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들은 대부분 미쳐 있다.
강해지겠다고 밤낮으로 발톱을 갈고 닦고, 동족을 먹어 치우며, 멋져 보이고 싶다며 밥도 거르고 금욕하면서 동굴에 틀어박히는 놈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나 정신 나간 짓이냐면.
강해지겠답시고 마을을 습격해 인간을 도살해대는 용도 있고,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라며 온 세상이 불타고 있음에도 둥지에 틀어박혀 관음을 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발톱으로 대지를 가르는 돌아버린 지룡(地龍).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결로 하늘을 얼리는 빙룡(氷龍).
이런 것이 결국 용의 본질이다. 지 맘대로 하는 것.
조금 흥미가 떨어진다고 생떼를 부리는 것은 기본이요, 자신이 정의라며 부르짖는 백룡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백룡이든 악룡이든 어차피 못 배운 어린 아이마냥 생떼를 부려가며 니가 틀렸고 내가 옳다 하는 것은 똑같으니.
됨됨이가 부족한 이가 거대한 힘을 얻어봐야 무엇을 하겠는가.
돌아버린 용이 더 강해지면 뭘 하겠는가?
용의 본능적인 욕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실천하게 된다.
동족 포식에 몰입하는 괴룡들과 도살에 정신 나간 악룡들. 이런 놈들을 죽이기 위해 또 더 광룡들이 늘어가면 그것이 곧 이 빌어먹을 세상이다.
따라서 인간의 문명이 멸망했다는 말의 의미는 정상적인 용들보다 머리가 홱까닥 나가버린, 정신나간 용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용들을 때려 죽이면서 살아왔다.
악룡들의 절대 다수는 당연히 미쳐있었고, 선룡들 사이에도 대가리가 텅텅 빈 정신병자 용들이 꽤 많았다.
결국 용끼리 강함의 대결이란 서로 누가 더 정신이 나가있는지를 겨루고 싸우는 것이다.
나는 진영을 가리지 않으며 "이새낀 정신병이 있구나!" 싶은 놈은 반드시 공격했다.
백룡들 중엔 간혹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멋진 놈들이 있었고,
흑룡들 중엔 종종 스스로의 악을 벗어 던지려는 비범한 놈들이 있었다.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혼돈을 불러 일으키는 용들을 때려죽였다.
그런데도 광룡들이 너무 많은 지금, 인간의 문명이 멸망하려 한다.
멸망을 막으려는 나는, 불사룡(不死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