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잠깐, 초월? 지브롤터를 초월시킨다고?"
"초월한 용들에 맞서려면 그것말고 더 방법이 있겠어?"
"하지만 초월..."
"초월을 해도 드래곤은 무사한 거야?"
화면 속에 등장한 루드오어나 브리트라도 멀쩡해 보이지는 않는다.
'루드오어의 피부가..'
신체의 일부 부분들이 기형적으로 성장해 있고, 자아를 잃은 것처럼도 보인다.
"아,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저 녀석들은 프로토타입을 사용했거든."
소녀는 소파에서 박차고 일어나 연구실에 있는 수많은 장치들 중 하나로 달려간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한 상자에서 영롱한 보석을 꺼내보인다.
신비하다.
이질적이면서도 신성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여기, 이건 진짜라구."
초월의 보석.
"부작용도 없을 뿐더러, 저기 있는 가짜들보다는 훨씬 제대로 작동할 거야."
"그럼 지브롤터가 초월을 하면 저기 있는 세 마리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거야?"
"음, 여기서 내가 발견한 되게 신기한 사실이 있는데, -"
소녀가 하는 설명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초월을 한 드래곤들은 종과 무관하게 모두 동등한 능력치를 갖는다고?
"스킬도 다르고 외형도 다른데 능력치가 같다는 게 말이 돼?"
"아 물론, 그런 건 다르지."
"근데 능력치의.. 총합이라고 해야 하나?는 전부 동일할거야."
"근데 이건 제대로 작동하는 초월의 보석을 가정했을 때나 성립하는 계산이니까..."
"음..."
"음, 여기 이걸 쓰면 아마 반쪽짜리인 저것들보다는 훨씬 강하겠지."
종의 한계..가 극복 가능하다고?
이것이야말로 그토록 원했던 것 아닌가.
'정신 차리자. 사적인 욕심을 부리기엔 너무 위험한 힘이야.'
"그럼, 초월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음? 초월을 하면 이길 수 있다고 했지, 초월을 시켜준다 한 적은 없는데?"
?
"너도 한 번 생각해봐. 인생의 역작을 아무 대가도 없이 넘겨줄 순 없잖아."
"저기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화면에서는 전투가 멈춰있다.
'랜스 엘드리안.. 대화를 하고 있는 건가?'
우선은 다행이다.
"그래서?"
맞다.
'애초에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기대하면 안돼.'
"그럼 내가 뭘 하면 그 보석을 줄 수 있어?"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원하는 걸 다 해줄게!"
뭘 제시해야 할까?
"지원! 네 연구에 제한없이 지원해 줄수도 있어!"
"음.. 솔깃한 제안이지만,"
제발.
"안타깝게도 그건 됐고."
"이건 어때? 나한테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랑 얘기를 해서 허락을 받으면 주는 걸로."
"친구? 이런 곳에 누가..."
우선은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다.
'랜스 엘드리안이 언제 다시 학살을 시작할지 몰라.'
"따라와! 소개시켜줄게."
"조금 특이한 친구니까 놀라지는 말고!"
소녀는 미궁같은 연구실을 뚫으며 익숙하게 안내한다.
'이건 뭐지?'
가는 길 곳곳에 용도를 상상하기도 싫은 도구들이 보인다.
가끔씩 멈춰서서 자신의 발명품을 소개할 때마다 빨리 설명을 마치길 기도하며 듣는 수밖에 없다.
"자, 도착! 이쪽으로 나가면 될거야."
'나간다고?'
그러고 보니 다른 '세계'치고는 이 연구실이 다일리가 없다.
'이 밖에 진정한 꿈의 세계가 펼쳐지겠구나.'
지이잉—
소녀가 버튼을 조작하자 거대한 기계음과 함께 둥근 문이 열린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은 지금까지 본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바로 앞에는 잔디 마당이 펼쳐진다.
푸른 생명력이 배어나오는 잔디 사이를 가로지르는 웅장한 계곡.
여러 색을 띄는 밤하늘.
푸른색, 검은색, 보라색이 몽환적인 스펙트럼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지평선 너머에 떠 있는 거대한 달. 하늘의 절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하고 밝다.
빛은 강렬하지 않고 부드럽다.
잔디 너머에 공중에 둥실 떠다니는 섬들이 보인다.
어떤 곳에는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는 성이 있고, 어떤 곳에는 어두운 숲이 있다.
이곳이 꿈의 세계라니..
"어때, 꽤 멋있지 않아?"
써니도 뒤에서 풍경을 음미하고 있다.
어쩌면 이곳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수도.
"꿈의 마당을 너무 멀리 벗어나서는 안돼."
"이곳에도 몬스터들이 살거든."
"그래서 난 거의 작업실에서만 지내."
"언젠간 저 멀리까지도 가보고 싶은데..."
우측으로 거대한 붉은 문 같은 것도 보인다.
'기운이 심상치 않은데.'
"아, 저건.. 좀 위험해. 저쪽은 또 다른 세계라."
또 다른 세계라고?
'도대체 어디까지..'
아차,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네가 말한 그 친구는 어디 있어?"
"조금만 기다려 봐. 곧 올거야."
"마음대로 부를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동안은 좀만 쉬어야 겠다."
소녀는 앞으로 나아가 잔디 속에 털썩 주저앉는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후웅 —
"앗! 뭐, 뭐야!"
무언가가 옆을 스치고 지나갔는데.
"크큭, 이 친구도 겁이 많은데?"
낯설은 목소리.
성별은 구분이 잘 안 간다.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훗, 그러게 말이야."
"꽤 재밌는 손님이야."
써니는 자기가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아까 말한 그 '친구'인가.
"놀랐다면 미안, 친구!"
"놀래킬 마음이... 뭐, 있긴 했지만 이정도는 장난으로 넘어가 주라고!"
어디 있는 거지?
"이대로 대화하는 건 이상하니까 좀 도와줄래, 써니?"
소녀는 미리 준비해 두었는지 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천 쪼가리?'
구멍이 두 개 뚫려있다.
공중에 휙 던지니 무언가가 천을 받아간다.
"아, 이제 좀 됐다! 어때 친구, 잘 보이니?"
허공에 하얀 천이 둥둥 떠다닌다.
눈으로 보이는 구멍이 두 개 있고, 어느새 말을 하는 입까지 생겼다.
"유..령인가?"
이쪽 세계에는 귀신도 존재하나 보군.
"이봐, 아무 유령이 아니라 꿈의 세계 최고 스타, 레브 님이거든!"
"하늘왕국에 있는 그 우울한 망령들과는 다르다고!"
"하늘왕국?"
유타칸만이 세상의 전부였던 채로 살아온 나에게는 짧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정보이다.
'정말 우물 속 개구리는 우리 모두였군.'
"아직 거기까진 모르는구나. 그렇지."
"맞아. 그걸 설명해 주려고 왔어."
"무엇을?"
"이 얘기는 좀 중요한 거라..."
"써니, 자리 좀 비켜줄래?"
"알았어, 알았어. 나중에 알려주기로 약속해!"
써니는 총총 걸어서 연구실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서서히 닫힌다.
레브는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써니, 듣고 있는 거 다 알아~ 나중에 진짜 알려줄게~"
'꽤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인가 보군.'
"쳇, 알았어~ 이번엔 통할 줄 알았는데."
둥근 건물 외부의 스피커에서 써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자, 이제 이야기를 좀 해볼까, 이카루스."
---
"릴리아, 나와 같이 걷자.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이 미친놈이 제정신인가?'
이솔데는 속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 사람들을 이렇게 죽여놓고, 같이 가자고?'
하지만 여기서 섣불리 거절했다간 일방적인 전투가 재개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네가 하려는 게 뭔데, 랜스."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고 결정하겠어."
릴리아 이솔데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를 랜스 엘드리안이 모를 리 없다.
"하하, 역시 릴리아다워. 아직까지도 남들을 위하려고 하는군."
"난 그런 네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
"겉으로는 차갑고 냉철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남들을 위하는.."
"그래, 네 시간 끌기에 장단을 맞춰주지."
"내 계획을 전부 다 설명해 주도록 하겠어."
"그 후에도 네가 함께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때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릴리아는 랜스가 떠드는 와중에도 단 하나만을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 셋을 이길 수 있지?'
'전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건 정말 불가능해.'
'불가능...'
'훗, 프란시스 녀석이 들었다면 또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따지겠지.'
'그렇지만...'
'드디어 스스로에게 안될 건 안된다고 말해줘야 하는 날이 왔어.'
"..그렇게 교육 시설을 중앙화한 이후에 테이머들을 키울 생각이다."
"라피엘 길드의 통치 아래에 유타칸은 완벽한 전투 병기 공장이 될거야."
'제정신이 아니군.'
이솔데는 생각한다.
"그래서 네가 얻는 게 뭔데?"
"무슨 목적으로 유타칸을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거지?"
"좋은 질문이야.. 넌 아직 잘 모르겠지. 다른 세계의 존재를."
"..꿈의 세계를 말하는 거라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어."
"아, 그래, 조금은 아는군. 그런데 그 사실을 아나?"
"꿈의 세계에는 유타칸에 없는, 가치를 매기기도 어려운 자원이 넘쳐나게 많다는 걸."
"지금 유타칸의 드래곤들로는 그곳의 괴물들을 당해내기가 어려워. 하지만 만약 초월을 할 수 있다면-"
"-그땐 두 세계를 모두 지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 끝엔 뭐가 있지?"
"그렇게 해서 얻은 자원과 권력,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하.. 아직도 정의의 사도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니."
"부, 권력, 힘. 그 자체가 목적이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나? 강한 자의 정의가 정의라고."
"네놈같은 녀석들이 지어낸 말이지, 랜스."
-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이솔데는 참아낸다.
아직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된다.
그녀는 마지막 계획을 구상한다.
'이렇게 된 이상, 저 녀석만이라도..'
"후.. 내가 아무리 막으려 해도 넌 멈추지 않겠지, 랜스."
"그리고 인정해. 난 초월한 용들을 막을 힘이 없어."
랜스 엘드리안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정녕 자신이 아는 릴리아 이솔데가 포기를 한다는 말인가?
"좋아, 나도 함께할게."
릴리아 이솔데는 무력감을 실어서 내뱉는다.
"길드장님! 안됩니다!"
세냐. 만난 지 얼마 되지도않은 길드원이다.
어릴 때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네가 웬일로? 무슨 심성의 변화가 있었던 거야, 릴리아?"
랜스는 아직 상대의 속임수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구별을 하지 못하고 있다.
"너와 동의하진 않지만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을 한 것 뿐이야."
"적어도 같은 편이 돼서 최대한 옳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여기서 의미없게 죽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서."
"훗, 그런 거였군. 이길 수 없으니 곁에서 지켜보겠다라..."
"뭐, 그정도는 상관 없지."
"함께하게 된 걸 환영한다, 릴리아 이솔데!"
릴리아는 천천히 랜스 엘드리안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번개고룡은 쓰러져서 전투 불능 상태이다.
다른 길드원들도 싸울 상황이 전혀 아니다.
'해내야 한다. 기회는 한 번뿐.'
"자, 이제 대륙의 모든 최강자들이 내 편에 섰다! 이래도 저항을 할 자가 남아있는가!"
랜스는 앞의 적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지배를 선언한다.
"많이 무뎌졌어, 랜스 엘드리안..."
뒤에서 들리는 릴리아 이솔데의 목소리.
"대륙의 창이라 불리던 것도 어제같은데."
'뭐? 이건 무슨-'
푸욱 —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릴리아 이솔데의 칼이 칼집을 떠나 랜스 엘드리안의 가슴에 박힌다.
"크허, 어..억.. 네가.."
"이만 죽어, 악마."
"넌 더이상 랜스 엘드리안이 아니야."
---
"내가 이카루스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음.. 내가 신이랑 아는 사이거든."
신.
다른 사람이 그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 유령이 신을 어떻게 알고 있지?
"혼란스러울만 해. 알아야 될 건 다 설명해 줄게."
"잠깐잠간, 설명에 앞서서."
"넌 왜 나한테 이 모든 걸 알려주는 거야?"
생각해보니 그렇다.
도대체 왜지?
"써니도 그렇고, 날 도와줄 이유가 전혀 없어보이는데?"
"음.. 그것도 좀 복잡하긴 한데, 쉽게 말하자면 랜스 엘드리안의 최종 계획이 꿈의 세계를 침공하는 것이어서 그래."
"난 꿈의 세계를 수호할 임무도 있거든."
"그리고 넌 랜스 엘드리안을 막으려 하고 있잖아?"
'랜스 엘드리안이 꿈의 세계를..?'
"그리고 난 좀 다른 이유도 있어. 신과 관련된 건데.."
레브라고 불리는 이 정체모를 유령은 이번 생 처음으로 신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신의 정확한 명칭은 유저.
'사용자? 이용자?와 비슷한 개념인가.'
레브에 따르면 신의 능력은 무한하지 않다.
일반적인 유타칸의 사람을 3차원의 존재라 한다면, 한 차원이 온전히 높은 것이 아니라 3.5차원 정도에 위치하는 존재.
"유저"의 가장 대표적인 능력은 세상에 개입을 할 수 있는 힘.
누군가에게 빙의하거나, 누군가를 조종하거나, 과거 어느 시점의 다른 사람으로 환생시키거나.
그리고 신이 직접 빙의한 대상은 테이머로서 고유한 스킬과 여러 드래곤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럼 이 '유저'가.. 날 프란시스의 몸에 환생시킨거야?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 녀석, 정말 재미로 그런 것 같아."
"나도 수많은 유저들을 만나봤지만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거든."
"나조차도 유저에게 크게 간섭할 수는 없어."
"다만 너희보다는 더 자주 만나니까 조금 더 알게 된 것 뿐이지."
"그럼 지금 라피엘이 하고 있는 짓도 유저가 한 거야?"
"나도 처음엔 랜스 엘드리안에 빙의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그건 아니더라고."
"랜스 엘드리안은 이 유저가 등장하기 전부터 흑화한 걸로 알고 있어."
"다만 네가 일종의 나비 효과..를 일으킨 걸수도 있지."
"나비 효과?"
"정말 작은 일들이 예상치 못하게 미래를 크게 바꿔놓는 경우를 말해."
"예를 들어.. 네가 엘드리안가를 어린 나이에 탈출하고 브리트라를 남겨두고 갔다던가.. 그런거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커."
"만약 '유저'가 랜스 엘드리안에 빙의한 게 아니라면 지금은 뭘 하고 있는거야?"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녀석은 '재미'가 목적인 것 같다고.."
"아마 유타칸 대륙, 그리고 꿈의 세계까지 자신의 놀이터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마치 게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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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생은 유타칸 최고 가문의 아들로>를 20화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완결은 에필로그 2화를 포함한 23화에 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남은 회차들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