-Broke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병실 안의 천장이었다. 아직 어질어질한 기분에 머리를 쟁쟁하게 울리는 통증을 느끼며 천천히 일어났다.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되어 있었다. …옆에서 알람이 울렸다. 도서관에 갈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 시간이 오후 2시라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분명히 검사받으러 갈 때는 오전 9시 였는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는 노트북과 도서관에서 빌린 의학책, 필기도구를 들고 우선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여전히 식당은 시끄러웠다. 아이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자폐아들, 이중인격자들, 자기방어로 기억을 지운 사람들. 온통 미쳐버린 사람들 뿐 이었다. 이곳에 계속 머무르다가는 나까지 미쳐버릴 것 같아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내 뒤로 검은 긴 그림자가 보였다. 일렁이는 그림자가 내 눈에 들어왔고, 나는 그 그림자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두려움이 일었다.
그것을 직시하는 순간 내가 이어왔던 모든 것이 깨질 것만 같아서. 이 평화로운 일상이 깨어져 버릴 것만 같아서. 애써 뒤에서 따라오는 그림자를 무시하고 식당을 나갔다. 식당은 소란스러웠고 온통 회색으로 보였…. …회색? …나는 순간 의뭉스러움을 느끼며 식당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혼자 앉아서 노트북을 열었고, 그제야 쓰던 소설을 한참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병실에 가서 적으리라 생각하며 소설을 저장했다. 커서가 깜빡거리며 긴 여백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노트북을 덮고는 공책과 의학책을 폈다. 군데군데에 잘못 지워진 것 같은 검은 지우개 자국들이 보였고, 그것은 읽기 힘들 정도로 번져 있었다. 잠시 그 더러운 자국들을 보며 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고, 그 자국을 깔끔히 다 지우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천천히 책을 읽어나갔다.
어느새 서쪽 창문으로 빛이 슬그머니 새어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시계를 보았고, 오후 6시라는 것을 깨닫고는 헐레벌떡 일어나 의학책을 옆에 놔둔 채 노트북을 덮고 필기도구들과 공책을 챙기고는 후다닥 일어났다. 그리고 흐트러져 있는 의학책을 집어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두고는 노트북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도서관의 커다란 유리 창문 바깥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긴 그림자가 보였다. 땅거미가 지는 것일까…. 잠시 그 그림자를, 혹은 땅거미가 지는 것을 응시하고는 곧 몸을 돌려 도서관을 나왔다. 아직 미쳐있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식당을 뒤로하고 매점으로 가 익숙한 듯 빵과 우유를 샀고, 아주머니는 내가 상상 그 빵만 먹는다며 웃어 보이셨다.
…내가 이 빵을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 일단 웃어 보이며 매점을 나오고는 의아함에 빠져 내 손에 들려있는 빵을 가만히 보았다. 햄버거 형 빵이었다. 그리고 초코유유. …병실로 돌아와 갑자기 뚝 떨어진 입맛에 초코우유를 뜯어 마시며 냉장고를 연 순간 빵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곧 내 발밑에 수북이 쌓인 ‘그것들’ 에 가만히 ‘그것들’을 보고는 한기가 오싹 돌았다.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빵을 샀던 걸까. 내가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날부터 유통기한이 표시되어 있는 빵들이 하루마다 하나씩 있었다. 내 손에 들려있던 빵이 툭 떨어져 내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손에 힘이 빠져 덜덜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문득, 내가 이 병원에 왜 있는지 궁금해졌다.
귓가에 웅웅거리는 소리가 차오름과 동시에 귀가 먹먹해졌다. 주위가 심하게 흔들렸다. 세상이 흔들렸다. 거기서, 나만 멀쩡히 서 있었다. …찡-하고 울리는 머리에 비틀거리며 냉장고를 닫고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 세상이 뒤틀렸다. 도서실에서 보았던 긴 땅거미가, 혹은 그림자가 히죽 웃으며 나를 보고는 입을 쩍 벌려 나에게 다가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 어지러운 시야를 뒤로하고 그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A…Abalienation? …시야가 심하게 흔들렸다. 어지럽게 뒤흔들리는 회색 빛깔에 쓰고 있던 안경을 내던졌다. 고통스러운 표정이 절로 지어졌고,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팠다. 머리가 너무나도 아파 터질 것만 같았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하나하나 이름을 못 달아줄 정도로 많은 수의 색이 내 눈을 파고들었다. 검은 그림자는 이내 쩍 벌린 입을 닫고 섬뜩하게 웃었다.
정신착란. 섬망 상태. 발작. 갑자기 욱신거리는 내 머릿속으로 ‘정신착란’ 에 대한 정보가 밀려들어왔다. 당황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헐떡거리는 숨을 가다듬으며 병실을 나가 그 앞에 적힌 내 이름을 보았다. 항상 흐릿하게, 혹은 뿌옇게 보였던 내 병명이 선명하게 내 눈에 들어찼다. ‘정신착란.’ 그 네 글자가 내 눈을 잔인하게 후벼 팠다. 어지러웠다. 모든 것이 흔들렸다. 손이 덜덜 떨리고 어지러울 정도로 눈동자가 세게 흔들렸다. 내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숨겼던 건가, 나는? 이 모든 자극을 나에게로부터? 왜? 어째서? …무슨 이유로! 순간, 주위의 웅성거림이 내 귀에 아득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아-그래. …여긴 정신병원 안 이였지.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는 병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나를 서 있도록 지탱하는 힘은 단 한 줌도 없었다.
나에 대한 자괴감과 동시에 순간 울컥 뭔가 차오른 나는 화가 난 채로 그 그림자의 입 속을 노려보았다. …그림자의 입은 점점 커져갔고, 어느새 나 하나 정도는 그냥 꿀꺽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커졌다. 나는 그 그림자 앞에서 손 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저 밭은 숨을 내뱉으며 그 그림자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에서 엄청나게 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그림자의 입 속은…어둠 밖에 없었다. 심연. 그 자체. …심연, 어둠, 무거움, 견뎌내야 할 것, …악(惡). 머릿속에서 갖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옷으로 꽉꽉 채워진 서랍장에 억지로 옷을 더 쑤셔 넣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왔지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리가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절대 다르게 행동하지 말라. 머릿속에 문득 그런 말이 스쳐 지나갔다가 사라졌다. 어지러운 시야를 뒤로하고 나는 입을 벌리고 있는 그 그림자 속으로 뛰어들었다.
…엄청난 양의 기억들이 내 주위에서 요동쳤다. 내가 잊고 있었던 예전의 기억들. 사람들에게 선망 받는 부모님, 교모세포종의 치료 방법 등 의학책에서 볼 만한, 혹은 그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기억들이 수없이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하은이. 항상 내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어 결국 공부를 포기하고 그 청아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성악을 시작한, 불쌍한 내 동생. 부모님께서 내게 거는 기대는 엄청났다. 물론 그 때문인지 하은이는 상대적으로 부모님의 간섭과 기대를 덜 받았고, 때문에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뭔가 내 몸을 옥죄어 오는 것 같았다. 숨이 턱 막혀왔다. 세게 몸부림쳤지만 더 옥죄어 오는 무언가에 콜록거리며 기침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아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강이 흐르듯 흘러가는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나는 몸부림을 쳤다.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사고회로가 기괴한 마찰음을 울리며 멈춰버렸다.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무언가 이상하게도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느껴지지 않았고, 또 느껴졌다. 확실하게. 나는 가만히 기억들을 바다를 혼란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멈춘 사고회로는 천천히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반대 방향으로. …기억들이 모두 ‘기억’ 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조합되고 분해되고 ‘완성’ 되었다. 그래, 떠올랐다. …‘그 날’ 의 기억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것도 잠시, 이내 너무 아픈 나머지 고통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아니, 내가 일어난 건지 아닌지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 같았다. 평행선상에 놓여 있는,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로봇을 보는 것 마냥 내 몸을 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마치 맹수가 먹이를 포착한 양 기억들이 빠르게 나에게로 다가왔다. 끝이 없는 어둠 속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날.’ 모든 것이 뒤틀린 날. 그 날의 기억이 내 앞에 펼쳐졌다. 불이, 화마가 집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붉은 입에서 열기와 함께 타다 남은 잔해와 재가 토해져 나왔다. 매캐한 연기가 내 눈을 사정없이 후벼 팠고, 뒤이어 따끔거리는 눈가에 천천히 눈을 떴다. 기침이 터져 나왔다. …쓰러져 있었던 걸까. 심하게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숙였다. 주변에 있던 화장실로 가 우선 천에 물을 충분히 적시고 무너져 내리고 있는 목조 바닥을 보았다. …부모님께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상상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안위밖에 걱정되지 않았다.
머리에 문득 동생이 스쳐지나갔다. 잠시 주저하고는 옷을 벗어 물에 적시고 그것을 몸에 두르고 나갔다. 다행히 동생의 방에 다다를 수 있었고, 발로 문을 차 문을 부수고야 동생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문 옆에 뼈대가 반 쯤 타고 있어 쉽게 부술 수 있었다. 방 안에는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서려 있었고, 몇 번이고 젖은 옷으로 방 안에 바람을 불어넣은 후에야 바닥에 엎드려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채 벌벌 떨고 있는 동생이 보였다.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제서야 고개를 든 동생은 안도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동생을 일으켜 세우고는 동생에게 젖은 옷을 같이 둘러 주었다. 화마의 혀가 주위에서 날름거렸지만 다행이 우리는 부서져 가는 나무계단을 발견하고 단번에 달려 내려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쉴 찰나, 건물의 나무 기둥이 기우뚱 하며 나와 동생을 덮쳤다. 그리고 밀려들어오는 또 다른 기억에 나는 욱신거리는 머리를 뒤로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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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 ……오…빠, …현우 오빠!”
누군가 다급하게 의식을 잃을 뻔 했던 나를 흔들었다. 그래, 내 동생 하은이…. …콜록거리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등이 뜨거웠다. 넘어 졌었던가…. 묵직한 것이 나를 내리눌렀다. 점점 시야가 아득해져 왔다. 분명 이 어둠 속에서…저 멀리 빛이 보이는데 하필이면 왜…왜!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천천히 흘러 나왔다. 억울하다는 생각만이 내 머리를 사로잡고 있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였던가. 중학교를 다니며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쳐 한 번에 모두 합격했었다. 그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한 연습을 뿐이었다. 그렇게…16살에 서울대 의대에 원서를 냈고, 합격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었다. 바로 오늘 저녁에.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죽기 전에 주마등처럼 기억이 스쳐지나간다고들 했지만 나는 아무런 것도 느낄 수 없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하은이의 옷자락에 빨리 나가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하은이는 계속 내 옆에 있었다.
“가…라고, 지 하은! …그냥 놔두고 가! 너까지 죽는다고, 왜 말을 안 들어!”
“난 죽어도 괜찮아. 근데…근데 오빠는 모두에게 필요하잖아. 엘리트잖아, 이제 겨우 의대 들어가서 공부할 건데 여기서 죽으면 안 되잖아! …스스로 더 잘 알면서 왜 빠져 나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거야? 빨리 나와!”
아마도 하은이의 손은 지금 온통 화상을 입었을 거다. …불이 붙은 나무 기둥을 움직이는데 손이 무사할 리가 없다. 빠져나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 보지만 바닥은 점점 무너져 가고 등은 점점 더 뜨거움을 넘어서서 화끈거린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방금의 생각들은 그저 ‘만약’ 을 위한 생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억지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들을 움직이며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그 순간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며 바닥이 갈라졌고, 기둥은 지하실로 떨어졌다.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하은이는 멍하게 나와 갈라진 바닥을 번갈아 보았다. 순간 찌르르 하고 온 몸에 퍼지는 고통에 숨을 헉 하고 들이키고는 내뱉었다. 숨이 격하게 차올랐다. 몸을 관통해 내 살을 다 태워버리는 것 같은 고통에 나도 모르게 앙다물고 있는 잇새로 작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주위가 불타는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화끈거리는, 아니 그저 송곳으로 찌르듯 욱신거려 오는 내 등에 주위의 환경을 신경 쓸 수 없었다. 하은이가 나를 부축하여 데리고 가는 듯 몸이 움직여졌지만 나는 그저 가쁜 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은이의 신형이 밑으로 푹 꺼졌다. 그러는 바람에 나도 옆으로 밀려 등이 욱신거리는 와중에도 간신히 무게중심을 부여잡고 밑을 보았다. 처음에는 연기와 함께 피어오르는 먼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잠긴 목소리로 작게 하은이를 불러보았지만 밑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몸을 움직였다. 한걸음, 한걸음 검은 구멍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삼킨 구름. 순간 머리가 욱신거리며 통증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보면 안 된다. 그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먼지가 가라앉아 천천히 무언가 보이는 검은 구멍의 안을, 머리는 보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점점 그곳으로 다가갔다. 심장소리가 내 귀를 덮었다. 쿵-쿵-쿵-.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모든 것이 멈췄다. 시간이 멈췄다. 내 옆에서 타오르는 불 또한 부자연스럽게 멈췄다.
죽은 하은이의 시체. 시체. 죽은 하은이. 이미 죽었어? 하은이는?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고, 곧 내 귀를 뒤덮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날 구하려다 죽은 하은이. 내 동생. 나 따위를 구하려다 죽었어. 죽었어. 죽었어. 나 때문에 죽었어. 죽은 거야? 아니야, 안 죽은 거야. 하은이는 살아 있어. 분명히 내 앞에 다시 나타 날거야. 웃으면서, 활짝 웃으면서. 그럼, 저 하은이는? …환영이야. 환영일 뿐이야. 하은이는 죽지 않았어. 안 죽은 거야. 그렇지 하은아? …안 죽은 거지? 대답 좀 해봐. 제발…제발 대답 좀 하라고, 지 하은! …제발……. 하나뿐인 내 동생. 하나뿐인 내 가족. 내 눈 안에 잔인한 광경이 가득 들어차 내 눈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피를 흘리며, 멍하니 천장을 보고는, 쓰러져 있는, …죽어 있는, 내 동생. 천장이 우지직 소리가 나며 부서졌고, 하은이와 나를 덮쳤다. 무언가 따뜻하고 축축한 것이 내 얼굴에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하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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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거다. 하은이는.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내 머리를 옥죄던 고통도, 주위에서 요동치던 기억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래, ‘그 날’ 하은이는 나를 위해 죽었었다. 난 그것을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절대로. 흔들리는 시야 뒤편으로 빛이 보였다. 천사가 보였다. …하은이였다. 내 몸은 모두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마치…악마 같았다. 천사인 너를 탐욕스레 집어 삼킨 탐식의 악마 벨제부브처럼. 검은 그림자가 내 주위에 맴돌았다. 이제 그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친숙했다. 토할 것 같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색. 그것은 너에게로부터 새어나와 어둠에 쌓인 나를 따뜻하게 감쌌다. 하은이는, 날 원망하지 않는 걸까. 나 때문에 자신이 죽었는데, 왜 이렇게 날…구원해 주는….
그 순간, 하은이가 싱긋 웃었다. 모두 괜찮다는 듯이. 예전처럼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싱긋 웃었지만, 난 느낄 수 있었다. 내 주위를 휘감던 그림자도, 어둠도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내 눈으로 색이 들어찼다. 그리고 난 그제 서야 볼 수 있었다. 화색이 도는 하은이의 볼.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분홍빛 입술. 따뜻하게 날 보고 있는 갈색의 눈. 빛나는 내 동생.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하은이는 사라졌다. 빛 무리를 남기고서, 탐식의 악마인 나에게. 그리고 하은이가 사라지는 순간, 나는 병실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돌아와 있었다. 이질적인 눈은 아직 완전히 색을 다 수용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보였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탓일까. 저 멀리, 떠오르는 태양이 보였다. 태양의 붉은 빛이 내 눈을 자극해왔다. 하지만 나는 시린 눈을 뒤로하고 계속 떠오르는 태양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하은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저 너머에서.
시린 눈을 한번 깜빡거리고 병실 침대에 앉고 나서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쁨? 하지만 내 얼굴은 다시 찌푸려졌다. …아, 이건…외로움이구나. 허탈한 웃음이 차갑게 가라앉은 병실에 맴돌다 사라졌다. 저 멀리에서 태양은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병실 안은 아직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내 이름은 지 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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