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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S.S]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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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32
  • 작성일2026.01.31











고신이 하람의 절망을 엿볼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친구를 좀비로서 발견한 날도 아니었고, 인자하시던 꽃집 할머니가 눈 앞에서 잔인하게 죽임당한 날도 아니었다. 그 날은 고신에겐 그저 지나가는 평범한 날일 뿐이었을 것이다.




하람 : "우린 무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걸까."




눈을 말똥말똥 뜨고 하람은 그런 말을 했다. 짓눌러 감은 눈을 옅게 떴다. 그게 저를 향한 말인지 혼잣말인지 잘 파악되질 않아 곁눈질로 그녀의 옆얼굴을 살폈다.




고신 : ".....잠이 안 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저 멀리 천장만을 멍하니 바라본다. 고신은 가만히 주시한다. 무슨 영문인지 통 알 수가 없어 괜히 마음은 불안했다.




하람 : "응, 그러네."




금세 표정을 풀고 평소처럼 배시시 웃는다. 직전의 표정과는 대조되는 아주 빈틈없는 미소였다. 그만 자자. 내일도 걸어야 하잖아. 거기에 하람은 사랑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돌아누운 그 뒷모습에 말을 몇 마디 붙여보려다가 만다. 



실버손으로 가고 있었다. 줄곧 지내던 덴버에선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좀비가 불어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극도로 위험해지고, 점점 떨어져 가는 식량과 물자에 결국 콜로라도 생존자 캠프가 있다는 소문의 실버손으로 목적지를 정하게 된 것이다. 한겨울에 사흘은 걸어야 도착할 거리였지만 두 용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겨울이 되자 덴버의 거리는 좀비와 정신 나간 약탈자로 가득 찼고, 그럼에도 덴버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단지 그들의 집이 외곽에 있었다는 이유뿐이었을 테므로.





새해가 되고, 근처 식료품점에서 물자를 챙기던 고신이 좀비 떼에게 둘러쌓이게 된 그 날,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두 용은 떠날 채비를 했다.




고신 : '그 날은 정말 위험했어. 하람이 구하러 오지 않았더라면 난.....'




새벽이 밝고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덴버를 떠나왔다. 안전하기만 하다면 어디든 좋았다. 그저 생존이라는 저차원의 고충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실버손으로 향하는 길목은 한산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에 떠날 걸. 덴버에만 좀비가 그렇게 많은 거였어. 눈을 감았다. 추위가 심하여 잠에 들기 괴로웠다.





하람의 표정. 그녀가 기록하던 무언가의 글. 가만히 떠올리던 고신은 생각이 최악까지 흘러가자 떨쳐내려 안간힘을 썼다. 괴로운 가정은 말머리부터 끔찍하다.





해가 떠오르고, 흐린 빛이 눈꺼풀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고신은 짜증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옆에 누운 하람은 미동도 않는다. 어제는 종일 걸었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고신은 입고 있던 겉옷을 그녀의 위에 덮여주고 천천히 움직일 채비를 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흐리다. 짐을 챙기고 남겨둔 담배도 한 대 태웠다.



늦장을 부리며 한 시간이 지나고, 기다려도 하람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태 후 이렇게까지 늦잠을 잔 적은 없었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고신 : "하람."


하람 : ".....응."


고신 : "괜찮아?"


하람 : ".....몇 시야?"


고신 : "8시 좀 덜 됐어."


하람 : "늦었네....."




그제야 하람은 몸을 일으켰다. 그게 왠지 힘겨워 보였다.





사태 이전에 하람은 시인이었다. 집에서 종일 책을 붙잡고 있던 하람은 종종 고신에게 이런저런 문학적인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고신은 하람이 말하는 시적인 표현을 잘 이해해 낼 수 없었다. 응 멋지네. 그게 고신이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였고, 하람은 웃었다. 야, 영혼은 어디 갔어? 그럼에도 고신은 하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기억에 남는 시도 몇 편 있다.



사태 이후 하람은 시인답게 공책 하나를 붙잡고 거기에 시나 일기 같은 걸 매일 같이 기록했다. 대게가 하람의 지역 언어로 적혀 있어 고신은 읽을 수 없었지만. 가르쳐주겠다고 하람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도 고신은 늘 사양해 왔다.



아무리 그런 하람이라도, 덴버를 떠나기 전 챙긴 게 작은 회색 수첩 하나와 파란색 볼펜이 전부인 건 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작년에 고신이 선물한 손목시계나 같이 찍은 사진을 모은 작은 사진첩 같은 것은 챙기기 어렵지 않음에도 그러길 마다했다. 애지중지하던 목걸이도 챙기지 않으니, 고신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걷다가 잠깐 쉴 때나, 밤에 자기 전과 같은 시간 나는 때 하람은 틈틈이 그 수첩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무얼 쓰는 거냐 물어보아도 대답 않고 웃기만 했다. 언젠가는 보여줄게. 그렇게 말했다.





그랬던 하람이 어젯밤은 왜인지 수첩에 손도 대지 않았다. 밤을 보내려 들어간 낯선 어느 건물의 벽에 그저 기대어, 텅 빈 눈동자로 타오르는 모닥불만을 바라보고 있던. 옅게 웃고 있음에도 그게 싸늘해 보였다. 알 수 없는 말을 묘한 표정으로 내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어딘가 괴로워 보이기도 했다.



걷는 속도는 어제보다 현저히 느려졌다. 어제 쓰지 않은 것을 채우려는 건지 자주 멈추어 수첩을 들여다보았다. 하람이 앉은 그 옆에 고신도 같이 쭈그려 앉았다. 날이 흐리다. 눈이 올 것만 같다.




하람 : "고신."


고신 : "응."




불러 놓곤 말 없이 웃는다. 고신은 가만히 상상한다. 따뜻한 봄 꽃 구경을 갔을 때나, 가을날 바닷가에 드라이브를 갔던 일. 미소는 변호 없이 아름다웠으나 떠올리고 나니 그제야 깨닫는다. 분명 그 때와는 무언가 다르다.




추위에 양 뺨은 붉게 물들고, 입에선 입김이 모락모락 났다. 춤다, 그치. 그런 말을 했다.




하람 : "오늘 따라 걷기가 힘드네."


고신 : "충분히 쉬어."


하람 : ".....고마워."





수첩을 만지작 거린다. 그 안에 하람이 숨겨둔 절망 같은 것이 기록 되어있을 것만 같았다. 언젠가 둘을 머금고 비극을 향해 뱉어낼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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