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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테 1화

47 Gonta
  • 조회수230
  • 작성일2023.07.15

프롤로그: https://www.dragonvillage.net/novel/25441



완벽했던 영웅의 초라한 뒷모습을, 다 낡아빠진 심장에 망치질을 때려박듯이, 저 먼 과거에서 공포만을 얼굴에 잔뜩 바르고 있었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어설프게 떠오른 달빛처럼 웃어보이던, 친구였던 자의 미소가 아른아른 눈앞에서 맴돈다. 짜증나는 날벌레처럼.

'에즈 벨리알.'
'노엘 리지웰.'

그는 언제나 꿈,환상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꿈은 정말이지 저녁밤의 입술처럼 달콤했다.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은. 찬란할 것이라 믿었던 미래의 진로를 고민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진흙처럼 미련처럼 뇌를 파고들어 잠결을 방해했다. 평화로운 도시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피웠던 환상 속의 그 남자는, 먹구름이 자욱하게 드리운 하늘의 시선 아래에서 사랑했다 믿었던 사람들의 무지비한 발길질을 혈흔과 함께 남겨가며 깨진 이빨 아래 목숨을 핏물에 띄워보냈다. 황폐한 들판에서도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아이들의 고생과 두려움 없는 가녀린 손끝은, 자신과 동등한 존재를 깎아내리려 애쓰고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는 철저하게 짓밟으려 휘두르는 따갑기 그지없는 철퇴가 되었다.
썩은 목재의 한이 서린 의자는 지나친 감성팔이가 불쾌하다는 듯 오늘 유난히 비명을 질렀다. 밖에서는 이와 상반되는 상쾌한 햇살이 어둠을 뚫지 못하고 애꿏은 대리석 바닥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도시 중앙에 위치한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리며 무의미한 하루의 반절이 산마루 너머로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는 이제 나갈 채비를 해야 한다.

'바엘'

그 자는 항상 걸음이 빨라서 언제나 먼저 문 앞에서 이름을 불러대곤 했다. 굳은살이 흉하게 진 손을 뻗자, 바엘을 부르는 목소리는 거짓말처럼 연기 속으로 형체를 숨겼다. 짙어지는 시야를 뚫고 녹이 잔뜩 슨 문고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질리도록 쬐어야 하는 햇빛은 그의 시선 속에서는 그저 빛을 주체 못하고 맘껏 떠벌이는 허풍쟁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숨을 멈춘 문짝의 먼지 쌓인 폐부가 다시 뛰려고 한다. 귓속을 간지럽히는 죽은 나무의 가공된 기침소리를 참으면 허황된 태양 아래 그는 걸어갈 것이다. 존경,동경어린 시선을 가득 받으며. 

1위다, 1위. 정말이야, 1위가 이런 곳에 다 오고... 

그는 직감이 좋았다. 누가 듣는 게 두려운지 자기네들끼리 속삭이는 모습은 도둑고양이를 연상하게 만든다. 그들의 입에서 내려갈 기미를 채 보이지 않는 '1위'란 타이틀은 썩은 진흙에 멋대로 금박을 붙여놓은 꼬리표였을 뿐이었다. 이런 광경을 손놓고 지켜보자니 누군가 위벽을 긁는 듯한 어지러움이 서서히 닥친다. 이제야 좀 벗어나려 했던 허상이 얄궃게도 다시 그의 눈앞에 다가왔다. 그는 오늘도 도망치지 못했다. 그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허상은 진짜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순식간에 사라질 백일몽도, 뇌의 어눌함으로 일어나는 부득이한 조헌병도 아니었다. 허상은 허상으로 살아 돌아왔다. 악착같이 그를 떠나지 않고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무게를 말했다. 허상은 그의 심장을 원하며 닿지 않을 머릿속을 휘저으며 활보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깊은 그늘 속으로 도망치듯 몸을 숨길 때면, 허상은 저 멀리서 그를 지켜본다.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 그 웃음이다. 투명함에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서투른 새벽의 웃음. 단두대 앞에서 죽음을 마지막까지 저항하던...친구였었고, 친구고, 친구가 되었을 자의 웃음이다.

"...에즈"

잠자코 여물던 두 입술이 홀린 듯 떼어진다. 기어들어가는 남짓 소리로 나지막이 뱉은 한 마디는 오랜 친구의 남겨진 이름이었다.
어느새 그의 귀에는 조잡한 말소리 대신, 동굴 속 울음처럼 외쳐지는 심장박동 소리가,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를 원하는 통곡만이 남았다.
심장의 저항이 무색하게 허상은 여전히 그를 바라보았다. 허상의 순수한 입가에 순간 서글픔이 배였다. 그 광경을 넋놓고 지켜보는 저 종탑은 거세게 부는 바람에도 전혀 굴하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새벽이 찾아오길 기다린다. 그는 저 종탑이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라 간혹 생각한다. 장난스러운 허상에도 완벽히 드리우는 햇빛에도  종탑이 받는 불이익은 조금씩 오르는 열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변하지 못했다. 종탑처럼 굳건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허상을 매몰차게 내쫓지도 못하는, 나약한 1위였다.
허상은 그가 빽빽한 일터로 나아가는 동안에도 참견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죄의 무게라던가, 회의론이라던가. 전부 진부하기 짝이 없을 논리였지만 어째서인지 허상의 말 하나하나가 모두 화살촉이 되어 그의 다 헐거워진 뒷모습을 찔렀다. 한여름의 열기를 잠시나마 내쫓아주는 에어컨의 인공적인 차가움에도, 한눈에 봐도 육중한 철문이 서서히 열리는 모습에도 허상은 그의 곁에 항상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가 느껴졌다. 정신의 완강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힘없는 팔다리가 기력을 잃고 무너져가는 꼴이었다. 매일 꿈과 환상같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어두운 폐가 속에서 잿가루와 같이 건강을 스스로 깎아내리던 날의 대가가 이제야 찾아왔으리라 직감했다.
그의 의식이 흐려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허상의 기이한 잔꾀도 아니었고 한여름 더위에 지친 신체가 쓰러져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 신체를 나약하게 뭉개버린 죄질과,항상 자신을 두고 후회만을 일삼았던 업보였다.

허상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미묘한 눈웃음을 띄운 채 똑바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히 새벽 12시를 알리는 종탑의 울음이 지금, 너무 일찍이 들리기 시작했다.
쓰러진 그를 보며 비명을 내지르는 주위의 무능한 행동 대신, 이상이라 믿었던 종탑의 실수와 현실에서 멀리 벗어난 허상의 끔찍한 연회를 흐린 시선으로 힙겹게 지켜보았다.
서서히 눈이 감기며, 오늘 밤 전 지역에 울릴 1위의 입원소식 뉴스를 보며 치를 떨 각오를 하고 있었다. 쓰러져가는 도중에도 체면을 생각하는 꼴이 좋게 보이지 않으리라.
끝없이 달콤하나 결코 삼킬 수 없는 환상들을 만끽하는 그의 귓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며들어왔다.
사랑하는 락테, 나는 너를 잃기 전에 잊고 말았다네.

락테 1화
-불완전함의 신은 종탑에 산다.
앙치의 법서 제 6절 17항, 은빛으로 빛나는 태양 아래 모두가, 육신의 허탈함을 뉘우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리라.
▷그대의 영혼은 신체란 그릇,이성이란 집을 저버릴 각오가 되었는가?

에즈가 죽었다. 당연하게도 그 누구도 알리려는 자 없이 조용히 발밑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온갖 언론들은 1위 앙치의 병동소식만을 공장처럼 찍어내고 있었기에.
그들은 도데체 무엇이 그렇게 궁한지 별 볼 일 없는 소식에도 거짓과 과장을 섞는 불쾌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하여간 도시의 본질을 바꾸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했다. 자신들과 혈연과도 같은 존재를 괴수라 칭하며 닥치는 대로 잡이들이는 도시가 어디 달라지겠는가.
원대하고 평화를 상징한다는 랭킹 시스템 뒤에는 거룩한 혈흔의 길에 끊임없이 발자국을 새겨가는, 이득에 눈이 먼 자들이 모여 있다.
1위 앙치 바엘, 그가 한없이 증오스럽고 구슬프도다. 그가 휘두르는 구속박과 사슬들이 정말 조금의 자비를 담고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비쩍 마른 턱을 짓누르며 끝이 보이지 않는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있지도, 가족과 재산을 뒤로하는 일도, 선명한 의학의 힘에게 불치병 진단이란 천벌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반점은 전자파를 품은 안테나처럼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내 뺨을 뒤덮어간다. 정말 어눌하고 눈치를 팔아먹은 자가 아니라면, 미약한 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 사실이었다. '낭만 있는 삶'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에즈...왜...."

바싹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가뭄에 갈라진 듯한 쉰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나왔다. 탑처럼 웅장히 쌓인 에너지음료 캔들조차 더 이상 나의 신체를 보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었다.
썩을 놈의 1위와 나의 작은 공통점이라 한다면, 죄질을 지은 사실을 명백히 판단하지 못하고 그 꼬리표를 자신에게 돌린다는 점이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을 눈 감고 회피하며
마지막엔 거울 앞에서 자신에게 과거의 일을 담보로 하늘이 찢어지게 고함을 질러댔다. 그것은 결코 옳다 한 일이 아니며 일종의 퇴행과도 같았다.

"나 왔어, 토트"

그녀가 미약한 존재감을 풍기며 다가온 건 한순간이었다. 토카야 '산달폰' 아메너. 축약해서 말하자면 직장 동료이고, 굳이 자세히 말해보자면 앞서 서술했던 나와 똑같은 이라 보면 편할 것이다. 그녀와는 동거인과도 비슷한 관계라 할 수 있겠다. 토카야는 짧은 인삿말을 혀 밖으로 내뱉고는 피로에 찌들에 핏대가 갈라진 두 눈을 이리저리 훑더니, 비쩍 마른 어깨 사이로 끼어둔 서류 봉투를 조심스레 비좁기 그지없는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그 때문에 에너지음료 캔들이 몇 개 굴러떨어졌지만 그 소리만 청량할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 퍽이나 귀찮은 일이었다. 수전증이 심해진 손으로 서류들을 낚아채듯 대강 잡았다. 제일 첫 장, 보기 싫은 회색 빛깔을 빼꼼 내밀은 종이의 위쪽에서 주먹만한 글귀가 눈을 비집고 들어온다.

불완전함의 신은 종탑에 산다.

토카야가 또 터무니없는 미신을 홀린 듯 주워온 모양일 것이라 생각했다. 의외로 비듬이 적은 앞머리를 털었다. 저 꼴보기 싫은 종탑. 하루의 개막과 종막을 상징한다지만 그 속내는 음침하고 역겹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밑을 자세히 읽어본 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래서"

칼립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서서히 비춰지는 건 제 할일을 다한 처형대의 윤곽이었다.

"독방에 지금까지 있던 벨리알이.. 처형되었다는 거냐? 세 군대장과 그 총책임자의 허가 없이 단독으로?"

"네...."

작은 꼬마의 입이 오밀조밀 움직였다.

"그래서 폭동이 일어났던 거라고? 소수의 벨리알 사형반대집단의 주최로?"

칼립스는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베짱이 두둑하다 못해 간이 배밖으로 나왔다고나 할 수 있는 자도 꺼릴 일을 대낮에 벌인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벨리알이 죽었다는 게 더 큰일이었다. 분명히 오늘 아침, 어제 정오에 1위인 앙치 바엘이 쓰러졌다는 기사로 전체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벌인 짓인 게 틀림없었다. 너무나도 밀폐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순간이었기에.

"근데.. 오늘 처형된 건 아니래요"

"뭐?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니? 전부가 아니라도 괜찮으니 말해주렴"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것은 적성에 지지리 맞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를 꺼릴 때가 아니었다.
꼬마의 입에서 비좁게 새어나오는 말에는ㅡ 감식관 몇몇이 말하는 것을 듣기로는 피가 완전히 말라있는 상태고 사후경직이 시작된 지 꽤나 지났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적어도 어제 오전이나 꼭두새벽 쯤이라고 한단다.
그렇다면 이미 벨리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음을 맞은 상태고, 누군가가 이 잔악한 광경을 처형인 것 마냥 이 커다란 광장 한가운데에 전시라도 했다는 것인가?

'아니야... 아직 단정할 순 없어, 정말로 처형을 당한 후에 누군가가 이 사실을 은폐한 건가?'

칼립스는 뒤늦게 수첩을 꺼내 꼬마가 말한 정황들을 휘갈겨 적었다. 평소 반듯하기 짝이 없는 그의 글씨체에 먹칠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유스카가 알면 입에 거품을 물고도 남을 건데.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외부자? 민간인? 벨리알 처형 강경파? 아냐, 공식적인 기관 내의 인물도 배제할 순 없다.
유스카와 세턴은 어젯밤 나와 같이 철야에 시달렸지, 그들은 절대 아니야. 총책임자님은 곧 있을 총재회의 최종 점검을 하셨다.
그렇다면 랭킹의 사냥꾼들이ㅡ'

칼립스의 머릿속이 혼잡하게 굴러갈 참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가까이에 다가왔다. 척 느끼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 겨울처럼 차갑지만 동시에 부드러웠다. 그는 초점이 다 잡히지 않은 눈알을 굴려 다가온 이의 얼굴을 보았다.

"락테 씨...이십니까?"

그는 칼립스의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시장가 거리에 다녀온 참인지 양 손에 장바구니를 든 채로 넋이 나간 듯이 허공을 응시했다.
에즈, 에즈...? 에즈. 에즈. 에ㅡ
그리곤 누군가의 이름을 작게 중얼거리다가,

"정말, 정말 미안해 에즈, 에즈 벨리알, 아니, 에즈 칼리더스트"

조용히 울음을 삼키며 흐느꼈다.

"네가 나를 잊은 줄 알았는데, 나를 증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너는 언제나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으하하!! 으하하하하!!
하하... 하
완전히 미쳤군,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힌 것들이 없어"

유스카는 정신이 나간 듯 소리내며 웃다가 짜증이 휘몰아치듯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반복했다.
그녀의 앞에 놓인 커피는 이미 차게 식은 지 오래였다. 세턴의 잔은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미안하군 세턴, 앞으로 일주일 넘게는 철야만 해야 할 거야. 내가 이 근방에서 제일 좋은 에너지음료를 한 박스 구해 주지"

"하... 필요없을 거라고 여태 생각했는데 말이죠"

세턴의 눈가에는 권태 어린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유스카는 그게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세턴은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긴 아이인데.

"그 신출귀몰한 벨리알이 죽어? 그것도 타살로? 멋지게 처형인 것 마냥 조롱마저 당했군
그 정도 죽음이 안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녀석은 너무 일찍 죽었어. 그놈 아가리에서 뱉어내야 할 말들이 몇 개 인지는 알고나 있나?"

"그래서, 전체회의 소집 대신 저만 이렇게 따로 불러낸 이유가 뭡니까?"

"손님이 왔어."

유스카는 그리 말하곤 뒤쪽 문을 향해 크게 손짓했다. 문은 지금 보니 어느 정도 열린 상태라는 걸 세턴은 눈치챘다.
오래된 나무 문이 징그러운 소음을 내며 활짝 열리자 그곳에서 처음 보는 자가 비틀거리듯이 불안정한 자세로 걸어왔다.

썩은 고목 같군, 세턴은 그 자를 대강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자의 두 눈은 생기를 잃어 가뭄이 든 듯 핏발이 서 이리저리 갈라져 있었으며, 가죽만 붙은 두 뺨이 움푹 들어가 있어 그 자가 어떤 일을 하든 족히 40은 넘어보이는 안색이었다. 그것보다 세턴의 시선을 크게 사로잡은 건 온 몸에 자글자글 퍼져 있는 반점들이었다.
반점들은 서로 이어져 있었고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온 몸을 흉하게 뒤덮고 있었다.

"인사해, 이쪽은 토트, 성씨는 못 알려줘.
친히 나에게 찾아와줬지, 간곡히 보여 드릴 게 있다고.
토트 씨, 그게 뭔지 이제 보여주시겠어요?"

"........"

토트라는 작자는 아무 말 없이 눈알을 굴리더니 곧이어 잿빛 자켓을 입은 품 안에서 적당한 크기의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것을 탁자 위에 천천히 올려놓더니 쥐어짜내듯 한 마디를 건냈다.

"뒷장에 사진이 있습니다.
그것부터 봐주시면 가,감사하겠습니다"

"거절할 이유는 없응께~"

어울리지도 않은 사투리를 농담 삼아 유스카는 봉투를 찢듯이 팍 열어 맨 뒤쪽을 뒤적거렸다.
질이 나쁜 종이를 쓴 탓에 거칠고 얇은 서류들 사이에서 비교적 작고 매끈한 사진을 찾아 망설임 없이 꺼내들었다.

".........."

"세턴, 아까 전에 했던 말, 좀 바꿔도 되나?
완전히 미친 게 아니라, 이놈들 전부 머리통을 갈아끼워도 모자랄 판이네"

쓴웃음을 지으며 유스카는 세턴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그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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