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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 없다. -part 1.

0 미르온
  • 조회수396
  • 작성일2014.01.27

...난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내 눈 앞으로 흔들거리는 그림자에 나는 설레설레 손을 휘저었다. 어지러웠다-. 매캐한 연기 냄새와 눈을 비집고 들어오는 따가운 햇빛에 눈을 찌푸렸다.

그래-내 앞에 있는 것은, 인간들이 바라고 바라던 \'신\' 혹은 \'천사\' 라는 존재였다. 그에게서 은은하게 퍼져나오는 빛에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축하고 따뜻한 것이 내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 웅웅거리는 아우성이 내 귓가에서 요동쳤다.

심장 고동소리와 맥박이 뛰는 소리로 가득한 벌판에, 이미 식어버린 싸늘한 내 심장이 고요히 소리를 받아들였다. 나는 \'신\' 을 직시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빛이 반짝였다.

 

 

 

 

결국, 악이란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인 걸까. 세상에는 선한 것들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새삼 웃음이 터져나와 작게 웃었다. 해맑게 웃는 내 모습에 \'신\' 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예의 그 무표정으로 얼굴을 굳혔다.

 

 

 

 

그래, 넌 용사로써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야, \'신\' 씨-.

우리가 무엇을 하든, 상관쓰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그저 악을 끊어내듯...

 

 

 

 

 

잔혹하게, 우리를 죽여.

 

 

 

 

 

내가 고요히 가라앉은 눈으로 \'신\' 혹은 \'구원자\' 혹은 \'용사\' 혹은...\'그\' 를 보았다.

그는 순간 움찔하는 듯 했다. 안다 하더라도,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 뒤에서 검은 날개가 푸드덕거렸다. 인간들이 증오하는, 악마의 날개.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peirasmos.\"

 

 

 

 

악인은 없다.

Delusion

 

 

 

 

 

 

눈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에 살며시 눈을 뜬 나는 바스락 거리는 침대를 뒤로하고 천천히 일어났다. 반쯤 감긴 눈 사이로 찔러오듯 한 주황빛 햇빛에 결국 눈을 한번 비비고서야 완전히 눈을 뜬 나는 별다를 것 없는 병실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순간 느껴진 싸늘한 정적에 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이 느껴졌고, 흠칫한 나는 옆으로 눈을 돌려 곤히 자고 있는 동생을 보아서야 안심이 되어 왔다. 그제야 방 안에 온기가 돌았고, 색색거리듯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내 동생의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동생과 같이 있는 지금만큼은.

 

 

가끔 동생은 말없이 어디론가 가곤 했다. 내가 어디로 가냐고 물으면 그저 눈이 시리도록 미소를 방긋 지어 주고는 몸을 돌려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면 불안감이 증식하여 내 몸을 감쌌지만 그래도 그런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면 동생은 곤히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항상 동생이라는 말을 입속으로 반복하곤 했다. 이름이 기억날 때도 있지만, 잊어버릴 때도 있었기 때문에 내 동생을 지칭하는 ‘동생’ 이라는 말이 항상 내 입에 붙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오전 7시가 다 되었는지, 완전히 떠오른 해가 찬란한 빛을 세상에 흩뿌리고 있었다. 그 온기에 동생도…아, 생각났다. 내 동생의 이름은….

 

 

 

‘하은’ 이었다. 지 하은.

 

 

 

내가 입을 천천히 떼어 하은이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눈을 뜨고는 부스스 일어났다. 하은이는 내가 깨워 줘야 일어나는 잠꾸러기였기에, 난 항상 하은이보다 먼저 일어나 하은이를 깨우곤 했다. 아무래도 예전에 있었던 ‘사고’ 탓이었을까…하은이는 항상 잠이 많았다. 물론 그 사고 전에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나를 깨웠지만 말이다. 그리고…하은이는 ‘그 사고’ 이후로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병원에 있는 의사 선생님들에게 하은이를 데리고 가서 하은이의 실어증을 고쳐 달라고 얘기한 것도 십 수번이지만, 의사 선생님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안 된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그래서 난 꼭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이 병원에 오기 전에는.

 

 

이 병원은 이상했다. 이상한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처럼 놀고 있지를 않나, 괴성을 지르며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을 다치게 하는 사람이 있지를 않나, 계속 먹어서 토할 때 까지 먹는데도 계속 음식을 자기 입 안으로 우겨 넣는 사람이 있지를 않나…아, 나보고 손주라며 항상 무언가를 먹이시는 할머니도 있다. 난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주시는 것을 먹으며 조금씩은 몰래몰래 남겨두고 하은이에게 먹이곤 했다. 하은이는 내가 준 음식이라면 잘 먹었고, 나에게 방긋 웃어 보이기까지 하였다. 오늘도 이 이상한 병원에서의 하루를 보내야겠지. 물론 의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도 열심히 할 테니 나는 하은이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나는 하은이와 함께 병원의 입원실을 나왔다. 오늘따라 병원의 복도가 한산했다. 조금은 섬뜩하고 조금은 으스스한 병원의 복도를 나와 병원 옆 건물에 있는 도서관으로 갔다. 난 이 병원에 오기 전에도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전교 10등 안은 항상 들었으니 말이다. 무려 500명 중에 전교 10등! 난 나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하은이는 나보다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사고’ 이후에 하은이는 나에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동생이었으니까. 하은이가 내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듯 고개를 살며시 내려 보았다. 나는 싱긋 웃으며 하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책을 펼쳤다.

 

 

점심시간 종이 울렸다. 아, 아침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는 헐레벌떡 책을 덮고 필기구를 챙기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바글거렸고, 나는 빨리 밥을 챙기고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하은이는 이상하게 이 병원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았기에 내가 가끔 몰래 챙겨오는 과자나 빵으로 하루를 때웠다. 물론 난 밥도 주었기에 하은이는 투정을 부리면서도 깨작깨작 잘 먹었다. 나는 재빨리 밥을 먹고는 항상 먹는 약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하은이는 내가 이 약을 먹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난 항상 하은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이 약을 먹곤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점심을 먹고 나는 다시 도서관에 박혀 있었다. 의학책을 너무 많이 봐서 머리에 뱅뱅 돌아가는 것이 사람의 인체구조였다. 의사 선생님들께도 의학 관련 책을 들고 가서 여쭤 보곤 했다. 의사 선생님들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물론 의사 선생님들도 모를 만한 책들이 있었기에, 선생님들께서 우물쭈물하시는 것은 내가 직접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곤 했다. 아-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노트를 보니 정신없이 휘갈긴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었기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공부하다 보면 하은이의 실어증을 고칠 수 있을 것 같기에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오늘도 저녁만 되면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환자와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과의 실랑이가 한판 벌어졌다. 물론 대다수의 환자들은 왜 저러냐는 것 같은 의문스러운 눈길을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환자에게 던지곤 했다. 그 환자는, 이곳에 있는 모두는 미쳤다고 하면서 마구 삿대질했고,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하은이가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기에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밥을 먹고 도서관 대신 병실로 올라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회진을 돌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은이가 어디 론가로 갈 시간이기도 하다.

 

 

병실에 올라와 문을 열자 새벽과 똑같은 햇빛이 나를 반겼다. 하지만 새벽보다는 훨씬 중후하고, 무게감 있는 주황빛 햇빛에 나는 조용히 병실의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병실에 혼자 있을 수 있었기에 하은이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해 주곤 하였다. 그리고 하은이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다. 곧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하은이는 예나 다를 바 없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나는 하은이가 대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었지만 하은이는 입을 꾹 다물고 얘기해 주지 않았다. 곧 내가 눈을 잠시 감았다 뜨자, 하은이는 사라져 있었고 밀려오는 불안감을 나는 꾸역꾸역 참아냈다.

 

 

의사 선생님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는 의사 선생님께서 주사를 한 대 놓아 주셨고, 푹 자라는 말씀까지 해 주셨다. 의사 선생님이 나가신 후, 방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싸늘하고, 조용하고, 고독한…. 어느새 잠이 쏟아졌다. 천근만근이라도 된 것 같은 눈꺼풀이 내 눈을 짓눌렀고, 나는 작게 하품을 하고는 침대에 누웠다. 내일도 자고 일어나면 하은이가 내 옆에서 자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는 증식하는 불안감과 함께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어둑어둑해지는 하늘과 천천히 떠오르는 보름달이었다.

 

 

 

 

얼마 후, 병원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조용한 병원 내에서 한 소년이 잠들어 있는 병실 앞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름: 지 현우

나이: 18살

병명: Abalienation(정신착란.)

 

 

 

 

 

눈을 떠 보니 또 다시 아침이 찾아와 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묵직해진 몸에 피곤한 눈을 비비고 반쯤 감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릿한 눈앞에 사람의 형체가 보이는 듯 마는 듯 했지만 너무 피곤했고 또 눈이 이미 거의 다 감긴 탓에 형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자세히 잘 보이지 않았다. 흔들거리는 몸과 끄덕이는 고개를 겨우 진정시킨 후 다시 침대에 누운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싸늘한 정적이었다. 어느새 굳게 닫힌 눈 탓에 온기조차도 느껴지지 않아 심한 불안감이 치솟았지만 무엇인지 잠이 심하게 오는 까닭에 결국 나는 눈을 뜨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잠에 빠졌다. 의식이 무의식의 바다로 빠지기 전, 나는 온 몸으로 느껴지는 싸늘함에 몸서리쳤다.

 

마치 정해진 시간에 시간을 알리는 뻐꾹새 마냥 정확히 오전 9시에 눈이 뜨인 나는 왠지 가벼운 몸 상태에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자도 난 항상 조금씩 피로했었으니까. 별 일은 없었다. 단지 하은이가 조금 늦을 뿐. 일어나 보니 역시 아까 느낀 정적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듯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온기가 하나 없는 방 안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다는 사실에 뱃속이 울렁거렸다. 하…음…그래, 동생이 없다는 사실에 토할 것 같은 메슥거림이 느껴져 옆에 있던 안정제를 먹은 후에야 속이 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안경이 뿌옇게 돼는 것을 느끼며 안경을 벗어 환자복에 대충 닦아냈다. 눈앞이 흐릿한 것이, 역시 내 시력은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눈을 비비적거리고는 흐릿하게 잡힌 하나의 형체에 반가워하며 안경을 급히 썼다.

 

\"동생…아! 하, 하은아!\"

 

\"….\"

 

안경을 쓰자 보이는 또렷한 사람의 형체. 그래, 하은이었다. 내가 반가워하며 하은이를 향해 웃어보이자 하은이는 예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하은이를 안으려 다가갔지만 하은이는 얼굴을 굳히고는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아직 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한 것일까…. 나는 그런 하은이의 행동에 힘없이 팔을 떨구고는 애써 웃어보였다. 하은이도 미안한 듯 웃어보이고는 고개를 돌려 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하은이가 나가고 싶어 해 보였기 때문인지 나는 기꺼이 하은이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잠시 누군가 부르는 듯해 다시 돌아본 병실 안은 언제 그렇냐는 듯이 싸늘해져 있었다. 다시 둘러본 병실은 그저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아져 있고 혼자 심심풀이 삼아 끄적거리는 소설이 왕창 들어있는 노트북 한개가 침대 옆 선반에 놓여져 있었다. 하은이가 가자는 듯 나를 재촉했고, 나는 싱긋 웃으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실 문을 닫고 하은이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병실 안, 바람이 산들산들 불었다. 그러자 노트북 대기화면이 풀리며 흰색 창이 떴다. 그가 쓰다가 멈춘 듯 커서가 깜빡거리며 다음 글자를 향하고 있었다. 스크롤바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으로 보아 그는 오랫동안 이 소설을 쓴 듯 했다. 주인공과 악당과의 액션신이 난무했고, 주인공이 이겼을 때 였다. 주인공은 항상 이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공은 살아났고 절망에 빠지면 그 누구보다도 빨리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모두는 이해하곤 했다. 주인공이니까…. 하지만 현우의 소설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현우의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바로 흔히 우리가 \'악역\' 이라고 생각하던 \'악마\' 였다. 용사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신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 그는 악인일까? …그것은 모를 일이었다. 커서는 그 자리에서 맴돌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련을 내리라\' 라는 말 뒤로 긴 여백이 보였다.

 

\"하은아, 천천히 가!\"

 

저 앞으로 환하게 웃으며 산을 오르는 하은이를 보며 나는 천천히 하은이의 뒤를 따랐다. 이렇게 좋아하는 하은이를 보니 덩달아 나도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며 하은이의 옷깃을 투명하게 비추자 색색의 빛이 연하게 퍼져나갔다. 눈으로 비친 햇빛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고는 다시 눈을 떴다. 내 앞에 하은이가 흐릿하게 비춰졌고, 한두 번 다시 눈을 깜빡이자 모든 것이 선명하게 비춰졌다. 나는 다시 하은이의 뒤를 따르며 병원 뒤의 언덕을 천천히 올라갔다. 언덕 제일 위에 오르자, 원래 병원 자체도 산 위에 있는데다가 더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병원의 정경이 한 눈에 펼쳐졌다. 그 밑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마을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아, 사진기 들고 올 걸….\'

 

그제야 작게 한숨을 쉬며 후회했지만 곧이어 들려온 하은이의 웃음소리에 그런 생각도 사라져버렸다. 하은이는 옛날부터 등산을 좋아했던 지라 일주일에 두, 세 번씩은 꼭 이 나지막한 언덕이나마 오르곤 했다. 그 때문에 운동을 잘 하지 않는 나 또한 운동이 되는 셈 이었기에 나도 군소리 없이 하은이와 함께 산을 올랐다. 한번은 이 산의 정상까지 갔다가 오는 바람에 간호사 선생님들께 꾸지람을 듣기도 했지만 결국 많이 혼나지는 않았다. 의사 선생님들께서도 내가 하은이와 등산을 가는 것에 별 말씀을 안 하신 탓이기도 하다. 나는 가만히 하은이를 지켜보았다. 시리도록 푸른 하은이의 미소에 나도 흐뭇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하은이와 함께 천천히 언덕을 내려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눈앞이 아찔해져 작게 신음소리를 흘리며 옆에 있는 나무를 잡고 허리를 굽혔다.

 

\"윽….\"

 

머릿속이 왕왕거리고 지지직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토할 것 같았다. 눈앞이 아득해지며 매미가 우는 소리만이 귓가에 가득 차올랐다. 눈을 감고 나무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내뱉었다. 주위가 일그러지며 안경이 툭 떨어졌다. 초점이 흐릿한 세계, 무언가 앞에 있는 듯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형체와 함께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아픔에 고개를 세게 내저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머리는 더욱 아파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중얼거리는 소리, 그리고…침묵. 지잉-하는 소리가 내 귀를 꿰뚫었다. 쿵-쿵-하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귀에서도 맥박이 심하게 요동쳤다. 콜록거리며 숨을 쉬려 노력했고,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본 순간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는 파란 하늘이 선명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

.

.

눈을 떠 보니 온통 암흑으로 둘러싸인 곳 이였다. 잠시 가만히 그 어둠 속에 서 있다가 그제야 하은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갑작스런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 불안감은 곧 내 몸을 잠식해갔다. 다리부터 어둠으로 물들어 가는 것에 그것을 보지 않으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어진 내 몸에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순간 저 멀리서 다가오는 빛에 이미 반쯤 사라진, 잠식되어 버린 다리를 질질 끌며 빛을 향해 다가갔다. 어렴풋이 빛 속에 보이는 실루엣에 왠지 모를 끌림이 느껴져 부서지는 다리를 부여잡고 뒤뚱뒤뚱 뛰어갔다. 어느새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귓가에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그 빛에 다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곤두박질 쳐 졌다.

 

 

소리도 나지 않는 공간에 풀썩 쓰러진 나는 다시 갑작스런 빛에 대한 갈망이 들어 팔로 기어가 겨우겨우 빛에 손을 뻗었다. …아까는 그저 빛 무리로 이루어져 있던 실루엣이 천천히 어둠으로 다가왔고,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손을 뻗고 있는 그 사람은…. …천사가 되어 버린 하은이였다. 하은이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은이의 등 뒤에는 커다랗고 빛나는 흰 날개가 달려 있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은이가 천천히 내 손을 향해 자신의 손을 뻗어왔다. 나는 이제 거의 상체밖에 남지 않은 몸으로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빛에 손을 뻗어 하은이와 손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빛이 급속도로 사라지며 하은이의 얼굴에 흉측하게 금이 가기 시작했고, 날개는 꺾여 져 피가 질척이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어둠 속에서 바스라 져 가는 하은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가 하은이의 손을 다시 잡는 순간, 하은이는 투명하게 되어 사라져 버렸다.

.

.

.

.

“시, 싫어, 안돼! 하은아, 하은아!”

 

 

“선생님! 지 현우 환자 시저* 입니다!”

 

 

“…신경안정제랑 수면제 투여해.”

 

 

시저*: 발작

 

지금이라도 침대에서 뛰쳐나가려 몸부림치는 그에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그를 막고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그에게 신경안정제를 억지로 투여했다. 몇 십 분이 흐르도록 울며 하은이의 이름을 부르짖던 그는 어느 순간 천장을 향해 뻗었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손을 툭 떨어트렸다. 그제야 간호사가 다시 그에게 수면제를 투여했고, 계속 ‘하은’ 이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던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다시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포기했다는 듯 다시 악몽 속으로 빠져들었다. 의사들은 웅성거리며 그의 병실을 나왔다. ‘정신착란’ 이라고 뚜렷하게 쓰여 진 글씨가 살아있는 듯 그를 잡아먹고 있었다. 입을 쩍 벌리고 탐욕스레 그를 삼키는 검은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이자 자신의 동생, 하은이였다.

 

 

희미하게 내려오는 은색 달빛이 창문을 통해 현우에게로 내리쬐어졌다. 달빛은 마치 엄마의 손처럼 그의 아픔을 살며시 보듬어 주었다. 눈물과 고통으로 찡그려진 듯 보이는 현우의 얼굴이 곧 천천히 자연스럽게 펴지며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차올랐다. 눈물이 한 줄기 그의 볼에 또르르 흘러내렸다. 곧 손에서 그의 안경이 툭 떨어져 바닥을 굴러다녔다. 현우의 눈이 희미하게 떠졌다가 눈으로 비춰져 오는 달빛을 느끼며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병원에 하나 둘씩 불이 꺼지며 시끌시끌하던 병원도 어느새 조용해졌다. 이내 조용한 병원을 산에서 들려오는 싱그러운 풀벌레 소리가 가득 채웠다. 조용은 곧 고요함으로 바뀌었고, 찌르르르-하는 풀벌레 소리가 천천히 사라지자 적막이 차올랐다. 병원의 불빛에 묻혀 보이지 않던 별빛들이 하늘에 총총 떠올랐다. 나무 위에서 부엉이 소리가 들려왔다. 부엉-부엉-하는 소리가 적막한 병원을 감돌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상현달이 하늘에 빛나고 있었다.

.

.

.

“…선생님, 하은이 어디 갔어요?”

 

 

“음…그러게 말이다, 현우야. …쓰러져 있던 너를 발견했을 때 하은이는 없었던다.”

 

 

“….”

 

 

현우의 눈이 불안감과 걱정, 괴로움으로 차올랐다.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구를 찾는 듯 보였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하은이에 실망하며 고개를 떨구고는 안경을 벗어 환자복으로 세게 닦았다. 그런 현우의 모습을 보며 의사는 종이에 뭔가를 적어 현우에게 주고는 다 괜찮다는 듯 싱긋 웃어보였다. 현우가 다시 안경을 쓰고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의사를 보았고, 의사는 나가보라는 듯 현우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가만히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앉아 있던 현우는 곧 이끌리듯 일어나 의사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진료실을 나갔다. 진료실 문이 드르륵 열렸고, 밖에서 기다리던 누군가가 간호사와 진료실로 들어가며 진료실 문 앞에서 버티고 서 있는 현우를 힐긋 보았다. 그가 문 앞에서 비켜서며 그 사람을 보았지만 현우의 눈에는 그저 움직이는 검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터덜터덜 걸어가 종이를 내밀었고, 예전과 다를 바 없는 형식적인 검사가 시작되었다. 그의 마음속은 울분과 분노로 차올라 있었다. 하은이를 찾고자 하지도 않고 자기에게서 어떻게 돈을 더 뜯어내려고만 하는 병원에 분노가 차올랐고 하은이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는 자신에게 자괴감이 일었다. 그리고 시력검사를 할 즈음, 하은이가 사라진 후 차오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문득 의문이 일었다. 기계적으로 안경을 쓰고 시력검사를 하려던 즈음, 안경에 비친 어딘가에 하은이의 옷이 비춰졌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반가워하며 몸을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그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뭔가에 홀린 듯 방금 전까지 그녀가 서 있었던, 혹은 ‘아마도\' 서 있었던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현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은이에 대한 생각에 앞서, 자신만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것 같은 그녀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말해 주고 싶었다.

.

.

.

.

“…하은아. ……지 하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손을 뻗어 창문의 유리에 손을 얹었다. …서늘한 감각과 함께 손이 저릿해 왔다. 그리고 곧 온 몸이 저릿하게 저려왔다. 눈물이 한 줄기 또르르 흘러내렸다. 저릿한 감각에 고개를 떨구자, 안경의 유리알에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거치적거리는 안경에,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에 거칠게 안경을 벗어 내던졌다. 바닥에 안경이 떨어져 내리는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빛에 고개를 들고 환하게 빛나는 하늘을 보았다. …청명하고 푸르렀다. 눈물이 차오르는 시야를 뒤로하고 유리창 바깥에 비춰 보이는 평화로운 산의 풍경에 왠지 위화감이 들었다. 괴로운 자신과는 달리, 바깥은 화창하고 평화로웠으며, 아름다웠다.

 

 

갑자기 귓가에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먹먹해졌다. 누군가 나를 유리창에서 떼어냈고, 멍해져 있는 나를 침대에 억지로 눕혔다. 나는 억지로 눕혀진 채 빠져나오려고 애쓰며 고개를 돌렸고, 침대 밑에 떨어져 있는 안경에 손을 뻗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꿈에서 봤던 하은이의 손처럼. …눈물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뒤로하고 다시 한 번 손을 쭉 뻗었고, 손은 곧 안경에 다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저 멀리서 달려오는 남자 간호사에 의해 안경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곧이어, 저 멀리서부터 빛이 환하게 새어 들어왔다. 마치 나 혼자만 어둠에 잠겨 있었다는 듯이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병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 눈부심이 사라지자, 차오른 눈물로 뿌옇게 변해져 버린 내 시야에는 선명한 색들이 들어찼다. 항상 내 눈에 보이던 회색빛이 아닌, 하늘에 퍼져 있는 푸른색, 병원 복도에 들어찬, 창문 새로 스며 들어오는 황금빛, 그리고 그 색 속에서, 혼자 회색빛인 하은이. 내 동생, 사랑스런 내 동생. 나는 눈을 깜빡여 차오른 눈물을 흘러내렸다. 곧 선명하게 내 시야에 하은이가 잡혀 있었다. 나는 나를 잡아 누르는 거대한 손을 떨치고 일어서 하은이가 서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아직도 회색빛에 쌓여 있는 내 동생. 잊을 수 없었다. 아니, 잊으면 안 되는 것 이였다. 하은이에게 다다랐을 때는, 다시 사라져 있었다.

 

 

온 세상이 일렁였다. 회색으로, 그리고 눈이 다 감지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수의 색들이 내 눈 안에서 요동쳤다. 나는 색색의 어지러운 감각을 느끼며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얼굴에 씌워지는 안경과 회색으로 다시 들어차는 세상이었다. 그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를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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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 제한이 있나 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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