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74 그들의 추억 (12)
“야,”
“...?”
제트는 번개고룡을 깨우려 그녀를 불렀지만 번개고룡은 비몽사몽 한 상태로 제트를 멀쩡히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야, 일어나라고”
“...!”
“너도 참…. 대단하다. 무슨 깡인지는 몰라도 그 녀석 앞에서 당당히 서 있을….”
두 번째 부름에서 그녀는 제트를 바라보는 초점이 정확해지며 깨어났지만, 반사적으로 제트를 향해 번개불을 쏘았다. 그녀의 느린 공격이야 제트는 쉽게 피할 수 있었지만 번개고룡은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진정해, 나밖에 없으니까.”
제트는 그녀의 두 팔을 붙잡으며 진정시켰다.
“헉…. 뭐야…. 네가 왜 여깄어?”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깨어나고 주변을 둘러본 후에야 번개고룡은 더 공격하려는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엔젤님을 따르는 게 내 일이니까.”
“엔젤..? 그 녀석이 왜….”
말하던 도중 번개고룡은 뇌가 극심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진동해왔다. 머리를 잡으며 다시 상체의 힘이 빠진 듯 바닥에 다시 쓰러져 거친 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이 정도의 고속이동은 네게 무리였던 것 같네.”
“...뭐?”
“죽진 않았겠지만, 그 나이트 드래곤 꽤 진심으로 보였거든. 그 드래곤이 눈치챌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널 잡다 보니….”
제트는 번개고룡에게 엔젤이 고대신룡의 계획을 어떻게 눈치챘는지 알려주었고 어떻게 떠났는지와 이곳까지 오게 된 과정을 설명해줬다.
“날…. 아니 우리를 왜 돕는 거야…?”
“난 엔젤님이 시킨 일을 할 뿐 너희를 돕는 게 아니야.”
“하지만... 엔젤이 왜 다시 고대신룡이랑... 그리고 나이트랑은 또 뭐고? 잠시 그 녀석과 대면하고 있다니…. 말로 설득이라도 하려는 거야?”
“나도 몰라. 늘 숨기고 계신 게 많으셨으니까. 그 서펜트도 그렇고….”
‘말로 설득 될 거였으면 내가 진작에 가능했겠지….’
그녀가 저번에 엔젤과 싸우려 했을 때도 엔젤의 공격 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보였다. 그때도 제트가 대신 그녀와 싸웠었으므로 만약 나이트와 엔젤이 격돌하게 된다면 승패는 거의 뻔해 보였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괜히 화가 났다.
“아니,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나이트 대령이랑 뭘 하겠다고…. 싸우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근데 걔가 싸우는 거 본 적 있어!? 결과는 뻔해…. 결국 모두 소용없을….”
“이상하지.”
이상했지만 제트는 진중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심지어 내가 모르는 엔젤님의 어떤 부분이 있기도 하지. 근데 그게 내가 엔젤님을 믿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아.”
“그럼 넌 뭘 믿는 건데?”
그 물음을 받고서 제트는 불편한 표정으로 그녀를 잠시 쳐다보았다.
‘너무 세게 말한 건가.’
“...왜”
“전부터 느낀 거지만 넌 엔절님을 향해 불신을 넘어선 경계를 하는 것 같아.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그냥 느낌이…. 별로 달갑지 않은 사람이야. 전부터 그렇고 날 치료해준 건 고맙지만 어딘가 숨기는 게 많다는 걸 느낌으로 아니까.”
‘마치 내 스승님처럼….’
번개고룡은 엔젤을 볼 때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렇지만 싫어하는 건 아니야.”
‘그때 망토를 뒤집어쓴 엔젤을 보았을 때 그 여자와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만일 그때 스승님을 만나러 온 그 여자가 엔젤이라고 한들 더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전부 지나갔으니까.’
“그럼 됐어. 그냥 가만히 쉬다가 넌 고대신룡이 혼자 죽지 않게 도와주기나 해.”
“아직, 네가 무슨 이유로 엔젤을 믿고 있는지 듣지 못했어.”
그 말에 제트는 그저 웃으며 화답했다.
“네가 네 동료를 믿는 것처럼 그냥 존재 자체로 믿는 거지. 강인하시고 언제나 약자를 생각하시는 분이니. 어떻게든 해결하실 거야. 넌, 회복이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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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힘을 숨기는 건 불가능 했을 텐데…. 도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거냐.”
“뭘 숨겨? 숨긴 적 없어. 진짜로 나한테 없었으니까.”
“그럼 대체….”
엔젤은 나이트 뒤를 가리켰다.
“지금 고대신룡이 무슨 의식을 치르고 있는 건지 잊은 거야?”
“고작…. 그 작은 힘으로…?”
“작은 힘이라니, 나한텐 이미 충분한데”
믿지 않는 나이트를 향해 손을 뻗더니 빛의 광선이 나이트의 몸을 뚫고 지나간다.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속도에 깜짝 놀랐지만, 몸에 이상은 없었고 미약한 고통이 나이트의 몸 전체에 퍼져나갔다.
“?”
“왜 아무렇지 않은가 싶지? 사실 별거 없어. 난 지금 누군가를 다치게 할 마음은 없거든.”
“그럼 도대체 무슨 수로 대장을 막겠다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을 하며 나이트는 말했다. 엔젤도 자신이 그를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아쉽게도 그 아이와 나의 접점이 많지는 않은지라 내 말로는 그 녀석을 설득하긴 어려울 거야. 하지만….”
그런데 그것은 그와 만났던 자가 엔젤 본인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엔젤은 서서히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나를 대신해서 모두의 진심을 전해줄 아이가 있거든. 아마, 지금쯤 회복을 마치고 제트가 데리고 오겠지.”
“바뀌는 건….”
“아니 분명 바뀔 거야.”
“무엇을 믿는 거지?”
“곧 너도 믿게 될 거야.”
“엔젤!!”
번개고룡의 외침과 함께 나이트는 자신의 몸을 구속하던 어떤 것이 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잘 쉬었어?”
엔젤은 나이트를 뒤로하며 번개고룡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엔젤에게 다가갔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엔젤은 우선순위를 헷갈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지금은 나보다 중요한 게 있을 텐데.”
엔젤은 그녀를 나이트에게 길을 터주듯 몸을 옆으로 뺐다. 그러나 번개고룡은 아까의 상황이 떠올라서 순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고대신룡을 막아야 한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다시 이곳으로 제트와 왔지만, 나이트를 보고서 무의식에서부터 올라오는 공포감이 그녀를 지배했고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했다.
“난….”
“...”
엔젤은 그녀를 이해했다. 죽음의 공포란 누구에게나 쉽지는 않은 경험이니까.
“걱정 마.”
엔젤은 최대한 그녀를 돕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잠시 망설이는 그 어깨를 밀어주려 한다.
“이번엔 다를 테니까.”
엔젤은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갖다 댔다. 떨리던 번개고룡의 몸이 점차 안정되고 있었다.
“네 정신을 해롭게 하던 잡념을 걷어냈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서 그 이후는 네 의지에 달렸어.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
엔젤은 목소리를 줄여 번개고룡에게 말했다.
“아마, 네가 이길 거야. 절대로 다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알 필요 전~혀 없어”
엔젤은 번개고룡을 나이트를 향해 등을 밀어주며 응원했다.
“화이팅~! 번개고룡!”
번개고룡은 사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조금 달라진 거라곤 그녀를 만난 뒤 보이지 않았던 작은 빛의 입자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몸이 홀가분하고 뭐든 쉽게 해낼 수 있는 느낌.
‘마치 지하성체에 있었을 때처럼….’
번개고룡은 천천히 양손에 번갯불을 모았다. 전보다 더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과 요동치는 번개가 그녀의 손 주위에서 살아 숨 쉬었다.
“전과 다소 다르지만…. 변하는 건 없다.”
나이트는 아까처럼 번개고룡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그녀를 기절시킬 생각이었고 곧장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그 생각이 완전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은 번개고룡의 앞에 도달했을 때 깨닫고 말았다.
가까이 갔을 때 엔젤은 나이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고 눈치채지 못해야 할 번개고룡의 눈동자는 분명 나이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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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안에는 끝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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