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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DEVIL 외전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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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261
  • 작성일2023.04.27






대리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업무용 책상 위에 엎드려있는 신의 모습이었다.

신도 잠을 자기는 한다.

하루에 몇 시간, 이런 식이 아니라 몇 달에 한 번 정도라는 차이가 있지만.

간혹 잠들 때가 있었다.



누가 들어올 줄 알고.



대리자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신이 엎드려있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조용히 숨 쉬는 소리가 났다.

대리자는 싸인에 도장까지 잘 찍힌 서류들을 모아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신을 내려다봤다.


퇴근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 정중앙에 큰 소파가 하나 생겨났다.

밑도 끝도 없이 생겨난 회색 소파를 대리자는 가만히 쳐다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자는 척을 하는 거야, 자고 있는 거야.



대리자가 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신이 자연스레 대리자에게 양 팔을 뻗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걸으라는 대리자의 말에 신이 미간을 찌푸렸다.

눈은 여전히 감긴 채였다.



신 : "어차피 나 무게도 없잖아"



그 말에 대리자는 신을 가만히 들어 안았다.

소파까지 데려가 신을 눕힌 뒤, 멀어지려는데 소파 옆에 작은 의자가 쿵 소리를 내며 생겨났다.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건 편리했다.



이 정도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한 번쯤 제 멋대로 살아볼 법도 한데.



대리자는 작은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한 번 폈다.

늘 규율을 지키고, 기브 앤 테이크와 등가교환을 중시하고, 예외를 두지 않는, 대리자의 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신은 소파에 누운 뒤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아 가짜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대리자는 품에서 안경을 꺼내 쓴 뒤, 확인이 덜 된 서류를 꺼내들었다.

일어났을 때 일이 줄어들어있는 게 좋을 테니까.

조용한 방 안에 펜 놀리는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들렸다.


삼십 분 정도 지나자 신이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신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대리자의 안경을 없애버리는 일이었다.

신이 손을 내젓자 안경이 펑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대리자 : "일어나셨습니까?"



대리자의 말을 들은 신이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신 : "업무 중지해. 오늘 일 끝났어, 대리자 이제 퇴근해"



대리자가 미소 지으며 서류를 한 쪽으로 치웠다.



대리자 : "하람아, 많이 피곤했어?"


하람 : "딱히 그런 건 아니었는데"


대리자 : "닭살 돋는 멘트를 세 시간 넘게 들어서 피곤해진 거 아닐까?"



대리자의 말에 신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끄응 소리를 내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안경은 왜 없앴냐는 말에 안경 쓰면 별로야 라며 투덜댔다.

그러다 손가락을 몇 번 움직여 대리자의 얼굴에 안경 몇 종류를 번갈아 씌워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더니 이내 대리자가 원래 쓰던 안경으로 되돌려주었다.

대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신이 미소 지었다.



신 : "됐어. 어쩔 수 없다. 이게 제일 낫네"



신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대리자도 신을 따라 일어났다.

소파와 의자가 단숨에 사라졌다.


신은 다시 업무용 책상으로 가 앉았다.

오늘은 이만 가보라며 대리자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뒤돌아 나가려던 대리자가 문득 몸을 돌려 신을 가만히 쳐다봤다.



대리자 : "오늘 두 사람이 나 이전에 대리자는 누구였냐고 물어보더라"



그 말을 들은 하람이 책상을 치며 웃었다.



하람 : "정말? 그거 진짜 웃긴다"



하람이 책상을 치는 바람에 서류 몇 장이 나풀나풀 날아다녔다.

하람의 손짓 한 번에 서류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하람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줬다.

대리자가 문을 열고 나갔다.

닫히는 문 틈새로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는 대리자를 보며 하람은 한 번 더 웃었다.



하람 : "정말 웃기는 일이야, 네가 최초이자 마지막인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연신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










대리자는 자신의 처음을 떠올렸다.

처음 대리자가 된 순간이 아니라 정말 이 곳에 오게 된 처음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지옥에 있었다.

참 여러 가지 지옥을 돌았다.

하루 종일 미로를 헤매기도 했고, 지옥 불에 들어가 보기도 했고, 오 분에 한 번씩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어보기도 했다.


고통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이 왜 지옥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엄청나게 큰 고통을 지었으니 이런 고통을 주겠지, 그런데 내 죄가 뭐지.



그는 몇 백년간 지옥의 모든 코스를 풀코스 순회공연처럼 도는 내내 그 생각만 했다.

죄가 무엇인지 기억났으면 했다.

죄책감을 느끼고 싶었고 후회도 하고 싶었다.

정말이지 미치도록 뉘우쳐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기억이 하나도 않나.



그는 계속 지옥에 남겨진 채로 살았다.

떠올려보려 애써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 신을 만나게 되기 전 까지는 그랬다.






신은 죄를 뉘우치는 자들과 오랫동안 고통 받은 자들을 면죄해주기 위해 간혹 지옥에 내려오고는 했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면죄부 목록에는 그도 있었다.



신 : "너의 죄가 뭐지?"



신의 물음에 그는 입만 뻐끔거리다 겨우 대답을 해냈다.



대리자 : "기억이 안 나요"



신이 눈썹 한 쪽을 치켜 올렸다.

옆에 서 있던 관할부서의 악마가 서류를 내밀며 외쳤다.



악마 : "이 자는 살아생전 너무 큰 죄를 지어 여기에 왔습니다. 살인이나 마찬가지의 죄입니다"



신이 그를 내려다봤다.

악마가 아무리 외쳐도 그는 기억나는 게 없었다.

살아생전의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신이 한 번 더 물었다.



신 : "너의 죄가 기억나니?"


대리자 : "아니요"



신은 서류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신 : "기억나지도 않는 죄를 참회하는 건 무슨 기분이지?"



그는 대답을 고민했다.

단어를 고르는 그 한참의 시간을 신은 말없이 기다려줬다.



대리자 :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입니다. 빈 방을 가스로 가득 채우는 느낌입니다. 언젠가 불이 붙으면 전부 폭발하겠지만, 그렇지만, 영원히 불은 안 붙고 가스만 채워 넣는 느낌입니다"



그 말에 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리자 : "부질없다는 생각으로 가득한데, 이상하게도 이 부질없는 것에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굉장히 이상한 기분입니다. 죄송하지만 이해 하시겠나요?"



옆에 서 있던 악마가 말투가 건방지다며 타박했지만 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답이 마음에 든다며 그를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신 : "기억하고 싶어?"


대리자 : "네"


신 : "기억나게 해줄까?"


대리자 : "네"


신 : "그래, 대신 이건 특별한 거니까 나중에 대가를 받아야겠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그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마자 그의 머릿속으로 모든 기억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을 정리하는 동안 그는 당혹스러움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의 살아 생전 모든 일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살아왔던 모든 시간들이 기억났다.

하지만 엄청나게 큰 죄는 보이지 않았다.



살인과 맞먹는 죄? 그게 뭐지.



그는 기억을 계속해서 둘러봤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왜 죽었는지를 떠올렸다.

늙어 죽은 게 아니었다.

기억의 가장 마지막 부분을 급하게 펼쳤다.


그제야 모든 게 기억났다.

좋아하면 안 될 용을 좋아하고, 미워해서는 안 될 그 주변 용들을 오랫동안 미워했다.

스스로를 못 견딘 그는 신에게 기도까지 했다.

자신의 죄가 너무 크다며 하루 종일 울었다.


사랑에 미쳐 주변 관계를 다 망치고, 일을 망치고, 사랑하는 용을 위해 범죄까지 저지르며 살아가던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목숨이 끊기는 순간까지 기억나자, 퓨즈가 끊기듯 그의 머릿속에서 기억들이 터져나갔다.

조용히 손을 떠는 그를 내려다보며 신이 빙긋 웃었다.



신 : "네 죄가 뭔지 알겠어?"



그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 : "그럼 네 죄를 말해봐"


대리자 :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죄인가요"


신 : "아니야, 그건 네 진정한 죄가 아니야"



그가 신을 올려다봤다.

신이 허리를 숙여 그의 귀에 입을 가져다댔다.

신이 귓속말로 그의 죄를 알려주었다.



네 멋대로 죗값을 치러버린 게 네 죄야.



신이 잘 알겠냐고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 : "면죄는 물 건너갔네. 나한테 대가를 줘야하니까 앞으로 몇 십 년만 더 여기 있어. 다음에 올 때 보자. 그 때까지 죄를 알게 된 채로 참회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으렴"



그가 말이 없자 신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줬다.



신 : "네가 살아생전 누군가를 사랑한 마음은 죄가 아냐. 마음이 불러낸 선택과 결과에 네 죄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방금 말해준 죄만 속죄해. 부질없는 희망 계속 가지고 살아봐, 알겠지? 누구나 그런 걸 갖고 사는 거야"



신이 뒤돌아 떠나려는 순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신의 손목을 붙잡았다.



대리자 : "당신도 그걸 갖고 있습니까?"


신 : "죄? 아니면 희망?"



그가 순간 머뭇거렸다.

신이 그의 손을 떼어냈다.



신 : "다음에 말해줄게"









그리고 몇 십 년 뒤, 신이 한 번 더 용들을 면죄하러 왔을 때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신이 그 얼굴 기억난다며 웃었다.

웃는 신을 보며 그도 웃었다.



신 : "전에는 계속 죽상이더니. 거 봐, 웃으니까 훨씬 낫네"



신이 고개를 까딱였다.

무릎을 꿇은 채, 앉아있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 : "이제 지옥에서의 생활은 끝났어. 다음으로 뭘 하고 싶어? 환생을 할래, 아니면 일 열심히 해서 천국에 살래? 그것도 아니면 일 더 열심히 해서 내 아래에서 빈둥거리면서 살래"


대리자 : "일 하겠습니다"


신 : "그래? 그럼 천사랑 악마 중에 너를 어디로 넣어야..."


대리자 : "당신 밑에서 일하겠습니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악마들과 다른 용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신 : "내 밑에서 일한다고? 그건 선택지에 없었는데. 그러다 기간 끝나면 내 밑에서 빈둥거리면서 놀건가?"


대리자 : "아니요. 평생 당신 옆에서 일하겠습니다"



신이 손을 턱에 괴더니 생각에 잠겼다.



신 : "그 정도 노동을 주겠다는 건 뭐 받고 싶은 게 있다는 거야?"


대리자 : "대가는 이미 지불되었습니다"



신이 그의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그러더니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신 : "진심이야?"


대리자 : "네. 방금 보신 대로 대가는 이미 지불되었습니다"


신 : "진심으로 너같이 이상한 애랑 평생을 일하라고? 내가 뭣 때문에"


대리자 : "적어도 일은 성실히 하고, 배신도 안 할 테니까...요?"



신의 입에서 흐음 하는 고민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신 : "그 대답은 참 마음에 드네. 좋아. 네 이름이 뭐야"



이름을 듣기 위해 신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가 신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고신 : "고신"


신 : "그럼 이제부터 그 이름은 버려. 오늘부터 새 직책을 줄게. 전에 없던 직책이고, 네가 평생 일하겠다고 했으니 아마 앞으로 다시는 없을 거야"



신이 집어든 서류에 볼펜을 끼적였다.

글자가 지워지고 새로운 글자들이 나열되었다.

그의 얼굴 옆에 있던 이름이 지워지고, 신의 대리자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직책이 곧 이름이라고 신이 중얼거렸다.



신이 대리자에게 서류를 던졌다.

서류를 받아든 대리자가 신의 뒤를 따랐다.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신이 납득한 결정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주구장창 일만 시킬 거라는 말에 대리자가 웃었다.

헤실헤실 웃는 대리자를 보며 신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하람은 모든 개개인에게 있어 유일신이기에 당연히 대리자의 신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리자애게는 유일신이 아닌 유일 그 자체였다.

처음으로 가져본 유일한 희망.

가질 수 없어서 부질없지만 묘하게 희망적인 것.


다음, 이라는 말은 얼마나 두근대는 말인지 모른다.


신이 대리자의 가슴에 손을 얹어 대가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을 때, 대리자는 몇 십 년 전 다음에 말해주겠다며 떠났던 신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음이 있구나.



대리자는 지옥에서 몇 십 년간 신을 기다렸다.

고작 그 몇 십년의 기다림으로 모든 대가가 지불되었다.



매일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던 그에게 신은 다음을 주었고, 희망을 주었고, 미래를 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기는 마음이 너무 크고 따뜻해서 신은 놀라서 손을 황급히 뗐다.

그렇지만 동시에 묘한 희열감을 느껴 고개를 돌린 채 미소를 머금기도 했다.










언젠가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는 대리자를 보던 신이 질문을 던졌다.



신 : "이렇게 평생 노동하면서, 속죄에 대해 생각하는 삶이 뭐가 좋아?"



그 말에 대리자는 웃었다.

저 미소를 평생 보는 것도 재밌겠다 생각해 직책을 멋대로 만들어냈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

죽상보다는 보기 좋았는걸, 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대리자 : "평생 저의 미래와 희망에게 수고할 수 있잖아요. 이렇게 좋은 삶이 또 어딨습니까"


신 : '훨씬 좋은 삶이 얼마나 많은데'



신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리자를 쳐다봤다.

대리자는 여전히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신은 항상 대리자에게 어떠한 말을 읊조렸다.

그 말은 정말로 믿음직해서, 대리자는 가끔 남 몰래 눈물짓고는 했다.



"너는 내 최초의 대리자이자 최후의 대리자야"




































여전히 어느 누구도 대리자의 이름을 몰랐다.



물론



단 한 용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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