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잊을 수 없는 추억 (6)
“왜 그래?”
의문을 품는 고대신룡에게 번개고룡은 자기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번개가 안 나와.”
“내가 해보겠다.”
파워가 주먹을 쥐며 감옥의 철창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기 위해 팔을 뒤로 뻗으며 자세를 취했다.
“굳이 힘 빼지 마라. 소용없으니까.”
하지만 파워가 주먹을 뻗기 전에 우리가 오기 전부터 감옥에 있던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너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어두운 그늘에서 서펜트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초록색의 머리는 차갑게 굳은 피가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그리고 그건 얼굴 쪽도 마찬가지였다. 전에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좀 더 피로감이 느껴지는 얼굴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번개고룡은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렸다. 서펜트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으면서 그녀의 주먹을 맞아주었다.
“뭐야 너? 안 피하네?”
번개를 두르지 못해서 그다지 아파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몰골이 예전보다 매우 초췌해 보여서 아주 약간이나마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우리에게 했던 행동을 생각해보니 그 마음은 사라지고 왜인지 후련함이 느껴졌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감옥에 온 이유를 굳이 설명해야 하나? 여전히 당돌하면서도 단순한 드래곤이군.”
“몇 대 더 맞자.”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에 번개고룡이 휘두르려던 주먹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서펜트는 피식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우리를? 네가 왜? 그렇게 죽고 싶었어? 말만 해. 내가 지금 능력은 안 나오지만..”
고대신룡은 흥분한 번개고룡의 양팔을 잡고 서펜트에게 물었다. 이 감옥에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올 것을 어떻게 예상한 것일까.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고대신룡의 말에 안심한 서펜트가 말을 이었다.
“그나마 이성적인 드래곤이 있어서 다행이군.”
“뭐?”
“....그대들의 목적이 다크닉스의 봉인인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아마 봉인에 필요한 마지막 재료인 빛의 조각을 가지러 온 거 아니었나?”
“감시하는 능력이라도 있어?”
“꼭 그걸 감시해야 아나? 본인이 멍청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지.”
“이게 또 맞고 싶은 건가?”
번개고룡이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버둥거렸지만 고대신룡은 최대한 그녀를 붙잡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막지 마! 이거 놓으라고! 너 기억 잃었냐? 쟤 때문에 불의 산에서 그딴 일이 일어난 거라고! 파워! 고대신룡 좀 떼 봐!”
고대신룡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와의 마지막 만남은 고대신룡조차 좋지 않았다. 서펜트는 그의 배를 단검으로 관통시켰고 그는 서펜트의 팔을 잘라내고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고대신룡. 지금 네 행동은 맞는 건가?”
이번에 파워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번개고룡의 말을 무작정 따르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고 고대신룡이 하는 그 행동에 의심하고 있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한 것은 아니지만 그 짧은 만남 속에서도 파워가 본 고대신룡은 아무런 이유 없이 자기 동료를 해쳤던 이를 가만히 둘 드래곤으로 보진 않았다.
“나도 서펜트 드래곤, 저 녀석 가만히 두면 안 되는 거 안다. 빙하고룡을 다치게 했고, 그 결과 번개고룡도 다쳤다. 하지만….”
바람의 산맥에서도 먼저 서펜트를 쫓으러 갔던 고대신룡이 지금 망설이고 있음을 파워도 느꼈고 그가 서펜트의 편을 드는 것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고대신룡이 그러는데 이유가 있을 거다. 안 그런가?”
“맞아. 가만히 있어 줘.”
“윽..! 이거 놓….”
고대신룡은 서펜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그 기묘한 느낌을. 그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익숙한 그 느낌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고대신룡은 지금 서펜트의 눈을 안다. 전에도 한 번 보았고 단 한 순간도 그 눈빛에 대해 질문을 멈춘 적이 없었으니까.
서펜트는 그를 혼자 두고 떠나간 형님의 눈빛과 닮았음을 느꼈다. 하지만 서펜트는 자신을 바라보는 고대신룡의 눈빛에 불쾌감을 느꼈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라. 어린 고대신룡이여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잘 알겠는데. 자네는 날 이해할 수 없어.”
“....”
“다들 왜 이렇게 저 녀석에게 관대해? 내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결국 다 나았잖아.”
가만히 있던 빙하고룡이 거들었고 그 말에 화가 난 듯 그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너는 화가 안 나? 네 보금자리가 거의 다 훼손되었고 정신까지 미쳐버리게 했는데…!”
“나는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상관없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게 확실하지만, 저 자에겐 뭔가 있어 보이니까. 그리고….”
“..?”
빙하고룡은 말을 하던 도중 망설이더니 하려던 말을 삼키고 다시 서펜트에게 말했다.
“계획이나 말해.”
“계획?”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여길 빠져나간다는 뜻. 아니었나?”
“계획 따윈 사치지. 가장 쉬운 방법은 항상 그대들이 갖고 있었으니까.”
나를 포함해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서펜트는 그런 우리를 보고 한숨을 푹 쉬더니
“그대들은 이곳 감옥의 특이한 점이 무엇인지 아나?”
“....번개가 나오지 않았어.”
“그래, 그게 왜 그런지는 알고 있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짜증이 날라 하니까 자꾸 돌려 말하지 말아줄래?”
“성격이 급하군….”
“고대신룡 놔 봐. 한 대만 때릴 게 제발.”
“...우리의 힘은 우리가 나고 자란 곳에서 나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래서 저 번개고룡은 불의 산에서, 저 파워는 희망의 마을에서 최적, 고효율의 힘을 낼 수 있지.”
“너는?”
“...말 해줘도 모를 거다.”
서펜트가 벽을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뭐 하여튼 이곳의 감옥은 제우스가 직접 만든 벽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되어있다. 그래서 너희들이 힘을 낼 수 없는걸세. 힘의 공급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니…. 그래서인지 내 능력인 언령 또한 발동하지 않는다.”
서펜트가 방울을 꺼내 들며 흔들었다. 전에 그의 방울에 경험이 있는 번개고룡과 빙하고룡이 흠칫하며 놀랐지만, 딸랑딸랑하기만 할 뿐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놀랄 필요는 없네, 더 이상 그대들을 해칠 마음은 없으니.”
서펜트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힘의 근원을. 왜 설명 했을 거라 생각하는가?”
“그것을 구애받지 않는 드래곤은 없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서펜트는 답답한 듯 말을 그만하고 손을 올려 그들 중 하나를 집었다.
“그 외의 존재가 있지 않은가. 너희들 중에 그 제한을 무시하는 드래곤.”
서펜트는 고대신룡을 집으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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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ep.30을 실시간으로 제작 중입니다... 예상하고 있었던 드래곤 빌리지의 전체 분량을 넘어가니 난감하네요.. 그리고 총 7편으로 구상 했던 하늘의 신전 편 또한 예상 외로 길어지고 있어서 너무 힘듭니다.. 다음주 안에 전부 끝내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부족한 저의 이야기를 기다려주시는 모든 분들께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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