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 잊은 추억 (2)
“알았다면서, 기억 할거라면서.”
용암이 흐르는 지하에 헬 청장이 그녀의 말을 조용히 들으며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뭐야.”
철창 건너편에는 손과 발이 묶여 있고, 눈이 가려진 상태로 빙하고룡이 바닥에 누워있었다.
“이 상태로는 내가 왔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잖아.”
번개고룡이 흐느끼며 그곳에 주저 앉았다. 그 광경을 헬 청장은 더 이상 지켜보지 못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할 거야?”
“풀어 줘.”
이곳에 오기 전에 빙하고룡은 한 번 더 날뛰었었다. 그곳엔 헬도 피닉스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제압에 문제는 없었으나,
“그건 안돼, 본인이 가장 잘 알면서?”
그녀가 차갑게 식은 왼팔을 잡으며 망설였다.
“제우스놈 귀에 안 들어간걸. 다행으로 여겨. 그리고..”
헬 청장은 번개고룡의 목을 팔로 밀며 벽에 그녀를 밀어붙였다. 번개고룡은 얌전히 듣다가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팔을 잡으려 했지만, 한쪽 팔을 다친 상태에서는 제대로 힘을 내기 어려웠다.
“내가 지금 기어오르는 거 많이 봐주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거야? 그곳에서 다친 게 배틀이여서 천만다행이지 만일 거기서 내 부하들이 죽었으면 어쩔 건데?”
헬 청장이 그녀의 눈을 죽일 듯 응시하며 그녀를 몰아세웠다. 번개고룡의 눈은 항상 생기가 돌아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헬이 말하는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안일한 생각으로 인한 죄책감의 무게는 도저히 고개를 세울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넌 너밖에 생각을 안 하지. 피닉스 그 놈도 참 불쌍해. 이런 놈을 왜 계속 감싸주는 거야?”
“나...나는”
번개고룡이 숨 쉬기 버거운 듯 약간의 쇳소리를 내며 힘겹게 말했다.
“선택하지 마, 그냥 내 말에 복종해. 지금 네 처지를 생각하라고.”
그녀를 땅바닥에 던지며 그녀의 위치를 각인시켜준다. 헬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네 처지를 생각해서 특별히 원래 위치로 복귀는 시켜줄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아니, 우린 이곳에 남지 않아.”
“...?!”
고대신룡이 헬에 앞에 나타나며 검 손잡이 부분으로 그녀를 밀쳐 번개고룡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린다. 헬이 구역질하며 벽에 처박힌다.
“고대신룡..?”
고대신룡이 쓰러져 있는 번개고룡과 갇혀있는 빙하고룡을 번갈아 쳐다보고 서는 빛의 검을 꺼내 철장들을 잘라낸다.
“뭐 하는 거야! 미친 거냐!?”
“가만히 있어, 제대로 해결할 힘도 없으면.”
신성한 빛을 내는 고대신룡의 칼이 그녀의 턱 끝을 향했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갑자기 와서는 해결할 수 있다는 듯한 투로 말하는 그가 그녀의 입장으로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하…. 다 죽어가길래 고쳐놨더니.”
“멈추십쇼.”
헬 청장이 능력을 쓰려고 했지만 금오 경감이 나타나 그들을 멈춘다.
“금오! ”
반가운 듯 손을 들지만, 그는 고대신룡이 아닌 헬의 손을 묶으며 제지한다.
“......이거 뭐 하자는 거야?”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금오 경감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마치 이게 맞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너. 진짜로?”
“고대신룡, 찌르십쇼”
“어..! 야!? 진짜로?”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린다. 배신의 당혹감과 함께 죽음의 공포가 잠시 느껴졌었다. 하지만 고대신룡의 칼끝은 금오를 제외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고대신룡은 헬 청장이 아닌, 빙하고룡을 향해 겨누었다.
‘절망을, 어둠을 베라. 그건 비유 따위가 아니었어.’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힘의 근원은 암흑에 저항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고대신룡....?”
힘 없는 번개고룡의 목소리에 잠시 흔들렸다.
몇 번을 되뇌어 보아도 의심은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도록 해준 건 다름 아닌 그 힘을 가장 잘 아는 드래곤이었다.
“믿어줘, 번개고룡. 내가 반드시 되돌려 놓을게.”
고대신룡은 확신을 하며 웃음을 보이고 고개를 돌려 빙하고룡을 바라보았다. 칼 손잡이를 쥐며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보였던 그 끔찍한 기운 향해 빛의 검을 찔러넣었다.
빙하고룡 몸속에서는 피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건 피가 아니었다. 새카맣고 축축한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더니 빛에 의해 타오르며 증발했다.
“....그런 거였어?”
모든 것을 깨달은 듯이 헬청장이 금오의 실을 끊어내며 말한다.
“오해….”
그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받아들인 것 같았다. 고대신룡이 안심하며 빛의 검을 집어넣으려고 했으나.
“로 끝나면 안되겠지? 싹 다 엎드려, 뒤지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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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고룡 정화 작업 끝. 이제 한 곳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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