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 잊을 수 없는 추억 (3)
그들은 하늘의 신전에 들어가고 번개고룡이 걷는 길을 따라 조용히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 거야?”
고대신룡이 빙하고룡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빙하고룡이 대답해주려는 찰나에 그걸 또 들었는지 번개고룡이 대신 대답했다.
“떠들지 마, 계획은 조금 틀어졌어도 아직. 아무튼 잠자코 따라 오기나 해.”
번개고룡은 약간 까칠하고 날 세워진 반응으로 그들을 대했다.
아까 전.
“근데 번개고룡, 나머지 재료는 다 모은 건가?”
빙하고룡이 하늘의 신전에 들어오자 번개고룡에게 물었다. 번개고룡은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천천히 말했다.
“암흑 물질은 내가, 폭발용액은 고대신룡이 네가 완전무결한 물방울과 안정….”
“내가?”
번개고룡의 손가락이 빙하고룡에서 잠시 떨리기 시작하더니 말을 멈추었다.
그들은 바람의 산맥에서 빙하고룡을 보러 갔다가 그가 폭주하는 바람에 안정 용액과 완전무결한 물방울을 챙긴 적이 없었다.
“.....있어?”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당연히 없지. 그 녀석이 챙겨 가버렸으니까.”
“그 녀석?”
“방울을 이용해 싸우던 드래곤이 있었지. 그 때문에 너희들과 어쩔 수 없는 싸움도 했고.”
“뭐?”
빙하고룡은 폭주했을 당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신경은 조작되어 스스로 원하는 움직임을 낼 순 없었지만, 의식만은 자신만의 것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덕분에 불의 산으로 유인됐을 때까지의 과정을 기억하고 계산할 수 있었다.
“그걸 왜 말 안 했어?”
번개고룡이 눈이 돌변했다.
“그럼 그때 했던 말도 네 의지였다고?”
아.
빙하고룡은 급하게,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건 너희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X 쳐. 지금 내가 듣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번개고룡의 눈이 크게 떨리고 있었다. 빙하고룡은 그때 그녀를 모르는 척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심이 아닌 본인이 위협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었지만 그의 폭주는 불가피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파워와 고대신룡은 부들부들 떨리는 번개고룡을 보며 막아야 할지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번개고룡은 아무 말 없이 한숨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말을 하고서 그녀는 뒤를 돌아 걸어갔다. 아무런 화도 내지 않고서 묵묵히 걸어가는 번개고룡을 보며 그들은 오히려 더 걱정되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말로 단순히 이해할 드래곤은 절대로 아니었다.
번개고룡은 걷다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따라 와, 뒤지기 싫으면.”
“...”
“..넵”
-
똑똑
누군가 그녀 보금자리의 문을 두들겼다.
‘이상하다. 이곳을 직접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는데….’
그녀 또한 이상함을 느끼면서 그 꺼림직함에 문을 쉽게 열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간절한 드래곤들이 이곳을 종종 찾아오지만….’
문 앞에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칠흑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것을 느끼고서 뒤늦게 뒷걸음질 쳐 보지만 붉은 손이 문을 꿰뚫고서는 문짝을 그대로 뜯어냈다.
“손님이 왔는데 열어주지 않는 건가?”
G스컬이 섭섭하다는 듯 말을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마감이에요!”
싸울 생각도 수단도 없다.
그녀는 저 흉흉한 기운을 뿜고 있는 해골과 싸움 그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다. 그저 도망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보금자리 뒤편에 있는 숨겨진 비상구를 통해 빠져나갔다.
“귀찮게 하는군.”
G스컬은 재빠르게 그녀의 뒤를 쫓았다. 먼저 도망친 그녀를 따라잡을 만큼 빨랐다.
“잠시 대화를 좀 하려고 하는데.”
G스컬은 여유롭게 그녀의 옆을 같이 달리며 물었다.
“미안하지만 개인 질문은 안 받거든요!”
그녀는 G스컬의 존재를 안다. 탄생 경유는 알 수 없지만 오로지 목적을 알 수 없는 파괴를 일 순위로 살아가는 자.
대화같은 건 성립하지 않는다. 무조건 그녀에게 불리할 테고 거부권은 없겠지.
“생각을 오래 하지 않는 게 좋아. 난 참을성이 없거든.”
그 말을 하고서 G스컬의 붉은 손이 그녀의 한쪽 팔을 향해 다가갔다.
“우선…. 팔 하나….”
싸울 순 없어도. 그에 대해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슬며시 웃었다. 본래 암흑 기운을 가진 자들은 음의 기운을 가지며 빛과 같은 양의 기운에 취약함을 보인다.
“당신, 전에 다친 적 있었네요?”
“....!”
“참아요, 내 치료는 좀 아픈 편이라서요.”
그녀의 손이 G스컬의 손이 맞닿자 약한 섬광이 터졌다.
눈 부신 빛이 꺼진 후 그녀는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자신의 손이 약간 타들어 간 것을 확인했다.
“잔꾀를…!”
G스컬 또한 붉은 손이 검게 타들어 갔다. 하지만 그녀와는 다르게 그렇게 큰 피해를 본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대화만 하려고 했지만….”
섬뜩해지는 G스컬의 표정과 함께 누군가 그 둘 사이에 질풍과 함께 나타났다.
“제트…!”
“섬광을 보고 바로 날아왔습니다. 아무래도 늦지 않은 것 같네요.”
“어딜!”
G스컬은 손을 뻗었지만 푸른 깃을 가지고 있는 제트 드래곤은 그녀를 업고서 재빠르게 날아갔고 애먼 땅만 균열이 생겼다. 더 이상 쫓아갈 수 없는 하늘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에 G스컬은 추격을 멈추었다.
“하…. 역시 그놈이 없으니 힘들군. 일은 참 잘하는 녀석이었는데.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제트 드래곤이 날아가는 곳을 응시했다. 슬며시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이고, 한 곳에서 멈추었다.
“뭐, 다행히 길을 묻지 않아도 괜찮아졌군.”
G스컬은 제트 드래곤이 날아간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다시 멈춰서고서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한 낌새로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남을 엿보고 엿듣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지.”
그 녀석은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이곳을 바라보고서는
“적어도 내가 눈치채지는 못하게 했었어야지.”
눈이 가늘게 찢어지더니
“감상은 여기까지.”
ep.27 잊을 수 없는 추억 (4)
제트 드래곤은 그녀를 업고서 매우 빠른 속도로 하늘의 신전까지 도착했다. 제트는 신전 안쪽으로 들어가 신전에 또 다른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제트는 그녀를 내려주었지만 팔의 부상이 심각한 것을 보고서 더욱 초조했는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전 괜찮습니다. 너무 걱정할 것 없어요.”
떨리는 어깨에 천천히 손을 올려주었다.
“하지만 엔젤님은….”
“이 정도는 예상했어요.”
엔젤은 그저 웃음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을 보면서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 제트에게 그렇게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죠.”
어깨에 있던 손이 슬퍼 동요하는 제트의 뺨으로 움직이며 그녀를 달랜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어떻게 깨어난 건지는 몰라도 정말 고맙고 다행이에요.”
“몸은 괜찮은 건가요? 이렇게 바로 움직여도 되는 거에요?”
제트는 얼마 전까지 아니 그녀를 구하러 오기 전까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독에 감염되어있었다.
그 독은 엔젤의 치유 능력으로도 해독할 수 없었고 특별한 약재를 찾기 위해서 신전 밖으로 나가서 다양한 드래곤들을 치유해가며 어떤 증거라도 찾고 있었다.
“멀끔하게 나았습니다.”
제트는 팔의 힘을 주고서 튀어나온 알통을 자랑하며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엔젤은 가볍게 웃었다.
“다행이네요.”
제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완벽하게 나았다. 엔젤은 그것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엔젤…. 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서펜트 드래곤이 그녀에게 안겼다.
“..?!”
“엔젤님 손이..! 흐엉엉 도대체 뭘 하다가 돌아오신 거에요!”
그 서펜트 드래곤은 타들어 간 엔젤의 한쪽 팔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콧물을 흘려댔다.
“멜, 난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
그들의 사정을 자세하게 파악할 순 없지만, 눈물을 흘리며 멜이라 불리는 서펜트를 향해 엔젤은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녀를 안정시켰다.
“흑”
아이는 훌쩍하며 눈물을 그치고
“그보다, 어떤 손님들이 엔젤님을 찾아왔었어요.”
“,,,뭐? 누가?”
하늘의 신전에서 서펜트와 같은 어둠, 던전의 드래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발각 시에는 어둠의 드래곤은 즉결 처형 되고 숨겨준 이는 감옥에 갇힌다. 그녀가 없는 사이에 누군가 찾아오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자리를 비워놔서 누가 올 리는 없었을 텐데. 사라진 지 꽤 됐다는 소문이 퍼져서 올 드래곤은 없어야 맞다. 그럼 누가?“
“지금은 필립씨가 그들을 대신 맞이하고 있긴 해요.”
“들키진 않은 거지…?”
“네!”
그녀는 활기차게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됐다.
‘빠르게 돌려보내야 해…. 여차하면 내 계획이….’
“제트, 멜을 지켜줘.”
제트는 고개를 끄덕였고 멜은 방을 나섰다.
침을 삼키며 손님이 있는 방의 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방 안쪽에서는 필립의 목소리와 멜이 말한 손님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
익숙한 목소리.
‘설마….’
그녀는 자연스럽게 방문을 열어 손님들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오셨네요. 저분이 여러분이 찾던 그분입니다.”
방문을 열자 손님들과 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상태로 앉아 책을 든 채로 있는 필립이 그녀를 소개해주었다. 필립의 시선을 따라 손님으로 보이는 번개고룡,빙하고룡,고대신룡,파워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런’
“이렇게 또 만날 줄이야.”
“우리 만난 적이 있었나?”
번개고룡이 갸웃하며 말했다. 그 대답에 엔젤은 한숨을 쉬며 망토를 뒤집어쓰며 입을 열었다.
“이러면…. 생각이 나나요?”
“어?!”
그제야 그들은 눈치챘다는 듯 다들 놀란 표정으로 엔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게 말이 되는 거였나….”
“..아무튼 무슨 일이야? 문은 닫혀있었을 텐데.”
“안에 드래곤 있는 것 같길래 열 때까지 두들겼지. 손님 안 받아?”
“뭐 이런 무례한 경우가….”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투가 바뀌었네?”
“신경 꺼. 왜 찾아왔는데?”
둘의 신경전이 쉴 틈 없이 진행됐다.
“몰라서 묻는 거야? 예전엔 신전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아쉽게 됐었지만, 지금은 다르거든.”
“유타칸에서 가장 많은 정보가 있는 곳.”
빙하고룡이 거들었다.
“너도 알아?”
“...나도 탐험가니까.”
“하...”
엔젤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그때랑 성격이 완전 다르네. 혹시 이중인격 그런 거야? 샴드래곤 애들도 너보단 덜하겠다. 왜 그렇게 날카로워?”
“....”
생각해보니 엔젤은 번개고룡에게 사납게 굴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날을 세웠던 것은 자신이 숨긴 어둠의 드래곤이 타인에게 들킬 위험성에 의한 경계 반응이었다.
“그새 많은 일이 있었거든…. 무례하게 군건 미안해. 이상한 소문 낼 건 아니지?”
엔젤은 피로에 지친 듯한 표정에서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그들에게 사과했다.
“하는 거 봐서.”
“뭐가 궁금해서 찾아온 거야?”
“빛의 조각. 그거 어디 있어? 얘한텐 물어봐도 자신은 알려줄 수 없다면서 자꾸 잡아떼더라고.”
번개고룡은 필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필립은 지적당하면서도 그저 눈을 감으며 침묵하고 있었다.
“이거 봐, 이젠 내 말에도 대답을 안 하네.”
“...필립은 정말로 몰라. 빛의 조각은 하늘의 신전에서도 평범한 드래곤들은 알지도 못하는 것이니까.”
‘필립?’
“넌 어떻게 알아?”
“스승님이 있었잖아 바보야.”
번개고룡은 질문을 하는 고대신룡에게 비난하며 엔젤이 하는 설명을 계속 들었다.
“무슨 일에 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해.”
“...진심이야?”
번개고룡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화 내지마.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ep.28 잊을 수 없는 추억 (5)
“왜 포기하라는 거야?”
“얻을 수 없을 테니까.”
“그니까 왜. 자꾸 답답하게 굴 거야?”
번개고룡이 손가락에 힘을 주며 화를 참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번개고룡.”
“조용히 해. 나도 알아.”
“반대로 물어볼게. 포기하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나서는 이유가 뭐야? 그게 왜 필요한 건데?”
“다크닉스를 다시 봉인하기 위해. 그게 필요하니까.”
엔젤은 그것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필립이라는 스마트 드래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다.
“그 말…. 정말이야? 물론 낌새가 이상하긴 했지만 확실해?”
엔젤이 떨리는 말투로 하지만 눈빛은 아까보다 강인해진 상태로 물었다. 그 물음에 번개고룡은 더 당당하게 대답했다.
“확실해. 그리고 반드시 막을 것이고.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제우스가 갖고 있어.”
“...!”
번개고룡은 턱을 만지작 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왜 포기하라고 했는지 알겠지? 표정을 보아하니, 어리버리한 둘을 빼고는 이해한 것 같네.”
전에 헬 청장도 언급했었다.
빙하고룡은 유타칸을 돌아다니며 들은 소문으로 번개고룡은 불의 산의 경관으로써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기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생을 평화의 마을에서만 있던 파워와 똑같이 빛의 신전에서만 지냈었던 고대신룡은 자세하게 알 수가 없었다.
“제우스가 왜?”
“...내가 너와 처음 만났을 때 했었던 말 기억나? 모든 드래곤이 고대신룡을 충성하는 게 아니라고.”
고대신룡은 아하! 하며 과거를 기억해냈고 그때 한 말을 읊조렸다.
“하늘의 신전에서는 제우스가 있다….”
“제우스는 하늘의 신전만 다스리는 게 아니야. 빛의 신전을 제외한 그 외의 지역들에서 생기는 일도 그 녀석은 알 수가 있거든.”
“그건 알고 있지.”
“전혀 몰랐어.”
“....”
자꾸만 대비되는 반응에 엔젤은 지쳐만 갔다.
“한 드래곤만 말해줄래? 자꾸 헷갈리거든.”
“그럼….”
“아마 운이 나쁘면 바람의 신전에 있었던 일과 우리가 불의 산에서 했던 일이 전부 그 녀석의 귀에 닿았을지도 모르지. 뭐 헬의 말이 사실이라면 불의 산의 일을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워낙 믿을 수 없는 녀석이라.”
“불의 산?”
“제대로 난장판을 펼쳤거든.”
“난장판?”
엔젤이 궁금하다는 듯한 어투로 물어보았다.
“헬 청장을 때려눕혔어. 우리가 한 건 아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하긴 했지.”
“와….”
“아 그래서….”
필립이 말을 하려다가 아차 하고서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필립은 침묵했다.
“말해줘, 나도 궁금하네 그건.”
“아까 전 신전의 인원 몇몇이 불의 산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이제야 이유를 알겠네요.”
“언제?”
“아마 지금쯤 돌아올 겁니다. 꽤 오래전이었으니까요.”
그 말에 번개고룡이 깜짝 놀랐고 조금 다급해진 기색으로 엔젤에게 말했다.
“....다른 방법은 없어? 제우스만 있어도 힘든데 그 녀석을 호위하는 드래곤까지 전부 뚫어낼 방법은 없어. 그러기도 싫고.”
“다른 방법…. 있어.”
“뭔데!?”
번개고룡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엔젤에게 달려들었다. 엔젤은 당황스럽다는 듯한 반응을 하고서는 천천히 다른 방법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신전의 지하감옥으로 너희들이 직접 들어가는 거야. 빛의 조각이 있는 장소는 거기가 가장 가깝거든.”
“...?”
다들 한순간 조용해졌다.
“...농담이지?”
“진짠데. 마침 죄도 있고.”
가만히 있던 고대신룡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고대신룡인걸 이용하면 안 되나?”
“...아 네가 있었지.”
“소용없습니다.”
하지만 필립은 화색이 돌던 번개고룡에게 말했다.
“이곳에 있는 드래곤들의 다수가 당신의 존재를 모를뿐더러. 그에겐 당신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거든요…. 결국 그 삼지창에 닿으면 죽을 테니까.”
불길한 소리와 함께 엔젤이 정정하며 우리를 밖으로 내보냈다.
“아무튼 제우스는 만나지 말라고. 정말 죽을지도 몰라.”
“네가 더 편한 방법을 소개해줬다면 이런 도박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미안 이게 최선이야.”
엔젤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처럼 느껴지자 번개고룡도 민망한 듯 그러지 말라며 사과를 했다.
“야…. 농담이야 농담. 나도 염치는 있어.”
“알아.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한 건 사실이니까. 꼭 성공했으면 좋겠네.”
엔젤의 배웅을 끝으로 그들은 정말로 신전의 경비원들에게 스스로 잡혀 들어가기로 했다.
“그들이 우릴 제압하려고 힘을 쓸 테지만 반항해서는 안 돼. 알겠지 파워?”
“알았다.”
파워가 끄덕이며 말했다.
“하…. 감옥이라니.”
번개고룡은 자신이 조만간 닥칠 미래에 대해 난감한건지 한숨을 끊임없이 뱉으며 중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드 드래곤과 나이트 드래곤으로 보이는 드래곤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골드 드래곤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나타났다.
“너희들이 불의 산 소동의 주범인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얌전히 지하감옥에 넣어주겠다.”
“하....”
번개고룡은 침을 삼키며 얌전히 그들을 따랐다.
-
“들어가있으십쇼.”
그들은 그대로 감옥에 내팽개쳐졌다.
“...윽! 정말이지, 빙하고룡을 제외하고서는 사실 피닉스가 다 한 건데 왜 내가 이런 신세를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빙하고룡이 움찔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대신 고대신룡이 웃으며 그녀에 혼잣말에 대답했다.
“우리가 꼭 죄를 지어서 이곳에 온 건 아니잖아? 빛의 조각, 그거 찾으려면 이 방법밖엔 없었으니까…. 그리고 불의 피닉스를 데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도 알아, 그냥 해본 말이야.”
번개고룡은 벌떡 일어서 철창을 잡았다. 바로 탈출하기 위해 번개를 사용해 철창을 녹여버리려고 했지만, 이상한 기운과 함께 번개는 나오지 않았다.
“...어라?”
ep.29 잊을 수 없는 추억 (6)
“왜 그래?”
의문을 품는 고대신룡에게 번개고룡은 자기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번개가 안 나와.”
“내가 해보겠다.”
파워가 주먹을 쥐며 감옥의 철창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기 위해 팔을 뒤로 뻗으며 자세를 취했다.
“굳이 힘 빼지 마라. 소용없으니까.”
하지만 파워가 주먹을 뻗기 전에 우리가 오기 전부터 감옥에 있던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너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어두운 그늘에서 서펜트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초록색의 머리는 차갑게 굳은 피가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그리고 그건 얼굴 쪽도 마찬가지였다. 전에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좀 더 피로감이 느껴지는 얼굴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번개고룡은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렸다. 서펜트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으면서 그녀의 주먹을 맞아주었다.
“뭐야 너? 안 피하네?”
번개를 두르지 못해서 그다지 아파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몰골이 예전보다 매우 초췌해 보여서 아주 약간이나마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우리에게 했던 행동을 생각해보니 그 마음은 사라지고 왜인지 후련함이 느껴졌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감옥에 온 이유를 굳이 설명해야 하나? 여전히 당돌하면서도 단순한 드래곤이군.”
“몇 대 더 맞자.”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에 번개고룡이 휘두르려던 주먹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서펜트는 피식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우리를? 네가 왜? 그렇게 죽고 싶었어? 말만 해. 내가 지금 능력은 안 나오지만..”
고대신룡은 흥분한 번개고룡의 양팔을 잡고 서펜트에게 물었다. 이 감옥에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올 것을 어떻게 예상한 것일까.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고대신룡의 말에 안심한 서펜트가 말을 이었다.
“그나마 이성적인 드래곤이 있어서 다행이군.”
“뭐?”
“....그대들의 목적이 다크닉스의 봉인인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아마 봉인에 필요한 마지막 재료인 빛의 조각을 가지러 온 거 아니었나?”
“감시하는 능력이라도 있어?”
“꼭 그걸 감시해야 아나? 본인이 멍청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지.”
“이게 또 맞고 싶은 건가?”
번개고룡이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버둥거렸지만 고대신룡은 최대한 그녀를 붙잡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막지 마! 이거 놓으라고! 너 기억 잃었냐? 쟤 때문에 불의 산에서 그딴 일이 일어난 거라고! 파워! 고대신룡 좀 떼 봐!”
고대신룡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와의 마지막 만남은 고대신룡조차 좋지 않았다. 서펜트는 그의 배를 단검으로 관통시켰고 그는 서펜트의 팔을 잘라내고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고대신룡. 지금 네 행동은 맞는 건가?”
이번에 파워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번개고룡의 말을 무작정 따르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고 고대신룡이 하는 그 행동에 의심하고 있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한 것은 아니지만 그 짧은 만남 속에서도 파워가 본 고대신룡은 아무런 이유 없이 자기 동료를 해쳤던 이를 가만히 둘 드래곤으로 보진 않았다.
“나도 서펜트 드래곤, 저 녀석 가만히 두면 안 되는 거 안다. 빙하고룡을 다치게 했고, 그 결과 번개고룡도 다쳤다. 하지만….”
바람의 산맥에서도 먼저 서펜트를 쫓으러 갔던 고대신룡이 지금 망설이고 있음을 파워도 느꼈고 그가 서펜트의 편을 드는 것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고대신룡이 그러는데 이유가 있을 거다. 안 그런가?”
“맞아. 가만히 있어 줘.”
“윽..! 이거 놓….”
고대신룡은 서펜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그 기묘한 느낌을. 그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익숙한 그 느낌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고대신룡은 지금 서펜트의 눈을 안다. 전에도 한 번 보았고 단 한 순간도 그 눈빛에 대해 질문을 멈춘 적이 없었으니까.
서펜트는 그를 혼자 두고 떠나간 형님의 눈빛과 닮았음을 느꼈다. 하지만 서펜트는 자신을 바라보는 고대신룡의 눈빛에 불쾌감을 느꼈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라. 어린 고대신룡이여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잘 알겠는데. 자네는 날 이해할 수 없어.”
“....”
“다들 왜 이렇게 저 녀석에게 관대해? 내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결국 다 나았잖아.”
가만히 있던 빙하고룡이 거들었고 그 말에 화가 난 듯 그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너는 화가 안 나? 네 보금자리가 거의 다 훼손되었고 정신까지 미쳐버리게 했는데…!”
“나는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상관없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게 확실하지만, 저 자에겐 뭔가 있어 보이니까. 그리고….”
“..?”
빙하고룡은 말을 하던 도중 망설이더니 하려던 말을 삼키고 다시 서펜트에게 말했다.
“계획이나 말해.”
“계획?”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여길 빠져나간다는 뜻. 아니었나?”
“계획 따윈 사치지. 가장 쉬운 방법은 항상 그대들이 갖고 있었으니까.”
나를 포함해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서펜트는 그런 우리를 보고 한숨을 푹 쉬더니
“그대들은 이곳 감옥의 특이한 점이 무엇인지 아나?”
“....번개가 나오지 않았어.”
“그래, 그게 왜 그런지는 알고 있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짜증이 날라 하니까 자꾸 돌려 말하지 말아줄래?”
“성격이 급하군….”
“고대신룡 놔 봐. 한 대만 때릴 게 제발.”
“...우리의 힘은 우리가 나고 자란 곳에서 나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래서 저 번개고룡은 불의 산에서, 저 파워는 희망의 마을에서 최적, 고효율의 힘을 낼 수 있지.”
“너는?”
“...말 해줘도 모를 거다.”
서펜트가 벽을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뭐 하여튼 이곳의 감옥은 제우스가 직접 만든 벽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되어있다. 그래서 너희들이 힘을 낼 수 없는걸세. 힘의 공급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니…. 그래서인지 내 능력인 언령 또한 발동하지 않는다.”
서펜트가 방울을 꺼내 들며 흔들었다. 전에 그의 방울에 경험이 있는 번개고룡과 빙하고룡이 흠칫하며 놀랐지만, 딸랑딸랑하기만 할 뿐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놀랄 필요는 없네, 더 이상 그대들을 해칠 마음은 없으니.”
서펜트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힘의 근원을. 왜 설명 했을 거라 생각하는가?”
“그것을 구애받지 않는 드래곤은 없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서펜트는 답답한 듯 말을 그만하고 손을 올려 그들 중 하나를 집었다.
“그 외의 존재가 있지 않은가. 너희들 중에 그 제한을 무시하는 드래곤.”
서펜트는 고대신룡을 집으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