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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아이

38 [Lefream]
  • 조회수706
  • 작성일2019.10.15

서준은 어디를 가던 중간 이상은 하는 아이였다. 음악에도 나쁘지 않은 재능을 보였고 운동도 곧잘 해내는 편이었다. 공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모든 게 최고의 교육과 피나는 노력의 성과였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 서준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서준이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알게 된 건 지난 금요일. 진로상담 마지막 날이었다. 담임이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을 떄 서준은 파일 맨 밑에 깔린 종이에서 자기 이름을 발견했다. 호기심과 양심 사이에서 고민하던 서준은 곧 종이를 쭉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생년월일, 투병 기록, 특이사항... 서준 자신도 전부 기억하지 모항 무수한 정보들이 흰 종이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곧 담임이 들어와 급히 파일을 덮어야 했지만 그 중에서도 확실히 눈에 들어온 다섯 글자가 있었다.



'시험관 아이'



특이사항 란 마지막에 적혀 있는 짤막한 단어는 서준에게 너무도 익숙한 단어였다. 그야, 당일날 아침에도 시험관 아이의 지능이 평균 대비 어쨌다느니 하는 엄마의 잔소리 섞인 푸념을 듣고 온 터였으니까. 시험관 아이에 대한 엄마의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은 서준에게 줄곧 의문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 의문을 해결하는 건 기대되면서도 조금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고민 속에서 주말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생각은 무척 많았지만 실마리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나온 답이라곤 자신이 태어난 곳을 직접 찾아가 보는 것밖에 없었다. 완벽한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행동을 취하려면 학원 선생님이 고향으로 내려간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서준은 무턱대고 지하철에 올랐다.



사실, 이건 매사에 신중한 서준다운 행동은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병원의 진료 시간부터 알아보고 상담 예약을 했을 것이다. 이번 일은 처음부터 전부 충동적인 짓이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조급함이나 갈망이 서준을 이끌고 있었다.



잔뜩 겁을 먹고 있었지만 병원에 들어서고부터는 일이 수월하게 흘러 갔다. 간호사는 친절하게도 서준의 기록을 찾아 주었고 원장 선생님을 불러 준다며 어딘가로 걸어 나갔다. 잠시 후 연륜이 있어 보이는 의사 한 명이 간호사와 함께 나타났다.



“그래, 네가 서준이니? 1진료실로 들어오렴.”



서준은 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벅참과 기대,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 들었다. 따라 들어간 진료실에서는 익숙한 피톤치드 향이 났다. 몸을 굳게 했던 가득 찬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듯 했다. 서준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머리를 가득 채운 질문을 내뱉었다.



“저는 시험관 아이인가요?”



그 말을 들은 의사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그의 표정은 마치 무언가를 말해 주어도 될지 재고 있는 듯 했다. 그는 곧 표정을 풀며 가벼운 미소를 보였다.



“많이 알고 온 듯 하구나. 거기 앉거라. 궁금증을 조금 풀어 줄 테니.”



서준이 자리에 앉자 그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말을 시작했다.



“우선, 첫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하자면 너는 시험관 아이가 맞다. 정확히는 세계 최초의 유전자 조작 인간이지.”



예상하고 있던 대답이었어도, 상상과 실제가 다가오는 무게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벌써 충격을 받기엔 일렀다. 아직 질문할 것이 하나 있었다.



“저는 어째서 이렇게 태어난 거죠? 엄마는 왜 임신하지 않고 나를 가지려 했나요?”



그 말을 들은 의사의 시선이 흐릿해졌다. 벌써 10년도 넘은 과거인데도 그는 첫 성공의 기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소중히 보관하던 이야기를 꺼내듯, 그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너희 부모는 참 아름다운 한 쌍이었고 나는 학구열과 명예에 눈이 먼 속물이었지. 그들은 아이를 가짐으로 자신들의 아름다움이 망가지는 걸 두려워했단다. 아이를 가지는 10달이라는 기간이 자신들의 삶에 치명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지. 부끄럽지만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었고. 너에게는 미안하구나. 염치 없는 말일수도 있지만, 그때는 그들도 나도 경험 없는 초보였으니까.”



뻔뻔히 거짓을 말해 주었으면 마음껏 화내고 원망할 생각이었는데, 사과부터 들어 버리니 도무지 할 말이 없었다. 서준은 힘없이 인사하고는 진료실을 나왔다.



그때부터는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돌아왔다. 고민을 해결하러 간 곳인데 고민은 덩치만 불려 돌아왔다. 서준은 가슴 속에 무언가 응어리진 기분이었다. 그동안 받아 온 사랑이 전부 거짓이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졌다. 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보는 하늘은 정말 예뻤다. 평소에 걷던 땅과 고작 몇 미터 차이인데도 훨씬 하늘에 가까워진 듯 했다. 그리고 그 감동과 벅참을 느끼는 건 서준뿐만이 아니었다.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서준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옥상에는 캔버스 뒤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있었다. 



“너 거기서 뭐 하냐?”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서준은 놀라 뒷걸음질쳤다. 말을 건 사람은 평소에 말도 섞지 않았던 반 친구 수빈이었다.



평소였다면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갔을 서준이지만 오늘만큼은 고민을 들어 줄 상대가 필요했다. 서준은 쌓여 온 이야기들을 전부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기나긴 이야기가 쏟아져나오는 동안, 수빈은 별 반응 없이 서준의 말을 들었다. 말을 전부 마쳤을 때는, 둘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너도 시험관 아이였구나.”



수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도 그래, 다만 나는 실패한 아이지. 그 덕에 면역력은 언제나 갓난아이 수준이었고. 항상 잔병치레를 수없이 했지. 나도 죽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야...”



수빈은 들고 있던 붓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어떻게 태어났건, 어떻게 살건, 다 하늘 밑에 사는 미물인데. 나 하나 죽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더라고. 그래서 시작했지. 내 죽음을 슬퍼해줄 사람 만드는 거. 그 첫 단계가 나를 먼저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거였고.“



한참 이야기하던 수빈은 시계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너도 어서 들어가 봐.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수빈이 떠난 후에도 서준은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수빈이가 저렇게 속 깊은 아이인지 몰랐다. 돌이켜 보면 참 많은 것들을 몰라보고 지나쳤던 것 같다.



휴대폰에는 엄마의 부재중이 수없이 찍혀 있었다. 서준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서준이니? 뭐 하다 이제 전화해. 네가 좋아하는 부대찌개 해뒀으니 어서 들어와.“



감추려고 애쓴 기색이 역력했지만 엄마의 목소리엔 작은 떨림이 있었다. 많이 초조했다는 건 굳이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힘들 때 같이 하늘 봐줄 사람 하나 있으면, 고생하고 집에 돌아가 먹을 부대찌개 한 그릇이면, 어떻게 태어났든 살 만할 수도 있겠네. 서준은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어느새 붉게 노을진 하늘이 서준을 포근하게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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