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먼 옛날부터 존재했던 드래곤과 그 이후에 나타난 인간.
아이러니하게도, 뒤늦게 나타난 인간들에 의해 드래곤들은 이름이 지어진다.
검정색이어서 흑룡. 다리가 여섯 개에 뿔이 달려서 식스 레그 혼. 잎사귀를 달고 있어서 리프 드래곤.
그렇다면 이 드래곤은 무어라 불러야 하는 걸까.
생김새는 분명 본헤드를 닮은 것이지만, 정작 종요한 뼈가 없다.
얼굴에 달려있어야 할 뼈의 투구가 없다.
돌연변이 본헤드? 그건 이미 존재하는 개체이며, 그마저도 이 드래곤과는 생김새가 다르다.
여러가지 상념에 빠진 사이, 이 작은 드래곤은 내 품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이제 갓 태어나 세상의 빛을 맞기 시작한 이 드래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건 뒤로 미루도록 하자.
앞으로 걸어갈 길의 험준함에 비하면 이름의 중요성 따위는 장식 정도가 고작이니까.
* * *
"우와~! 아저씨 드래곤은 왜 저렇게 생겼어요?"
"못생겼다!"
동네 꼬마 애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와 본헤드는 길을 걷고 있었다.
확실히 사람들이 보기에는 뼈 없는 본헤드는 안구도 없으며 색채도 무미건조한 개성 없는 드래곤이다.
"크르릉."
드래곤은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지만, 사람은 드래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이제는 나이가 좀 들어 어쭙잖은 비난 정도는 흘려 넘길 수 있는 수준의 경지까지 이르게 된 본헤드였다.
어린 애들의 짓궂은 놀림에 본헤드는 신경쓰지 않고 내 옆을 묵묵히 지키며 걸을 뿐이다.
한때 본헤드가 분에 못 이겨 사람을 물었을 때는 어찌하나 싶었지만, 그때는 아직 치악력이 발달하지 않은 해치 시절이었고 당사자간의 이야기가 잘 풀려서 망정이지.
정말 다사다난한 유년기를 보냈었다.
그렇게 정착한 마을이 바로, 이곳.
유사마을.
"아주머니. 칠면조구이 500개만 주세요."
"그래. 요즘 벌이가 쏠쏠 하나봐?"
"하하, 그렇죠 뭐."
본헤드가 해츨링 단계에 접어들며, 여러가지 방면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된 까닭이었다.
이후 적당히 준비를 마친 다음.
우리는 희망의 숲으로 향했다.
* * *
콰앙. 콰앙!
본헤드가 나무에 머리를 들이박으면, 떨어지는 열매를 내가 줍는 형식의 채집.
보통의 본헤드는 뼈 속의 머리는 물렁하다는 소문이 있지만, 우리 본헤드는 달랐다.
"슬슬 돌아갈까?"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몬스터는 보이지 않고, 열매 채집은 적당히 했으니 오늘 할 일은 다한 듯 하다.
"크릉?"
그런데 본헤드가 신기하다는 듯 어느 슬라임을 응시하고 있었다.
헌데... 자주 보는 핑크슬라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머리에 꽃 같은 것도 달려있고.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본헤드. 떨어지는 게 좋을 것..."
그때였다.
슬라임은 순식간에 포자를 뿌려댔고, 본헤드에게 직격했다!
본헤드는 괴로운듯한 표정으로 쓰러졌고, 파란 슬라임은 인간의 말을 했다.
"유사마을의 유일한 테이머. 혹시나 해서 처리했다만. 역시 별 볼일 없었군."
"...?! 넌 대체..."
"아직도 내가 슬라임으로 보이나?"
아아, 그래.
왜 진즉 깨닫지 못했을까.
녀석은 블루 젤라틴.
던전에 출몰한다고 알려진 녀석이다.
하지만 희망의 숲에서 나온다는 보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네 안이한 판단이 드래곤을 죽게 했다. 지금쯤이면 동료들이 유사마을을 처리했겠고. 내가 할 일은 이게 전부인가."
들고 있던 칼을 꺼내어 젤라틴을 노렸지만, 녀석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도망쳤다.
나는 부상 입은 본헤드를 치유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왔지만, 마을은 없었다.
마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거대한 크레이터만이 있었다.
"...이게 대체."
아쉽게도 그 물음에 해답을 줄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