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71 그들의 추억 (9)
“뭐하냐? 너희들”
헬 청장이 결투를 구경하고 있는 플레임과 번개고룡을 발견하고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야?”
번개고룡은 새침하게 대답했다. 그 둘 사이에 낀 플레임은 잔뜩 긴장한 채로 헬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배려인 듯 아닌 듯 그에게 말했다.
“플레임 경사는 이만 가봐, 내가 번개고룡이랑 할 얘기가 있거든.”
“알겠습니다.”
헬이 말하자마자 플레임은 곧바로 사라졌다. 번개고룡은 플레임이 없어진 자리를 잠시 쳐다본 뒤에 땀 한 방울을 흘리며 헬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 상황 자체가 별로 탐탁지 않았는데 그녀의 경험상 어느 순간에서도 헬과의 독대가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슨 얘긴데?”
헬은 잔뜩 긴장한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번개고룡을 보고서 괜히 놀려주고 싶어졌다.
“흠…. 혹시, 쫄았어?”
“쓸데없는 얘기면 그냥 없어져 줬으면 하는데.”
“풋, 그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원래 같았다면 헬이 사라지든 말든 번개고룡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었겠지만 헬이 저 모든 사건의 원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 대화의 주도권은 그녀에게 있었고 번개고룡 또한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흠…. 아닌가? 네겐 이 사실이 별것 아닌 걸까? 저 나이트 드래곤이 네게 직접 묻고 싶다 한 게 있긴 했지만…. 그게 정말로 중요한 건지는 제삼자로서는 잘 모르겠단 말이지~”
헬은 일부로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을 늘리며 번개고룡의 심기를 건드렸으나 번개고룡은 조용히 화를 참으며 말했다.
“....뭔 얘긴데.”
“네가 찾고 있는 고대신룡...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 거야.”
“뭘…. 원하는데…?”
번개고룡은 끝내 먼저 굽히기로 했다.
“별건 아니고, 뭘 좀 도와. 그리고….”
헬은 갑작스럽게 번개고룡의 옷깃을 잡고서 그대로 뛰어올랐다.
“뭐…. 뭐야!?”
“어떤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꼭 이 사태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말하더라. 나로서는 잘 이해는 안 갔지만 너라면 뭔갈 알겠지.”
-
피닉스는 나이트를 향해 직선으로 주먹을 꽂았다. 하지만 나이트는 간발의 차로 그녀의 주먹을 빗겨 쳐내며 얼굴이 타들어 가는 걸 면할 수 있었다.
“쳇, 방금 건 분명 닿을 것 같았는데.”
나이트도 곧바로 반격하려 했으나 금세 거리를 벌린 피닉스였고 혀를 차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에게 물었다.
“후…. 왜 나만 힘든 것 같지?”
아까부터 아주 약간씩 숨이 찼다. 불의 산에서 단 한 번도 호적수를 만난 적도 그녀를 지치게 할 상대도 없었지만 지금 그녀는 분명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불의 산이 건재하는 한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녀는 지금 그 생각이 꺼지고 있었다.
“그야, 네가 네 생명을 불태워 가며 싸우고 있기 때문이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창조의 힘에 기반의 네 힘은….”
“더 생각할 틈이 있나?”
“아,”
아차 싶을 때 그녀의 시각에서 나이트의 검이 다가왔다.
“그만,”
검이 피닉스에게 닿으려던 그때 나이트의 검과 그 둘 사이에서 헬 청장의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뭐야!”
둘의 싸움을 방해하는 피닉스에겐 그저 방해꾼에 불과했다. 그래서 피닉스는 그 싸움을 막은 이유도 묻지 않은 채로 그녀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려 했지만 헬은 한 손으로 들은 번개고룡을 보여주었다.
“번개고룡 데려옴.”
피닉스는 깜짝 놀라며 주먹을 풀고 헬의 손에서 번개고룡을 낚아챘다.
“왜 이제 온 거야!”
“....넌 닥치고, 나이트 드래곤 그만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
여전히 검은 불꽃의 벽 너머에 있었지만 헬이 나이트 검에 붙은 불을 꺼주면서 공손히 그에게 말하자 나이트는 말없이 칼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헬 청장도 그들 사이에 벽을 없앴다.
“다들 돌아가세요. 구경은 여기서 끝입니다.”
헬은 화사하게 웃으며 둘의 전투를 구경하러 온 드래곤들을 모조리 돌려보내러 갔다.
“허튼 짓거리 하지 마라.”
그 전에 피닉스에게 약간의 조언을 하긴 했지만
“...”
싸움한 후의 둘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 전 분명히 즐겁듯 웃으며 말을 했었던 피닉스였지만 싸움이 끝난 후에는 아까 헬에게 짜증을 낸 거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대령은 원래 말을 잘 안 하던 사람이었으니, 이상할 건 없지만…. 당당하면 당당했지 피닉스가 이렇게 긴장한 거는 처음 보는데.’
번개고룡도 둘의 사이가 수상하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침묵이 계속되었다.
“나이트 대령….”
“어휴…. 다 돌려보냈다.”
헬이 돌아와 번개고룡과 동시에 얘기했다. 자신이 번개고룡의 말을 끊은 것을 눈치채고 여러 번 재차 물었지만 번개고룡은 고개를 돌린 채 답하지 않았다.
“맘대로 하고. 당사자들이 전부 모였으니 이야기하죠. 나이트 드래곤 던전의 그 빛을 설명해주겠다 했었죠.”
던전의 빛. 헬은 신문에도 떴었던 기이한 현상을 말하는 거였다. 그 현상은 분명 고대신룡이 한 것이겠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는 번개고룡이 아는 바에선 고대신룡과 엔젤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다크닉스가 쓰러진 이후 자취를 감췄던 나이트 드래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왜…. 생각하지 못했던 거지?’
“맞다,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너희들은 그것이 왜 그렇게 된 건지는 짐작이 가지 않겠지.”
“고대신룡의 단순한 정화 작업이 아니었던가요?”
그걸 물어본 것은 헬이었다.
“그만한 기운을 덮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장이 의도한 건 그것이 아니다. 빛의 결정체가 파괴된 후 던전에 흡수되어 떠돌아다녔을 때처럼 기운을 퍼트리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을 뿐.”
“의도를 말해주세요. 전 반드시 알아야 해요.”
그건 번개고룡의 말이었다. 한 집념이 보이는 올곧은 눈동자를 한 채로 번개고룡은 나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동자에서 그녀의 진심을 꿰뚫어 보며 항상 무념한 상태의 눈동자로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너를 직접적으로 도울 수 없고, 대장의 의견을 따라야만 한다.”
그것은 분명한 거절이었다. 간신히 희망을 얻었다고 생각한 번개고룡의 마음이 재차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마음만큼은 너와 같다.”
그 말에 그녀의 마음이 벼랑 끝에서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만큼은 창조의 힘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고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앞으로 하루 뒤, 더 이상 지형의 구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도 봐야지.”
“그게 무슨 말이죠?”
“유타칸 모든 곳에 뿌려진 창조의 빛이 터지게 되면 더 이상 지형에 상관없이 모든 드래곤이 자신 안에 창조의 힘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본래의 힘을 쓸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모든 이가 이상을 실현하게 할 수 있게 될 거다.”
“모두가 미약하게 창조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겁니까?”
나이트는 조용히 끄덕였고 번개고룡은 ‘그게 말이 되는 건가?’라며 중얼거렸다.
“근데, 이상하네요. 불의 산엔 고대신룡이 온 적 없는데 말이죠.”
헬이 그의 말의 이상한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나이트는 전혀 문제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내가 온 거다.”
“아하…?”
뭔가를 이해한 헬은 약간 불편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내일….’
“번개고룡”
나이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번개고룡에게 말했다.
“모든 것은 무너진 하늘의 신전에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겠다. 난 두 번 다시 대장을 잃고 싶지 않다.”
아주 잠깐 나이트의 표정이 어두웠던 것 같았다. ‘잃는다’의 의미는 번개고룡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 말에 아까의 ‘같은 마음’이라고 했었던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반드시 해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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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안에 끝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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