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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들리지 않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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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란 귀에 들리는 음파를 말한다.
내가 태어나서 제대로 된 '소리'를 느꼈을때에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어느 날, 가족끼리 영화를 보러 나갔을 때에 누나가 내게
사촌누나에게서 받은 자그만한 mp3기기를 자랑하며,
걷고 있던 나를 멈춰 세운후 이어폰을 귀에 꽂아주었다.
처음에는 이어캡이 자꾸 거슬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지만, 어떻게든 우겨넣었다.
ㅡ그 순간
.
.
.
.
.
.
-아..
.
.
.
.
-아아아아아아아아..
.
.
.
.
-아아..!
.
.
.
그것은 환희, 전율, 그 이상 이었다.
무언가 말로 설명할수 없는 짜릿함이 내 꼬리뼈에서부터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
그리고,
내 주위로,
,
...서트,
..콘서트가,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채로,
내 주위를 둘러싸며,
펼쳐졌다.
분명 나는 촌스러웠던 초록색의
네모난 돋보기 안경을 썼음에도,
헛것이 보였다.
강렬한 보라색의 스포트라이트가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갔고,
관중들은 보라색 응원봉을 들고 서있었으며,
먼지 하나 없을것 같은 스테이지 위에는
검은색 타이트한 조끼를 입은 아이돌이
노래하고 있었다.
-난, 분명, 콘서트를 가본적이 없음에도.
'보였다.'
-난, 분명, 돋보기 안경을 꼈을텐데.
'아니, 느꼈다.'
-난, 분명, 비포장 도로를 걷고 있었는데.
'이것이 환희이자 전율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볼수있던
찰나의 시간에 오래 생각하는 독백이,
내게도 되어질 수 있었다.
-아니, 어쩔수 없었다. 그 강렬함은,
나를 자그만한 차원안에 가두어 다른 세상을 보여준것 같으니.
잠깐의 시간동안 내 뇌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정보들의 밀물에
한동안 사고를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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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이어폰을 내게 꽂아준 몇개월 뒤
나도 첫 폴더폰을 가졌다.
그리고, 이어폰과 같이.
-그러나
내가 처음 사용했을 때만큼의 강렬함이 내게 오지 못했다.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고 자식들이 싫어해도
어느순간, 아버지가 어쩔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끊을수 없었던 담배처럼,
난 그 중독성을,
다시,
찾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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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이고 내 똑똑한 머리로는
'버티었다'..가 맞는 표현이리라.
난 핸드폰이 보내주는 일정 이상의 소리 증폭경고를
계속 지켜왔다.
불법으로 다운받았지만, 즐겁게 들었던, 신나는 노래가
가끔은 디지털적인 문제로 자체 소리가 적었을때,
나는 볼륨버튼을 키고 또 켰다.
-탁
-탁.
-탁..
.
.
.
-탁탁탁탁탁...!
몇번을 눌러도 더이상 소리가 켜지지 않았을때,
난 절망감을 느꼈다.
동시에 안도감도 들었다.
'내가 이 절망감을 잊기 위해 한 행동이.'
-현재라는 새싹의 잎을
'나중에 더 큰 절망으로 되돌아 올것을 막았다는 것에.'
-미래라는 나무가 되도록 할 수 있었다는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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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년동안 이어폰을 사용하자,
지구는,
애플과 갤럭시를 낳았다.
동시에 의미했다.
-더 큰 쾌락을.
한 단계 더 높게,
매우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내게 올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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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몸은 아직 중2지만, 내 자의식은 거의 어른 수준에
도달했다고 느꼈을때,
난,
...
.
.
.
ㅡ'제한'을 풀었다.
그렇게 시작된 광란의 파티.
맞벌이이신 부모님이 나가신 후에
소리를 엄청나게 키우고 매트리스위를 방방뛰며
소리를 내질렀다.
'제한'을 '풀었다'는 것은 미쳐버릴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중독성 뿐만 아니라,
내가 소리를 내지름으로써,
작게나마 이 큰 세상에 간섭했을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적인 해방감,
새로운 존재가 된것같은 신기함이 공존하며,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도,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 버릇은 한참을 갔다.
'세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어느날 내가 23살이 되던 해,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술을 질펀하게 마시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난 침대위로 푹 쓰러지며, 그대로 필름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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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다음날 아침,
어머님이 나를 깨우셨다.
뭐라고 말하시는데, 옹알이 하시는것 같았다.
어머니는 화가 나실때 입을 상하좌우로 움직이시며
불편함을 표출하신다.
그래서 내가 어머님에게 미안해 말을 한마디 한순간,
.
.
.
ㅡ소리가..
들리지 않아...
..소리가,
....소리가,
!!
난 어머니를 옆에 세워두고 화장실로 뛰어가서 당장 귀를 씻었다.
어머니가 일부러 물을 귀에 넣지 말라고,
그래서 항상 머리감은 후에 귀지를 파주셨을때 해주셨던 말씀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듯 귀를 물로 씻었다.
나를 쫓아오시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귀를 물로 씻는,
아니 물로 귀를 거의 파낼것만 같은 광기의 행동에,
내 어깨를 잡으시며 입을 여셨다.
'^!@*(&#(!@&*$(!!!!!!'
-...들려,
.
.
.
.
...안들려
.
.
.
.
안들린다고..!!!!!!!!!
ㅡ나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물로 귀를 파내듯이 행동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내 등짝과 뺨에 아픔이 느껴졌다.
새하얀 타일로 덮인 화장실 바닥은,
지금의 나를 보여주듯,
새빨간 피로 군데군데 물들여져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뭐라고 하시는데, 나는 들리지 않아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우는 나를 보시더니, 어딘가로 전화한 후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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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왔다.
의사쌤은 뭐라뭐라 말을 하시는데, 말이 안들려
갖고있던 스마트폰 메모장으로 의사 선생님께 보여주었다.
'소리가 안들려요.'
의사 선생님은 뭔가 괜찮다 라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웃어보이시더니,
옆에 앉아있던 어머니에게 대화를 하시는듯 했다.
어머니와의 대화가 끝났는지, 의사 선생님은 더이상 말을 안하셨다.
-다만,
아까전까지만 해도 웃고 계셨던 표정이
심각하게 바뀌며 턱을 짚고 계시더니 십 몇초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시는듯 했다.
그리고 종이에 뭐라 쓰시더니 내게 보여주셨다.
'잠깐 기다리세요'
ㅡ그 말을 한 의사선생님은 서둘러 진료실을 벗어나갔다.
옆에 있던 한 간호사와 함께,
무언가 쫓기는듯 했는데, 왜 저리 서둘러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갑작스러운 내 병에 대처해주시려는 것인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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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이 나가시고 몇분 뒤에
갑자기 영화에서만 보던 특공대원들이 내게 총구를 겨누었다.
무언가 말을 하는데 들리지가 않았지만,
헬멧너머로 전해지는 무시무시함에 난 벌벌떨며 손을 들었다.
그리고 특공대원이 총구를 겨누며 다가오자,
위압감에 고개를 숙였고,
고개를 숙인 나에게 특공대원의 신발이 보였을때
난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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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니, 무언가 빨간 것으로 덕칠되어져 있는
벽지가 안발라진 평범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여진 방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매우 작았으나, 이곳은 무언가 사연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무서웠다.
ㅡ내가 눈을 뜬것을 알았는지, 내 머리위 천장의 자그만한 전구가 켜졌다.
그리고 cctv같이 생긴것에서 무언가 울렸다.
-알 수 있었다.
비록, 들리지 않더라도.
내용은 몰라서 가만히 있었을 때에, 무언가 소름끼치는 이 방에
문이 있었는지 방역복을 입은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리고 태블릿을 꺼내, 내게 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ㅡ영상이 끝난후,
난 머릿속 나사가 몇개 빠진듯 그 사람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무언가 잘못 밟았는지
온 몸에 전류가 흘러 감전이 되는것을 느꼈을때,
주마등이 오려고 하는듯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고,
난 그인지 그녀인지도 모르는 이에게 달려가려는 것이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고 내가 보는 시야가 갑자기 분할되어
한쪽에서는 내가 달려가는 순간이,
또 다른쪽에서는 주마등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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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처럼 주마등이 흘러가던 한쪽이 꺼지자
분할되었던 시야가 하나로 돌아오며
난 눈을 감고 떠올렸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영상속 내 가족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감전된 것을 느끼며 죽음을 인지해도 모자를 판에,
ㅡ처음 내가 소리를 들었을때의 전율이 들었다.
'하하.. 나.. 또라이 같다.'
상대도 감전을 느끼고도 웃고있는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실소를 내뱉는듯 했다.
ㅡ그러자,
-팍! 이라고 할것만 같은 신호음이 뇌속에서 울리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아..난 소리를 들었다.
하하..
소리를 들었다고!
.
.
하하..
.
.
.
하..
.
.
.
...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