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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시디아 01

0 Hoel
  • 조회수317
  • 작성일2014.03.31

흐..프롤로그 때 제목을 Eternal로 적었다가 이건 너무 심한 스포 같아서..조금 더 의미심장하게 꼬아봤습니다(?!) 저것도 임시 제목이라 언제 또 제목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몰라요..개인적으로 제목 정하는 게 젤 힘드네요 잉잉..ㅠ
바람처럼 나타나서 쓰고 사라지는 자유연재입니다.

차후 몇 주나 몇 개월 뒤 쓸 수도 있는 제멋대로인 인간이라 너무 기대는 마셔요~.~




인시디아(Insidiæ)_01


캘리포니아. 알스 도서관.
알스 도서관은 언제나처럼 주말마다 물밀듯이 밀려드는 인파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끔찍하게도 아메바처럼 끊임없이 증식하는 방문객들에 지칠 대로 지친 도서관 사서 에반 카터는 이제, 그만, 퇴근하고, 싶다, 고 생각하며 커다란 머리를 옥죄던 모자를 벗어 바닥에 내팽겨 쳤다. 땀에 푹 절어 유통기한이 지난 썩은 오렌지처럼 변색된 주황색 모자는 소리 없이 대리석 로비 바닥에 떨어졌다. 반들반들하게 잘 닦인 바닥으로 오십년쯤 늙어 보이는 20대 중반의 사내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가 모자를 주우려던 찰나, 핸드폰 벨소리가 로비에 요란하게 울렸다. 라스베가스의 노래. 그의 넘버원 애창곡이다.
\"여보세요? 에반 카터입니다.\"
\"삼촌? 큰일 났어요. 제니스 똥 쌌어요.\" 수화기 너머로 키득거리는 장난스러운 꼬마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받은 지미는 여동생 제니스와 더불어 그의 징글징글한 조카들이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에반에게 불필요한 전화를 걸었다. 두 아이의 부모가 여행을 간 사이 잠시 동안 아이들을 맡아주는 대가로 맨유 특등석 티켓을 약속받은 에반이었지만, 그들을 맡은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그것이 어리석은 거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장난꾸러기들이었다. 그는 가끔 그들이 머리만 노랗게 염색한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간 그에게 이상한 총을 들이 댈지 모르는 일이었다.
\"삼촌?\" 보모의 답이 없자 지미는 재차 삼촌을 불렀다.
\"삼촌 지금 못 가. 네가 대신 동생 기저귀 좀 갈아 주렴. 욕실 옆 캐비닛 세 번째 칸에 있을 거야.\"
\"언제 오실 거예요?\"
\"글쎄. 오늘은 토요일이잖니. 주말마다 도서관이 얼마나 바쁜지 지미도 알지?\"
\"5시까지 오세요.\" 반쯤 토라진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렸다.
\"미안. 6시까진 꼭 갈게.\" 에반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상대방의 말이 잠시 멎었다.
\"좋아요. 대신 올 때 페페로네 피자버거 사오세요.\"
어림없는 소리라고 에반은 하마터면 소릴 지를 뻔 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페페로네 체인점이라도 족히 20분은 차를 타고 가야 도착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가게의 감자튀김 맛은 정말 훌륭하지만, 지금 에반에게 필요한 것은 맛있는 음식이 아닌 맛있는 휴식이었다.
\"안 돼. 너무 멀어.\"그는 단호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상사가 따로 없군. 그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다시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에반 카터입니다.\"
\"카터 씨? 경찰입니다. 어제 과속하셨어요. 해당 주의 법원 교통과로 찾아가세요. 가실 때 페페로네 피자버거 꼭 사가세요.
\"지미, 삼촌 바쁘다.\" 에반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며 최대한 침착하게 전화를 끊었다. 
\"망할 애새끼!\" 그가 휴대폰을 바닥에 힘껏 던지자, 부서진 부품조각들이 썩은 오렌지처럼 바닥에 버려져 있는 모자 위로 모래처럼 흩어졌다.

일이 끝난 건 6시가 다 되어서였다. 솜사탕을 들고 뛰어가다가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주고 부모에게 데려다 준 뒤에야 그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커다란 알파벳 A가 그려진 오렌지색 모자를 당장이라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알스 도서관을 나왔다. 하얀 바탕에 여러 가지 색의 점들이 뒤섞여 마치 무지개를 토해 놓은 것 같은 도서관 디자인에 에반은 혀를 차며 차를 몰았다. 6시 10분. 조카들과 약속했던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는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를 페페로네 체인점으로 바꾸었다. 늦는 삼촌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 조카들을 위한 그 만의 작은 선물인 셈이었다.

 

 

 

***

 

 

 

에반이 체인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은 세상에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 봄비가 차창으로 미끄러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그는 조카들 부모와 통화를 마쳤다. 젠장. 그들은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지능이 낮다거나 특정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도,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그것이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이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에반의 눈에는 존과 마지가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들은 자연스러웠지만 언제나 그러지 못했다. 에반은 그 이유를 불안이라고 결론지었다. 실제로 그네 부부는 가까운 지인을 대할 때조차도 기분 나쁠 정도로 항상 불안해했고, 초조해했고, 또 조심했다. 이웃들이 그들을 이상하게 생각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바람이 거세졌다. 에반은 계기판과 시계를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오는 날과 폭풍우를 싫어한다. 그것은 천둥 때문이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지미와 제니스 역시 천둥을 엉클랜드(조카를 잃어버린 삼촌이 아이들을 찾기 위해 괴물이 가득한 미지의 섬을 모험하는 이야기를 그린 책 : 역주)에 등장하는 괴물 따위로 여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가 지미에게 전화를 걸려는 찰나, 다른 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에반 카터입니다.” 에반은 오늘만 세 번째로 휴대폰에 대고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자신이 일순 한심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음에도, 액정이 깨지고 몇 군데가 부서졌음에도, 잘만 작동되는 휴대폰에 기가 막혔다. 그의 기분을 알 리 없는 상대방은,

“에반? 6시에 전화 준다면서요. 지금이 몇신줄 알아요?”

톤의 높낮이가 수시로 바뀌는 목소리의 주인은 에반에게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그녀는 에반 카터의 대학 동아리 후배로, 앳된 외모와는 다르게 굉장히 다부지고, 섬세했으며, 똑똑하고, 재수 없었다. 언젠가 두 사람이 함께 수영장에 갔을 때였다. 하얀색 비키니 사이로 보이는 캘리의 왕(王)자 복근에 눈이 휘둥그레진 에반은 생전 처음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미안. 조카들 때문에 페페로네까지 와버렸어. 오늘은 도서관 일도 늦게 끝나서 도저히 전화할 틈이 없었어.”

“멀리도 갔네요. 오늘 같이 뮐러 박사님을 뵈러 가기로 했잖아요.”

“아무래도 오늘은 힘들겠어. 비도 많이 오고 말이야.”

“모처럼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는데….” 그녀는 반쯤 실망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캘리는
그것의 결과를 꽤나 기대했던 눈치였다. 에반의 동아리는 역사를 연구했는데, 그들은 특히 중국의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의 숨겨진 과거 속 이야기들은 그들을 한순간에 매료시켰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줘. 애들한테 저녁을 차려주고 가야 돼. 집에 아무도 없어. 거의 다 왔어. 금방이면 돼.”

“좋아요. 그럼 전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하고 있죠. 일 끝나면 연락 줘요.” 캘리는 다시 신이 났는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는 종종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암컷 고릴라를 연상시키는 복근만 제외한다면.

 

에반이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비가 그친 뒤였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어디선가 풍겨오는 비릿한 냄새를 맡았지만 마당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쓰레기 더미가 찢겨져 있는 것을 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필시 옆집 고양이 젤시의 짓인 게 분명했다. 그 망할 고양이――

냄새는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더욱 심해졌다. 마치 생선이 썩은, 동물 사체의 냄새. 그가 오래 전 학교 과학실에서 개구리 해부를 하던 중 맡았던 그런 냄새였다. 창문과 그 밖의 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그렇다면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주인은 집 안에 있을 것이었다. 에반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곰이 들어왔나?

“지미?” 에반이 조심히 어린 조카의 이름을 불렀다. 침묵.

“지미? 제니스?”

이어지는 침묵에 에반은 당혹스러웠다. 그를 제외한 모든 시간이 멈춰버리고 고요한 침묵 속에 그의 심장 박동만이 요란하게 뛰고 있는 것 같았다. 에반은 침입자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제니스의 귀저기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두 아이는 이곳에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는 냄새가 강하게 풍겨오는 안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에반이 안방에 들어서며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안방 바닥엔 두 조카가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입 사이로 혀를 내밀고 있었으며, 위로 말려 올라가 흰자만이 남은 두 눈은 이미 초점을 잃어버려 삼촌을 반기지 못했다. 아이들에게서 죽은 생물의 냄새가 풍겼다. 에반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 아이는 살해당했다.

끝내 주인을 만나지 못한 햄버거 봉투가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2014. 3. 31. Insidiæ 01 end_ Ho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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