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축축했고, 조용해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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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는 마른 수건으로 몸에 묻은 습기를 닦아냈다.
묵직해진 수건을 개수대에 짜낸 뒤, 물기가 가장 많이 차오른 벽지를 한 번 쳐다봤다.
이제는 벽에 댈 신문지가 없었다.
노바는 가죽 썩은내가 나는 쇼파에 앉았다.
높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췄다.
라디오를 만질 때 만큼은 신중했다.
조금의 물기라도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유일한 통신수단이 고장나서는 안 되니까.
특정 주파수가 맞춰지자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도시에 남은 유일한 DJ.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게 노바에게는 하루 일과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몇 달 전까지는 작동하던 휴대폰이나 컴퓨터도 이제 더는 작동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라디오 전파만이 유일했다.
노바는 몇달 전, 인터넷이 끊기자 창고에서 비상용 라디오를 꺼내왔다.
다행히 건전지가 들어있었다.
그걸로 노바는 이 조용한 시간들을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다만 잊고 있었던 한 가지 사실은 DJ가 다크라는 사실.
노바는 밤에 잠이 잘 오도록 만드는, 특유의 다정하고 낮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종일 소파에 앉아있었다.
가끔은 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고 물을 치워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라디오 속 다크는 한참을 떠들어댔다.
다크는 이제 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마이크 앞에서 보냈다.
인터넷이 끊긴 요즘 들어서는 더 바빠진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하지.
노바는 창 밖을 내다봤다.
800m에서 1km 떨어진 곳에 높다랗게 솟은 라디오 타워가 보였다.
다크는 그 곳에 있었다.
노바와 다크는 일 년 전, 헤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바가 길에서 뺨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노바가 사람들 몰래 다크의 손등에 입 맞췄을 때, 술 취한 남자가 노바의 얼굴에 손을 댔기 때문이었다.
그걸 맞고도 노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웃으면서 '죄송합니다' 한 마디 하고는 걸었다.
다크는 화를 내면서도 자신의 손을 꼭 부여잡은 노바를 따라 걸었다.
다크는 그 날 집에 가서도 노바의 얼굴을 계속 떠올렸다.
죄송하단 말을 하며 웃었던 그 얼굴을.
그래서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노바를 흔들어 깨웠다.
못 견디겠으니 헤어지자는 말에 노바는 내가 아닌 네가 뺨 맞았으면, 그 때는 너 어쩔거냐고 물었다.
"대체 뭘 못 견디겠다는 거야"
노바는 앓는 소리를 냈다.
다크가 이불을 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나 였어도 널 위해 웃으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했겠지! 그 사실이 너무 화가 난다고. 근데 어디에 화를 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이 화를 못 견디겠어. 나만 화 나?"
그 말에 노바는 맘대로 하라고 했다.
노바는 그 날, 양 손으로 벽에 달린 달력을 찢었다.
다음 달에 쳐놓은 빨간 동그라미가 보였다.
우리의 5주년.
노바는 동그라미가 보이지 않도록 잘게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노바는 다크와 헤어지고 나서 일주일 내내 펑펑 울었다.
5년간 사귀었던 사람이라 그런지 여파가 제법 컸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 뻔했다.
그렇지만 펑펑 우는 것도 딱 일주일 뿐이었다.
그것에 신경쓸 이유가 없을 만큼 세상이 제멋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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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첫 소설...은 아니지만.. 한 번 써봤습니다.
데빌님한테 디엠으로 먼저 보내드리고 어떻냐고 여쭤봤는데 괜찮다고 하셔서...
그리고 데빌님 문체 살짝 빌렸어요.
아직 어떻게 써야 좋을지를 모르겠어서 비슷하게 써도 되냐고 허락 받았습니다..ㅎ
프롤로그라 분량에 힘을 안 줬는데 다음 부터는 좀 더 늘리려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