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빌×블본: 남들 할때는 나도 눈치껏 하자.(수정)
글쟁이°
남들 할때는 나도 눈치껏 하자 (1)
거대한 연옥이 대지를 그슬리는 광경에는 그 누구라도 압도되기 마련이다. 거룩한 신도, 고결한 영웅도, 하물며 모두가 입을 모아 저주하는 야수까지도, 강렬한 불길은 집어삼킬 장작을 가리지 않으니까.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두려움을 감추고서 불길을 헤쳐나간다 한들, 끝내 남아있는 것은 한 줌 잿더미에 불과한 육신뿐이다.
아득한 너머에서 일렁이던 불꽃의 열기가 점차 가까워진다. 건물에 건물을 타고 번지는 붉음이 죽음의 도시에 내리깔린 어둠을 거칠게 난도질한다. 깊은 심해를 떠다니는 듯 기묘한 부유감 속에서 그는 눈을 떴다. 마치 수채화에 물을 끼얹은 것만 같은 흐릿하게 늘어진 세상이 그를 반겨온다.
흐린 시야를 비집고, 불길이 넘실댄다. 군데군데가 찢어진 검은 털가죽을 두른 늑대 야수를 매단 목제 십자가를 타고 오르는 불꽃이 바람에 밀려 발광하듯 그에게로 쏟아졌다. 재가 날린다. 혹 조금의 시간이 더 허락되었다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불을 다른 곳으로 흘리는 것도 방법이겠지. 하지만 연약한 껍데기는 시간을 늘일 수 있는 능력도, 신비의 이야기를 입에 담을 재능도 없다. 눈이 읽어낸 흐름을 몸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슨 쓸모가 있는가.
남자는 자신을 덮쳐오는 불길을 맞이했다. 뜨거워. 잔불을 품은 잿가루가 순백의 로브에 그슬림을 만든다. 속에서 달궈진 몸이 비명을 지른다. 직접 맞닫은것이 아님에도 살갗이 타오르는 끔찍한 작열 통이 치민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꿈결을 거니는 것 처럼 아련하던 감각이 현실과 섞인다. 이리저리 번진 세상이 하나로 합쳐진다. 그는 그을림이 곳곳에 남은 로브를 쓸어내렸다. 비단의 부드러운 감촉 사이로 잔재한 미약한 온기가 손가락을 어루만진다.
고통과 함께 돌아온 현실감에도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영원 같은 세월을 지세며 깊은 회랑에 묻혀버린 기역이 단순하게 꿈에서 깨어난다고 떠오를 일은 만무하니까. 아마 그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거친 화마가 인다.
생명이 빠져나간 야수의 껍데기를 게걸스레 집어삼키는 광경과 그것을 보며 환호하는 시민들은 분명 이곳과 어떤 관련도 없는 이방에게는 야만스럽기 그지없을 테다.
"이봐, 거기 교단의 사제님 이런 밤에 무슨 볼일이 있다고 거리를 활보하는 건가. 요즘 밤은 아주 거친데."
물러나 멍하게 불에 휘감겨 타오르는 야수를 바라보던 그는 문득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탁한 자홍색 눈동자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구른다. 시선의 끝에 자리한 것은 뻣뻣한 가죽 코트와 고풍스러운 모자로 머리를 가린 중년의 신사였다.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체 그에게로 다가오는 신사의 손에 얽힌 도끼가 바닥을 긁는다. 도끼날과 깔끔하게 포장된 대로의 바닥이 마찰하며 끼익 거리는 소음이 인다.
"당신은 누구시죠?"
그리고
"이곳은 어디인가요."
영문을 알 수 없는 남자의 질문을 들은 신사의 눈이 날카롭게 찢어지며 그를 훑는다. 서로를 마주하는 시선이 허공에서 얽힌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는 공간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드는 남자의 동공에는 그 무엇도 담겨있지 않았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감정은 물론 마주서 있는 신사조차도.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무저갱이 세월에 풍화된 껍대기를 뒤집어 쓰고 그곳에 서 있었다. 신사의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가 짙어진다.
"...... 오, 실례. 그대의 눈. 진정 멋있군. 이런 썩어가는 도시에도 자네 같은 눈을 보기는 참 힘들지. 하물며 생명이 꺼져 가는 이의 눈동자가 아니라면야."
예컨데 죽어가는 이의 눈 같다는 말일 테다. 그렇다는 건 자신에게도 그네들이 삶의 마지막에 품는 감정이 있다는 것인가. 그럴 리가. 잘 떠올려 보라. 네가 불에 타오를 때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나. 체념이었나? 혹은 공포였나?
글쎄. 잘 기역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체념이나 공포는 아니다. 그런 질척하고 복잡한 것이 아니다. 조금 더 간단한 것.
"처음의 인사는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눈이 멋있던가요? 가지고 싶으시다면 한쪽정도는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만."
"하하, 눈알을 모으는 취미 같은 건 없어서 말이네."
게다가 자네 눈이라면 자다가 오한이 들것 같아. 짧게 덧붙인 굵은 목소리는 어느새 그의 옆에서 흘러왔다.
"저놈, 그리고 저놈"
그는 남자가 불꽃에 휩슬린 십자가를 포함한 곳곳에 새워져 있는 불타는 십자가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희미한 탄식이 신사의 입을 타고 흘러내렸다.
"세릭. 훌륭한 사냥꾼이었지. 사냥에는 빠지지 않고 항상 선두에서 싸웠던 친구야. 그리고 한슨. 세릭의 파트너였어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저놈이 전해주는 무용담은 손에 땀을 쥐게 하지. 웃기지 않는가? 어제까지 마주 인사하고 서로 낄낄대던 놈들을 우리 손으로 썰어버려야 된다는게?"
그러니 교단의 대단하신 사제님.
"그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우리는 계속 착실하게 죽어 나가고 있네. 부탁하지. 제발 늑장부리지 말아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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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늦었어요. 폰이 아작나서 컴터로 글쓰는데 엄청 힘드네요ㅠㅠ 그건 그렇고 이번이 3번째 리멬인가? 하핫...
근데 웃긴게 저도 닼소는 300시간짜리 파릇파릇한 뉴빈데 왜 나한테 헬프를 치는지 참...
+ 주인공 자기소개때 개스코인이라고 적혀저 있네요. 잘못 적은 거에요ㅠㅠ 자동완성 개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